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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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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1. 16:52 횃불/1995년

이사야서에 나타난 그리스도

 

2장 마음에 외치는 소리 (이사야 40:2)

 마음이 서글프고 삶이 아무 안식도 주지 못하거든, 문제의 수렁과 삶의 혼란과 주위 사람들에게서 들리는 많은 소리로부터 떠나 주의깊게 귀기울여 보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고 생명이 충만한 곳에서 나는 감각의 벽을 관통하는 보다 깊은 소리들을 영혼이 분별해낼 때까지. 아무 모양도 형태도 없고, 아무 화자(話者)도 인식되지 않고, 빛나는 영광과 고요한 능력의 날개를 지닌 아무 천사-사신도 없지만, 한 두개가 넘는, 때로는 이 놀라운 글에서 보듯이 적어도 네 가지의소리가 있다. 모두 하나님의 소리이나 각각 다른 억양과 다른 어조를 지닌다.

소리의 주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곱셈 구구표는 이름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덜 사실이지는 않다. 극히 아름다운 몇몇의 시편과 히브리서는 저자의 이름이 없으나, 그러나 그 표면에 그들의 신임장이 나타나며 그 모든 내부구성에 영감의 거룩한 표증이 나타나 있다. 비록 그 소식을 전하는 전령들이 서서히 밝아오는 여명 뒤에 숨겨져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소리들이 지니는 가치와 효력에 아무 영향을 줄 수 없다. 작곡가는 모르지만 선률은 아름답고 화가는 모르지만 그림은 고결하고 또 아무 저자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책이 진실하고 유익한 경우가 있지 아니한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께로서 나는 소리들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아주 컴컴한 밤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 아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자주 들어온 소리들을 본능적으로 감지하듯이 말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이르는 소리들의 한 특징인즉, “마음에 호소한다는 것이다( 4:12, 우리말 성경에는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로 되어 있음-역주). 이 히브리서 구절은 청혼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으로서 숙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열렬히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을 묘사해준다. 사랑은 사랑을 감지할 수 있다. 마음은 그 진정 사랑할 만한 것을 안다. 많은 소리들이 마음에 외칠지라도 마음은 그 모든 소리로부터 등을 돌린다. 그 소리들에 주의하지 않는다. 어느 날 모든 사람이 고대하던 바 신랑이 나팔소리와 함께 나타남으로 휴식시간이 깨지고 잠자던 처녀가 그녀의 진정한 연인을 맞으러 일어나기까지 그러하다. 그 때 당신의 마음은 그러한 증표를 보고 그 불멸하는 연인을 알아볼 것이다.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1) 용서의 소리-영혼의 첫번째 필요는 용서이다. 영혼은 고난을 견뎌낼 수 없다. 그리고 그 고난이 유대인이 추방당한 것과 같이 그 자신의 어리석음과 죄로 야기되었을 경우 영혼은 겸손히 부복하고 유사한 상황에 처한 엘리가 고백한대로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고 아뢸 것이다. 그러나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하나님께서 구름으로 얼굴을 가리우신다는 것! 어두운 그림자가 마음에 드리운다는 것! 배도 달도 여러날 동안 비치지 않는다는 것! 용서받지 못한 죄의 그 무거운 중량감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자비가 영원히 사라지고 그분이 더 이상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니: 이러한 죄에 대한 마음의 고통이 있다는 것이 변화받는 삶의 첫번째 징후이다. 그 고통은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대신 하나님이 정하신 의()를 간절히 구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붙잡도록 영혼을 준비시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위대한 구원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그분이 잔해를 깨끗이 치우고 무너진 성전을 회복시키시기 전에, 그분이 자신의 형상을 재생산하시기 전에, 죄를 뉘우치고 믿음으로 나아오는 영혼에게 다음 사실들, 즉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하심을 입고, 그리고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다는 사실을 확신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죄와 그 결과란 문제를 다를 때는 그 형벌적인 결과와 자연적인 결과를 항상 구별해야 한다. 이러한 차이는 만취나 형사상의 범죄의 경우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사회가 개입하여 벌금, 수감 혹은 태형 등의 형량을 부과한다. 그러나 그에 덧붙여 머리가 아파오고 손이 떨리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변화가 일어난다. 죄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범하고, 하나님의 통치의 위엄에 모욕을 끼치고, 그리고 율법 수여자에게 개인적인 손상을 입힌 것은 하늘에서 오신 주님이신 둘째 아담의 죽음을 통해서만 구속될 수 있었다. 그분은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 그분은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죄를 없이 하셨다. 그분은 죄가 되셨으며, 그러므로 우리의 범과가 우리에게 부과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

