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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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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 10. 09:04 횃불/1996년

잊혀진 명령- 거룩하라

 

18 : 묵상

옳은 묵상

나는 아직까지 거룩한 사람들 중에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경건과 말씀 묵상은 서로 관계가 있다. 묵상이라 함은 하나님을 높이고 또 덕을 세우는 주제들에 우리의 마음을 의도적으로 집중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묵상은 주님이나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주님에 대한 것에 마음을 집중시키는 정신적 훈련을 말한다. 우리는 목적없이 하찮은 것에 우리 마음이 방황하도록 방치해두는 대신 유익한 것을 생각하도록 훈련하여야 한다. 그리고 중립적 위치에서 마음을 방치하는 대신 은혜와 진리에 머물도록 해야 한다. 묵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하나의 두뇌집단이다. 소가 되새김질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라. 그는 이미 먹은 음식이지만 다시 꺼내어 이를 천천히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앉아서 되새김질 하는 소를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감탄스럽다. 이와 같이 신자들도 말씀을 읽고 그 읽은 말씀을 다시 깊이 묵상한다. 이는 삶의 모든 부분에 만족 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활력소가 된다.

 

잘못된 묵상

성경적인 묵상을 다른 동방종교의 명상이나 불가해한 묵상과 혼돈해서는 안 된다. 이교도적인 가르침 중에 하나는 하나님이 사람 안에 있고 사람도 묵상을 통하여 그 안에 있는 신성을 깨달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또 다른 가르침은 마음을 비우고 영감을 기다리라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마음을 비우고 계시를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은 사단에게 속을 위험이 많다 예수님은 귀신들렸다가 나은 사람에 대해 말씀하셨다. 더러운 귀신이 나갔으나 집은 다른 것으로 채우지 않고 비어 있었다. 그래서 그 더러운 귀신이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더 데리고 들어가 그 사람의 삶을 주관하였다 ( 12:4345). 그리스도인들의 묵상은 그 마음을 하나님 말씀과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정결한 것, 사랑할만한 것, 칭찬할만한 것 그리고 덕이 되는 것으로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 4:8). 묵상은 영적인 부와 성공에 보증이 된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여기 묵상의 목적 중에 하나가 변화된 삶을 위한 것임에 주의하라.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묵상은 그 사람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뿌리에 달려 있으며 이는 그에게 열매를 맺게 해준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1:3). 묵상은 사람으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준다. 하나님은 그에게 가까이 있어 그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그의 비밀을 나타내시는데( 25:14) 그것은 어떤 교리가 아닌 인도나 격려, 위로 또는 교정일 수 있다.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된 진리를 넘어 다른 진리를 나타내시지 않는다. 이 믿음은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이다( 3). 묵상은 여행하는 자의 시간 낭비를 막을 수 있다. 묵상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했다( 19:14). 그리고 묵상은 그리스도를 닳게 해준다. 우리가 주님을 생각할수록 주님을 더 닮아가게 된다(고후 3:18).

 

묵상의 방법

묵상의 방법에 대해 생각할 때 모든 사람들에게 다 잘 맞는 방법은 없으리라 고 본다. 각자가 자기의 환경에 잘 맞는 방법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전화나 TV, 라디오, 자동차소리 등이 방해 되지 않는 어떤 조용한 장소와 특정한 시간을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삭은 저녁 무렵 들에서 조용히 묵상할 곳을 찾았다( 24:63) 아니면 낮이나 밤중에 한 시간을 택할 수도 있다. 다윗은 잠이 오지 않는 밤을 주를 기억하고 묵상하는. 시간으로 사용하였다( 63:6). 메모지를 가지고 앉아 해야할 일과 전화해야할 곳, 또는 그외에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 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적어서 한쪽에 두고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묵상에 전념한다. 묵상할 가치가 없는 것은 없다. 시편 기자는 밤에 문지기로 보초를 서면서 하나님의 보배로운 약속들을 묵상하였다( 119:148). 시편 1편에서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과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였다( 1:2, 119:78).

