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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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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6. 11:38 횃불/1991년

어린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10)

복음 전도에 대한 자세(1)

-사우쏠 켄달-

몇 년 전에 저는 다른 형제님과 함께 어느 조그만 광산도시에서 복음을 전하며 한 여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큰 천막을 세우고 날마다 어린이들을 위한 집회를 개최했으며, 그 다음에 이어서 성인 복음집회를 가졌습니다. 어린이들은 쉽사리 모여들었으며, 이 같은 현상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전도자들이 어린이들을 천막으로 모으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어린이들을 모으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그러나 성인들과 접촉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매일 우리는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전도지를 나눠주고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그 여름이 지나자 우리는 이렇다 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짐을 꾸린 후 그곳을 떠났습니다.

이듬 해 여름이 되자 우리는 다시 그곳으로  천막을 치고 계속했습니다. 그 두 번째 여름이 끝날 무렵 우리는 주님께로 돌아온 적은 숫자의 성인들을 얻게 되었는데 그들은 신약성경의 지침을 따라 집회를 계속 갖고 싶어했습니다. 일 주일이 지나자 한 때 어떤 모임에서 사용하던 장소가 비어있으므로 사용해도 좋다는 제안을 받았으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 미약한 사역이 점점 힘을 얻어 주님께로부터 풍성한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때가 어려운 때인 만큼 사람들이 복음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말은 저에게 하지 마십시오, 심지어 저는 패배주의자적인 자세를 취하는 어떤 형제가, 교회는 마치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벽을 세우고 지붕을 없는 초기단계에는 많은 활동을 해야 하지만 완성 단계에 들어가면 그리 두드러진 활동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까지 들었습니다. 그 형제는 구원 얻기로 할당된 영혼들의 숫자가 거의 찼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이상야릇한 신학을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그의 어불성설(語不成說)을 성경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전도 사역이 겨자씨에 비유되어 있어서 그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에는 점점 증대되어 간다는 사실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우리가 복음전도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분명히 한 후, 패배주의를 내던지고, 주 예수님이 명령하신 대로 계속 박력있게 전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그 일은 주님의 일이지 우리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성공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고, 성령님은 무기력하신 분일 것입니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이 물질을 앞세우는 태도는 성령님을 근심시켜 드리거나 그분의 영향력을 소멸시킴으로써 사실상 그분의 역사(役事)를 망칠 수 있습니다. 불신으로 인해 심지어 주님 자신도 아무 권능을 행하실 수 없었던 그 마을은 어디였습니까? 그 일은 주님의 일이고, 성공은 필연적입니다. 성경은, 영혼들이 멸망하기를 하나님은 원치 않으신다고 선언할 뿐만 아니라 죄인들을 구원하는 일에 복음을 어떤 방법으로 전해야 하는지 그 수단까지 정해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수단을 사용해야 할까요? 그것은 곧, “전도의 미련한 것입니다. 슬라이드를 보여준다든지, 음악회를 연다든지, 연극을 보여 준다든지, 토론회를 갖는다든지가 아니라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저의 도시에 있는 몇 교회들은 최근에 재정을 공동출자하여 복음찬송집회를 개최했는데 문자 그대로 수 천 명의 주민들이 그 야간공연에 참여하여 그것을 무척 만끽했으며, 그 중 일부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바로는 참된 교회에 계속적으로 더해진 영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복음전도가 아니라 거의 연예에 가까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전해야 할까요? 때때로 어떤 강사들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는 문구가 자기를 향해 있는 것을 보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그 이유들을 전파해야 한다고 명백히 지시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저 중대한 설교들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다시 한 번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전도할 때는 우리도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그 사람처럼 단순히 말해야 합니다: “저는 신학에 전문가는 아니지만 분명히 아는 것은, 과거에는 제가 소경이었는데 지금은 본다는 사실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에게는 제자를 삼으라는 지시가 주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한 번만 복음을 전하고 그냥 놔둘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 돌아온 자들에게 우리 믿음의 원칙들을 계속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든 복음을 들게 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주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든 주님의 만찬상 앞으로 데리고 나아오도록 애써야 합니다. 또 우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애쓰는 만큼 주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에게도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가르치려고 애써야 합니다.

인근 마을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매주마다 가정에서 모여 격식없는 집회를 갖고 있는데 때로는 미용(이발)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때로는 찬송집회를 갖기도 하고, 때로는 공휴일에 찍은 슬라이드를 보여 주기도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 저녁집회는 아주 짧은 말로 끝맺어지는데 이 말 속에는 아무의 감정도 건드리지 않도록 복음의 요구가 적당히 희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눈을 감고, 사도 바울이 미용(이발)에 관한 대담집회(對談集會)를 계획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아는 한 청년은 어떤 청년선교단체의 선전부장이었는데 저는 그에게 그 직책을 그만두고 복음 전하는 자가 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는 저의 충고를 따랐고, 그가 주님께로 돌아온 후 난생 처음으로 열매 맺는 사역을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1991 5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