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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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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22. 16:29 횃불/1993년

그리스도의 부활(2)

바울 서신서에서

-시드니 멕스웰 -

 

그리스도의 부활이란 주제는 바울 서신서 전체에 깊이 스미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놀랄 필요가 없는데, 이는 다소의 사울이 그리스도를 처음 만난 것은 그분을, 부활하여 영화롭게 되신 하늘에 계신 인자로서 뵈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9:3,4). 오만한 바리새인인 그는 그 부활의 영광의 불꽃 앞에 엎드러졌습니다.

그 후에 그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전도자로서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담대히 외쳤습니다( 13:30). 그는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철학자들과 대면하여 이 세상 심판 날에 대하여 경고하고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선언했습니다( 17:31). 또한 그는 가이사랴에서 죄수의 몸이 되어 아그립바 왕 앞에서 모세와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여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실 것을 전파했습니다( 26:23).

이로 보아,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인자께서 부활하사 영광을 얻으셨다는 사실이 바울의 헌신된 심령에 깊이 새겨져서 순교의 그 순간까지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딤후 2:8). 그러기에 우리는 초기서신, 옥중 서신, 혹은 목회 서신을 막론하고 그의 모든 서신에 이 위대한 진리가 새겨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놀라운 진리를 다음 네 부분으로 상고해 봄으로써 이 주제를 바울서신 전체에 걸쳐 체계적으로 펼쳐 보이겠습니다.

 

역사적인 확증

사도행전의 독자들이 보기에, 초기 전도자들은 결코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그것을 전파했을 뿐입니다.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은 그 확실성을 부인하기보다는 그 실재성을 억누르려 한다는 말은 아주 적절한 지적입니다. 바울의 위대한 장 중 하나를 살펴볼 때, 우리는 그가 자신을, 그리스도의 부활의 마지막 증인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고전 15:8). 그분은 게바와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5).

여기에는 여자들은 언급되지 않았는데, 그것은 공적인 증거의 문제는 남자에게 위임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 제 역할이 있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는 잠잠한 것입니다(고전 14:34, 딤전 2:11,12).

주님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습니다(7). 영광 중에 계신 그분을 처음 대한지 24여 년이 지난 후였지만 바울은 내게도 보이셨다고 확신 있게 말합니다(8). 30년이 지난 후에도, 그가 주님과 나눈 친밀한 사귐은 그의 영혼 속에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을 알고자 하는열망을 일으켰습니다( 3:10).

고린도전서 15:1~8의 진술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증할 뿐 아니라 바울의 사도권을 입증해 줍니다(고전 9:1).

 

교리적인 의미

여기서는 먼저 기독론부터 상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위()에 영향을 미치는 까닭에 부활을 상고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연대적으로는 여섯번째이나 신약성경에서 교리적으로 첫 위치를 차지하는 로마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로마서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위대한 진리가 펼쳐지며, 우리의 신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립됩니다 또한 거기서 우리는 부활에 관한 체계적인 가르침을 대합니다. 그러면 부활과 관련있는 몇몇 중요한 구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서 1:4에서 부활은 그분의 아들되심의 표로 간주됩니다. 그분의 부활자체가 그분을 아들이 되게 했다는 뜻이 아니라, 부활의 능력을 통해서 그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죽은 가운데서 부활은 문자적으로는 죽은 자들의 부활로 옮겨진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분명히 확증하는 한편, 그 속에는 과거 복음서의 사건들과, 미래에 있을 부활들을 바라보도록 하는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과부의 아들( 7:11~18), 야이로의 딸( 8:54~56), 나사로( 11:1~44)등의 부활은 그분의 아들되심의 증거들입니다. 그리고 미래를 내다 보면, 성도들이 부활할 것이며(살전 4:13~18; 고전 15:50~57), 그런 다음 죄인들이 최종적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20:11~15).

에베소서 1:20~22에서 부활은 그분의 머리되심으로의 승귀(昇貴)”를 암시합니다. 그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로 언급되어 있는 골로새서 1:18에도 이러한 개념이 나타나 있습니다.

로마서 14:9에서 부활은 그분의 주되심의 인정을 나타내 줍니다.

