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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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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0. 29. 15:47 횃불/1995년

이사야서에 나타난 그리스도

A. E. 헤밀톤

애굽으로부터의 탈출(출애굽)은 그 역사적인 가치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현 세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인 한 종교적인 운동의 시발점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과거의 가장 두드러진 분기점 중 하나입니다.

바벨론으로부터의 탈출은 앞의 사건만큼 관심을 끄는데 성공하지 못했는데 이는 주로 그것이 출애굽 사건에 비해 점차적으로, 또 평온무사한 중에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놀라운 사건이었으며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하여 개입하신 증거가 역력했습니다. 여호와의 종의 출현으로 그 절정에 이른 그 사건의 결과들은 극도로 중요했습니다.

이러한 탈출 기사가 본서의 주제를 이루는 이사야 4055장에 미리 밝혀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탈출 기사 자체는 곧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을 또 다른 주제에 대한 보조적이고 서론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구속을 확실하게 한 사건들이 우리 앞에 생생한 장면으로 지나갑니다. 구주께서 당하신 모욕과 고통, 영혼의 슬픔과 번민, 대속과 죽음, 높여지심과 만족하심 등이 지금 우리 목전에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세세하고 정확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전했듯이 우리도 한 문장으로 시작해서 똑같이 예수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1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이사야 43:1)

 

동정하는 삶에로 성별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위로의 기술을 구하세

마음마다 무거운 질병에 시달리고 위로자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필요로 함일세

 

하나님의 자녀여, 당신을 시험하는 무서운 시련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여기지 말라, 기뻐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이 바른 길에 있다는 확실한 증표이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어떤 외지에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안식할 곳에 이르려면 태양이 가려진 계곡과 거친 자갈길을 지나야 한다고 알려주었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얘기한 계곡과 자갈길을 만날 경우 그 모든 그늘지고 덜컹거리는 순간마다 나는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는 고난을 지날 때 놀라지 않는다

70년간 낯선 나라의 이방인으로 지내며 고난의 밑바닥까지 체험한 택한 백성의 경우에, 그들의 포로됨이 그들의 완고함과 범과로 인한 결과라는 자책감이 그들의 슬픔을 더욱 가중시켰다. 고난이 외부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것, 즉 그것이 경솔함과 자기모순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자신이 뿌린 씨를 거둔 것이요, 자기의 내장을 파먹는 독수리가 바로 자신이 직접 기른 그 새끼였다는 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모든 고통 중에 가장 괴로운 것이리라! , 내게는! 이것이 고통이니, 내 삶에 네머시스(Nemesis; 인과응보, 보복의 여신-역주)가 있는 것이라. 마음과 보금자리(home)의 법칙들, 영혼과 인간 생명의 법칙들은 범할 경우 처벌을 면할 수 없다. 죄는 용서될 수 있다. 그러나 형벌의 불이 시련의 불로 바뀔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어느 때보다도 가까우면서도 여전히 무서운 고통의 압박이, 즉 떨리는 마음과 눈의 쇠약과 영혼의 찔림과 버드나무 위에 걸린 수금과 여로와의 노래를 부르기를 거절하는 입술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에 놀라서는 안된다. “위를 바라 보라.” 당신은 자녀들과 함께 혈육에 속하신 분으로 그 고통스런 징계를 친히 겪으신 하나님의 아들처럼 되어야 한다. 만일 그분이 친히 당하신 일들로 순종함을 배우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실 필요가 있으셨다면 확실히 당신은 그것을 피할 수 없다. 고난으로 온전케 되지 않는다면 어찌 당신이 그분과 같아 질 수 있겠는가. 당신은 보석상의 연마손질과 도가니의 열기와 도리깨의 타격을 견뎌내야 한다. 당신의 하늘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세속성을 멸하기 위해서. 그곳을 향한 여정 중에 있는 당신을 격려하기 위해서, 천상적인 세계의 영역에 모인 영혼들이, 그들이 받은 상급의 찬란함은 그들이 이 땅에서 겪은 슬픔의 정도에 의존한다고 당신에게 얘기한다.

아래를 보라.” 당신이 당신의 새로운 주인인 그리스도를 위해 그를 버렸을 때 지옥의 왕이 기뻐했겠는가? 그럴리 없다! 당신이 거듭나던 그 순간 당신의 이름은 추방자 명단에 올랐으며, 흑암의 모든 권세들이 당신의 길을 방해하기로 맹세했다. 사단이 어떻게 욥을 증오했는지를 기억하라. 그가 당신을 증오하지 않겠는가? 그는 당신의 주님에 대하 가진 그 증오를 당신에게 퍼부을 것이다. 우리는 지옥이 정해진 한도 내에서 성도를 시험하도록 허락받은 적어도 한 예를 보게 된다(욥의 경우).

