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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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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 17:26 횃불/1994년

교리적인 의인 실제적인 죄인

허 윤 욱

 

얼마 전 필자는 미혼 시절에 열심히 교회에 다니다가 지금은 중단하고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어떤 아주머니를 상담한 적이 있다. 그는 거듭난 적이 있느냐는 나의 질문에 대해서 거듭났다고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죄인은 지옥간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어떻게 죄인인 당신이 천국에 갈 수 있겠느냐고 묻자 자신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용서 받았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고대답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연이어 말하기를 아주머니는 날마다 죄를 짓고 있으며 오늘도 죄를 짓고 또 지을텐데 어떻게 천국에 가겠느냐하니 그때부터 묵묵부답이었다.

필자는 이 일을 통해서 신앙의 본질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알 것은 금일의 수많은 기독인들이 속죄를 지식적으로,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배운다는 사실이다. 필자의 기억으로 70년대나 80년대 초만 하더라도 믿는 자의 신분에 대해서 의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놀라는 것이 통례였다. 우리 모두는 다 죄인이며 믿어도 죄인이라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예전과 비교해 볼 때 요즘은 상당히 달라진 것 같다. 복음주의자들이 꾸준히 계몽을 한 결과인지는 몰라도 오늘날은 지식적으로 복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사단의 전략은 있다.

속죄의 복음을 머리로 알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는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성경공부를 통해 교리적으로 구원의 도리를 배워 알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지식적으로 배웠을 뿐 그 자신은 구원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속죄의 도리를 통해서 구원을 경험하는 바 이 사건은 하나님과 나와 개인적인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며 천국과 지옥과 나와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해하는 차원이 아니고 또한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다.

입으로는 죄에서 놓여서 의인이 되었노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실제 생활은 죄에서 해방 받은 삶을 누리지 못한다면 어찌 구원 얻었다고, 의인이 되었다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신앙은 체험이다. 기독교는 체험 신앙이다. 그러므로 입으로 말하는 진리가 생활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위선이요 소리나 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처럼 공허할 뿐이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17:3).

여기에서 안다는 단어는 기노스코라는 헬라어로서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다는 뜻으로서 요한복음 18 2절에 나오는 안다”(에이도, 단순히 안다는 뜻)는 단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구속의 진리를 경험하는 것은 이렇다.

첫째로 자신이 극단적 상황에 놓인 비참한 죄인임을 경험하는 것이다. 실제로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그와같은 경험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을 보게 된다. 요한복음 4장의 우물가의 여인이 그러했고 삭개오가 그러했다.

우물가의 여인이나 삭개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점은 자신이 도덕적으로 구제불능의 죄인의 상태에 있으므로 하나님에게 버림받았으며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골로새서 121절에도 전에 악한행실로 멀리 떠나(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하신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죄인임을 깨달을 때에야 구원의 서광이 비치는 것이다.

둘째로 불쌍한 죄인을 찾아오신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다. 죄인의 집에 찾아오신 예수님 앞에서 삭개오는 감격하여 목이 메였으며 그러므로 그는 놀라운 회개와 변화된 간증을 나타낼 수 있었다. 천하고 더러운 마굿간으로 오신 예수님은 지금도 자신이 천하고 더러운 죄인임을 깨닫고 겸손히 주님을 부르는 자들에게 가까이 하신다. 최근에 어떤 장로교회 장로님이 필자가 인도하는 집회에 참석하여 구원받고 고백하는 말을 들었다. 그는 말하기를 지금까지 40년간 예수님을 만나려고, 잘 보여서 그분의 환심을 사려고, 종교적인 노력에 시간을 다 소비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그분을 영접하기 보다 그분을 내편에서 찾으려는 노력으로 거듭난 경험도 없이 고생만 하였다는 것이다 얼마나 슬픈 고백인가?

금일의 수많은 사람들이 불쌍한 처지 즉 죄로 말미암아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죄인을 찾아와서 십자가의 공로로 모든 죄를 용서하고 지옥에서 건져주시는 예수님을 경험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따르며 교회의 요구사항을 충실히 순종하고 선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주께서 감탄하시어 상주시고 천국 보내주시는 종교적인 예수님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 독자여 비참한 죄인으로 지옥의 문 앞에서 무서워 떨고 있는 당신을 찾아오셔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시기까지 십자가 사랑으로 당신을 건져주신 사랑의 예수님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대는 거듭난 신자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대는 허울좋은 종교인으로서 알맹이 없는 쭉정이에 불과한 것이다

세번째로 그대의 경험할 바는 이와 같은 속죄의 주님을 만나므로 천국을 소유한 분명 한 경험인 것이다( 3:20).

앞서 소개한 장로는 그렇다면 지금 죽으신다면 어디에 가겠소?” 하는 질문에 천국 갑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에게 어제 죽으셨다면 어디에 있겠습니까?” 라는 질문은 지옥에 갔겠지요라는 답변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그는 이론적 의인이 아니다. 교리적으로 깨달은 의인이 아니다. 죄에서 해방 받으므로 지옥에서 건짐받아 천국을 소유하게 된 놀라운 거듭남의 경험을 갖게 된 것이다. 그는 이제 비로소 아버지 품에 안긴 자식의 신분을 회복한 돌아온 탕자였던 것이다.

구원은 경험이다. 이론이 아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17:3).

 

(1994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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