부활의 교리는 구원론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로마서 4:25에서 바울은 그분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칭의의 기초였고( 5:9)그분의 부활은 하나님 앞에서 그것이 받아들여졌음을 보증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은 이 부활을 근거로 합니다( 5:1). 로마서 10:9에 의하면,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직 예수께서 주님이심을 시인하고 하나님이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는 것뿐입니다. 이러한 구원 방법은, 이스라엘민족이 구주께로 돌아오고 그들의 마음의 수건이 벗겨질 그 날까지 계속 적용될 것입니다(고후 3:16).

고린도전서 15:1~4에는 바울의 복음에 대한 분명한 진술이 나오는데,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 선언의 중요한 요소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것을 전파하는 일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안다는 것은 얼마나 격려가 되는지요!(6:9,10) 이 사실로 인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 요구도 하지 않으시며, 부활하신 그분은 우리를 위해 중보하십니다( 8:33~35).

 

실질적인 적용

우리가 확신하건대, 성경의 진리 중에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위한 실질적인 교훈이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현재 우리가 상고하고 있는 주제 또한 그 점에 있어 예의일 수 없습니다. 로마서 6:4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아버지의 영광과 연결시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분의 능력의 영광입니다( 1:19,20). “새 생명은 신자의 삶에 있어서의 거룩으로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은 결과입니다. 이것은 로마서 6:11,12에 우리를 위해서 정리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났으므로 죄가 우리 죽을 몸에 왕노릇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침례에 대한 도덕적인 가르침이 날마다 우리의 삶에 능력을 발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로마서 7:4에서 우리가 그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이, 즉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분에게 속해 있습니다 그 결과신자의 삶에 열매가 맺어집니다. 그것은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열매이므로- 1:13, 1:22), 변화된 삶에 나타나는 거룩함의 열매입니다( 6.22).

끝으로, 골로새서 3:1에 의하면, 우리가 그 부활 안에서 그분과 연합된 사실은 신자의 위엣 것을 구하는 마음에 나타나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운 자로 나타나는 반면에( 2:6), 골로새서에서는 이 광야에 거하며, 그분과 함께 살리심을 받은 것을 생각하며 위에 있는 것을 구하고” “생각하는자로 나타나있습니다( 3:1,2). 흥미롭게도 이 구절에 나오는 두 단어는 명령형으로서, 즉각적인 순종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실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종말론과 관계가 있음을 주목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10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분이 하늘로부터 오신 아들임을 말해 주는데, 이는 그분의 신성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이신데, 이는 그분의 인성을 가르쳐 주는 한편,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그분은 또한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살전 5:9). 이것은 주의 날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입니다(살후 1:7,8)

슬픔에 잠긴 성도들은 데살로니가전서 4:14을 통해서, 주 예수님의 부활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그들의 사랑하는 이들이 그분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살아날 것임을 보증해 준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고후 4:14 참조). 데살로니가전서 1:10에서 우리는 보존을 얻는 한편, 데살로니가전서 4:14에서는 위로를 얻습니다.

끝으로, 고린도전서 15장으로 돌아가 몇몇 중요한 사실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고전 15:13).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망했을 것이며(18), 우리가 모든 사람 중에 가장 불쌍한 자일 것이므로(19) 실로 우리의 장래는 암담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바울은 왜 세례를 받겠는가 하고 묻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죽은 자들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부활을 예표하는 침례는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고전 15:29). 그러나, 그는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는 승리의 외침을 말합니다(20). “첫 열매란 단어에서 우리는 그분의 강림시에 있을 추수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23).

그분이 오실 때 우리가 그분의 영광의 몸과 같은 몸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요!( 3:20,21, 8:11)그 때에 일어날 큰 변화가 고린도전서 15:51~58에 우리를 위해 진술되어 있습니다.

이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계된 중요한 진리들에 대한 상고를 마치면서 우리 모두 아이작 왓츠의 훌륭한 찬송시의 영감 속으로 들어가 우리의 부활하신 주님 앞에서 경배드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축복된 아침이 밝아오니

보라 하나님의 아들을,

무덤에서 일어나셨네

그 어두운 곳을 떠나셨네

 

지옥과 무덤이 힘을 합쳐

헛되이 우리 주님을 붙잡았으나

갑자기 정복자께서 일어나

저들의 무력한 사슬을 끊으셨네

 

전능하신 주님, 그 위대한 이름에

우리가 거룩한 존귀를 드리고

큰 소리로 호산나 외치니

놀라운 승리의 날이 밝았네

 

(1993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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