주위를 보라.” 당신은 당신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그리고 만일 주님께서 다시 세상에 오신다 해도 또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을 세상에 여전히 살고 있다. 세상은 당신을 사랑할 리 없다. 세상은 당신을 바알세붑이라 부를 것이다. 세상은 당신을 그 회당에서 쫓아낼 것이다. 세상은 당신을 죽이는 것을 종교적인 행위로 여길 것이다. 세상에서 당신은 환란을 당할 것이나 환란 중에 당신은 기뻐할 것이다.

추방당함과 극심한 고통 중에 처한 영혼은 다음 세가지를 행해야 한다: 위로를 찾으라; 위로를 쌓아두라: 위로를 전하라.

 

(1) “위로를 찾으라.”-위로는 확실히온다. 거칠은 쐐기풀이 자라는 곳마다 부드럽고 연한 소루쟁이 잎이 돋아나듯이, 가혹한 시련이 있는 곳마다 그 가까이에는 풍성한 위로의 곳간이 있게 마련이다. 비록 하갈의 경우처럼 우리의 눈이 그것을 보지 못해 종종 허공을 맴돌지만. 존 번연은 자신의 12년간의 투옥생활에 대해서 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생애에 지금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지닌 적이 없었다. 종종 고백했듯이 만일 그것이 정당한 것이라면 나는 더 큰 위로를 위해 더 큰 시련을 구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를 잊을 수 없으시다. 그분은 우리를 아무 도움도 없이 홀로 고난 당하도록 내버려두실 수 없으시다. 그분은 탕자를 맞으러 달려가신다.”  그러나 그분은 그룹을 타고 다니시며 바람 날개를 타고 물에 빠진 제자에게 날아가신다.”

위로는 비례적으로I 당신의 아버지께서는 한 짝의 저울을 갖고 계신다. 오른 편은 때문에”(As)로 불리우는, 당신의 고난을 위한 것이며, 왼 편은 그래서”(So)로 불리우는, 당신의 위로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저울대는 늘 수평을 유지한다. 당신의 시련이 많을수록 당신의 위로도 많아진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 속에 넘칠수록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친다.

위로는 하나님께로서온다. 정류장에서 친구를 만날 때는 엉뚱한 출구에서 기다리지 않기 위해 그가 나올 출구를 알아두는 것이 좋다. 위로가 나오는 출구를 아는 문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언덕이나 안정되고 높은 곳을 바라보아야 할까? 아니다. 높은 산에서는 구원이 발견되지 않는다. 사람을 바라보아야 할까? 아니다. 사람은 마음 속으로까지 낮아질 수 없다. 천사를 바라보아야 할까?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많은 일을 맡기시지만 위로의 일로 그들을 보내시는 일은 거의 없다. 아마 천사들은 너무 강하든가 아니면 고난을 당한 적이 없을 것이다. 상한 마음을 감싸주는데는 가브리엘이 가지지 못한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다. 위로의 특권은 하나님만이 홀로 가지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술이다. 성령의 한 이름은 보혜사(위로자)이다.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51:12),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66: 13)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아름다운 선율로 하늘로부터 울려 퍼진 것은 이스라엘이 말할 수 없이 고난을 당하던 때였다.

위로는 중재를 통해온다. 선지자가 여호와의 대변인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감들을 인간의 언어로 백성들에게 전하듯이, 선지자 무리 중 가장 고결한 자도 그 신들메를 풀기 감당치 못한 그 위대한 선지자도 우리에게 그러하시다. 우리의 위로는 한결 부드러운데 이는 그것이 그분을 통해 우리에게 미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부르시면서 너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다.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위로는 다양한 모습으로온다. 때로는 사랑하는 디도의 옴으로, 때로는 꽃다발이나 한 아름의 포도로, 때로는 편지나 엽서로, 때로는 약속으로, 때로는 열이 난 이마에 얼음 수건을 얹어줌으로, 때로는 하나님이 가까이 오심으로. 본 장에서 하나님이 실의에 빠진 영혼을 위로하시는 다양한 모습을 보라. 슬픔의 기간이 거의 끝났다. 전령의 음성이 고난의 격동이 가라앉고 여명기 가까왔음을 선포한다. 언약은 견고하다. 별들과 세계를 지으신 하나님이 그 양떼를 쫓아내지 않으시는 자비로운 목자이시다. 인간은 가장 강할 때에도 풀의 꽃에 불과하나 하나님의 말씀은 큰 산과 같다. 위로라는 악기에는 많은 줄이 있다.

깊은 슬픔 중에 도움이 되는 것은 친구의 말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이다. 가장 적게 말하지만 그저 가까이 다가와서 고통당하는 자의 손을 잡고 동정의 눈빛으로 조용히 앉아있는 자가 가장 위로가 되는 법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하셨나이다”( 3:57).

