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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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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28. 15:06 횃불/1996년

발람(4)

 

중대한 질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 관해서 모압과 두가지 논쟁을 벌이셨는데, 첫째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길에서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둘째는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케 하려 하였기때문이다( 23:4). 우리는 여기서 죄는 소극적일 뿐 아니라 또한 적극적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무관심한 사람은 그 뜻을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만큼이나 실질적인 죄인이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어리석은 처녀들은 기름을 준비하는데 등한히 한 까닭에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으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을 위해 그의 달란트를 사용하는데 등한히 한 까닭에 바깥 어두운데 쫒겨났으며, “염소들은 왕의 사자들에게 친절을 베푸는데 등한히 한 까닭에 영벌에 처해졌다. 마태복음 25장에 나타나 있는 그러한 소홀히 함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경멸을 암시하는데 이는 실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겠다고 선언했다(삼상 12:23). 따라서 모압(과 암몬)이 그분의 나그네된 백성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행진할 때 떡과 물로 영접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다.

그러나 이들 대적은 그 이상이었다. 소홀함뿐만 아니라 공개적인 적의(敵意)가 있었다. 모세 시대 여러 세기 후에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의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추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추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의 의롭게 행한 것을 알리라”( 6:5). 발람과 발락은 사단의 꾀임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제기했는데, 이는 우리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까닭에 우리가 꼭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질문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지상 백성뿐 아니라 그분의 천상 성도에 대해서도 똑같이 악의를 가득 품는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또 그분이 택하신 땅에서 축복을 누릴 약속을 가지고 애굽에서 해방되었다. 그들의 여정은 해를 거듭할수록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으로 특징지워졌다. 이제 백성들은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두었으며, 요단을 건너 그 땅을 소유할 순간이 임박했다. 광야 세월 동안 백성들을 집요하게 괴롭혀 온 사단은 이제 발락과 발람을 도구로 택하여 이스라엘을 멸하기 위한 최선의 시도에 몰입했다. 사단은 그들에게서 약속된 축복을 빼앗으려 했다. 사실 그는 그들의 완전한 멸절을 원했다. 만일 이 중대한 질문이 광야 생활 40년 초기에 제기되었다면 모든 사람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멸하려는 제안을 거절하실 줄로 예상했을 것이다. 만일 그분이 그들을 멸하시고자 한다면, 왜 그들을 애굽의 압제자에게서 해방하시고 왜 홍해의 위험에서 그들을 보호하셨겠는가? 그러나 그 질문은 40년 초기가 아니라 마지막에 제기되었다. 그리고 그 세월은 어떠했는가? 여호와 편에서는 선하심과 신실하심과 오래 참으심이었으나, 백성들 편에서는 불신앙과 감사치 않음과 거듭된 불순종이었다! 모세는 진실로 백성들을 사랑했고 그들을 섬기기 위해 자신의 모든 세상적인 포부를 희생했으나, 그들은 그의 마음을 상케 했고, 한번은 그의 마음을 몹시 자극하여 그로 하여금 간절히 바라던 땅에 들어갈 기회를 박탈당하게 하기도 했다( 106:32,33, 20:12, 4:21,22). 그러한 역사를 가진 백성이 저주를 받을 수 있을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버리고픈 마음을 품으실 수 있을까? 이것이 모압 평지에서 제기되고 응답된 질문이었다.

