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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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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0. 24. 14:51 횃불/1995년

다아비의 성경 개요 - 신약성경 개론

 

이 신약성경에 대한 연구에 들어가면서 필자는 물론 그 과정에서 얻는 축복이 크긴 하지만 일종의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이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에 담긴 거룩한 빛의 응집인 동시에 확장, 그 속에 담긴 진리들의 방대한 범위, 동일한 구절이 지닌 여러 측면과 그 참된 적용 및 그 구절이 거룩한 진리들의 전체 영역과 지니는 관계의 무한한 다양성, 그 자체로 고려되든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이나 인간의 필요와 관련하여 고려되든 이러한 진리들이 지니는 엄청난 중요성, 그 진리들이 하나님을 드러내고 그러한 필요를 채워주는 방식 등-필자로서는 불완전하게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이 모든 사실들은 모든 겸허한 신자들로 하여금 신약성경에 나타난 거룩한 영의 목적에 대한 참되고 (원리에 있어서도) 적절한 통찰(idea)을 제시해보려는 자만심을 버리게끔 합니다. 아울러 진리 그 자체가 계시되면 될수록, 참된 빛이 빛을 발하면 발할수록, 더욱 그것을 표현하는데 있어 무력감을 느끼고, 완전한 것을 혹 어둡게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더욱 사로잡히게 됩니다. 우리가 행해야 할 진리(여기서는 진리 자체를 가리킵니다)가 순결하면 할수록 그 순결함을 어떤 면으로든 훼손시키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진리를 제시하기가 더욱 어려우며 또한 그로 인해 입는 상처가 더욱 심각해집니다. 이러저러한 구절을 묵상해보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된 빛의 양을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에 대한 통찰을 제시해보려 할 때는 진리 자체의 모든 완전함과 그분이 그것을 통해 나타내신 계시 안에서의 하나님 그분의 목적의 우주성(보편성)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비록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진실한 그리스도인도 감히 자신할 수 없는 올바른 일반적 인 통찰을 제시하는 과업을 떠맡았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잠기게 됩니다.

