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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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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12:14 횃불/1997년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C. H. 매킨토쉬 지음

4. 주의 강림과 그 날(2)

데살로니가 성도들로 하여금 주의강림그 날이 어떤 차이를 지니는지 분명하게 깨닫도록 사도가 얼마나 신실하게 노력하고 있는가를 보라.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은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흘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살전 5:111).

더할 나위 없이 명백한 차이점이 여기 있다. 주님께서는 신랑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오실 것이다. 주의 날은 도적과 같이 이 세상에 임할 것이다. 이 보다 더 두드러진 대조가 있겠는가? 이 두 사실을 어떻게 혼동할 수 있으랴? 이 두 사실은 아주 상이하다. 신랑과 도적이 다른 것 같이, 고대하고 있는 백성들을 위해 오시는 주님의 재림과 잠들어 있고 취해 있는 이 세상에 임할 주의 날이 서로 다르다.

그런데 사데 교회에 주신 엄숙한 말씀 때문에 혹시 이해하기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3:5).

사데 교회가 살았으나 죽어 있는, 이름뿐인 교회라는 것을 상기해 보기만 한다면 그런 어려움은 해소될 것이다.  사데 교회는 세상의 수준으로 빠져버렸기에 세상의 견지에서 모든 일을 볼 수 밖에 없는 형편이 되었다. 철저히 실패 했고, 높고 거룩한 지위에서 떨어진 교회가 되고 만 것이다. 사데 교회는 교회 의 복된 소망을 상실하고 세상에 임할 운명의 날로 인해 두려워했다. 우리는 여기서 사데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나 혹은 신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책임을 다하여야 할 증인, 즉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시지 않는 동안 이 어둠의 세상에서 거룩한 증거의 빛을 비추어야 할 금 촛대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앙을 고백한 교회가 더 깊은 타락으로 떨어지고, 세상 자체보다 더 어둡게 되고 말았다! 그러니 심각한 위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예외때문에 규정이 더 확실하게 되는 법이다.

데살로니가후서를 통해 이 주제를 더 깊이 다뤄보자.

하나님께서는 어둠 속에서 빛을 이끌어 내시고, 사망에서 생명을 이끌어 내시며, 적의 손에 가장 비참하게 멸망한 한 가운데서 그의 영광의 광채를 비추신다. 이 진리는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 곳곳에 설명이 되어 있는 바 이로 인해 우리 마음에 평강이 가득하고, 우리 입에 찬양이 넘치리라.

따라서 이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빠졌던 여러 교리적인 오류와 실제적인 악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셨고, 교회의 지상역사가 종결되는 시점을 앞두고 교회의 교훈과 지침 그리고 확고한 유익을 위해 사용하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앞서간 성도들에 대하여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범한 오류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성도의 휴거에 대하여 소상히 밝혀줄 영적인 빛을 비추어 주는 기회가 되었으며, 이는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자라도 그 동일한 실수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일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앙망하였다. 이점에서 그들은 옳았다 그들은 주께서 그의 영원한 왕국을 건설하시기를 바랬다. 넓은 의미로 보아, 이점에 있어서도 그들은 옳았다.

그러나, 이 영광된 소망 중에서 천상적인 면을 빼놓는 큰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다. 그들의 지성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곧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주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 친히 공중으로 강림하시는 것과 권세를 가지시고 그 영원한 왕국을 세우시기 위하여 나타나시는 것, 즉 주님의 강림의 이중적인 관계를 그들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데살로 니가 성도들은 세상을 떠난 형제들이 그 축복의 범주에,그 영광의 자리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 아닌가고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실수는 우리가 본 바와 같이 데살로니가전서 4장의 말씀으로 영적인 교정을 받는다 소망의 천상적인 면은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상속과 관련된 것인데, 잠자는 자들과 관련한 오해를 잘 풀어 줄 진정한 교정물(corrective)로써, 그것은 소망의 핵심에 선행한다. 주께서 자기 백성들을(부분적으로가 아니라) 전부를 자신에게 모으실 터인데, 혹 유리한 점이 있다면, 아주 근소한 차이이긴 하지만 성도들이 그렇게 애통해 하던, 먼저 세상을 떠난 바로 그 형제들 편에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러나,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갓 회심한 어린 신자가 또 다른 심각한 오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 오류는 죽은 자에 대한 것이 아니요 산 자에 대한 것이며, “주의 강림에 대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날(주의 날)”에 대한 오류인 것이다. 한 경우는, 죽은 성도가 주께서 강림하시는 그 환희의 승리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 아니냐고 두려워하는 것이고, 다른 또 한 경우는, 살아 있는 성도가 바로 그 순간에 무시무시한 환난의 날에 참여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영감을 받는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보낸 두번째 서신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인데, 누가 이보다 더 친절하고 섬세하게, 게다가 지혜롭고 충직하게 다를 수 있겠는가.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극심한 박해와 고난을 겪고 있었다. 적들은 거짓 교사들을 통해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실제로 도래했으며, 그들이 겪고 있는 고난은 그날의 부차적인 일들이라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성도들을 당황하게 했던 것이 분명하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도의 가르침은 전부 거짓이 되고 만다.