청교도들은 많은 시간을 하나님의 속성을 묵상하는데 보냈으며 이를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중요한 것으로 간주했다.  창조에 있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공급은 묵상을 위한 풍부한 자원이 되고 있다( 143:5). 그리고 구속의 놀라운 역사도 묵상을 위한 좋은 자료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계된 중요한 것을 묵상하라고 말했다(딤전 4:15). 처음 시작할 때는 짧은 성경구절을 가지고 하는게 좋으며 이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해 각 단어와 구절을 묵상하는게 좋다. 예를 들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를 생각해 보자( 2:20),

나를”-성경이 말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상태에 대해 생각해 보라. 죄인들, 경건치 못하고 죽은 자들, 하나님의 원수들, 하나님도 없고 그리스도도 없는 자들, 그리고 소망도 없고 능력도 없는 자들이었다.

사랑하사”-그분의 사랑을 생각해 보라. 측량할 수 없고,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고, 희생적이고 비할데 없는, 그리고 편견이 없는 사랑이다. 고린도전서 13:48에 말하고 있는 사랑을 묵상해 보라.

나를 위하여 “ -놀라운 일이다. 전혀 무가치한 나에게 엄청난 선물을 주셨다.  이같은 사랑에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하겠는가? 아이삭 왓츠의 말에 나도 동감한다.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다 갚겠네. 놀라운 사랑 받은 나, 몸으로 제물 삼겠네.”

자기 몸을 버리신”-사랑은 언제나 준다. 그런데 그분의 사랑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는가를 생각해 보라. 그분 자신을 주셨다. 그분은 돈이나 다른 물건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을 주셨다. 이는 그분의 피와 생명, 그리고 그분의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큰 값을 지불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이를 생각해 보라. 단순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육체 가운데 나타나셨다. 생명의 주요 영광의 주이시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이를 붙들고 계시는 분이다. 

성경 지식이 짧은 초신자에게 이 방법이 너무 어렵다면 그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가지고 마음 속에서 재현해 보며, 그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5:27,28에서 마태의 부름에 대해 읽어볼 수 있다.  마태가 세금을 거두고 있는 모습을 상상 해보라.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에게 오셨다. 마태는 주님에게서 무엇이 다른 것을 발견했을까? 예수님이 마태에게 하신 말씀이라고는 나를 따르라는 것 뿐이었다. 마태의 마음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내 마음에는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버려야 했던 것은 무엇인가? 마음속에 그때 그 일들을 재현해 보는 것을, 힌두교도들은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마음에 그리고 있으면 그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건강이나 성공, 명성 또는 기쁨 등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마음에 생각하고 있으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W. E. 쌩스터는 성실한 학생들은 말씀 안에서 사는 법을 배워오고 있다. 그들은 주님 안에서 경건한 상상력을 가지고 성경을 묵상하여 자기 것을 만드는 법을 발전시키고 있다. 고귀한 상상력 사용은 장래를 위해 어떤 것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 우리 주님의 삶의 실질적인 모습들을 재현시키는 것이며 주님의 삶의 현장에 자신도 함께 있는 것처럼 포함시키는 것이다.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이 주님과 함께 있었던 곳에 자기도 함께 서는 것이며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올 때 옆에서 그를 지켜보고, 마리아와 함께 주님의 발 앞에 앉는 것이다.  유용한 상상력 사용은 성경에 있는 사실들을 오늘날의 삶으로 생생하게 재현해 내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피상적으로 읽을 수 있고 또 그 속에 들어가 마음으로 읽을 수도 있다. 우리는 언제나 피상적으로 성경에 접근해 그 안에 있는 진리들에 대해 피상적일 수 있으며 그 안에 들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분주한자의 고갈

