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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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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6. 17:19 횃불/1994년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

진도 백동교희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1:1~4)

의원이었던 누가가 데오빌로 각하에게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을 전하려는 일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것을 생각하며 호남지역에 최초로 복음의 씨가 뿌려졌던 진도 백동교회에 대해 처음부터 보고 느낀 점과 역사적 사실에 대해 모두에게 교훈을 삼고자 붓을 듭니다.

 

1967 4월의 어느 날, 키가 훤칠하게 크고 깡마른 한 젊은이가 전도지 한 보따리를 메고 우리나라의 땅 끝 해남에서 배를 타고 진도에 왔다.

당시 진도는 제주, 거제 다음가는 한국에서 세번째 큰 섬이요 인구가 13만명이나 사는 큰 섬이었다(지금은 인구 7만도 못된다). 지금은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았고 다도해 해상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어 교회당 앞마당까지 아스팔트가 깔려 있을 정도로 발전되어, 서울도 버스로 7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 되었지만 당시엔 교통이 불편하여 서울에서 출발하면 하루 종일 걸려도 도착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먹을 것도 넉넉치 못한 섬인데다 가본 경험도, 아는 이도 없는 곳을 지금 중국선교의 부름을 받은 전도자 명수 형제님께서 찾아온 것이다. 진도군 벽파에 도착하여 얼마나 걸었을까 교회당 하나를 발견하여 다 늦은 저녁에 찾아가 저녁식사를 얻어 먹고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날 밤 은혜로 구원받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다 율법에 매여있던 주인에게 당장 쫓겨날 뻔 했으나 사정사정하여 그날 밤은 그곳에서 묵고 다음날 쫓겨나다싶이 하여 차를 타고 얼마를 걸었다.

거기서 한 교인을 만나 그분이 다니던 교회에서 15일간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탕자와, 16장의 부자와 나사로가 죽어 천국과 지옥에 간 사실에 대해 전하였다. 그 중 몇 청년이 구원받아 기뻐함을 보게 되었다.

그 후 일시 귀가하였다가 다시 내려와서 젊은이들과 함께 작은 섬에 가서 전도도 했다. 영혼들을 불쌍히 여긴 형제님은 기도 가운데, 당시 22세의 젊은 청년이었던 이만조 형제님으로 진도에 오도록 했다.

이만조 형제님이 진도에 온 때가 1967년 6월 10이었다. 청년 이만조 형제님은 그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다 열심있는 율법주의자들에게 구타까지 당하는 등 어려움을 당했으나 개의치 아니하고 복음을 전하였다. 2개월 후 그 마을보다 더 큰, 5개 마을이 인접해 있는 120여호나 되는 마을에 마음이 끌려 백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백동마을의 한 사랑방을 빌려 백동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이기를 시작한 것이 1967년 9월 1이었다.

백동 모임은 구원받은 젊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밤낮으로 활발하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교회당의 필요성이 절실하여 68년 2월 9 국민학교 맞은 편 145평의 대지를 매입했다. 이만조 형제님은 밤에는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며 낮에는 교회당을 건축했다. 손에서 피가 나고 기력이 쇠하여 지칠 때까지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일한 보람으로 15평의 아담한 교회당을 지었다.

공사 기간은 건축자금 조달의 어려운 상황과, 성도들이 낮에는 농사일하고 주로 밤으로 공사했기 때문에 거의 3년이나 걸렸다. 이만조 형제님은 이렇게 교회당 짓는 일과 복음을 전하는 일로 수고하시다 1970년 봄 만 3년 만에 백동교회를 주님과 젊은 형제들에게 부탁하고 진도를 떠났다.

어리고 아직 성숙하지 못한 형제들이 모일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어려운 교통 여건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제임스 선교사와 박준형 형제님 등이 자주 방문해서 가르치신 덕으로 계속 발전하게 되었다.

1972년 제임스, 박준형 형제님을 초청하여 복음전도집회를 했다. 당시 백동모임에서 복음을 듣고 같이 모이던 이평준씨가 중병으로 전주 예수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그로부터 은혜의 복음을 들은 고등학생이었던 허윤욱 형제님이 진도 복음전도집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율법에 매여 있던 그가 복음을 깨닫고 전주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집에서 모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오늘의 전주 모임이 되었다. 지금은 전주에 동전주 모임과 전주서남 모임 등 3모임이 있다.

또한 지금은 필리핀 선교사로 가있는 이원재 형제님이, 광주 조선대 2년을 마치고 군입대를 하기 위해 휴학계를 내고 고향인 진도로 내려오던 길에 버스 안에서 앤더슨 선교사를 만났다. 당시 영문과 학생이던 이원재 형제님이 영어 한마디 건네다 한국어를 잘하시던 앤더슨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듣고 깨달은 후 백동교회와 연결되어 교제를 하게 되었다. 군에서 제대하고 다시 광주에서 대학을 복학하여 학업을 계속하면서 1975년 자신의 자취방에서 모임을 시작했다. 집주인에게 쫓겨나 학교 벤치에서 모이기도 하면서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이 교회당을 허락하셨다. 그 역사는 오늘날 광주동부교회가 되고 광주에 서부, 중부, 북부, 광산 등 5개 모임이 형성되었다. 백동교회는 날로 발전하여 1975년 경기도 유평모임에서 일꾼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고 양진효 형제님이 그곳에 갔다가 유평에서 6, 경북 구미모임에서 3년간 모임을 돌보다 84년에는 복음의 불모지인 전북 이리로 이사하여 이리모임을 개척하여 섬기고 있다.

