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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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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6. 11:38 횃불/1991년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에 관한 고찰(13)

예후의 집

-윌리암 로저스

예후로부터 시작된 열왕(列王)들의 행렬은 이스라엘을 다스린 어떤 왕보다도 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의 집을 심판한 공로로 그에게 약속 하시기를, 그의 자손의 4대에 이를 때까지 왕위에 앉게 해주시겠다고 하셨으며, 이 약속은 그대로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그의 뒤를 계승했고, 그 다음에는 그의 손자 요아스가, 그 다음에는 그의 증손 여로보암 2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사가랴가 계승했습니다. 이들의결속된 통치는 1세기 이상 지속되었으며, 그들 중 28년 동안 통치한 예후와 41년이 넘도록 통치한 여로보암 2세는 북쪽의 어떤 군주들보다도 더 오래 왕좌를 차지했습니다.

혈통적으로 용감한 전사(戰士)들이었던 그들은 수리아 사람들과 및 다른 사람들과 거의 끊임없이 전쟁했습니다. 하지만 열 지파의 다른 모든 왕들처럼 그들도 역시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아니했습니다. 사실, 예후에 의해 일시적으로 멸절되었던 바알 숭배가 그의 후손들의 통치 기간에는 더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설령 그들 자신은 그 숭배에 가담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것을 너그러이 용납했던 것 같습니다(왕하 17:6, 2:8,13,17).

그들의 통치 기간 중에 이스라엘 민족은 좋은 면과 나뿐 면으로 극단적인 상황을 양면 다 맛보았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신명기 32:36의 및 예언에 따라 범죄한 그들을 어찌나 낮추셨든지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는지경에 이르렀습니다(왕하 14:26). 또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큰 구원을 베푸셨으므로 여로보암 2세 때에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종 아밋대의 아들 요나를 시켜서 하신 예언에 따라 그 나라의 북쪽 경계와 동쪽 경계를 완전히 회복하였는데이것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경계와 거의 맞먹는 것이었습니다(왕하 14:25~28). 열왕기하의 기록에는 이 기간 동안 여호와께서 북쪽 이스라엘의 상태에 관하여 어떠한 관심을가지셨는지, 그리고 위에서 진술한대로 그들의 패배와 승리가 하나님의 어떠한 개입으로 말미암아 이루었는지에 관하여 많은 암시들이 주어져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어떻게 예후가 왕으로 지명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에 의해 기름부음까지 받았는지를 보게 되는데(왕하 9:3,6) 이런 영예는 북쪽의 군주들에게는 전혀 주어지지 않았고 오직 그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여로보암 1세는 비록 선지자 아히야에 의해 왕이 될 것이라는 말은 들었을지라도 기름부음은 받지 못했습니다. 이 후에 이어서 우리는 그의 왕조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냐에 관한 여호와의 약속을 읽을 수 있으며, 그 다음에는 그의 실패와 그 결과로 그 자신과 그의 백성에게 징계가 임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찢으시매요단 동편 지역을 잃게 되었다는 기록을 읽을 수 있으며(왕하 10:30~33), 그 다음에는 여호아하스 때에 비슷한 손실이 더 많이 있었으나 그 왕이 겸손히 하나님께 간구하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기록되었으며(왕하 13:3~7),그 다음에는 그 다음 왕 요아스에게 승리의 약속이 주어졌지만 이 약속이 주어지는 엘리사의 임종 자리에서 믿음이 없던 탓으로 약속의 폭이 줄어들었다는 것(13:14~20), 그 다음에는 요아스에게 하신 이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왕하 13:23~25에 나와 있는데 이 부분의 서두에는 여호와께서 무엇을 지로 하여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셨는지 언급되어 있으며, 맨 나중에는 이미 언급한 그 땅의 경계가 여로보암 2세 때에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14:25~27).

예후와 및 그의 후손들 시대에 하나님이 북쪽 지파들을 걱정하신 것과 그들을 다루신 것에 관한 이 언급들 외에도 그 당시에 그들에게 주로 예언하던 호세아와 아모스의 글에서 우리는 그것과 및 그 당시 백성들의 영적 상태에 관하여 더 강력한 증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선지자들이 직접 체험하여 묘사한 그 광경은 어찌나 선명한지 당시의 심각한 사태와 예후가 자랑한 그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의 결과가 얼마나 보잘 것 없고 단명(短命)한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왕하 10:16).

열심은 많은 성경말씀에서 높이 칭찬받는 사항이며, 예를 들면 하나님을 위한 열심(Zeal for God, 25:13, 우리말 성경에는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로 나와 있음-역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열심( 4:13, 우리말 성경에는 많이 수고하는으로 나와 있음-역주), 죄악을 일소하려는 열심(고후 7:11), 헌금에 대한 열심(고후 9:2), 선한 일에 대한 열심( 2:14) 등 다른 않은 사항들과 연관되어 일컬어져 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에게 있는 문제는 너무나 미미한 열심을 가지고 태평스레 표류하는 것을 만족히 여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억해야 할 사실은, 열심이 올바른 종류일 때, 또 올바로 인도를 받을 때만 칭찬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갈라디아 사람들에 대하여 크게 열심을 내었습니다만 좋은 뜻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람들을 자기 주위로 끌어 모으려 했으며, 성도들에게 율법의 굴레를 씌우려 했기 때문입니다(4:17). 이것은 편당적인 열심이었습니다. 사울 왕은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었으므로이로 인해 하나님께로 명령받지 않은 일, 곧 기브온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자행하게 되었으며(삼하 21:2), 그 결과로 초래된 어려움은 그의 사후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곪아터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아말렉 왕은 마땅히 죽였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호와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보건대 그의 열심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지 않는 열심이었습니다. 예후 역시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큰 열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기의 진보를 위한 싸움에는 미치게 몰았지만”(왕하 9:20) 나중에 가서는 하나님의 도()에 지속적인 열심을 전혀 갖지 않았습니다. 그의 열심은 일시적이고 이기적인 열심이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4:18에서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좋으니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첨가되어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좋은 일이어야만 하며, “언제든지”(항상)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1991 5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