구약성경은 아마 어떤 이들에게 신약 성경보다 더 어렵게 보일 것이며, 어떤 고립된 구절들을 해석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성경의 그 부분(구약)을 기록한 영감받은 기자들이 그분에 의해 그들에게 전해진 하나님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긴 하지만(그리고 우리가 거기에 지혜가 밝혀져 있음을 인정하지만), 하나님 자신은 여전히 휘장 뒤에 숨겨졌습니다. 우리는 어떤 표현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거나 그냥 지나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우리는 말씀하신이가 하나님이신 까닭에 손실을 당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다만 말씀으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 -복음서에서는 이 땅에 계신 온유하고 인자한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후에 이어진 성령의 계시 (communications) 안에 있는 거룩한 빛을 지닌 가르침의 형태로 나타난,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이신-이 친히 나타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개인적인 인도(guidance)와 그분 자신에 대만 지식을 위한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이러한 살아있는 계시들을 잘못 해석하거나 진리 자체인 것을 우리 자신의 생각으로 거짓되이 꾸미는 과오의 심각성은 한결 커지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진리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은 말씀이십니다. 그것(말씀)은 진실로 사람인 동시에 아버지를 나타내시는 아들의 위()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심지어 해석 그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도, 진리 자체, , 영원한 생명 등이 신약성경에 우리에게 계시된 것 안에 있으므로, 해석이 너무 다양한 측면에서 관찰될 수 있기에 실질적인 문제는 더욱 큽니다. 이 진리는 그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가치 안에서 관찰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의 나타남으로써, 혹은 아들의 영광과 관련하에서의 나타남 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그 스스로의 빛으로 성취시키고 무색하게 만든 구약성경의 부분적인 계시들(communications), 또 영원하고 천상적인 것을 소개하기 위해 옆으로 제쳐진 하나님의 지상 정부에 대한 섭리와 더불어 지니는 관계 및 대조 사항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과의 관련하에서 고려될 수 있는데 이는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사람 안에서 그 자신을 나타내고 영화롭게 하고, 사람에게 그 자신을 알리고, 그리고 사람을 다른 지적인 피조물들에게 그 자신을 계시하는 수단으로 세우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건들(passage)에는 이런 사실들과 관련하여 말할 수 있는 측면이 있게 마련인데, 이는 진리는 하나요 하나님께로서 온 것인 반면에 모든 만물 위에 비추어 그것들의 참된 속성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가지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북돋습니다. 첫째는, 우리로 그것을 통해서 유익을 얻도록 그 놀라운 계시들을 허락하신 온전히 선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관계가 있으시다는 점이며, 둘째는 비록 진리의 근원이 무한하고 완전할지라도, 이 계시들이 하나님 안에 있는 진리의 충만함으로부터 흘러나온다 할지라도, 그리고 그 일을 행하신 분의 완전함을 좇아, 진리가 우리에게 계시되는 과정 (communication)이 완전하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여러 도구들을 통해서,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리의 이러저러한 부분을 전달하는데 사용하시는 제한된 용량(capacity)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순수하고 살아있는 물은 전혀 더럽혀지지 않았으나 그 전달과정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 제안을 받았습니다.  물론 모든 진리를 전달하신 분의 온전한 지혜를 따라 여전히 제한받지 않은 그 전체 영역과 관련을 지닌채 말입니다.  그 통로는 무한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지나 흐르는 물은 무한하지만 그 전달방법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부분적으로 예언했으며 우리는 부분적으로 압니다. 진리의 국면과 그 적용은 그것이 전달되는 도구에 따라 어떤 특성을 지니기까지 합니다. 생명수가 그 온전히 순수한 모습으로 그곳에 있습니다. 그것은 그 원천에 존재하는 중에 밖으로 뿜어져 나옵니다. 생명수가 사람들 앞으로 흘러나오는 그 샘의 형태는 그러한 목적을 위한 그분의 도구로 그것을 만드신 그분의 지혜에 의존합니다. 성령께서는 사람 안에서, 그것을 위해 예비된 그릇 안에서 활동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와 관계된 이러저러한 사역을 위해서 그 그릇을 도덕적, 지적으로 창조하고, 형성하고, 빚고, 적합케 하셨습니다. 그 분은 그것을 예비하신 목적을 따라서 그 그릇 안에서 활동하십니다. 그리스도는 그 진리이셨고 또 그 진리이십니다. 다른 이들은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따라서, 그리고 하나님이 그의 마음과 생각을 조화로 이끄신 그러한 요소들과 관련하여, 그리고 성령께서 그와같이 그를 준비시키신 그 목적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전달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제 두려움을 저 뒤로 한채 우리를 복주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온전한 선하심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가운데 이 소중한 사역을 감히 감당하고자 합니다. 모쪼록 이 막중한 책임감을 시종 잃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은 어떤 것도 일절 시도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옵고, 아울러 주님께서 친히 은혜로 저를 가르쳐주사 독자들에게 축복이 될만한 깨우침을 허락 해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신약성경은 분명히 구약성경과는 판이한 특징을 지닙니다. 앞서 언급한 내용들은 이러한 차이의 본질을 말한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 자신의 나타나심(revealation)을 다루며, 사람이 의롭게 되어 하나님 존전에 이르는 영광에 이르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전에는 하나님이 약속을 하셨고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그 때는 그분께서 한 지상 민족을 다스리고 주변의 열방을 섭리하시는 중에 그 지상 민족을 지상에 대한 그분의 섭리의 중심으로 생각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그분의 율법을 허락하셨으며, 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들에게 전해 줄 그분의오심을 갈수록 가까이 선언해준 점증하는 빛을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들에게 부여해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 즉 사람들 중에 한 사람(a Man)의 임재 (presence)가 모든 것의 위치를 변화시켰습니다. 인간은 그 임재가 곧 모든 악을 멸하고 모든 선한 요소를 계발, 완성시키는 동시에 모든 관심(affections)의 중심이 되어야 마땅한 대상을 제시해주는 것을 의미하는 그분을 축복과 영광의 면류관으로 영접하든, 아니면 우리의 가련한 본성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거절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그로써 인간의 행복과 하나님의 영광이 새로운 피조물에 기초해야 하는 하나의 완전히 새로운 질서가 필수불가결함을 입증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압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분께서는 온전한 인내를 보이신 후에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셔야 했습니다. , 슬프게도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분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셔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인간의 상태가 하나님이 그분의 계획을 성취하지 못하게 막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분의 계획을 이루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인간이 그분을 거절할 때까지는 인간을 거절하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에덴 동산의 경우에 죄를 알게 되어 하나님의 임재를 견딜 수 없게 된 인간은 하나님이 그를 동산에서 좇아내시기 전에 그분에게서 스스로 물러난바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편에서 하나님이 자비로 인간의 불행의 한 가운데로 들어오시는 것을 완전히 거절한 이상,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자유롭게 -외람된 표현 같지만, 그러나 이 표현은 도덕적으로 옳은 표현입니다-실행에 옮기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에 앞서 하나님을 떠나버린 에덴의 경우가 그렇듯이 그것은 심판이 실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명백히 버린바 되고 스스로 하나님의 대적으로 선언했을 때 그분을 거절한 가련한 죄인들을 구원하는 일을 통해서 온 우주 앞에서 그분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 주권적인 은혜가 실행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가 그 모든 세세한 부분에까지 나타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그 자신을 계시하신 그러한 주권적인 은혜의 역사는, 구약성경에 계시된 그분의 모든 이전 섭리와 적절한 관계를 지닌 것으로, 그리고 그 완전한 위치를 그분의 세상 통치에 위임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사실이, 이 놀라운 책에 (전체를 지배하는 하나의 위대한 사상과 별도로) 네 개의 주제가 믿음의 눈에 발견되는 이유입니다.