만일 사도의 가르침 중에서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분명하고 명백하게 두드러진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신자들이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요 동일시, 즉 더할 나위 없이 친밀한 교제요 또한 상호 분리할 수 없는 동일시이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지 않으신 채 영광 중에 나타나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생명이신 주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영광 중에 주와 함께 나타나리니····주께서 그 날을 소개하기 위해서 나타나셔야 한다.

더욱이 주의 날이 실제로 이르게 될 때에 그것은 성도들에게 고난의 날이 아니라 그 반대로 성도들을 핍박하던 자들에게 고통이 이르는 날이 될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 사도는 그 서신의 서두에서 단순하고도 힘찬 어조로 성도들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살후 1:38).

이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신분이 이 문제에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 그의 실제적인 의도 또한 이 문제에 포함되어 있다. 실로 주의 날이 성도들에게 환난을 가져오는 날이라면 그리스도와 성도가 한 몸이라고 가르쳐 온 사도 바울의 그 위대하고 탁월한 교리 속에 진리가 없는 것이며, 더욱 이 이것은 하나님의 의를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간단히 말하면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환난 중에 있었다면 주의 날이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날이 이르면 성도들은 안식에 들어가게 되고 공적인 보상이 아버지 집에서가 아닌, 그 영원한 왕국에서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아니다. 상황이 완전히 바뀔 것이다. 교회는 안식에 들어 가게 될 것이고, 교회를 핍박하던 자들은 환난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이 득세하는 동안에 교회는 고난을 받지만, 주의 날에는 모든 것이 역전될 것이다.

독자들이 이점을 유의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성도들은 사악함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한 고난을 받도록 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셨으니 성도들도 고난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성도들의 마음속에 굳게 간직해 두기 바라는 것은 주께서 그 영원한 왕국을 세우시고자 오실 때에 주의 백성들이 고난 가운데 있게 되는 일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무너뜨리려던 적들의 모든 가르침은 철저히 거짓으로 판명이 되었다. 사도는 하나님의 보배로운 진리를 단순히 진술함으로써 거짓 가르침의 기초를 일소해 버린다.  이것이 성도들이 잘못된 생각을 가지지 않고, 공연한 두려움을 품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방법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진리를 선포하라. 그러면 그런 오류는 발을 못 붙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의 비췸 가운데서, 거짓 교리의 모든 안개와 구름이 걷히게 하라.

하지만 잠시 이 탁월한 글에서 사도의 가르침을 좀더 살펴보도록 하자. 이렇게 하면 사도가 주의 강림주의 날간의 차이를 어떻게 명료하게 제시 하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살후 2:1,2).

이제 여러 가지 문제들은 접어두고라도 사도가 당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주의 날이 이르렀다는 가르침으로 인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는 사실을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성경은 스스로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신 말씀의 한 문장도 서로 상충하는 법이 없다. 그러나 만 일 흠정역(AV)에서 읽은 말씀이 정확 하다면, 그것은 로마서 13 12절에 정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되는데, 이 말씀에서 우리는 ()이 가까왔으니라는 간명하고 자세한 말씀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인가?

주의 날은 확실히 성도 개개인의 봉사와 관련하여 자주 쓰여진 용어이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가기 십상이지만, 이것은 대단히 흥미롭고 실제적인 가치를 지닌 요점이다. 만일 독자가 그 날”(the day)이 언급된 여러 구절을 살 필 때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그 구절들 대개가 성도의 사역, 봉사 혹은 책임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고전 1:8).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고전 3:13).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와 날까지 이르고”( 1:10).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8).

위의 말씀에 덧붙여 인용할 수 있는 그 밖의 더 많은 말씀들을 살펴보면, “주의 날은 일꾼들에게 셈을 하는 성대한 날인 것을 알 수 있다. 왜냐면 이날에 수고에 대한 주님의 평가가 있게 되고, 개개인의 책임을 묻고 결말을 짓게 되며, 그에 따라 열 고을”, “다섯 고을다스릴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말씀을 어떻게 숙고해 보든지 주의 강림혹은 임재하심과 주의 나타나심또는 그 날간의 명료한 차이의 진실을 더더욱 확신하게 된다. 전자는 신자의 밝고 복된 소망으로서 내내 앙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어느 때라도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후자는 주님의 부재 동안 주를 증거하고 수고하기 위해 세상에 머물러 있는 자들의 모든 실제 생애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그들의 양심에 아주 엄숙한 부담을 주는 대상인 것이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어보아도 성경은 결코 이 양자를 혼동하게 하지 않는다. 성경의 그 어느 곳을 보아도 성도가 항상 주님의 강림에 유의하지 않으며, “낮이 가까왔다는 사실을 명심하지 않았다고 가르치는 구절은 단 한 줄도 없다.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은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한 악한 종뿐이었다( 24:48). 그 말씀에서, 그 같은 생각을 품은 자에게 어떤 비참한 결과가 이르게 되었는지 볼 수 있다.

