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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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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3. 10:42 횃불/1994년

요한계시록 강해(18)

12 1~8

어거스트 반린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12:1,2).

12장에서 이 놀라운 계시록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줄곧 우리는, 이 극적인 사건들을 주장하고 지배하는 내적이고 보이지 않고 초자연적인 세력을 보기 위해 외적인 사건과 싸움을 지나쳐 그 이면에 눈길을 돌리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great)이란 단어를 여러 차례 볼 수 있습니다-큰 놀람, 큰 용, 큰 분노, 큰 독수리 등.

12~14장은 그리스도의 출생(본문)부터 그분께서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틀을 밟으실 때, 즉 재림과 더불어 그 원수를 그 발 아래 밟으실 때까지 이르는 하나의 연속적인 예언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한 여자가 하늘에서 아들을 낳는 모습을 봅니다. 그 여자는 육신대로 하면 그리스도께서 출생하신 이스라엘입니다. 계시록에는 네 명의 상징적인 여자가 나오는데, 거짓 교회를 가리키는 이세벨,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본문의 여자, 특히 카톨릭을 가리키는 17장의 음녀, 그리고 19장의 어린양의 신부 등이 그것입니다.

요한은 하늘에서 이 여자-이스라엘-에 대한 이적을 보았는데 실은 그녀는 6절에 밝혀져 있듯이 땅 위에 있습니다. 이 여자는 이스라엘이고 남자 아이는 물론 메시아-우리 주 예수님-입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해와 달과 열한 별(요셉 자신이 열두번째 별임)이 그 앞에 절하는 꿈을 꾸었는데 그는 성경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매우 분명한 모형입니다. 계시록 12:1은 이 꿈이 세상의 구주께서 태어나신 이스라엘 민족을 염두에 둔 것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만일 믿지 않는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영원한 불명예를 자초했다면, 우리는 믿는 이스라엘이 나사렛의 마리아를 통해서 메시아를 세상에 들어오게 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본장 2절은 매우 기이하고 놀라운 절입니다. 우리는 자연히 그것을 그리스도의 출생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장면에 그러한 의미가 내포된 반면에, 사실 1900여년 전에 있던 그리스도의 문자적인 출생은 여기서 환란 때의 이스라엘 만족의 영적인 출생에 대한 그림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이것은 본문을 이사야 66:7과 비교해 봄으로써 분명해질 것입니다. 본문의 출생은 이스라엘이 출산에 따르는 극심한 고통(아이를 낳을 때 으레 겪는 일)을 당한 후에 일어나는데 비해, 이사야 66:7의 출생은 이스라엘이 고통 당하기 전에 일어납니다(즉 고통이 이르기 전에 남자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부연하자면, 이사야 66:7은 이스라엘의 환란기(마태복음 24:8은 이스라엘의 환란기를 그녀의재난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말은 문자적으로 출산에 따르는 해산의 고통을 가리킨다) 전에 발생한 베들레헴에서의 그리스도의 출생을 가리키는 반면, 본문은 그 고통의 때 후에”, 즉 환란 후에 일어날, 이스라엘의 한 민족으로서의 새로운 출생을 가리킵니다. 이사야 66:7과 이사야 66:8은 그리스도의출생과 이스라엘의 출생이라는 두 커다란 사건을 가리키는데, 이는 7절은 출생 이전의 고통을 말하고 8절은 출생 이후의 고통을 말하기 때문이며, 이 두번째 출생은 한 민족의 출생이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도 똑같은 사실을 보여줍니다. , 그리스도의 출생과 이스라엘의 장래 출생을 한테 보여주는데, 이는 5,6절이 현 은혜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그리스도의 출생에서 곧 바로 대환란의 시작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본장의 5절과 6절 사이에는 1900여 년의 공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정교한 완전성에 우리는 그저 놀랄 뿐입니다. 그분의 판단은 측량할 수 없으며 그 길은 찾아낼 수 없습니다!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도라 한 큰물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물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12:3).