우선, 전체를 지배하는 위대한 주제는 완전한 빛이 나타났다는 것, 곧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빛은 하나님에 대한 다른 근본적인 이름인 사랑 안에 나타났습니다.

이 빛과 사랑의 나타남이시며, 영접만 되셨더라면 모든 약속의 성취가 되셨을 그리스도께서 인간, 특히 이스라엘에게 (책임의 측면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던) 인격적이고 도덕적이고 또 권능있는 모든 증거 곧 그들로 핑계치 못하게 한 증거들을 통해 제시되었습니다. 

둘째로, 그분이 거절된 까닭에(그 거절을 통해서 구원이 성취되었습니다) 만물의 새로운 질서-인간이 영화롭게 되고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속한 영광을 누리게 된 것-가 우리 앞에 펼쳐졌습니다.

셋째로, 지상의 만물의 옛 질서와 율법과 약속들, 선지자들, 혹은 지상에 세운 거룩한 제도들과 관련있는 새로운 질서간의 관계가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새 질서를 성취로 드러내고 낡은 것이 되어 버린 질서를 곁에 제쳐둠으로써도 가능하고, 두 질서간의 대조와, 그분의 섭리의 모든 세세한 부분에 나타난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를 진술함으로써도 가능합니다.

끝으로, 하나님 편에서 세상의 통치가 예언적으로 전시(展示)되었습니다. 그리고 심판에 의해서든 축복에 의해서든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소생이, 메시아를 거절함으로써 그러한 관계가 결렬된 일과 관련하여, 간략하면서도 분명히 진술되었습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혜의 목적들을 권능으로 이루실 때까지 이 땅의 나그네로 지낼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풍성이 공급되었다는 점을 부연할 수 있습니다. 거절되고 저주받은 것으로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나오십시오. 그리고 비록, 하나님이 그를 위해 예비하신 기업을 아직 소유하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부르심에 순종한 사람은 그를 지도하고, 또 그 부름받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필요한 능력의 원천과 그러한 능력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계시해줄 그 무엇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거절한 주인(a Master)을 좇도록 부르실 때에 그 길에서 그를 인도하고 격려하는데 필요한, 그리고 그에게 능력의 원천과 그것을 얻는 비결을 가르쳐주는 데 필요한 모든 빛과 모든 지침을 틀림없이 공급해 주십니다.

성경을 대하는 모든 독자들은 이러한 주제들이 신약성경에서 별도로 조직적으로 다뤄져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만일 신약에서 그렇게 다뤄졌다면 그 주제들은 훨씬 덜 완전하게 이해될 것입니다. 그 주제들이 우리 마음에 전달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그것이든 영감받은 기자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그것이든 생명과 능력을 통해서입니다.

