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3. 6. 28. 16:07 횃불/1993년

여호와의 궁전에 심겨진 나무

 

여호와의 집에 심겨졌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시편 92:13)

 

건강 때문에 침대에 누워있다가 아름다운 가을 햇살에 유혹을 받아 창문을 열어 보았다. 밖의 날씨가 쌀쌀하기는 하지만 이 아름다운 가을에 창문을 닫아놓고 방안에 앉아 있기가 너무 아쉽고 또 무엇인가 중요한 것들을 잊어 버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마을은 취락 구조 마을로서 정부에서 서둘러 집을 지어놓기는 했어도 살 사람이 없어 제발 누구든 살아달라고 사정을 했었다. 그래서 무일푼이던 나도 대궐같은 집에서 집세 하나 내지 않고 몇 년을 잘 살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외지로부터 돈 있는 사람들이 집을 사서 이사를 와 집과 정원들을 너무너무 잘 꾸며 놓았기 때문이다. 창 너머로 보이는 이웃집과 정원도 너무너무 아름답다.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어 있고 모과나무와 그 풍성한 열매 그리고 아름다운 장미꽃 나무들이 울타리 둘레로 죽 심겨져 있으며 그 안으로 온갖 나무들이 심겨져 있다. 남이 가꾸어놓은 아름다운 정원을 돈 안내고 구경하는 것이지만 정원 안의 나무들을 바라보는 동안 그 전에 읽었던 한 말씀이 생각이 났다.

여호와의 집에 심겨졌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시편 92:13).

나는 저 집의 정원에 심겨진 나무가 아니라 아름다운 하나님의 궁전에 심겨진 나무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나무들을 자기의 정원에 심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나무를 심기 위해 많은 댓가를 지불한다. 좋은 나무들은 보통 아름다운 꽃을 피우거나 향기가 있거나 모양이 아름답거나 좋은 열매들을 맺는다. 저 집에 심겨진 모과나무도 탐스러운 열매들을 맺고 있어 아주 보기가 좋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은 나의 무엇을 보고 그분의 궁전 안에 심으셨을까? 아름다운 열매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나는 누구보다도 내가 맺은 열매들을 잘 안다. 거듭나지 못한 내 육체의 나무에서 그동안 내가 맺어온 열매들은 아름다운 것들이 아니라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었다. 성경은 육체의 열매는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갈라디아서 5:19~21)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전에도 그랬겠지만 내 기억으로는 내가 내 스스로를 의식할 수 있을 때부터 나는 그러한 열매들을 맺어왔다(로마서 6:21). 하늘의 일월성신을 향하여 절도 많이 했고, 큰 나무나 돌을 향해 절했으며 심지어 집에 사는 구렁이를 우리 집을 지키는 보호신으로 섬기기도 했다. 성경이 말하는 이와 같은 열매를 맺는 나무를 아름다운 자기의 정원에 심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맺는 아름다운 열매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그의 정원에 심지 않으신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나를 그분의 정원에 심으셨을까? 아름다운 향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그것도 아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주위에 풍겨온 나의 냄새를 잘 안다. 성경이 말하는대로-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고린도후서 2:16)-나는 움직일 때마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사망의 냄새를 주위에 퍼뜨려 왔다. 사람이 죽을 병이 들어 육체가 점점 썩어 들어가면서 내는 냄새는 아주 지독하다. 내게서 풍기는 냄새는 코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사망의 냄새였다. 한국 사람들은 김치에 눌러 살기 때문에(?) 서로가 잘은 모르지만 미국 사람들은 한국행 비행기에만 올라타도 김치 냄새가 난다고 한다. 전에는 내게서 사망의 냄새가 나는 줄 몰랐다. 그러나 구원받은 후 지나간 삶을 돌이켜 볼 때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사망의 냄새를 풍겼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그분의 정원에 심으신 것은 아름다운 향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다.

그럼 무엇 때문에 나를 그분의 정원으로 옮겨 심으셨을까? 내가 아름다운 꽃을 피웠기 때문이었을까? 아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주님도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실 때 성경은 그분을 가리켜 그는····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라고 말하고 있다. 성령으로 잉태된 죄가 없으셨던 주님도 그러하셨거든 하물며 내 자신이야 얼마나 볼품이 없겠는가! 하나님께서도 인간의 생각하는 것이 항상 악하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온갖 죄악이 물든 내게서 아름다운 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꽃이 핀다는 것은 생각할 수없는 일이다. 그래서 꽃이나 모양 때문에 나를 그분의 정원에 심지 않으신 것은 확실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조용히 하늘 정원에 서신 주님과 그분의 친구를 상상해 보았다.

그들은 조용히 정원을 거닐며 하나님의 궁전에 심겨진 여러가지 나무들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다 내 앞에 다가오셨다. 내 앞에 다가온 주님의 친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주님께 물었다.

여기에 이 나무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다 심으셨습니까? 12가지 과일을 달마다 맺는 생명나무처럼(요한계시록 22:2) 좋은 과일을 맺어서 심으셨습니까?”

아니 과일 때문이 아니야라고 대답하셨다.

그러면 무엇 때문입니까?”

그러면 향기 때문입니까?”

아니 그것도 아니야.”

그러면 열매나 향, 그리고 모양 때문도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이 나무를 여기 심으셨습니까?”하고 주님의 친구가 물었다.

주님은 이유는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기 때문이야!”라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주님의 친구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이번에는 다른 질문을 했다.

주님, 그러면 저 나무도 사다 심으셨나요?”

그래, 값을 아주 많이 주고 사다 심었지.” 주님의 대답에 그의 친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저런 나무를 값을 많이 주셨어요? 만원 정도 주셨나요?”

아니 그보다는 더

“5만원 정도 주셨나요?”

아니 그보다는 더

그럼 10만원 또는 100만원이요?”

아니 그보다는 더야.”

주님의 친구는 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럼 주님, 얼마나 주고 이 나무를 사다 심으셨나요?”라고 물었다.

주님은 내 목숨을 주었지. 나는 지금도 이 나무를 볼 때마다 내 목숨을 주고 이 나무를 사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하며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런 열매나 꽃 그리고 모양도 없는 나를 단순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기의 목숨을 주고 사서 하나님의 정원에 심으신 주님!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정원에서 하늘의 진액을 공급받는 나는 앞으로 어떤 열매를 맺으며 어떤 꽃이나 냄새를 피워야 할까?

하나님은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셨다. 그리고 그 중에 망대를 세우시고 그 안에 술틀을 파서 준비하시고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리셨다. 그러나 그 나무는 하나님이 기대하신 좋은 포도대신 들포도를 맺고 말았다(이사야 5:1~4). 하나님은 이 나무를 잘라버리고 다른 나무를 심으려 하셨으나 그 종이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라고 간구하여 기다리셨으나 결국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궁전에 심겨진 나는 그 곳에서 옮기거나 찍히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내게 좋은 열매 맺기를 기대하고 계신다.

나는 내가 하나님의 동산에 심겨진 이후로 맺은 열매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했고 지금부터라도 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동산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들을 맺어야겠다고 생각했다(갈라디아서 5:22,23).

 

(1993 4월호)

 

'횃불 > 1993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의 도덕적 영광(3)  (0) 2013.06.28
장거리 경주  (0) 2013.06.28
그리스도의 심판대(2)  (0) 2013.06.28
횃불칼럼 - 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  (0) 2013.06.28
알고 싶습니다 - 사단과 천사에 대해서  (0) 2013.06.28
회중 앞에 나아가는 사회자  (0) 2013.06.26
예배(2)  (0) 2013.06.26
약속  (0) 2013.06.26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