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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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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11. 16:20 횃불/1995년

 

도날드 노비

우리는 지금까지 예물에 대한 공부를 해오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우리가 상고한 예물은 속죄제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속죄제물은 우리의 죄악 된 성품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죄로 물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다 불완전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부지 중에 죄를 법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속죄제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죄를 삼은 바 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다음 두번째로 상고한 예물은 속건 제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죄의 성품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번번히 우리의 행동으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속건제물은 바로 그것을 강조하는 제사입니다.

 

우리가 행동으로 범한 모든 죄에 대해서 제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또 가능하면 그 범죄에 대해서는 보상도 겸해서 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 우리는 정돈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화목제물이 있습니다. 이것은 기쁨과 감사를 표하는 제물입니다. 이 예물을 가져오는 사람은 충만한 마음으로 나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오는 것입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특별한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또 이 화목제물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즐거움의 시간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 즐거워하고 또 음식을 즐겨 먹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우리 주님이 우리의 영적인 식물이 된다는 사실도 우리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고 어린양의 피를 발랐습니다. 그 다음에 이 양고기를 저들이 먹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여행하는 나그네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해방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으로 가는 도중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여정을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주님을 묵상하며 먹고 살게 될 때 우리도 우리의 여정에 대한기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나를 먹지 아니하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주님에 대한 말씀을 읽을 때 우리 주님의 살을 먹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묵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을 즐기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제자들이 종종 주님의 무릎 앞에 앉았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놀라운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들이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은 영적으로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똑같이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도 영적인, 내적인 힘과 기력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조용한 시간은 주님과의 깊은 교제 속으로 이끌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항상 우리를 유혹하고 마귀가 분주하게 우리를 유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 깊어지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제에 관한 말씀도 상고해 보았습니다. 소제는 우리 주님의 인성을 강조하는 예물입니다. 곡식은 땅에서 나는 것입니다. 이 곡식은 세가지 다른 면으로 주님 앞에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밀가루로 해서 드릴 수가 있고 또한 그것을 구워서 과자를 만들어가지고 드릴 수가 있고 또한 솥에 삶은 것으로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항상 기름과 함께 드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소금을 섞어서 드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그 옆에는 향유를 놓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상징물들에 대한 뜻을 상고해 보았습니다. 이 소금이라는 것은 언약의 소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것은 우리 주님께서 언약에 성실하심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절대로 너희를 떠나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신실하심이 크도다하는 찬송을 부릅니다.

그 다음에 여기에 기름을 섞어 드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 기름은 성경에서 성령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누구보다도 성령님에 충만한 분으로 상징된 분이십니다.

사도행전 10 3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전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주님의 삶을 그에게 회상해서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주님은 침례받을 때 성령님을 받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비둘기 형상으로 주님 위에 내려오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다고 증거했습니다. 그와 같이 소제를 드릴 때에는 기름을 부었습니다. 기름을 발랐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지 말라고 금지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누룩을 넣는 것입니다. 이 누룩은 죄악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주님에 게는 죄가 전혀 없으셨습니다. 주님처럼 산사람이 없습니다. 또한 마음속에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를 행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제물을 쪼갰을 때 그 내장에 무슨 불완전한 흠이 있는가 하는 것을 그들은 살펴야만 했습니다. 이 제물이 겉으로는 흠이 없어 보일지라도 내장에 병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면으로도 병이 있으면 그 짐승은 예물로 드리기에 합당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와 같이 여기에 누룩을 넣지 말라고 하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무죄하셨다는 것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꿀을 섞어서도 안되었습니다. 이 꿀은 자연적으로 단 것을 말합니다. 우리 주님 안에는 아첨이라고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항상 진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어떤 것도 의도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사람들을 주관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완전하신 사람이셨습니다.

이 예물을 한 주먹 집어서 여호와 앞에 드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가루를 한 주먹 움키고 또한 유향을 싫어서 소제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에 던져 사릅니다. 이때 곡식이 태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나머지는 제사장이 먹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향은 하나님 앞에 올려지는 기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8장에 보면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향연이 올라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계셨을 때 그분은 기도의 사람이셨습니다. 주님은 종종 홀로 계시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주님은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인간으로서는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은 간절한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은 울부짖으셨습니다. 그분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를 올렸습니다. 주님은 완전한 인간으로서 기도의 사람이셨습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주님은 우리에게 모범이셨습니다. 우리도 기도하는 사람으로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마지막 예물에 대해서 상고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문 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1~9).