복음서들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를 빛과 은혜로 우리 앞에 제시합니다. 그 리고 교리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그분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처음 나타난 하나님 자신으로, 또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들이 그 안에서 성취될 분으로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버지의 목적들이 성취되고 유대인들은 버림받은 자들로 간주될 거룩한 분으로 공개적으로 제시합니다. 계시록은 하나님의 이 세상에 대한 통치를, 그 통치가 계시된 하나님과 갖는 관계들을 구속하는 책임성과 관련하여 소개해 줍니다. 그리고 바울 서신서들은 구속, 즉 새로운 창조에 의해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지고 서게 된 인간과,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계시된 하나님의 비밀인 교회를 제시해 줍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들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이 서신서 모든 곳에서 발견되며 그 주제들 하나 하나의 발전은 나머지 모든 주제에 빛을 던져 줍니다. 또한 요한 서신서들은 특히 하나님의 나타남에 대해서, 그리스도와 소생한 인간-이 둘은 서로 일치하므로-안의 거룩한 생명에 대해서 다룹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서신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기초한 그리스도인의 나그네 삶과, 세상의 도덕적인 통치에 대해 다룹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그리스도의 위() 안에서든 아니면 성령의 계시(communications) 안에서든(그리스도의 생명은 어떤 면에서든 사람들의 빛이셨으므로) 진리는 하나님의 생명적인(living) 나타남과 인간들에 대한 그 생명적인 적용 안에서 빛을 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에 의하면 그것은, 인간에게 전달되고 특별한 필요와 그것이 전달된 사람들의 영적인 자질들에 적용될 때 나타나는 진리 고유의 속성인 진보적인 발전과 관계가 있습니다.

분명 신약의 계시들은 모든 시대 성도들을 위한 것인 반면에 그것은 역사적으로 말한다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그들의 상태에 적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전달된 진리를 어떤 면으로든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며 사도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는 허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순전한 포도주에 아무것도 더 하지 않으며 그 질을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그가 받은 것이 그 받은대로 순전하게 그에게서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추상적인 진리보다도 훨씬 위대한 실재를 지닙니다. 그것은 보다 직접적으로 하나님께로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관련된 인간의 사상이나 그 주제에 대한 진리를 지닌 인간의 사유의 결과물을 지닌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것은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그들의 능력에 막연히 맡겨진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그 자신을 나타내시고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그분의 생각들을 그분 자신의 것으로 전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만일 인간이 그것을 판단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고 사도는 말합니다.

인간으로 말씀의 진리와 권위를 소유하도록 한 영향이 종종 인간에 의해 말씀에 대해 내려진 판단과 혼동되어 왔습니다. 말씀은 그런 식으로 모습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말씀 자체의 속성을 부인하는 셈일 것이며, 말씀하시는 이가 내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하는 셈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실 수 없을진대 그분은 자신의 말이 본래 권위가 없다고도 말씀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말씀은 인간의 속성에 적용됩니다. 즉 생명은 사람들의 빛입니다. 그 사물에 의해 판단됨 없이 그것들이 적용되는 사물의 속성에 따라서 어떤 결과를 낳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모든 화학 작용이 그러합니다. 어떤 의약품이 내게 복용됩니다. 나는 그것이 미치는 영향력을 경험합니다. 그것은 나의 속성에 따라서 그러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로써 나는 그러한 영향력과 그 의약품의 능력을 확신합니다. 그것은 내 능력에 따라 내가 그 약품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계시의 경우도 이와 동일한데, , 인간의 악한 의지가 그것을 반대하고 거절함으로 그것이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되는 경우만은 예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결과를 낳을 때 결코 판단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 인간은 그것에 굴복할 뿐 그것을 판단하지 못합니다.