그러나 자연적인 결과가 남아 있다. 다윗은 용서를 받았으나 검이 결코 그 집을 떠나지 않았다. 술주정뱅이나 방탕한 자나 호색가는 용서를 받을 수 있으나 여전히 그들이 뿌린대로 거두어야 한다. 용서받은 죄의 결과는 마라의 물이 십자가 나무로 치료받았듯이 놀랍게 정화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그리고 인내 가운데 감당해야 한다. 예루살렘이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 그 아름다운 소식들이 전해진 것도 그러했다. 예루살렘은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을 받았다. 비록 그 문자적인 도성은 황폐되었고 또 그 자녀들은 사로잡혀 갔지만 여전히 그들은 하나님에게는 예루살렘이었다.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도하고 배역한 백성들은 정한 때까지 포로생활을 하며 배도의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결과를 당해야 했다. 이와 같이 이 선언에는 이중의 위로가 있으니, 그들은 모든 불법이 사하심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전쟁이 끝났고 또 하나님의 성화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연적인 징벌을 갑절이나 충분히 받았던 것이다.

당신도 역시 심한 고난을 당해왔다. 당신의 삶의 초기에 있었던 경솔함과 과오가 무서운 고통의 여정을 가져온 것이다. 당신은 타는 숯불로 덮인 길을 여러 날 지나왔고 당신의 발은 불에 데어 짓물러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항상 당신을 도리깨질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칼이 영원히 삼키지는 않을 것이다. 바다의 물결이 끝까지 당신을 쫓을 것이나 그 이상은 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의 고된 복역의 때가 끝났고 당신의 죄악이 사함을 입었고 당신은 당신의 모든 죄로 인해 배나 받았다. 그것은 당신의 원수에게서 온 것 같으나 실상은 여호와의 손에 의해 주어진 것이며, 이에 여호와께서 족하다고 이르신다.

 

(2) 구원의 소리 -바벨론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는 30일 이상 여행길의 넓은 사막이 있다. 그러나 돌아간다는 생각을 허황되게 만드는 것 같은 그러한 자연적인 난관은 다른 상황에서 비롯되는 난관들에 비할 때 오히려 사소했다. 포로들은 애굽의 벽돌가마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던 바로와 같이 오만한 군주의 수하에 있었다. 빽빽한 산들이 그들과 자유 사이를 가로막았으며 계곡 사이에는 깊은 물이 입 벌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밤낮 부르짖는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려고 일어나시자 베드로 앞에서 철문이 열리듯이 산들이 뒤로 물러났으며 계곡이 융기하여 평평한 들이 되었고 굽은 것들이 곧게 되고 거친 곳들이 고르게 되었다.

동양의 군주들이 여행을 할 때는 으레 수행원들이 앞서 가서 왕이 지나갈 마을들에게 길을 보수하도록 지시를 해놓는다. 이것이 깜짝 놀라 두려워 떠는 침묵 위에 다음과 같은 전령의 소리가 들린 배경이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이것은 여인의 손이 옷주름을 곱게 펴듯이, 증기롤러가 길을 평탄케 하듯이 장애물들이 제거될 것을 예고해 준다.

만일 당신이 들을 귀가 있을진대 당신 역시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당신은 외롭고 쓸쓸하게 앉아 있다. 여호와의 노래가 당신의 입에서 흘러 나온 지 오래되었으며, 압제자의 손이 무겁고, 또 죽음 외에는 다른 구원을 기대하지 못할 것 같다. 당신은 욥과 같이 죽기를 사모해왔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광이 나타나는 가까운 장래에 당신을 기다리는 더 좋은 것을 갖고 계시다.

그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너무 혼잡하고 너무 장애가 많고 우리를 속박하는 힘이 너무 강하다. 이탈리아의 넓고 환한 평지가 펼쳐 있으나 그 위에는 깎아지른듯한 빙벽과 접근할 수 없는 가파른 계곡이 있는 통과할 수 없는 장애로 알프스가 우뚝 서 있다. 상황이 너무 굽어서 도저히 곧게 될 수 없고 너무 험해서 한치도 나아갈 수 없으니, 마치 눈썰매로 거대한 빙구(氷丘)를 건너는 것 같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을 기다리라. 당신의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라. 그분이 강한 팔로 임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 당신을 이끄실 때 -천사가 베드로를 이끌었듯이-놀랍게도 불가항력적인 장애들이 사라질 것이다.  사해와 요단이 길을 내주고 산들이 계곡을 채우고 굵은 동앗줄이 불타는 삼베줄처럼 되고 튼튼한 그물이 슬쩍 건드리면 훼손되어 버릴 거미줄처럼 될 것이다.

