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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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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11. 19:39 횃불/1988년

당신의 사고방식을 바꾸세요(2)

- 조오지 산체스

하나님께서 우리보고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보고 어떤 것을 변화시켜 달라고 요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사고 방식의 시작에 민감할 수 있도록 우리를 각성시켜 주시라고 하나님께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를 각성시키자마자 그 다음 조처를 취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 영역들 중의 하나는 자기 눈 곧, 어떤 것을 보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눈을 통제하는 것은 각자의 책임이라고 사람들을 가르칩니다. 설사 그렇게 강조하는 것이 합당하다 하더라도 이것은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 문제는 우리가 그들보고 지옥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을 억누르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서 우리는 사람이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그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여자를 보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보고 음욕을 품는것이 나쁜 일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시선이 지나가는 흔한 것들을 보는 것 자체를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정죄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보고 일반적으로 반응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라고 요구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는 즉시 갈등을 일으킵니다. 그 결과 어떤 사람이 음욕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것을 보는 순간 그는 죄의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그가 아무 것도 보지 말거나 또는, 눈가리개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일반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좌절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우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매력적인 사람이나 사물을 쳐다보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지는 생각들을 다루는 방법이 중요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매력적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계속적으로 음욕을 품는다면 이것은 죄입니다. 하지만 저는, 동일한 자극을 가지고 부정적인 반응은 물론 긍정적인 반응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오래 전에 제가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저는 제 자신의 사고 생활이라는 영역에서 진짜 승리를 갖는 비결을 난생 처음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저를 얼마나 자유롭게 했는지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나쁜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여자를 주시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할 적마다 그것을 인정하고 다음과 갈이 말함으로써 그것을 통제하곤 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제가 건강하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저에게 주셔서 즐길 수 있도록 해주신 훌륭한 제 아내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눈 깜짝할 순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댐은 쌓아졌으며, 긍정적인 새 통로가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일은 신속하게 일어났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현재는 저의 사고 방식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제가 만일 미혼자라 할지라도 동일하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이 달라졌겠지요, “그리고 주님의 뜻이라면 주님의 합당한 때에 저에게 훌륭한 아내를 주셔서 제 생애의 특권 중 일부를 즐길 수 있도록 허락하실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어느 경우에 있어서건 원칙은 동일합니다. 이 원칙은 곧, 자기 마음이 자기 멋대로 생각하도록 방임하지 말고 부정적인 생각을 유발시키는 자극을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느낌들을 억누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소리야? 조오지. 자네가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돼.” 이 말은 단지 부정적인 반응을 강화할 뿐입니다. “억누르는 것은 반항심을 강화합니다.” 그러나 좋은 방향으로 승화시키는 것, 또는 좋은 방향으로 다시 이끌어 가는 것은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대치시키는 일을 강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고 우리의 생각이 부정적인 방식을 시작하자마자 즉시 그것을 포착하기만 한다면 동일한 자극은 긍정적인 결과들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안돼라고 말하여 을 쌓은 다음,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대안(代案)에게는 그래라고 말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댐들을 쌓기 위해 우리는 성경 구절이나 성경의 개념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부정적인 생각을 유발시길 때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돼라고 만 말하지 말고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이런 생각을 해야 돼라고 자신에게 말해야 합니다. 이것은 부정적인 사고방식의 방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되고 고상하고 옳고 순결하고 사랑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을 생각하십시오”( 4:8. 현대인의 성경에서 인용)

우리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행하면 그 다음에는 그분이 우리에게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12~13). 우리는 우리 자신의 뜻을 그분의 뜻에 굴복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옛 방식에 계속 거하지 아니하고 그분으로 하여금 우리를 변화시키도록 허락해 드리겠다고 자신의 의지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변화시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나쁜 생각에게 안돼라고 말함으로써 스위치를 내린 후, 올바른 생각에게는 그래라고 말함으로써 스위치를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엄청난 힘의 근원으로부터 에너지가 우리를 통해 흘러나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들을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성취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변화는 하나님이 일으키시지만 선택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이제 저의 개연적인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제 아내 플로린과의 관계에 있어서 참지 못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육체가운데 있고, 육신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저에게는 참지 못하는 면이 계속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제가 발견하는 것은, 제가 참지 못하는 감정들을 인지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감정에 관해서 말을 하자면, 그것에 관하여 몇 가지 사항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그리스도인은 어떤 감정들은 가져서는 안돼.”라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결과, 많은 진실한 사람들이, 가져서는 안된다는 감정들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죄의식과 싸우고 있습니다. 감정은 모든 인간들에게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은 분노, 시기, 질투, 자기 방어, 정욕, 기타 등등의 감정들을 경험합니다. 이것들은 바울이 말하는 시험들 중의 일부입니다(고전 10:13).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감정들을 우리가 어떻게 처리하느냐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감정들에 의해 지배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잠언 25:28에서 자기를 다스리라는 내용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와 같은 감정들을 다스릴 수 있을까요? 다음에 제시된 세 가지 사항이 도움을 줄 것입니다.

1. 우리의 감정은 반응한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우리 모두 다양한 자극에 의해 시작되는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와 같은 감정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것을 부인하거나 억누르려고 애쓰는 것은 파멸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들은 이와 같은 최초의 반응들에 의해 지배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2. 우리의 지성(마음)은 평가한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의 반응들과 그 있을법한 결과들에 관하여 우리의 마음을 고정시키고 죽 생각해 볼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이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는 자신의 반응을 평가할 수 있는 진리를 더 많이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또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들을 처리하는 법이 무엇인지 알도록 도와 줄 것입니다.

3. 우리의 의지는 선택한다.

최초의 반응을 연정하고 그것을 평가한 후에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위의 진로를 선택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중대한 단계입니다! 우리의 평가는, 우리보고 자신의 감정(반응)이 성서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건설적인 것도 아니고 사랑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간정에 따라 행동하는 쪽으로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성숙하지 못한 반응이며 처신입니다. 이것은 또 불순종이자 죄입니다( 4:17). 그러나 성숙한 선택, 곧 우리의 사고 방식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지금 논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평가에 주의하고 혹 우리의 감정이 원하지 않을지라도 그 평가대로 합당하게 행동하는 일입니다.

 

저는 제 자신이 참지 못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예로 들었는데 이제 그것으로 다시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감정을 느낄 때 그것을 하나님과 제 자신과 플로린에게 인정함으로써 그녀가 저를 이해하고 저를 더욱 도와 줄 수 있게 합니다. 그런 다음에 저는 의지의 행위에 의하여, 하나님의 도우심과 더불어, 인내심을 나타내 보이기로 결심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고전 13:4). 그렇게 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저에게 힘을 주셔서 제가 참을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사실을 저는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짧은 순간에 분명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지금까지 깜짝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제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저에게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실분으로 언급할 때 그는 옳았습니다( 7:24).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와 같은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자신의 사고 방식을 기꺼이 바꾸겠다는 마음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참되고, 고상하고. 옳고, 순결하고, 사랑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에 우리의 마음을 고정시키고 그것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에너지를 방출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1988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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