인간이 은혜로 말미암아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였을 때 그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모든 의미 (bearings)를 이해하는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경우에 그것이 역사적으로 전달된 사람들의 상황은, 고려 중에 있는 부분의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심중의 의도를 이해하는 수단이 되어 줍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러한 상황은 말씀의 거룩한 순전함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상태(condition)에 따라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므로 그러한 상태는, 말씀 그 자체 안에서 우리 앞에 전개될 경우에, 발해진 말씀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도움이 되어줍니다. 그러한 상태 자체는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이해됩니다. 때때로 그것은 인간의 마음의 악함의 결과이나 때때로 그것은 부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기인합니다.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은혜는 그들의 상태에 따라서, 그분의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따라서, 그리고 그분이 앞서 가르치신 그분의 방법과 관련하여 인간에게 전달됩니다. 그것은 세상에 온 참 빛인 이 빛이 어두움에 적응하기 위해 흐려지거나 광도가 낮아진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빛 자체가 아닐 것이며 그 처한 상태에서 그를 건져냄으로써 인간을 일으킬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고 그들의 상태에 적용 될 수 있도록 전달됩니다. 바로 그런 것이 사람들이 필요로 한 것이요 하나님께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분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주제들과 성령에 의해 사도들을 통해서 진술된 주제들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분은 그 백성에 대한 하나님(그분의 약속에 늘 신실하신)의 의도를 펼쳐보이기 위해, 구원은 받았지만 여전히 유대 조직을 고수하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분은 하늘로 올리우신 연후에 지상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섭리를 제쳐두고, 교회와 그분 자신간의 천상적인 영역(places)에서의 연합이 가져온 모든 결과들을 그분의 성령을 통해 전달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천상적인 승격과 반대로 세상적인 요소들을 의지하고 있는, 그리고 그들을 이 세속적이고 육신적인 성향으로부터 구원할 것을 붙들지 않는 영혼들에게 그 분은 그들이 빠져들고 있는 그 죄악의 증거들을 드러내 보이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을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들과의 화합으로 인도해줄 수단에 의해서, 그리고 비록 초보적인 것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목적의 높은 표준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에게서 늘상 발견되는 그러한 육신적인 성향을 판단할 방법으로 그렇게 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또는 성령께서 그것에 합당한 수준에서 한결 단순하게 진리를 드러낼 수 있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가장 그럴듯한 형태로 그리스도인의 빛인양 하지만 실상은 가장 단순한 사실에서 그러한 속성을 거스려 죄를 범하는 모든 이들을 판단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속성의 본질적인 특질들을 헤아릴 수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가장 단순하고 가장 미숙한 영혼들을 그분의 속성의 본질 안에서 하나님 자신의 가장 존귀한 특질들과 연결시킬 수 있으셨습니다.

이 성경이 기록된 대상이 어떤 자들인지를 이해한다는 것(이러한 사실들이 발견되는 성경 자체에 뿌리를 둔 이해)은 성령의 인도 아래 그 안에 포함된 거룩한 진리를 이해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진리인 한편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영혼 속에 깨달아진 적용된 진리요 실제적인 진리입니다. 그 능력이 영혼 속에서 역사하고 영혼을 지키사 성경이 경계하는 죄악에 빠지도록 이끄는 마음의 육신적인 성향에서 영혼을 보호해줍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의 상태가 어떠하든 관계없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진리로서, 그 자체를 우리에게 적응시키기 위해 그 성격을 변경시키거나 (물론 그것에 적합하게 되긴 했지만) 우리의 상태에 따라 어떤 형태를 취함으로써 우리에게 전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대신 그것은 그 뿌리가 되며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근원으로 우리를 끌어올리기 위해 우리에게로 내려오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우리에게 전해진 진리는 거룩한 속성의 높은 표준에까지 우리를 도덕적으로 높이 올리기 위해서 영원히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개입하신 결과인데 우리는 성령에 의해 그분과 연합되었으며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입니다.