우리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이 중대한 장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상고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나그네 삶을 살면서 하나님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 왔는가? 이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모두 슬픔과 부끄러움 속에 머리를 숙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그러한 부족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계획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는가?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중간하거나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을 지우시거나 우리를 처음 발견하신 곳으로 쫓아내실 수 있겠는가? 절대 그럴리 없다! 그분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사랑 안에서 그분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는 자 안에서 은총을 입는 위치로 인도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깨끗히 씻고 거룩케 하고 의롭다 하셨으며 성령으로 우리를 인치고 기름부으셨다( 1:36, 고전 6:11, 고후 1:21,22). 이 모든 사실은 영원히 견고한데 이는 그분의 백성이 어떠하든 간에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의 의로운 치리 안에서 그분은 옛적에 이스라엘을 연단하셨듯이 우리를 연단하실 수 있으나 그분은 자신의 은혜로운 계획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11:29). 신명기 23:5헤 기록된 모세의 고백을 들어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마찬가지로, 우리의 모든 축복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히 보호를 받으며,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사랑하시듯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주의 으뜸되는 위선자인 사단은 때때로 의()를 위해 싸우는 척 한다. 신실치 못한 백성을 여전히 사랑하고 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에 일치될 수 있는가? 스가랴 3장에서 선지자는 사단이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자인 여호수아를 대적하는 모습을 환상을 통해 보았다. 사단은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서기에 전혀 부적합한 자로 여겨 불에 던지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에게 책망을 받았다! 타락하기 전에 사단은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 에스겔 28:1117에는 그에 대한 숨겨진 비유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 한 구절을 인용해 보자.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이 말씀은 사단의 직위가 하나님의 보좌의 관심사를 보호하는 것이었음을 밝혀 준다. 지금도 그는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그의 종들을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고후 11:14,15). 악한 영들은 항상 더럽지만은 않다( 5:2). 그들은 필요할 때는 거룩한체, 바리새인인체 할 수 있다(딤전 4:13). 그들은 심지어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서 주 예수님을, 안식일을 범하고 하나님을 모독하고 백성을 소동케 했다고 고소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의 언행에 충격을 받은체 했다!

민수기를 대하면서, 악인과 사단의 노력이 오히려 하나님으로 하여금, 발람의 입술을 통해서,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분의 백성에 관한 은혜와 축복의 가장 놀라운 분출을 베푸시도록 했다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 사실을 설명하려면 민수기 21 8,9절을 잠시 살펴보아야 한다. 장대에 높이 들려진 뱀은 주님이 친히 하신 복스런 말씀에서 알게 되듯이( 3:14) 높이 들리운 인자를 상징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육신을, 완전히 악한 것으로 거절하셨음을 암시한다. 첫 사람에게서 나오는 일체의 것은 하나님께 열납 될 수 없다. 죄는 그가 범한 죄에 대한 용서만이 아니라 새롭고 신적인 생명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예루살렘에서의 한 밤의 대화에서 니고데모가 들은 것이었다.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진실로 우리를 겸손케 하는 교훈이 아닌가! 뿌리는 열매만큼 나쁘다. 생명은 그 악한 증거만큼 악하다. 인간을 위한 생명은 우리의 모든 존재와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갈보리 나무에서 담당하신 그분 안에서만 발견된다. 그분은 지금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계신다. 그리고 모든 신자는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2:20).

높이 들리운 뱀을 통해서 여호와께서는 (상징적으로) 그분의 택한 백성의 모든 타고난 악()을 시야에서 제거하셨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분이 그분의 모든 은혜의 목적들을 철회하고 그분의 존전에서 그것들을 좇아낼 수 있겠는가? 원수의 궤계는 원수 자신을 혼돈에 빠뜨렸으며, 모든 은혜의 하나님에게 그분의 마음의 위대한 생각들을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선명하고 충만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주었다.

다시금 미가 6:5을 읽어보자.

내 백성아 너는 모압왕 발락의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추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추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의 의롭게 행한 것을 알리라.” 여기에 언급된 지명을 살펴보면 이 구절이 참으로 놀라운 말씀임을 알 수 있다. “싯딤은 요단 동편의 광야에 있었고 길갈은 약속된 땅 내부에 있었다. , 원수에 대한 여호와의 대답은 말과 행동을 통해 주어졌다. 그분의 말씀은 싯딤에서 발해졌으며, 그분의 행동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기적적으로 건넌 후에 진을 치고 그곳을 기점으로 정복사업을 펼쳐나간 길갈에서 증거되었다. 그와같이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백성에 대한 그분의 은혜로운 말씀을 성취함으로 그분의 의로우심을 매우 복스럽게 나타내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나 빨리 그분의 행사를 잊고 그분을 찬양드리기를 멈추었는지!

 

(1996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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