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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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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27. 07:42 횃불/1992년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에 관한 고찰(21)

요 시 야

-윌리암 로저스

 

히스기야가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영예롭게 안치된 날로부터 50여년이 흐른 후 그의 증손 요시야가 8살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다 므낫세와 아몬의 통치가 이어진 그 중간의 기간은 대부분 히스기야가 이룬 모든 선한 업적들을 무효화시키는데 소비되었다. 따라서 요시야가 등극했을 때는 온 나라에 우상이 가득했으며 하나님의 전은 황폐하고 더럽혀져 있었다.

요시야의 개혁 활동을 대강 살펴보면 그가 단순히 그의 증조부의 모방자에 불과한 것과 같은 인상을 받을 수 있는데, 그에 대한 기록들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가치가 그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라고 표현된 그에 대한 첫 기록만 보더라도 어떤 선왕(先王)에 대한 기록보다도 인상적임을 알 수 있다. 그 마지막 문구(“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는 흥미롭게도 신명기의 권고 속에 네 차례 사용되었으며, 그 중 한번( 17:20)은 이스라엘의 미래 왕들의 품행에 대한 교훈이 포함된 단락 속이다. 그것은 또한 잠언 4 27절에서도 발견되는데, 이는 우리에게 요시야가 솔로몬의 어리석은 행실보다는 그의 지혜로운 행실을 본받은 솔로몬의 몇 안되는 후계자 중 하나였음을 상기시킨다.

요시야와 히스기야를 비교해 볼 때 그들 각자에 대한 기록 속에는 우리의 주의를 끌만한 두가지 괄목할 사실이 발견된다. 히스기야의 통치초기에 지켜진 유월절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희락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대하 30:26)고 기록되어있는데 반해 요시야에 의해 지켜진 유월절에 대해서는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열왕도 요시야가 지킨 것처럼은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더라”(대하 35:18)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히스기야 개인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왕하 18:5)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반해 요시야에 대해서는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3:25)고 기록되어 있다.

혹 뒤의 두 기록이 서로 모순되게 보일지 모르나 히스기야의 경우에는 여호와께 대한 그의 신뢰에 강조점이 있는 반면 요시야의 경우에는 여호와께로 돌이킨 그의 심령의 온전함에 강조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요컨대 그와 같은 이가 없었다는 표현이 반드시, 모든 면에서 그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훌륭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요시야에 대해 내려진 동 시대의 사람들의 평가는 당시 인물 중 한 사람이었던 예레미 야의 그에 대한 태도와 말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역대하 35 25절에서 우리는 얼마나 예레미야와 백성들이 요시야의 죽음을 애도하며 대대로 기념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때 지은 애가(哀歌)의 적어도 일부분이 예레미야 애가에 보존되어 있는데 그 책의 4 20절에는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가 저희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저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저의 그늘 아래서 열국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여기에 언급된 인물은 다른 누구보다도 우선적으로 요시야를 가리킴이 분명하며, 여기에 사용된 표현들은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이 젊은 왕의 고결한 통치를 바라보며, “저분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오래 기다려 온 그 기름부음 받은 분이 아닌가! “라는 벅찬 기대에 사로잡혔음을 암시해 준다.

예레미야 22 15,16절에서 우리는 예레미야가 요시야의 통치의 성격에 대해서 내린 평가를 보다 자세히 보게 되는데 거기서 그는 요시야와 그의 아들 여호야김을 대조하고 있다. 그는 네 아비가 공평과 의리를 행치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느니라고 여호야김을 꾸짖었다. 여기서 우리는 시편 72편을 비롯한 여러 대목에서 메시아의 통치와 연관되어 나타난 표현들이 요시야에 대해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역대하 34장에는 우리가 왕의 영적인 진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암시하는 여러 연대가 기록되어 있다. 1절에는 그가 불과 8살에 왕위를 계승했다고 언급되어 있으며, 3절에는 그의 통치 8년에, 다시 말해서 그가 16세가 되었을 때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구하기 시작했다고 언급되어 있는데 이 표현은 그 시기가 명시된 것으로 보아 신약적인 성격의 회심(回心)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의 통치 12년에, 다시 말해서 20세가 되어 그는 전국적으로 우상을 제거함으로써 왕으로서의 통치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통치 18년에 비로소 성전과 그 의식을 복구시킬 수 있었던(8) 것으로 보아 이 일은 완료되는데 6년이 소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절에서 밝혔듯이 그의 통치는 31년간 지속되었음이 분명하며, 따라서 이 때에는 13년의 기간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나머지 기간에 대해서는 우리는 아는 바가 없으며, 다만 그가 자기에게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함으로써죽게 된 것( 26:17과 대하 35:20~22을 비교하라)을 통해 우리는 그가 말년에 이르러 더 이상 솔로몬의 지혜서(잠언)에 주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반면에 히스기야가 중년”(中年)이라고 표현한( 38:10) 39세에 요시야가 취함을 입은 것은 아마도 역대하 34 28절에서 그에게 주어진 내가 너로 너의 열조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곳과 그 거민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는 약속의 성취이자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는다”( 57:1)고 한보다 이른 예언의 성취였을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1992 3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