이 사실, 즉 하나님의 계시가 역사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인 자들의 위치 (position)에 적용된다는 사실은 우리를 하나님의 모든 지혜를 아는 지식으로 이끌어 줍니다.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함으로써 자신의 속성 안에서 자신을 알리시듯이, 그러한 지혜 안에서, 자신의 권위와 지혜와 주권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지혜의 중심이시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속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아래 위치해 있습니다. 천사들, 정사들, 권세들, 유대인, 이방인 및 모든 이름들이 그분의 권위 아래 있게 될 것입니다(교회는 영광 중에 계신 그분과 연합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와 관련된 하나님의 지혜가 그분의 말씀에 계시되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지는 않지만, 엄격히 말해서 구원을 제외하고, 이러한 그리스도와 으뜸되심과 관계가 있는 많은 주제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교훈을 위해, 이 땅에서의 그분의 섭리 중에 있는 그것의 발전형태로서 우리 앞에 제시하시는 것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이와같이 비록 유대인과 관련된 그분의 생각들은 자연 구약성경에서 더욱 발전될 수 있지만, 그들의 역사가 신약의 주제들과 지니는 관계와, 옛 경륜에서 새 경륜으로의 역사적인 전환, 유대인에 대한 약속과 복음 경륜의 보편성과의 조화 등이 모든 주제들은, 하나님의 방식(ways)이 우리에 의해 알려질 수 있다면, 반드시 신약에 위치해야만 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유대인만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행동을 하고 그 자신을 그분의 섭리 안에서 알리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비록 충만한 빛이 신약성경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하더라도 우리는 거기서 유대인들과, 그 민족의 일부를 구성한 제자들에게 전해진, 그리고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는 사실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계시들이 없다면, 또 그것들이 그 민족의 위치를 가리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방식에는 아무 조화가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적어도 그것은 우리에게 갑 추어져 있거나 도덕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교리와 역사(, 메시아의 소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는 제언 및 그 민족에 대한 심판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세상사에 관여하기 위해 내려오신 그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단순한 빛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알려지셔야 했는데 이는 그분이 그분의 속성 안에 계실 뿐 아니라-이것이 본질적이고 주요한 요소이지만-그분의 완전한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까닭입니다. 우리의 작고 좁은 마음이 그분의 신실하고 오래참고 겸비하신 사랑을 배울 수 있는 세세한 사항들에서, 또 그것을 우리의 제한된 지성-사람들 가운데 깨달아진 것들을 그 안에서 추적할 수 있는-에 접근시키기 위해 그분의 지혜의 추상적인 개념을 발전시키는 일들에서 하나님은 알려지셔야만 합니다. 그것은 비록 그 모든 예비책을 완전히 초월한 것이지만 우리로 그것이 그분께로서 온 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에 의해 선포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들 안에서 자신을 특별한 방법으로 사람과 연결시키기를 기뻐하셨으니 그분의 미약한 피조물에게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지요! 철학-지각없고 편협하고 심지어 그 모든 주장에 있어 본질적으로 어리석은- 은 하나님이 인간과 같은 무력한 존재, 즉 광활한 우주 속의 한 점에 불과한 존재에게 관심을 기울이기에는 세상이 너무 좁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물질영역과 도덕영역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한 어리석기 짝이 없는 논리입니다!

이 세상 이단 무대에서는 하나님의 방식과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뜻이 모든 지성들에게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누릴 수 있도록, 또 우리 안에서-우리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이것은 모든 만물에게 해당되므로)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각과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를 통한, 또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이신 그분과 우리의 연합으로 말미암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유순하고 겸손할수록 우리는 이 영광스런 지위를 더욱 깨닫게 됩니다. 장차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아시듯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동안은, 그리스도께서 객관적으로 우리의 기업과 우리의 관심사가 되면 될수록 우리는 더욱 그분을 주관적으로 닮게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분은 이러한 것들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사도는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라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 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그러면 이제 신약성경의 내용, 혹은 그 안에 담긴 진리들이 계시되는 순서의 일반적인 개념을 제시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신약성경 책들이 일반적으로 위치한 순서를 제쳐둔다 해서 그것에 아무 중요성도 부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 모습을 드러내는 첫번째 주제는 사 복음서에 담긴 주 예수님 자신의 역사(歷史)와 위()입니다.

두번째 주제는 그분의 승천에 뒤따른 교회의 설립과 복음전파입니다. 이에 대한 기사는 사도행전에 주어져 있습니다.

이어서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교리의 전개와, 사도들에 의해 각 교회와 개개인에게 베풀어진 돌봄,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주님을 영화롭게 할 행보에 필요한 지침들,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해 원수에 의해 시도되는 과오들에 대한 경계, 그리고 원수의 궤계로 말미암은 온갖 유인책으로부터 신실한 자들을 보존하는데 필요한 가르침 등이 이어집니다. 이 모든 주제들, 특히 그 첫째는 주님의 인격적인 영광을 내포합니다. 이상은 서신서의 내용을 가리킵니다.

