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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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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 17:28 횃불/1994년

영국을 다녀와서

 

여행은 생각하는 사람에겐 매우 유익한 배움의 기회가 된다. 마치 산을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그 시야가 더욱 새로워지며 더 넓어지는 것처럼 여행하는 사람은 더 넓은 세계와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됨으로 자연히 세계와 사람을 바라보며 이해하는 면이 달라지게 된다. 어떤 때는 지나간 역사, 그리고 영적 인면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된다. 물론 독서를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되지만 그러나 여행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현장을 보고 느끼는 현장감이다. 만나보지 못한 사람과 지나간 일에 대해서까지도 그렇게 된다. 이는 역사의 현장에 가서 그 역사를, 때로는 들으며, 때로는 보고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마치 시간 단축 카메라를 통해 과거를 관통해 보듯이 말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 흥분, 그 감격과, 그 감동을 여행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번 여행을 통해 배우며 얻은 축복이었다.

이번 여행은 스코틀랜드 출신 홍콩 선교사인 보이드 에이킨(Boyd Aitkin) 형님의 스코틀랜드 방문 초청이 계기가 되어 북 아일랜드의 앤더슨(John Anderson) 형님과 에이레(남 아일랜드)의 엘벗 그레이(Albert Gray) 형님이 아일랜드 방문을 주선하게 되고, 또 그러는 동안에 생각지 않게 러시아의 모스크바의 선교사로 가 계신 김송열 선교사가 그곳의 성경적으로 모이는 모임 성도들의 아름다운 삶에 감동을 받고 한국의 모임들이 생각이 나서 초청을 주선한 결과, 때마침 구라파를 방문하게 될 우리에게 부탁이 와서 주님의 뜻으로 분별, 받아들이게 됨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실로 우리의 생애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머리 숙여 감사를 올린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11:33).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소득이랄까, 또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교훈을 먼저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겠다.

1. 신앙의 투쟁의 위대성과 그에 대한 경각심.

2. 해외 선교의 위대성과 그 특권.

3. 신앙의 순결성과 나그네의 삶.

 

1 31~2 8(미국)

2 9~3 6(영국,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2 10일에 런던에서 정병은 형제와 합류)

3 7~8(로마)

3 9~15(러시아)

3 16~18(서독)

3 19~22(미국)

3 23(서울로 귀국)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약 일주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저녁 집회를 인도하도록 준비되어 있어서 그 스케줄을 따라 행하느라 한편으로는 주님의 은혜와 존귀를 느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영육간에 고역이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어떻게 행함이 주님과 한국 성도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여 여러모로 신경을 써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 먼저 영국(England)과 웨일즈(Wales)와 스코틀랜드(Scotland)와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의 모임들을 방문하면서 보고, 듣고, 배우고, 깨닫고, 반성한 점들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영국의 공식국가 명칭은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대 브리텐과 북 아일랜드의 연합 왕국인데, 보통은 이것을 생략해서 연합 왕국”(United Kingdom)이라 부른다. 그 이유는 영국이 앞에 말한 네 왕국(England, Wales, Scotland, Northern Ireland)이 연합되어 만들어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드디어 2 8일 시카고에서 부리티쉬 항공편으로 영국 방문의 장도에 올랐다. 필자가 이 영국 방문을 장도(壯途)”라 할 만큼 크게 표현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영국은 필자가 영적으로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이는 영국은 세계에서 영적으로 가장 유서 깊은 나라로서 성경 번역과 신앙의 투쟁과 세계 선교에 있어서 가장 탁월한 업적을 남긴 나라였기 때문이다. (필자가 1978년 런던과 부리스톨(Bristol)의 죠지 물러 형님에 의해 세워진 모임과 고아원을 방문하러 갈 때는 그런 느낌이 없었다.)

둘째는 이 여행은 필자가 감히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과 선교사들을 배출한 신령한 교회들을 공식 방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필자는 서울을 떠나기에 앞서 서울북부교회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간절한 기도 부탁을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필자 자신도 얼마나 기도하며 걱정했는지 모른다.