이것은 번제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각종 제사를 드릴 때마다 절차가 비슷했습니다. 각종 제사 때마다 그들은 짐승의 머리 위에 안수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또한 제사를 드릴 때마다 그들은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속죄제물을 드릴 때는 자기의 죄를 자백했을 것입니다.

또 화목제를 드릴 때는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위해서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 번제의 경우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이 짐승의 머리 위에 안수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번제는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리는 제사입니다. 제물을 드리는 자의 마음 속에 깊은 감사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자기의 헌신을 나타내는 제사입니다. 이 제사는 물론 우리 주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 주님께서는 자기를 온전히 하나님 앞에 드린 제물이셨습니다. 사람이 칼을 가지고 이 짐승을 죽입니다. 이 예물이 황소일 수도 있고 어린양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가난하면 비둘기로 번제를 드릴 수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이 번제를 드릴 수 있도록 해야 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들이 가난하든 부하든 주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가난하든 부하든 주님 앞에 여러분의 헌신을 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 예물의 순서를 생각할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우리는 죄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화목제물을 생각할 때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감사로 우리의 마음을 감동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된 데 대한 기쁨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만찬상에 나아올 때 이와 같은 태도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주님을 찬미하는데 많은 형제님들이 참여하는 것을 볼 때 기했습니다. 형제님들이면 다 이와 같이 입을 벌려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기도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저들을 예배하도록 인도하는 것 말입니다.

이제 짐승을 잡아서 그것을 나눕니다. 그 예물을 드린 사람이 그것을 칼로 잘라서 부분 부분 내장을 자르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내장을 물에 씻습니다. 다 검사를 해서 병이 없는 건강한 짐승인지 확인합니다. 이 전체를 단 위에 불살라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내장 전부를 전체로 다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의 아버지 앞의 헌신을 잘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나는 항상 아버지께서 기뻐하는 것을 행한다고 주님은 고백하셨습니다. 또 주님은 그의 원수를 향해서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 잡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여러번 하늘을 여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완전하신 번제물이 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자기를 바치신 분이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대하셨을 때 그것은 커다란 시험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서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돌 던질만큼 가서 무릎을 끊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되더라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22:39~46).

주님께서 십자가를 대하셨을 때 얼마나 번민하셨는가 하는 것을 여기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이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그 고통과 그 수치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인간으로서 그것을 당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다 본능적으로 죽음을 싫어합니다.

우리 가운데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은 죽을 때 생명을 꼭 잡기를 원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서 몸부림 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완전한 인성을 가지셨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십자가가 어떠한 고통을 가할는지를 민감하게 느끼고 계셨습니다. 만일 아버님이 원하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주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이 이 기도를 반복해서 하셨습니다. 주님은 크게 번민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때 주님의 이마에 떨어지는 땀방울이 피방울과 같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어지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는 저를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드리겠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아버님의 뜻이 제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에 나가셨습니다. 주님의 헌신은 완전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 주님은 불완전한 헌신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자기의 전체를 제단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또한 이 제물을 가져와서 예물을 드리는 사람이 그 제물 위에 자기 손을 얹어 안수했습니다. 그때 그는 자기를 이 제물과 같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이 제물을 드리면서 하나님, 저는 저 자신을 함께 드리기를 원합니다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 앞에 더욱 헌신되기를 원합니다. 이 짐승이 단 위에 온전히 드려진 것처럼 나도 온전히 주님 앞에 헌신되기를 원합니다.”  이와 같이 이것은 주님께서 자기를 위해서 행하신 모든 선을 생각하며 주님 앞에 자기를 온전히 바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가 짐승을 죽일 때 그의 손에는 피가 묻게 됩니다. 그의 죽음에 그는 깊이 관여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저는 우리가 주님의 죽으심에 얼마나 연관되어 있는가를 말씀 드렸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 때문에 주님이 사형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죄를 미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경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을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죄가 주님을 죽도록 만들었습니다. “내가 범한 그 죄 때문에 주님이 돌아가셨구나하고 우리는 마음 아파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번제를 생각할 때 우리는 죄를 미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2:1,2).