이 무서운 짐승의 정체는 이미 다니엘서에 우리를 위해 밝혀져 있습니다. 다니엘은 그것이 두렵고 끔찍한 로마 세력이라고 말해 줍니다. 바로와 느부갓네살은 그 제국과 함께 모두 용으로 불리웁니다( 29:3,4, 51.34). 애굽은 용(혹은 악어”)을 모든 악의 근원으로 간주하고 타이포(Typho)란 이름 아래 그를 숭배했습니다.

이 용에 대한 묘사는 19세기 전,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당시의 로마를 가리키는데, 이는 일곱 머리에 면류관이 씌어졌다는 본문의 기록과, 머리 7 왕조로 이어진 과거의 로마정부를 대표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계시록 17장의 기록에 연유합니다. 면류관이 씌어진다는 것은 로마가 당시에 실제로 통치하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이것은 계시록 13장의 짐승이 머리가 아닌 뿔에 면류관을 됐으며, 이 뿔이 다가올 환란 날에 세계를 다스릴 로마의 열 나라를 가리키고 있다는 계시록 17장의 기록을 통해 확증됩니다. 이와같이 본문의 용은 과거의 로마인 반면 계시록 13장에 나타난 짐승은 미래의 로마입니다.

그러나 이 용이 열 뿔이 있다고 한 기록은 주목할 만합니다 과거의 로마는 한꺼번에 열 왕이 있은 적이 없기에 이것은 미래를 가리킨 것임이 분명 합니다. 본문은 이 면류관을 쓴 머리와 열 뿔을 통해서 과거의 로마와 미래의 로마를 함께 보여주며, 그렇게 함으로써 제가 앞서 언급한 사실, 즉 본문에 제시된 그림이 과거의 그리스도의 출생과 가까운 장래에 있을 이스라엘의 출생을 말해준다는 사실을 연상케 합니다. 이것은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그리스도의 베들레헴출생) 그 여자(이스라엘)가 삼년 반의 환란의 핍박기 동안 광야로 도피해 있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확증됩니다. 이 현재의 은혜 시대를 완전히 생략한 채(성경에 종종 나타나듯이), 본문은 그리스도의 출생과 장차 일어날 이스라엘의 영적인 새로운 출생을, 두 경우 모두에 극심한 대적으로 나타나는 로마와 함께 하나의 개념 속에 결합시킵니다.

용은 또한 로마 배후에 있는 강력한 통치 세력, 즉 사단을 가리키는 까닭에(9) 위의 두 사건 모두에 나타납니다. 사단은 권좌 뒤에 숨은 악한 세력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12:4).

우리는 여기서 다른 어디에서도 주어지지 않은 엄숙한 암시를 볼 수 있습니다. 본절의 앞 부분은 사단이 범죄할 때 하늘의 천사들의 삼분의 일을 하나님께 대한 반역에 동참케 했다고 말하는 듯 합니다. 왜냐하면, 용은 분명 여기서 로마를 가리키는데 그 로마는 사단 자신에 의해 조종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12:9과 계시록 20:2에서도 용으로 불리웁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자마자 그분을 죽이기 위해 헤롯을 사용했습니다. 물론 그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사단은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는 순간에 현장에 이르지조차 못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박사들이 도착하기 여러 달 전에 태어나셨으며, 그들이 예물을 그분께 드린 것은 베들레헴 말구유에서가 아니라 그분의 나사렛 고향집에서였다는 것을 밝히 보여줍니다. 사단의 권능은 큽니다만 그분보다 더 큰 분이 계시며, 사단의 모든 노력은 무위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지혜와 사랑과 권능의 모든 목적들을 실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시간이 이를 때까지 아무도, 아무것도 우리의 복스런 주님께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거듭해서 우리는 그분을 죽이려는 모든 노력이 실패했음을 보게 되는데, 이는 그분의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자를 치는 것(smiling)은 우리 구주의 지상생애 동안의 사단의 사역이 아니라 그분께서 갈보리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때 행해진 하나님의 엄위한 심판이 있습니다( 13:7). 그분의 생애와 갈보리에서의 죽음은 여기 계시록에는 의미심장하게도 생략되어 있습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12:5,6).