잠시 데살로니가후서 2장으로 돌아가자. 이 장은 예언 연구자가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는 말씀이며, 예언 해석자들 간에 많은 토론을 유발시키는 부분이다.  거짓 교사들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혼동을 주어서 주의 날에 대한 공포에 휩싸이게 했던 것이 아주 분명하다. 사도의 진술대로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는 일이다. 그 날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모두 공중에서 주님 앞에 모이게 될 것이다. 사도는 주의 강림과, 성도들이 주님께로 함께 모이게 될 일을 근거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간절한 마음으로 가르침으로써 그날에 대한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했다. 사도는 그들에게 주님의 강림시에 있을 천상적인 면을 공개하여 주었다. 그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낮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며, 낮의 영역 안에서 성도들의 본향과 기업(企業)과 소망이 그들의 모든 것임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은혜를 통해 실제로 낮의 아들들이 된 자들에게 주의 날이 공포와 곤란을 가져다 준다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더욱이, 주의 강림에 대한 지상적인 면을 본다 해도 거짓교사들은 완전히 잘못 되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 2:310).

이 말씀에서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불법의 사람, 멸망의 자식이 나타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불법의 비밀은 한 사람의 우두머리에게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이 불법의 사람은 자기를 높여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대적할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조차도 자신에게 돌리고자 할 것이다. 이 세상에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이 심판으로 임하기 전에 위의 일들이 먼저 지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로서 이 무서운 인물이 등장하는 데는 이를 막는 장애물이 있다. 이것이 무엇인지 성경이 정확히 말씀해 주고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그것을 다양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통해 분명히 아는 것은 불법의 비밀이 이 죄의 사람·(the man of sin) 속에 절정을 이루기 전에 교회는 이 현장으로부터 완전히 옮겨져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영적 비췸을 받는 안목으로 요한계시록 4,5장을 읽어보면, 첫번째 인이 떼어지기 전, 첫째 나팔이 불려지기 전, 그리고 첫째 대접이 쏟아지기 전에 교회가 하늘 영광 한복판에 위치하게 될 것을 확실히 발견할 수 있다. 이 점을 깨닫지 못하고는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읽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흥미로운 문제의 핵심에 대하여 다음에 좀더 자유롭게 다를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단지 독자들이 스스로 본 주제를 연구하기를 부탁하는 바이다.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을 숙고하고 나서 그 진귀한 내용을 풀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도록 하라. 이렇게 하면, 면류관을 쓴 이십사 장로가 천상의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이 성도들은 그 예언의 말씀이 한 마디 성취되기 전에 영광 중에 어린양 주위에 모여 있게 될 것임을 알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이제 글을 마치며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 속에 있지 않고는 바르게 대답할 수 없는 매우 단순한 질문 하나를 던지고자 한다. 질문은 이렇다.  그대가 기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대의 소망이 무엇인가? 어떤 사건들이 이 지상에서 발생하기를 고대하고 있는가? 이를테면 로마제국의 재건, 열 왕국의 형성,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고토 회복, 예루살렘 재건, 적그리스도의 출현, 대환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여호와의 날이 기어코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무시무시한 심판 등을 기대하고 있는가?

말해보라, 형제여. 이 모든 것들이 그대의 영혼을 가득히 채우는가? 그대가 구하고 기다리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인가? 그렇다면, 틀림없이 그대는 교회의 합당한 소망을 따라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언급한 것들은 그 정해진 때가 되면 분명히 이루질 일들이다.  그러나 그 어느 하나라도 그대와 그대 가 품어야 할 합당한 소망 사이에 끼여 들 수 없다. 그 사건들은 예언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미래 역사에 기록된 대상들이다. 그러나 그 일들은 그리스도인의 밝고 복된 소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 위해 의도되지 않았다. 이 소망은 예언의 배경으로부터 나와서 영광된 위안 속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다시 말하지만 정녕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광명한 새벽별의 나타남, 교회의 신랑이신 복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인 것이다.

이것을 제외하고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교회의 진실되고 합당한 소망은 없다.

내가 또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2:28)

보라 신랑이로다”( 25:6).

이 세상 환경에서 새벽별이 언제 나타나는 가고 질문할 수도 있겠다. 날이 새기 직전이다. 누가 그것을 보는가? 지루한 시간을 깨어 지내며 어둔 밤을 지새운 사람이다. 얼마나 간명하고 실제적이며 효과적인 적용인가! 교회는 깨어 있도록 되어있고, 경성하도록 되어 있으며, 주의하도록 되어 있고, 열망을 품은 마음으로 주님의 강림이 왜 이리 늦으시는가?” 하고 묻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슬픈 일이다! 교회가 이점에 있어서 실패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교회의 상태가 이렇다고 해서 성도 각자가 복된 소망 속에 현재 능력있게 살지 못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22:17).

이 말씀은 개인 개인에게 해당한다. 이 말씀을 기록하는 자와 읽는 자가 하늘의 이 복된 소망의 능력, 곧 깨끗하게 하고 성화하며 향상시키는 능력을 늘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또한 사도 요한이 기록한 바 다음과 같은 말씀의 실제 적인 능력을 우리가 이해하고 나타낼 수 있게 되기를!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케 하느니라”(요일 3:3). (다음 호에 계속)

 

(1997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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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