제사장은 이 죽은 짐승을 제단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여기에 사도 바울은 우리의 산 몸을 주님 앞에 산제사로 올려놓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제단 위에 올려 놓는다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 앞에 자기를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자기의 손을 거기에서 떼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온전히 다 태워지는 것입니다. 전체가 다 하나님 앞에 속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위해서 죽음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저의 한 친구가 얼마 전에 죽었는데 그는 에콰도르에 선교사로 갔던 사람입니다. 그와 몇 명의 동료 선교사들은 에콰도르에 있는 오코스라고 하는 부족들에게 선교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밀림에 들어가서 천막을 쳤습니다. 인디안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인디안들이 그들을 핍박해서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이때 세 명의 청년선교사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다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헌신된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몸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죽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순교하도록 부름받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산제물로 드리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헌신은 그와 다름이 없어야 됩니다. 필요하다면 우리는 죽을 각오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동안에 우리는 주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들을 주님 앞에 온전한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을 주님 앞에 드린다는 것은, 여러분의 전 존재를 드리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원하는 예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지만 성경은 우리자신을 드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바 되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행하신 일을 우리가 진정으로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기적인 방법으로 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금과 은과 같은 썩어질 것으로 산 바 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피로 산 바 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산 바 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가 자원해서 너희 자신을 내게 드리겠느냐고 물으십니다. 너희가 너희를 드려서 나를 위해 살겠느냐? 산 제물로 드리라고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거룩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죄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드리되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기뻐하시는 제물로 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합당한 예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세상을 본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문화에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새로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할 때 여러분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은 몸소 체험을 통해서 이것이 참으로 선한 삶이라는 것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과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하신 적이 있습니까?

많은 경우에 우리에게는 위기가 다가옵니다. 과거에 여름 캠프장에서 있었던 일인데 어느 고등학생이 저를 찾아와서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께 저를 드린 적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기는 했지만 내 자신을 진정으로 주님 앞에 드려본 적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오후에 그는 아주 간단한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주님이 저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저를 위해서 돌아가 주셨습니다. 저를 위해서 고난을 받아 주셨습니다. 이제 내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이것이 수년전의 일이었습니다만, 그 사람이 지금까지도 주를 위해 살고 있음에 저는 참으로 기쁩니다.

주님은 때로는 우리가 그 헌신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을 주님 앞에 진정으로 드린 적이 있습니까? 젊은 형제 자매님들! 여러분을 하나님 앞에 드린 적이 있습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러분은 직장에서 성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명성을 얻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역설하는 것은 여러분이 행복할 수 있는 삶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삶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여러분의 직업생활을 계속하도록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주님 앞에 여러분 자신을 드리면 여러분은 개방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무엘과 같이 주님 말씀하시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저는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주님 앞에 드리십시오. 과거에 그렇게 하셨다면 오늘 다시금 이것을 새롭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으로부터 이렇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저를 위해 돌아가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를 위해서 그 모든 고통을 겪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새로이 저 자신을 주님 앞에 바칩니다. 저는 제 삶을 주님 앞에 드리기를 원합니다. 저는 제 삶이 끝날 때 내 인생을 낭비했다는 마음을 갖기를 원치 않습니다

자기 목숨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잃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나를 위해서 잃고자 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 자신을 주님 앞에 드리십시오. 제단 앞에 와서 제물을 드리는 사람과 같이 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몸을 이 제단 위에 올려 놓으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제단 위에 여러분 자신을 올려 놓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참된 기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을 마치게 될 때 여러분은 사도 바울과 같이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나의 믿음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해서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영원한 상급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번제는 예물을 드린 사람의 헌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각 사람의 소원하는 바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저 불완전한 헌신이 아니라, 그저 미지근한 헌신이 아니라 열성적으로 하나님 앞에 전심을 바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드리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1995 6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