 

(2) 위로를 저장해두라.-이것은 선지자의 임무였다. 그는 주기 전에 받아야 했다. 그는 남을 가르칠 수 있기 전에 자신이 먼저 배워야 했다.

세상은 위로받지 못하는 심령으로 가득차 있다. 어린 고아들이 밤에 울고 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자식이 없음으로 흐느끼고 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다. 그분은 불법의 비밀이 마쳐지기 전에는 이러한 처참한 상황의 진전을 막을 수 없으시다. 하지만 그분은 여전히 동정하시며, 당신을 통해 세상의 고뇌를 누그러뜨리기 원하신다. 그러나 그러한 고결한 사역을 감당하기 전에 당신은 먼저 훈련받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당신의 훈련은 크나큰 댓가를 요구한다. 그 훈련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심령들로부터 눈물과 피를 짜내는 것과 같은 고난을 통과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당신 자신의 삶은 하나님의 위로의 기술을 배우는 병실이 된다. 그 위대한 치료자에 의해 당신의 상처가 싸매지는 과정을 통해 상처입은 모든 자들에게 응급처치를 해주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당신은 상처를 입는다. 그것이 교정되는 과정을 통해서 마음의 분석과 수술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당신의 늑골이 부서진다.

당신은 왜 자신이 특별한 슬픔의 때를 지나고 있는지 의아한가? 10년이 지날 때까지 기다리라. 확신하건대 그 때에 당신은 몇몇 사람들이, 아마도 열명의 사람들이 당신과 같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볼 것이다. 당신은 언젠가 그들에게 당신이 어떻게 고난을 당했으며 어떻게 위로를 받았는지를 들려줄 것이다. 그 얘기가 들려지는 동안 그들은 총총한 눈빛으로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일 것이며, 당신은 하나님이 전날에 당신을 싸매주셨던 그 치료의 손길이 그들에게도 임하여 그 영혼을 덮은 절망의 그림자가 소망의 빛줄기에 의해 물러나는 것을 보고 당신의 삶을 그토록 값진 경험과 유용성으로 가득 차게 한 그 징계의 훈련을 베푸신데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위로하시는 방법에 대한 주의깊은 기억을 쌓아두라. 그분이 어떻게 그 일을 하시는지를 예의주시하라. 할 수 있다면 일기를 쓰고 그분의 기술의 모든 과정을 적어두라. 각 부목(副木)의 길이와 각 붕대의 주름, 각 진정제, 강심제 흑은 마취약의 효과를 자세히 살펴보라. 이것은 이중적인 축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 그것은 한편으로는 당신의 생각을 문제투성이에서 측량할 수 없는 자비로 전환시킬 것이며, 한편으로는 종종 고난당하는 자가 가장 견디기 힘든 시련인, 아무 존재할 가치도 목적도 없다는 그러한 의식을 없애줄 것이다.

 

(3) 당신이 받는 위로를 건네주라. - 한 기차역에서 어느 마음씨 좋은 사람이 한 어린 학생이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집에 돌아갈 차비가 없어서였다. 그 사람은 갑자기 오래 전 일이 생각났다. 그가 그 어린 학생과 똑같은 곤경에 처했는데 어떤 모르는 친구가 그를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 친구는 훗날 그 친절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제 그는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울고 있는 소년 곁으로 가서 그 얘기를 들려주고 차비를 준 다음 그 친절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라고 일러주었다. 기차가 역을 출발하자 소년은 아저씨, 꼭 다른 사람에게 건네 줄께요라고 즐겁게 소리쳤다. 이렇게 하여 그러한 놀라운 사랑의 행위는 전세계로 건네지고 있으며, 그 잔물결이 지구를 돌아 제자리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가서 너희도 그와 같이 행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하나님은 당신이 문제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도록 당신을 위로하신다. 당신은 그들을 만나지 못할리 없는데 그들은 결코 소수가 아니다. 당신 자신의 슬픈 과거가 다른 이들은 찾지 못하는 곳에서 저들을 신속히 찾아내게 할 것이다. 만일 그들을 발견하지 못하거든 직접 찾아 나서라. 상처받은 심령이 홀로 죽으러 가기 때문이다. 슬픔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한다. 슬픔의 사람(주님)에게서 슬픔이 숨는 곳에 대한 정보를 얻으라. 그분은 그들이 숨은 채 그분께 부르짖는 그 처소를 알고 계신다. 그분은 당신 앞서 그곳에 계셨었다. 그리고 그들이 있는 곳에 이르거든 선한 사마리아인(주님)이 당신을 위해서 상처를 싸매고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주었듯이 그들을 위해 그렇게 해주라.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1995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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