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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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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6. 12:28 횃불/1991년

어린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11)

복음 전도에 대한 자세(2)

-사우쏠 켄달-

얼마 동안 저는 가르벨라치(Garvellach) 군도(群島)를 방문해 보고픈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서양의 물(Mull) () 근처에 있는 그 군도는 황량한 바위투성이로 이루어진 소군도(小君島)입니다. 오늘날 이 군도로의 접근을 막는 치명적인 물살 때문에 방문객은 없는 실정이며, 설사 접근을 한다 해도 조그만 배 하나 갖다 댈 만한 장소조차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순례여행을 할 셈으로 이 군도에 상륙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왜냐하면 성() 콜룸바(Columba)가 스코틀랜드에 복음을 전하려고 아일랜드를 떠나 처음 상륙한 곳이 바로 거기였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그는 이오나(lona)를 탐방하여 그곳에 주요 기지(基地)를 설치하게 되었지만 여기, 엘리아치 안 나시므에서 콜룸바는 하나님을 만났을 것이고,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과 더불어 계속 전진하라는 환상과 힘을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메섹의 엘리에셀처럼 콜룸바도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자기가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에 있다는 것을 알았음에 틀림없습니다.

순례여행이 요즈음 유행이든 어떻든 저는 기독교를 저의 모국에, 그래서 결국에는 저에게까지 전파되도록 해준 그 성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픈 마음이 간절하던 터라 금년 7월 중순쯤 드디어 첫 시도를 감행했습니다.

가르벨라치 군도에 이르는 최단거리 노선은 세일(Seil)과 루잉(Luing) 섬까지 차로 가서 거기서 바다를 건너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까지는 쉽지만 그 남쪽에는 꼭 악명 높은 코리브레칸(Cortyvreckan) ()이 있는데 이 만의 바다에는 유럽 유일의 소용돌이가 있습니다. 그 동쪽에는 바위 투성이의 조그만 섬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데 물살이 생명을 위협할 만큼 거세기 때문에 트리니티 하우스(Trinity House, 런던의 導般士 조합)는 인원을 모두 갖춘 등대와 감시소, 봉화대(烽火臺)들이 그 지역에 필요하다고 판정했습니다. 그 서쪽과 북쪽에는 대서양의 망망대해뿐이며, 잔잔한 날씨에도 20피이트( 6미터) 높이로 굽이치는 큰 파도는 마치 눈 하나만 수면 위로 내놓고 몰래 쳐다보는 악어와 같아서 저 악명 높은 서해안 날씨에 의해 언제 격랑으로 변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교통수단으로 카누를 택했습니다. 혼자서 여행하는 경우 카누는 저의 롱쉽(Longship)보다 몇가지 이로운 점들이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만약 재난이 닥친다면 카누를 즉각 포기하고 해안으로 헤엄쳐 가 바위로 상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에 반해 롱쉽은 그 복잡한 설비로 인해 잃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배입니다).

저는 최신 구명장비를 가득 실은 카누로 토요일 아침 일찍 루잉의 서해안을 출발하여 서풍의 눈() 속으로 노를 저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오전 내내 이 섬 저 섬으로 지나다니면서도 대서양의 큰 파도 때문에 그 중 어떤 섬에도 상륙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오후쯤 바람은 더욱 거세졌고, 조수(潮水)는 급속히 삐었으며(물은 급히 빠졌으며), 가르벨라치 군도는 저만치 떨어져 있었습니다. 난제들 중 하나는 물살이 해상(海床)의 모든 암초와 구덩이마다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는 탓으로 섬들 쪽으로 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파도가 섬 뒤에서 갑자기 치솟아 오르듯 항해자의 바로 밑에서도 감자기 치솟아 오를 수 있습니다. 놀라고 피곤한 나머지 결국 저는 그 항해를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카누를 동쪽으로 돌려 바람을 받으며 본토로 귀환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전혀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을 제가 직접 시도해봄으로써 제가 알고 싶어 했던 사항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르벨라치 군도는 단지 어떤 사람들이 만든 아름다운 우편엽서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은 섬들이 아니라 거칠고 잔혹하여 접근하기가 무척 힘든 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룸바는 어떤 모험심이나 보상 때문이 아니라 미개한 죄인들에게 복음 멧세지를 전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그곳으로 계속 전진해 나아갔던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태도를 감안할 때 콜룸바는 전혀 다른 자세를 지녔던 것 같습니다! 혹시 저의 카누가 취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콜룸바는 짐승 가죽으로 만든 조각배로 항해했습니다. 저의 해도(海道)와 수로도(水路道), 구명장비는 최신식이었지만 콜룸바는 나침반은 물론 수로도와 구명장비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추론컨대 콜룸바의 태도는 긴박성과 위기 의식의 성격을 띤 것이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는, 누군가가 가지 않으면 죄인들이 자기 죄 가운데서 죽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었음에 틀림없습니다.

 

(1991 6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