묵상에 있어 가장 큰 적은 우리들의 바쁜 삶이다. 우리는 바쁜 삶으로 인한 고갈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의 직업이 우리를 삼키고 있다. 가정과 집안의 일들이 우리를 억누르고 있다. 집을 사고, 차를 관리하며, 음식과 옷을 준비하고, 보험, 교육 등 우리를 잡아매는 것들이 많다. 소위 전임사역자들도 찰리가 말한 것처럼 정신 못차리게 바쁜 스케줄에 매여있다. 말씀 준비와 제자훈련, 상담, 그리고 도움을 원하는 수많은 전화들이 그들로 주의 상 앞에 앉을 시간이 없게 만든다. 우리는 일본 사람들처럼 우리는 눈코 뜰 사이없이 바쁘다라고 외친다.  우리는 일벌레들이 되었다. 우리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세속적인 것들을 사서 집에다 쌓는데 바쁘다. 그러나 우리는 바쁜 것 때문에 핑계할 수 없다. 바쁜 사람들도 묵상할 수 있다. 이는 시간관리의 문제이다. 아무리 바쁜 사람이라도 짜투리 시간은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간을 절약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할 시간도 없다면 그는 정말 바쁜 사람이다.” 하나님은 시간이 없어 뛰어다니는 사람에게 서둘러 그 자신을 나타내시지 않는다. 그분은 오직 호기심만 가지고 겉만 훑어보는 자에게 그분의 마음을 나타내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지나가는 영적 방랑자에게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시지 않고 그분의 앞까지 산을 올라온 자에게 나타내신다. 하나님과의 교제로 인해 빛났던 모세의 얼굴은 단 한번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분 앞에 있음으로 되어진 것이었다.”

 

하늘로부터의 직통선

우리는 앞에서 묵상이 때로 사람들을 주님과 특별한 교제를 나누게 해 준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때로 신앙이 좋지 않은 부도덕한 그리스도인도 주님이 내게 말씀하셨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이나 그리스도인들의 경험을 비춰볼 때 주님은 그들에게 전혀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주님과 특별히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는 자들이 주님으로부터 받는 계시에 대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의 세가지 예로 이 장을 마칠까한다.

 쉐퍼드 자매는 그의 많은 가족들이 다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주님으로부터의 확신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그녀가 나가는 교회의 목자에게 이야기했을 때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무시했다. 옆 도시에 살고 있는 그녀의 병든 동생도 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날 밤 그는 이사야 49장을 묵상하면서 그의 누이에게 소식을 전해 달라고 그의 아내에게 말했다. 그 소식은 49:25이었다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구원할 것임이라.” 그후 몇 년 동안 그녀의 모든 자녀들이 다 구원받았다. 

알프레드는 주님과 가까운 교제 가운데 있었다. 주님과 가까이 교제하고 있는 그의 친구는 그곳에서 수천 마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살고 있었다. 하루는 나이 많은 알프레드가 그의 딸에게 내가 알렉스를 은혜의 보좌 앞에서 만나지 못한지가 3개월이나 되었다라고 말했다. 얼마후 편지가 왔는데 알렉스가 3개월 전에 죽었다는 편지였다.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한 젊은 그리스도인이 사무실에 앉아 주님이 자신을 버리셨다는 생각에 하나님과 더불어 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특별히 시편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나이 많은 알렌 스미스였다. 그는 주님께서 너를 자꾸 마음에 생각나게 하셔서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젊은이는 놀랐다. 알렌은 우연히 안 것이었다. 인간적으로 말해 그가 젊은 형제의 고통을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일하지 않는 토요일 오후에 그가 그의 사무실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무르도 맥클라우드는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자, 그리고 그의 가는 일에 주님을 동행자로 알고 있는 자들 중에는 그분의 가까운 사랑과 돌봄을 느끼지 못하는 자가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자들에게 주님은 침묵을 지키시지 않는다.  이러한 자들에게 주님은 타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깊은 영적 체험들 중에는 때로 세상 또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것들도 있다.

 

(1996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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