 

(3) 썩음과 불멸의 힘의 소리-인간의 영혼이 존재하는 한, 또한 그것이 보이지 않는 화자(話者)만 못하지 않은 인간이 속한 그 영원한 세계에서 그의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들을 구별할 수 있는 한, 영혼은 인간의 삶과 영광의 덧없음에 대한 천사들의 비탄의 소리를 가장 처음, 또 가장 자주 듣게 된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한 가운데서 영혼은 천사들의 주고받는 소리를 듣는다. “외치라고 한 순찰자가 말하자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라고 다른 순찰자가 즉시 되묻는다. 첫째 순찰자가 말을 잇는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말씀은 모든 사려깊은 사람의 마음속에 깊은 반응을 일으킨다.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우리 모두는 그 사실을 목도해왔다. 우리의 건장한 아들들, 우리의 곱고 아리따운 딸들, 우리의 귀여운 아이들이 우리가 보는 앞에서 빛을 잃어가다가 일반 군중 속에 파묻혀 버린다.  예루살렘은 포로로 잡혀간지 오래 되었다. 그 영웅들과 전사들, 정치가와 선지자들이 하나씩 하나씩 포로 생활 중에 죽어갔다. 예루살렘의 자손들은 이제 규모가 작아졌다. 느헤미야가 이사야를, 에스라가 예레미야를, 스룹바벨이 히스기야를 대신했다. 이 두번째 탈출(Exodus)을 이끌 모세는 어디 있으며, 그들을 그들의 땅에 정착시킬 여호수아는 어디 있으며, 그들의 성전을 건축할 솔로몬은 어디 있는가? 황량한 땅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죽음의 골짜기에서 들리는 시체를 긁어 모으는 날카로운 갈고리 소리 외에는 아무 대답도 없는듯했다. 이전 시대의 구원자들과 승리자들은 이렇게 사라져갔다. 이제 누가 그들을 구원할 것인가?

그러나 계속해서 하늘 순찰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인간의 실패가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키지 못한다. 사랑하는 이와 친구는 관심을 잃고 아무 도울 힘이 없을 수 있다. 강한 팔은 그 이전 약속을 이를 힘이 없을 수 있다. 집안의 큰 기둥이 무너지고 가족의 생계를 이을 자가 처자를 먹여 살릴 힘이 없이 병상에 누워있을 부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행하신다. 그분은 사람들과 방법들로부터 독립해 계신다. 그분은 까마귀를 명하여 먹을 것을 가져오게 하실 수 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나님의 말씀의 영구성에 대한 이 천사의 증거에 우리는 마땅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추호도 의심할 수 없다. 말씀으로 하늘과 그 모든 천체가 지음받았으며, 말씀으로 우주의 수레바퀴가 변함없이 돌고 있다. 또한 우리의 모든 것이 말씀에 의존하며 말씀이 복음 안에 있는 우리의 소망의 근거인 까닭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는 하늘 증거에 온 마음으로 화답할 수 있다.

 

(4) 목자-왕의 오심을 전하는 소리 -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가 높은 산에 올라 힘써,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하나님께서 이제 곧 회복시키실 폐허 중에 처한 유다 성읍들을 향해 외치라는 명령을 받는다. “너희 하나님을 보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임하실 것이요.”

특히 그분이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라고 선언된 까닭에 모든 눈길이 여호와 하나님이 무대에 나타나는 장면을 보기 위해 돌려진다. 그러나, ! 한 목자가 그분의 양떼를 평온히 이끌고 광야사막을 건너시고 어린양을 그분의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고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도다. 이것은 여러 세기 후에 주께서 사랑하신 사도가 유다지파의 사자요 일찍 죽임을 당하사 보좌 가운데 서신 어린양을 고대하라는 가르침을 받은 것과 흡사하다.

하나님을 두려워 말라. 그분은 목자의 심령과 기술을 가지고 계시다. 그분은 난폭한 몰이꾼이 아니다. 그분은 자기 양들을 내놓으실 때는 반드시 자신이 그들 앞서 가서 그들로 따라오게 하신다. 그분은 그들의 보조에 발을 맞추신다.  그분의 사려깊음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이다. 간혹 저 너머의 풍요로운 초장에 이르는 다른 길이 없으므로 험난하고 울퉁불퉁한 돌길을 건너야 할 때도 있다. 양들이 힘이 빠지면 그들을 품에 안고 가신다. 혹 어려운 요구를 하실 때는 아주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신다. 그분은 아버지가 그분을 아시듯이 자기 양들을 아시는 선한 목자시다.

이상은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우리에게 들리는 소리들이다. 날마다 그 마음에 침묵의 공간이 있어 이러한 소리들을 들을 수 있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기 위해 매일의 일과가 끝날 무렵 아무 방해도 허용하지 않은 채 한 동안 여호와 앞에 조용히 앉아 있는다는 것은 경건한 하나님의 종이 가져야 할 좋은 습관이다.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는 사무엘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1995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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