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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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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1. 10:56 횃불/1994년

6월이 오면

이민영(대구 대명동교회)

 

봄이 시작되는 3월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그 시작과 소망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한껏 푸르러서 가지각색의 녹음을 드러내는 6월도 많은 노래와 시의 소재가 된다.

모란꽃 피는 유월이 오면~”

가곡을 들으며 나의 유월을 생각한다. 그 해는 대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민주를 외쳤고 결국 대통령의 6·29선언이 뒤따랐던 유월이기에 1987년의 유월을 잊지 못하는 이들은 많을 것이다. 특별히 무더운 대구의 날씨와 함께 나에게도 잊을 수 없는 유월이 되었다.

 

나는 경남의 작은 도시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죽음을 생각하기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소녀였다. 죽음이란 것은 너무나 절망스런 사실로 다가왔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은 언제나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죽음으로 인해 모든 것이 끝나고 소멸된다면 이 삶에서 바둥거리며 살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유난스레 큰 소리로 웃고 떠들어 보아도 마음 속의 알 수 없는 어두움과 혼란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는( 14:13) 삶이었지만 주위의 친구들에게는 유쾌한 아이로 인식되었다.

그렇게 고3이 되었을 때, 이제는 그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대학을 먼 곳으로 가려 했지만, 막내로 자라 철없는 것을 보낼 수 없다 하시는 엄마의 염려에 부딪쳤다. 마침 직장이 대구 부근이었던 큰 오빠의 중재로 인해 결국 대구에 와서 대학생활을 하게 되었다. 대학의 자유나 낭만도 내게는 큰 의미 없이 진부한 것이었고, 적성에 딱 들어맞지도 않는 학과공부 역시 별 열심이 없는 채로 시간을 보냈다.

학년 초부터 여러가지 학내문제 등으로 분규가 계속되었는데 서서히 그러한 일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잘못된 제도에 항거하는 일과 고통받는 민중 편에 선다는 것은, 나 자신에만 집착해서 살던 그동안의 삶보다는 훨씬 가치있고 보람된 일이었다. 2학년이 되면서, 많은 책을 읽으며 더 적극적으로 집회(시위)에 참여했다. 돌을 들어 나르고, 최루탄 가루를 뒤 집어 쓰기도 하면서. 이었다. 2학년이 되면서, 많은 책을 읽으며 더 적극적으로 집회(시위)에 참여했다. 돌을 들어 나르고, 최루탄 가루를 뒤집어 쓰기도 하면서.

그러나,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은 나를 그것에 몰두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때에 늦지 않게 나를 부르시려는 계획을 진행하고 계셨다. 1학년 때부터 항상 같이 다니던 친구가, 같은 과()의 남학생(지금 같은 교회의 형제)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로 세상의 종말, 하나님·····그런 내용인 것 같은데 나는 불쾌한 심령으로 아예 피해버리고 듣지 않았다.

그러다가, 6 6일 공휴일, 선배들과 공원에 가서 함께 토론도 하고 시민들에게 전단을 나눠주면서 하루를 보낸 뒤였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는 말하기를, 그 남학생의 교회에서 특별한 집회(복음집회)가 며칠간 열리고 있는데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같이 걷던 중이므로 별 생각없이 함께 들르기로 하고 교회로 향했다. 적당한 노선버스가 없어서 걸어갔는데, 숨쉬기도 힘겨울 정도의 더운 날씨였다. 드디어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는 널찍한 교회당에 들어섰을 때 그 남학생은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나는 속으로 별스럽다고 생각했다. 잠깐 들렀다 갈건데 뭐가 저리도 반가울 일이람.

키가 좀 작은 편에 속하는 강사가 말씀을 시작했다. 주로 종말에 관한 것이었고 나는 무관심하게 흘려 듣고 있었다. 강사 자신의 간증도 했는데 일반 교회를 오래 다녔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이 자기를 위하여 모든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말은 순간적으로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왜 그렇게 무능력하게 죽어갔냐?”라고 교회 다니는 친구들에게 빈정거리면서 종종 이야기 했지만 아무도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았었다. 아니, 말해주었어도 그때는 전혀 깨달을 수 없었던 것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 때의 당혹스러움이란.