비행 시간은 아홉 시간여 걸렀지만 지루하다기 보다는 시간이 벌써 갔나 했다. 이는 기내에서 다른 사람들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기내 화장실에 가서 클락(Allen D. Clark)박사가 쓴 한국 교회사(A History of the Church in Korea)를 정신없이 읽으며 집회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는 동안 비행기는 벌써 착륙 준비를 하고 있었고 잠시 후에는 목적지인 런던 히드로 공항에 아침 9시경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72세의 데니스 힌톤(Dennis Hinton) 형님이 나오셔서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다. 이 형님은 전형적인 영국신사인데다 모임 안에서 인격이 다져진 모습을 하고 계셨다. 그리고 과거에는 ‘Precious Seed’ 월간지에 자주 기고도하여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분이라고 들었다. 이 형님의 안내로 자동차로 삼십 여분 걸리는 런던 교외의 그분 댁에 와서 하루밤의 신세를 지게 된 셈이었다. 이것은 필자가 비행기 예약에 차질이 생겨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런던에 오게 되어 생긴 뜻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으니 이는 그날이 바로 수요일 집회가 있는 날이어서 그 형제님과 함께 런던 근교에 있는 「밀 레인 교회」(Mill Lane Chapel)에 참석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형님 자신이 초청을 받아 수요일마다 가서 성경을 가르치는 모임이었는데 그 형님께서 집을 나서기 전에 나에게 묻기를 오늘저녁 수요 성경공부가 있는데 함께 가겠느냐고 하기에 나는 ,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곳에 와서 많은 성도들과 여러 모임들을 찾아가 보는 것이 저의 소원이니까요라고 대답했다 그 형님은 다시 그러면 성경공부 시작하기 전에 약 20분간 한국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필자는 엉겁결에 그렇게 할만큼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하고 나니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필자는 말씀 증거와 관련해서 다급할 때마다 주님께 아뢰는 기도가 있다. “당나귀를 통해 말씀하신 주님은 저를 통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옵소서,” 또는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핍박 중에 당국자들에게 끌려갈 때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능력으로 도와주시옵소서.” 이 때에도 필자는 그런 기도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집회소까지 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나는 내내 주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렸고 집회소에 와서 찬송을 부르는 동안에도 간절히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렇게 간절했던 이유는 무언가 덕을 끼쳐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찬송이 끝나고 성경을 공부하기 전에 기도회가 시작되었는데 청년들이 하나같이 얼마나 간절하고 활발하게 기도하는지, 그 기도는 나로 하여금 그들의 조상인 1860년대와 1870년대에 중국에 선교사로 와 있으면서 당시의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 한국에 자주 찾아와 복음을 전하려고 애쓰던 그 고마운 선교사 형님들을 생각나게 했다. 아울러 1960년대에 단신으로 한국에 와서 성경적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목숨을 바친 제임스(Edwin A. James) 형님과 기타 선교사 형님들에 대한 생각이 남과 동시에 그분들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한국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나를 포함한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게 된 것을 생각했을 때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에 마음이 사무쳐 얼마나 흐느꼈는지, 그 터져 나오는 눈물과 감정을 억제하느라고 무진 애를 썼다. 기도회가 끝이 나고 나의 차례가 되어 등단했을 때에도 역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감정이 복받쳐 한참 동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마냥 그렇게 서있을 수만 없었기에 주님께 내 감정을 진정해 주시기를 속으로 기도했다. 잠시 후 마음이 진정이 되었을 때 나는 고개를 들고 그곳에 모인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제가 왜 흐느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여러분들의 열렬한 기도소리에 우리 한국에 오셔서 복음을 전해 주신 여러분의 조상들을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초창기에 한국에 오셔서 복음을 전해 주신 분들은 바로 이 나라에서 오신 여러분의 조상들이었습니다. 웨일즈 출신 토마스(Robert J Thomas) 선교사님은 1866년에 대동강을 통해 입국을 시도하다가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그때에 몇 개의 중국어 신약 성경을 강둑에 집어 던진 것이 계기가 되어 그 성경을 집어 가지고 간 사람 중에 그것을 읽고 믿은 사람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밖에 스코틀랜드 성서 공회에서 파송된 알렉산더 윌리암슨(Alexander Wiillamson), 한국어 성경을 번역한 죤 로스(John Ross)와 그의 동서인 죤 맥킨타이어(John McIntyre), 오스틴 탐슨(J. Austin Thomson), 등이 오셔서 우리 나라에 복음을 전해 주신 것입니다. 이 분들은 다 중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인데 어떻게 조그만 나라이며 또 외국과의 교류를 일체 거부하고 외국인을 배척하는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고 또 찾아왔는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이분들이 한국에 오셔서 눈물로 씨를 뿌렸던 것입니다. 눈물로만 아니라 피를 흘리면서 씨를 뿌렸던 것입니다. 즉 한 알의 밀이 되어 죽은 것입니다. 그 결과로 지금 제가 여러분 앞에 서 있게 된 것이고 한국의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저는 그 분들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그렇게 훌륭한 신앙의 유산을 받은 그 분들의 후손들입니다. 그 분들의 뒤를 이어 여러분들도 계속 선교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간절하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12:24)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죽으면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는데 그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자기와 관계된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으로 가기 위해 자기와 관계된 모든 것, 즉 그의 본토, 친척, 아비 집 등을 다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그 결과로 아브라함은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까? 여러분과 저도 한 알의 밀이 되어 죽는다면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말씀이 끝났을 때 성도들은 많은 감동을 받은 모습으로 말하기를 오늘 우리들은 보너스를 받았다고 했다. 그것은 아마도 생각지 않은 사람이 와서 자기들도 모르는 자기들의 조상들이 한국에 와서 피와 눈물로 복음을 전한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됨과 동시에 그 일에 감사하여 흐느끼는 그 열매를 나를 통해 친히 목격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날 저녁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주님께서 내가 어떻게 말할 것을 다 준비하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날 저녁 이후로 나는 등단에 대한 부담 대신에 평온함을 가지게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1994 5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