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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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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12:19 횃불/1997년

노아 - 그의 생애와 그 시대

 

14: 마태복음서의 노아

구약성경의 인물이 그의 실제적인 역사의 기록을 가지고 다튼 성경에도 언급되었다면, 그는 중요한 인물임에 틀림없고, 하나님은 거기에 위대한 교훈들을 두신다. 그 개인이 신약에 많이 언급되었다면 그는 상당히 중요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바로 노아가 그러한 경우이다. 노아에 대해 처음 언급하신 분이 바로 복음서에서 우리 주님 자신이었음을 생각해 보자. 그분은 마태복음 243739절에서 그러하셨는데, 유사 구절이 누가복음 17 26,27절이다.

우리 주님은 노아의 시대와 주님의 재림시를 비교하셨는데, 이는 종종 복음 전도자들과 성경교사들에 의해 강조되는 말씀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일반적으로 과거 세대의 폭력과 부패를 오늘날 세대와 그것들과 비교함으로 주의 다시 오심이 매우 가까웠음을 증거한다. 그렇지만 마태복음 24장과 누가복음 17장에서는 사람들의 폭력성과 죄악된 상태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당시에 만연되었던 무절제함과 의도적인 무시에 대해 말했다. 하나님의 심판이 도래했다는 여러 징조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저 ·평범하게 살아갔다.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이 준비되어 있음을 전혀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말씀 가운데서 주님은 우리에게 노아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으셨다. 그가 어떠한 성격의 소유자인지, 방주를 짓는 그의 일에 대해서나 그의 의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으셨다. 사실, 우리가 만일 노아에 대한 개인적인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복음서의 참고 구절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주께서 강조하셔서 말씀하신 것은 바로 노아시대의 사람들이 그 끔찍한 날들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인식없이 아무렇게나 살았다는 점이다. 주님은 또한 롯의 때에 소돔, 고모라의 사람들의 모습과( 17:28) 주님의 재림 직전에 살게 될 사람들의 모습을 빗대어 말씀하셨다. 사람들의 태도는 마찬가지로 부주의하고 그 시대를 분별할 수 없었으며, 그들에게 곧 닥칠 임박한 진노에 대해 무지하였다.

오늘날 이 시대는 노아의 때와 유사하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요청에 대해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의를 행하지도 않고, 종말을 향해 재빨리 돌진하는 중대한 사건들도 없다. 계시록이 땅에 거주하는 자들인 대중들에게 계속 언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는 여전히 이 땅에 속한 것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교회의 휴거조차도 전체적인 세상의 풍조를 바꿀 수 없을 것이다.

노아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우리 주님의 말씀에 대해 좀더 자세히 생각해 보자. 첫째로 그 구절의 문맥을 통해 주님의 경고가 주어져 있음을 상고한다면 유익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주님이 실제로 말씀하신 그 사람들의 시대와 성격을 고찰해 보면 좋을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에서 노아에 대한 언급은 감람산에서 하신 담화의 중심에 속하고, 성경의 예언의 요약 중 가장 위대한 것 중 하나이다. 마태복음 13장의 비유처럼 거기에는 새로운 것과 옛것이 포함되어 있다. 감람산 담화의 한가지 유익한 특징은 주께서 그 사건들을 연대적인 순서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계시록은 그렇지 않다. 계시록은 주제별로 전개되기에 이 점이 많은 이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나중의 장들에 나오는 어떤 사건들은 이전 장들의 사건들보다 앞에 위치해 있다. 이에 대한 좋은 예가 계시록 13장과 17장에 있는데, 17장에 있는 열뿔에는 면류관이 없고 13장에는 있다. 따라서 실제로는 연대순으로 17장이 13장보다 앞선 사건이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4,25장은 마지막 날에 일어날 사건들을 순서적으로 기술한 위대한 연대기적 목차이다 이것은 성경의 예언서 부분들의 어려운 구절들을 명료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제 그 대목에서 주님은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4:30)라는 말로서 그의 예언적인 말씀을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나서 그분은 어떤 교훈들을 적용하도록 하기 위해 멈추신다. 주님은 언제나 그분의 사역을 적용토록 하시는데 이는 누구나 배워야 할 점이다. 이러한 면에서 모든 말씀의 사역자나 성경교사들이 유능하지는 않다. 그 담화시에 그자리에 있었던 최초의 네 제자들과( 13:3) 모든 이에게 주님은 그 위대한 교훈을 인상 깊게 새겨주고자 하셨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그 가르침은 깨어있는 태도를 갖게 하려는 계산에서 주어진 것이었다. 이것을 확보하기 위해 주님은 세가지 고안을 사용하셨다.

첫째로 다섯가지 비유를 사용하셨고, 둘째는 그 사건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확신을 주셨고, 마지막으로 노아 시대의 사람들처럼 부주의한 사람들이 맞이하게 될 멸망을 비교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그 순서를 주목해 보자.

1. 비유-무화과 나무( 24:32)

2. 확신-”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34).

3. 확신-”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35)

4. 비교-”노아의 때”(3641)

5. 비유-”선한 집 주인”(43)

6. 비유-”지혜 있는 종과 지혜 없는 종”(45)

7. 비유-”지혜로운 처녀와 어리석은 처녀”(25:114)

8. 비유-”달란트와 종들”(25:1530)

 

이러한 실제적인 적용을 하신 후에, 주님은 25 31절부터 예언을 계속하신다. 이제 24 30,31절에서 이미 가르쳤던 것처럼, 그분의 재림시에 지상에 임할 심판에 대해 말씀하신다. 이 점을 생각해 볼 때, 마태복음 24 31절에서부터 25 31절 사이에 있는 말씀은 일종의 삽입구절과 같고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라는 말씀에 대한 실제적인 적응이다. 앞 구절에서는 이스라엘이 뽑혔고 그리고 25장에서 민족들은 양과 염소로 구별됨을 본다.

이 부분의 전반적인 곳에서 계속 경고가 펼쳐져 있음을 주목하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24:42).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43).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4850)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25:13).

마태복음 24 44절의 경고를 특히 유의하자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이처럼 노아는 한 예로서 인용되었는데, 부주의하고 깨어있지 않은 세대에 대한 하나의 경고라기 보다는 시대를 분별하는 데에 실패한 세대로 인용된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다. 바로 노아의 홍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그러한 모든 사람들의 모형인 것이다. 그들은 위험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못했고 그 결과 회개할 전적인 기회를 상실해 버렸던 것이다.

이제 여기서 감람산 담화시의 마가복음의 결론적인 진술을 인용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13:M). 마가는 노아의 때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담화의 핵심 사상을 기록했던 것이다. 마태는 세대적인 복음서로 깨어 있으라는 경고를 한 후, 민족에 대한 심판을 차례대로 전개했으며 그리고 나서 왕국의 설립에 대해 기록했다( 25). 양과 염소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의 비유가 아닌 실제적인 사건으로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그때 살아있을 민족들의 심판에 관한 것이다. 주님은 구원받은 자와 구원 받지 못한 자의 성격을 구별하기 위한 풍자적인 언어를 사용하셨다.

예언서에 대해 강론함으로 단순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자로 하여금 깨어 근신하는 결과를 낳도록 애쓰는 것은 좋은 일이다.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5:8). <다음 호에 계속>

 

(1997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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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