위선과 교만으로 가득찬 나의 죄성에 어렴풋이나마 한계를 느끼고 있었고, 그러면서 예수님을 비웃기만 한 나를 그분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위해 피흘리며 자기의 목숨을 주었다는 것이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8),

그 뒤로는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손을 들라, 일어서라 그런 말을 한것 같지만 나는 그저 울기만 했다. 마음의 심란함으로 인해, 구도자 카드를 적어달라는 장로 형제님께 불쾌한 표정으로 거절을 하고 개인교제를 하려는 한 자매님께 귀찮게 자꾸 질문하지 말라고 쌀쌀하게 말했다.

며칠 후 홀로 무릎 꿇고 주님 이라고 고백하던 그 밤까지 별로 길지 않은 시간동안 심령의 싸움은 격렬했다. 헛된 인간의 자존심은 굴복하기를 거부하고 있었지만, ‘이것이 진정 진리인데 너는 어리석은 자로 남으려느냐라는 음성을 나는 받아들였다. 결국 예수님을 나의 주와 구주로 시인한 후에야 싸움은 그치고 평안을 얻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으면서도 흠뻑 젖은 채로 주님 생각에 행복할 수 있었고, 아는 찬송가가 없어서 한 여름에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를 흥얼거리면서도 좋아 어쩔 줄을 몰랐다. 머지않아 순종의 작은 시험이 닥쳐왔다. 그것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13:1)라는 말씀이었다. 그 때의 복음집회를 통해 역시 주님을 시인한 친구와 함께 우리는 분노하고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나님,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셔서 나를 실망시키십니까?’라는 당돌한 질문을 내뱉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 남학생(형제)의 권유로 어느 형제님 댁을 방문하였는데, 바로 나에게 구도자 카드 적기를 권하셨던 형제님이었다. 여러 시간의 교제 중에 로마서 13:1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다만 성경 전체를 개관하시며, 인류의 역사와 그 전체를 통한 하나님의 사역을 도표로 보이시고 말씀해 주셨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내가 도무지 다 이해할 수 없는 태초, 영원 그리고 무한하신 하나님. 그분 앞에서 무슨 말을 할텐가!

그 후 그 말씀에 순종하여 시위에 참가하는 것을 줄이게 되자 같은 과의 친구들은 의아스러워하며, ‘㉠㉠이네 교회가 좀 이상한 곳이다라는 등의 이야기도 오고 간다. ‘그 남학생의 교회가 아니라 이제는 나의 교회라고 그들에게 말해 주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0:9~10).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8).

오랫동안 교회 생활을 하거나, 말씀을 깨달으려고 주님을 간절히 찾다가 구원을 받은 분들에 비하면 나는 한 순간의 일이었다. 어떤 분들은 나에게 정말 은총을 받았다고 말한다. 누구인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구원 받을 수 있으랴마는 나는 그저 놀라운 은혜라고 밖에는 할말이 없다.

주님을 안 지 만 7년이 되는 유월이 다가와 있다. 그동안의 삶에서 나는 여전히 죄성을 드러내며 신실치 못했지만, 철없는 대학생 때부터, 아이들에게 인내하지 못하는 성급한 엄마인 지금의 나에게까지 주님은 여전히 신실하시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날마다 주를 알아가므로 현재가 가장 행복하고 보람된 때이다라고 하시던 어느 노() 자매님의 말씀을 생각한다. 나 또한 그 해의 유월이 잊을 수 없이 소중하지만 을해의 유월은 더욱 행복할 것임을 안다. 유월의 한 송이 모란을 두고도 노래하는데 나는 더 큰 소리로 우리 주님을 노래하리라. 하늘의 언어로 찬양할 그 날을 소망하면서.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하니”( 5:13).

 

(1994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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