또한 일찌기 복음을 접한 형제들이 육지로 떠나게 되어 진도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활발하게 복음이 전해졌다. 당시 주일학교에 다니면서 구원받은 조준안 형제님은 서대문에서 주님을 배우더니 경기도 여주에 가서 여주 모임을 개척하고, 인천으로 취업해 갔던 이주섭 형제님은 인천 도화모임을, 김권준 형제님은 대구 대봉동 모임으로 가시더니 후에 여수모임을 개척하시고 수 차례 중국선교의 뜻을 두고 중국에 모임을 세우셨으며, 지금은 경산 모임에 계시면서 중국을 자주 왕래하며 돌보고 계신다.

하재욱 형제님도 서울 서대문모임에서 주님을 배우더니 89년 군산에 모임을 개척하였다. 광주 동부교회에서 이원재 형제님을 도우며 동역하던 곽승지 형제님도 91 2월에 성도들과 같이 광주 북부모임을 개척하여 섬기고 계시며, 허윤욱 형제님은 울산, 거제에서 일하더니 88년 나주에서 모임을 개척하고 93년에 다시 여천에서 모임을 개척하여 섬기고 있으며, 단기 전도수련회를 개최하여 전도자 단기 훈련에 주력하고 있다.

이 외에도 경기 유평모임의 김재영 형제님은 훌륭한 동역자로 일하고 있으며, 호남지역은 물론 서울이나 경기, 인천, 부산 등 어디서나 예전에 백동모임에서 주님을 섬기던 식구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현재 백동모임은 소병갑 형제님과 여러 형제님들이 모임을 잘 돌보고 있다. 소병갑 형제님은 어렸을 때 백동모임에서 구원받고 고향을 띠나 비금, 목포 등지에서 모임 생활을 하다, 도시로 성도들이 떠남으로 백동 모임의 형편이 어려워지자 진도로 귀향했다. 소병갑 형제님은 선진기술농법을 연구 개발하여 품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여 고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모임도 튼튼하게 다져서 현재용 가정의 식구와 30~40명의 식구들이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예배드리고 있다. 매주 화요일 진도읍에서 가정집회를 하고 있는데 금년 목표가 진도읍에 교회당 부지 매입하는 일로 정해져서 기도 가운데 헌금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진도 조도에서는 이은재 형제님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신의 가정에서 복음을 전하고 매주일 예배드리고 있다. 주님께서 낙후된 진도에 일찌기 복음을 전하는 일로 헌신하게 하셨던 서명수 형제님은 중국으로 부르시고, 이만조 형제님은 김해에서 일하게 하셨다. 백동교회에서 낳은 자녀들에 의해 필리핀, 중국, 경기도, 경상북도, 전남북도 등지에서 전심으로 일하는 일꾼으로 10여명을 부르시고 사용하심에 감사를 드린다. 지난 94년 1월 1부터 3일까지 진도백동모임에서 제1회 연고자 수양회(백동모임과 연고가 있는 성도)를 개최했는데 서울, 경기, 대전, 부산, 전남북 지역에서 연고가 있는 80여명의 형제 자매님들과 사역을 하시는 형제님들이 참석해 전도보고가 있었다. 그래서 내년에도 이 수양회를 계속하기로 하였다.

에베소서 3:14~19에서 말씀하심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뿌리내린 이 아름다운 교회가 터가 더욱 굳어져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여지고 다른 지역교회들도 계속하여 충만하여지길 바란다.

27년간의 진도백동교회를 돌아보며, 당시 어려운 여건 속에서 복음의 씨를 뿌려준 서명수 형제님, 3년간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고 가르치신 이만조 형제님, 당시 열악한 교통 여건 속에서도 자주 찾아주신 제임스, 박준형, , 앤더슨, 이수원 형제님들과 그 외 많은 형제님들, 교회당 건립을 위해 특별히 많은 지원을 해주신 맥가피 선교사께 감사한 마음뿐이다. 모두 우리 아버지나라에서 상급이 있으실 것이다.

외로운 섬에 마음을 두시고 은혜의 풍성함을 나타내셔서 뭇 영혼들을 건지시고 그들을 들어 쓰신 살아계신 아버지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린다.

 

이 모든 일이 제 기억에 아름답게 기억되어 잊혀지기 전에 같이 나누고 싶어 이렇게 적어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진도백동교회를 기억해 주시고 자주 방문하셔서 격려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모든 이들 위에 충만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1994년 백동교회 연고자

이리교회 양진효

 

(1994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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