끝으로, 우리는 세상에서 그리스도께 바쳐진 증거를 변질시키고 더럽히는 죄악을 폭로하는, 그리고 완전히 발전되면 심판으로 끝이 날 예언들을 발견합니다.  이 예언들은 또한 그 어린 양, 곧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되신 분을 공개적으로 대적하는 자들의 파멸로 끝이 날, 하나님의 심판의 전개와, 그러한 심판에 이어질 영광과 축복을 드러냅니다. 이 마지막 주제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세상 통치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의 계시와 연결 시킵니다. 그것은 주로 계시록에서 발전되나 여러 서신들에 교회의 부패와 그것과의 관계가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주님의 생애에 대한 기사를 보여주고, 그분의 활동을 통해서든 그분의 강화(講話)를 통해서든 그분을 우리 마음에 제시해 주는 복음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이 복음서들은, 그들에게 부여된 지성의 정도에 따라, 또 그들의 필요에 따라, 구속받은 자들의 영혼에 그분을 여러 면에서 소중한 분이 되게 하는 여러 성품들, 곧 비록 그분께서 이 땅에서는 겸비한 모습을 보이셨지만, 우리가 이 땅에서 이 질그릇 안에서 그 것을 이해할 수 있는 한, 그 모든 것이 합쳐 그분의 인격적인 영광의 풍부함을 이루는 성품들 안에서 그분을 우리 마음에 제시해 줍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그분의 말씀의 계시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그분의 영광을 성취하고 또 그분의 아버지의 영광을 보존하고 나타내기 위해서 지상에서 두가지 이상의 성품을 그 자신 안에 연합시키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다니시는 동안 그분의 실제 속성의 빛 안에서 보여질 수 있도록 그분께서 무엇인가 되셔야”(be) 했습니다. 그분은 친히 참 종으로서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봉사를 이루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시편 40(예를 들어 8,9,10), 이사야 49:5절과 다른 여러 구절들에 의하면 그분의 백성 가운데서 말씀으로 하나님을 섬기셔야 했습니다.

수많은 증거들이 다윗의 아들이 하나님 편에서, 그분의 아버지의 위에 앉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서는 그분의 지상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가, 그런 모습으로 오셔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의 아들의 관계에서 이 땅에 서실 그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계획에 의하면 그리스도, 곧 메시아 혹은 기름부음 받은자께서 오셔서 자신을 이스라엘에게 나타내실 예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의 후손은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백성들과 함께하심이 되실 운명이었습니다.  비록 유대인들의 기대는 그것을 뛰어넘지 못했지만-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생각대로, 단순히 그들의 민족의 승귀(昇貴)로서만 그것을 기대했으며 그들의 죄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 의식도 없었습니다-메시아의 이러한 특성이, 하나님의 계획을 선포한 예언의 말씀이 세상도 역시 기대하는 그분에 대해 선언했던 모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인자(人子)가 되셔야 했는데 그것은 주 예수님이 즐겨 자신에게 붙이신 칭호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칭호입니다. 제가 믿기에 인자는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계획이 인간을 위해 영광 중의 그의 기업으로 정하신 모든 것, 하나님이 그러한 계획에 따라서 인간에게 수여하실 모든 것의 후사이십니다( 7:13,14, 8:5,6, 80:17, 8:30,31 등 참조).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정하신 모든 것의 후사가 되기 위해서 그분은 인간이 되셔야 했습니다. 인자는 진실로 인류에 속하셨는데 이는 소중하고 안위가 되는 진리입니다! 여자에게서 나시고 혈과 육을 지니시고 그분의 형제들과 같이 되신 진실로 한 인간이셨습니다.

이러한 특성 안에서 그분은 고난을 당하고 거절을 당하셔야 했는데 이는 부활하여 영화롭게 되신 완전히 새로운 상태에서 모든 것을 상속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야 했는데 이는 유업이 더럽혀지고 인간이 반역 중에 있고 그분의 동료 후사들이 나머지와 같이 범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다윗의 아들인 반면에 종, 곧 그 위대한 선지자와 인자, 곧 율법 아래 나시고 여자에게 나시고 다윗의 후손으로 나시고 다윗 왕가의 권리를 물려받을 후사요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의하면 인간의 결국(destinies)을 물려 받을 후사이신, 진실로 이 땅 위의 한 인간이셔야 했습니다. 한편 이를 위해서 그분은 인간이 그 책임에 있어 타락한 그 위치를 따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려야 했습니다. 즉 그분은 이 땅에서 선지자의 증거, 곧 그 신실한 증거를 하는 한편 저 하늘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그러한 책임을 이루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이 모든 것이 될 있을까요? 그것은 어떤 사람이 그것을 유업으로 받으리라고 구약성경이 말한 한 직임적인 영광에 불과했을까요? 율법 아래서, 그리고 율법이 없는 중에 드러난 사람들의 상태는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에 참여할 수 없음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거절당하신 것은 이러한 상태를 말해주는 최악의 증거였습니다.  그리고 사실 인간은 한 지상 백성에 대한 모든 섭리와 특별한 통치와 관계없이, 무엇보다도 그 자신을 하나님과 화목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인간은 범죄했으며,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구속이 필요했습니다. 누자 그것을 이를 수 있을까요? 인간은 스스로 그것을 필요로 했습니다.  천사는 자기 위치를 지켜야 했으며 그 이상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구원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사람들 중에 누가 만물의 후사가 되며 말씀에 따라서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그의 지배하에 둘 수 있을까요? 마땅히 만물을 유업으로 받을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만물을 마땅히 소유해야 할 자는 그 창조주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종과 다윗의 아들, 인자, 구속자가 되셔야 할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곧 창조주 하나님이셨습니다.