그녀는 남자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분은 왕자가 아닌 왕으로 나셨습니다.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물론 이제까지 세상에 태어난 자 중 오직 한 사람만이 모든 열국을 다스리실 것인데 그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이 아이는 하나님과 그분의 보좌에 올리워지는데 이는 주 예수님이 죽음과 부활 후에 승천하신 일을 가리킵니다. 이와같이 여기에는 우리 주님의 33년간의 생애 전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구절에서 그 여자-이스라엘-가 광야로 도망하여 삼년 반 동안 핍박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이는 물론 대환란 기간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두 기간-그리스도의 지상생애(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포함) 1900여 년에 걸친 현재의 은혜 시대-이 완전히 지나쳐진 것입니다. 본문은 그 사이의 다른 모든 요소를 생략한 채 우리를 그리스도의 출생에서 곧 바로 장래에 있을 대환란의 시작으로 인도합니다.

이것은 계시록의 주제가 교회가 아닌 이스라엘 백성에 관한 것이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현 세대가 생략된 것은 그 둘이 이스라엘의 구원과 그리스도의 세상 심판과 하등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출생이 언급된 것은 인간으로 세상에 오신 그분께서 둘째 아담(혹은 인간”)-인자-으로서 모든 권세를 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속주가 되기 위해 인간으로 오셨으나 멸시를 받고 거절을 당하신 그분의 출생은 그분께 통치권을 부여하며, 영광과 하나님 보좌에로의 그분의 승천은 그러한 권한을 입증하며, 그리고 그분의 다시 오심은 세상 군왕들에게 그러한 권한의 어떠함을 드러내줄 것입니다.

이상의 사실이 본 계시록의 주제인데 바로 본문이 그 주제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5절과6절 사이의 1900여 년의 공백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놀랍고, 우리가 모든 주의를 기울일만한 가치가 있는지요! 그것은 열심히 탐구하는 자들에게 보상하시며, 그들의 마음과 영혼을 우리 하나님의 위대함과 영광에 대한 경이감과 찬양으로 가득차게 합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12:6)

이제 장면이 전환되어 승천하여 보좌에 오르신 그리스도에게서 미래의 환란에 핍박을 받는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전삼년 반이 생략된 채 대환란의 두려운 핍박이 전개되는데 이는 사단의 조종하에 이루어진 것입니다(13). 본절의 1260일은 물론 다른데 언급된 삼년반이나 11:2에 언급된 42개월과 같은 기간입니다. 여자-이스라엘 백성 -는 환란의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광야로 도망갑니다. 우리의 복스런 주님은 마태복음 24장의 강화에서 이 모든 일을 예고하며 충성된 자들에게 도망갈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란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4:15,16,20,21).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12:7,8)

얼마나 극적인 장면인지! 하나님의 계시가 밝혀주는 것 외에 우리는 이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물리적인 전쟁들이 오랜 세월 동안, 악의 세력의 우두머리인 사단과 더불어, 그리고 본문에 따르면 하늘에 있는 사단의 사자들과 더불어 전개돼 오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사단 및 그의 사자들과 미가엘 및 그의 참된 하나님의 사자들 사이에 큰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사단이 치욕적으로 패배하여 하늘에서 영원히 쫓겨납니다. 이사야는 오래 전에 이러한 추방을 예언한바 있습니다( 24:21). 미가엘은 사단과 그의 군대를 대하여 포진한 하늘 군대의 지도자입니다. 미가엘은 성경에 다섯차례 언급되어 있는데, 매번마다 다니엘 12:1에 분명히 나와있듯이 특히 이스라엘 백성의 관심사를 구하는 자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그리고 미가엘은 이 다니엘서 구절에 따르면 대환란이 막 시작될 때 이스라엘을 위해 일어날 것인데 이는 본장의 설명과 꼭 같습니다.

최초로 거슬러 올라가서 사단의 크고 사악한 목적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14:14). 그런데 그 일에 실패한 연고로 그는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여기서 미가엘이 사단을 물리치는 것은 매우 적절한 상황인데 왜냐하면 그의 이름이 누가 하나님 같은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같이 되려는 자가 바로 그런 뜻의 이름을 가진 자에 의해 패배 당한다는 것은 실로 엄위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단은 물론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고자 했습니다. 비할데 없는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분과 같게 될 것인데, 이는 그분의 자리를 취함으로써가 아니라 우리의 복스런 주님께서 보좌를 떠나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때문입니다.

 

(1994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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