복음서들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의 이러한 특성들을 보여주되 교의적인 방식으로가 아니라(요한복음만이 이러한 형태를 약간 취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특성들 안에서 그분을 제시하기 위해 주님의 행적을 그렇게 진술함으로써, 그것이 우리 앞에 교리적으로 진술될 경우보다 훨씬 생동적인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주님은 이런 혹은 저런 특성에 따라서 말씀하시며 이런 혹은 저런 특성 안에서 행동하십니다. 이에 우리는, 성경에 그분의 것으로 알려진 그 다양한 지위들에 속한 것을 그분이 친히 이루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와같이 그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은 물론 그 진정한 성경적인 의미에 의하면 그 특성은 그 도덕적인 세부사항에 있어 더욱 잘 알려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이 친히 이러한 특성들 안에서 보다 인격적으로 믿음의 대상과 사랑의 대상이 되십니다.  우리가 아는 분은 단순히 교리가 아니라 한 인격체”(Person)이십니다. 하나님이 사용하고자 뜻하신 이 소중한 수단에 의해서 예수님과 관계된 진리들은 과 거에 진행된 모든 것, 즉 구약의 역사와 한결 밀접한 관련을 가집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에 있어서의 변화는 그리스도의 위()의 영광과 관계가 있으며, 그러한 관계하에 이스라엘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에서 천상적이고 기독교적인 질서에로의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 천상적인 체제는, 주님께서 오시지 않았을 경우보다 한결 뚜렷이 유대교와 구분되는 특성을 소유하는 반면, 정면으로 거스림으로써 그것에 앞선 것을 무력화시키는 교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그분은 한편으로는 율법에 복종하는 분으로서, 또 한편으로는 그 안에서 약속이 성취되어 야 할 후손으로서 자신을 유대인에게 제시하셨습니다. 그분은 거절을 당하셨는데 이로써 그 백성은, 전에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을 범했을 뿐 아니라, 조건없는 훌륭한 약속들( 10장 참조)에 대한 모든 권리를 상실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분의 은혜의 충만함을 가져다 줄 수 있으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상징과 모형들이 성취되고, 율법의 저주가 집행되고, 그리스도의 겸비와 관련된 예언들이 성취되고, 그리고 모든 영혼들의 하나님에 대한 관계-그분이 일단 나타난 이상 항상, 반드시 그분의 위()에 부속된 -가 하늘에 계신 구속주에 의해 차지된 위치와 연결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문이 이방인에게 열렸으며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목적이 충만히 드러났습니다. 육체를 따라서는 다윗의 아들이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신 그분께서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견고케 하고 이방인들로 그분의 자비하심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처음 나신 자였으며 만물 안에서 으뜸이 되기 위해 그분의 몸인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만물의 새로운 질서의 영광은 그에 앞선 모든 지상적인 질서 위에 한결 뛰어나고 높여져서 주님 자신의 위(), 그리고 그분의 아버지되신 하나님 존전에서 영광을 얻으신 분에게 부속되었습니다. 아울러, 일어난 것이 그에 앞선 모든 것을 인치되 그 참 위치를 지닌 것으로, 또 하나님께로부터 운명지어진 것으로 인칩니다. 이는 주님께서 자신지 오기 전에 존재한 체제와 관련하여 이 땅에서 자신을 제시하셨기 때문입니다.  앞의 세 복음서는 책임있는 인간, 특히 이스라엘에게 제시된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주님 자신의 신적이고 영원한 속성을 제시해 주는 데, 1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그분을 거절하고 그 마음이 굳어지고 스스로 거절을 망하는 모습과, 세상이 그 지으신 분의 임재를 깨닫지 못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요컨대 이 복음서에는 유효하고 주권적인 은혜와 거듭남, 그리고 천상적인 것들의 기초인 십자가 등이 충만히 드러나 있습니다.

 

(1995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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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