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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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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8. 10:59 횃불/1999년

말씀의 올바른 해석(25)

성경개관 신약

 죤 필립스

4개의 개략적인 전기, 하나의 짧은 역사 요약, 21개의 편지(그 중 일부는 메모보다 약간 더 긴 정도이다), 그리고 하나의 짤막한 예언적 요약 속에 신약의 소중한 교훈이 담겨 있음은 참으로 놀라울 정도이다. 신약의 대부분은 편지 형태를 취하고 있고 그 중 가장 중요한 편지인 로마서는 한 용감한 여자가 수 마일의 위험한 여정을 지나 가져갔다.

후대에까지 커다란 무게가 나가는 서류가 편지 형태라는 것은 적합하지 않은 듯 보이나 사실 그 이유가 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신학교에서 연구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경험해야 하고 매일 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약의 책들을 개관해 볼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은 주요한 강조점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보면 그리스도인의 믿음, 형제들, 행위로 나눌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

신약의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불멸의 진리는 무엇인가? 믿음의 필수요소는 무엇인가? 14개의 글들 중 어떤 것은 본질을, 어떤 것은 토대를, 어떤 것은 잘못된 것을, 약간은 미래를 다룬다.

 

토대 ―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로마서

신약의 기본 진리는 이 5권의 책에 담겨있다. 신약의 다른 부분을 빼내버리면, 기독교는 빈약하게 된다. 그러나 이 5개의 어떤 것을 빼버리면, 기독교가 불가능하게 된다.

4복음서에는 사실이, 로마서에는 믿음이 나와 있다.

4복음서에는 삶이 예시되어 있고, 로마서에는 논리가 설명되어 있다.

4복음서에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나와 있고, 로마서에는 기독교의 원리가 나와 있다.

4복음서에는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가 나와 있고, 로마서에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가 나와 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제시한다. 세리와 무명의 인물, 의사, 어부였던 이들을 불러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책을 쓰게 하신 분은 누구인가? 4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전기가 아니라 생애의 메모에 더 가깝다.

마태는 주로 유대인을 위해, 마가는 로마인을 위해, 누가는 그리스인을 위해, 요한은 교회를 위해 썼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치자, ,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한다. 처음 세 복음서는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비슷한 관점에서 제시하기 때문에 공관복음(共觀福音)이라 불리운다. 요한복음은 다른 관점에서 그리스도를 제시하므로 보완적 복음이라 불리운다. 공관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의 겉으로 나타난 갈릴리인으로서의 공공사역과 주 예수의 인간성이 나타나 있고, 요한복음에는 그리스도의 하늘에 속한, 내적인 유대인으로서의 개인적 사역과 주 예수의 신성이 나타나 있다.

4복음서는 유일하신 분에 관해 말한다.

(1) 그분의 동정녀 탄생, (2) 죄없는 삶, (3) 셀 수 없는 기적, (4) 중요한 가르침, (5) 대속의 죽음, (6) 승리의 부활, (7) 영광스러운 승천

 

로마서는 기독교의 원리를 제시한다. 이는 바울의 복음이다. 바울은 복음서의 사실을 취해서 복음을 믿음으로 변형시킨다. 4복음서는 그리스도께서 오래 전에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어떻게 주셨는지 이야기하고, 로마서는 지금 그분이 우리에게 어떻게 자기 생명을 주시는지 말한다. 로마서는 죄, 구원, 거룩, 주권, 섬김의 교리를 다루고, 핵심단어는 66번이나 나오는 의()이다. 로마서는 어떻게 의가 요구되고, 받아들여지고, 재생산 되는 지를 말한다.

 

이 책들이 토대를 이룬다. 사단은 틀림없이 이 책에 도전해 올 것이다. 1세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있을 때 벌써 사단은 교회에 그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이단을 집어 넣었다.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이 집중 공격이 사도들의 생애 동안 일어나서 잘못된 면이 사도의 권위로 다루어져 신약의 다음 6권에 기록되었다.

 

잘못들 ― 갈라디아서, 골로새서, 히브리서, 고린도후서, 디모데후서, 베드로후서, 유다서

진리에 대한 공격은 두 개의 주요한 원리로 고찰해 볼 수 있다. 진리에 대한 공격과 진리에서 배교함. 공격은 나쁘지만 배교는 더 나쁘다. 이 서신 중 넷은 진리에 대한 공격이다.

갈라디아서, 골로새서, 히브리서는 기독교의 기본적 가르침에 대한 공격을 다루고 있다. 이들 책은 첫 장을 펼치자마자 논쟁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중대한 진리가 공격받고, 효과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다루어 주지 않으면 기독교를 파멸시킬 수 있는 잘못들이 표면으로 떠올랐다. 이 세 개의 잘못은 율법주의, 영지주의, 유대주의이다. 갈라디아서는 율법주의를, 골로새서는 영지주의, 히브리서는 유대주의를 다룬다.

율법주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공격하고, 갈라디아서가 이에 대답한다. 초대 교회의 많은 사람들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유대인이 되어야 하고 이방인은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되었는데, 즉 할례를 받아야 하고 안식일을 준수하고 레위기의 음식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같은 요구는 예루살렘을 교회의 어머니로 만들고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종파로 만들게 된다. 대다수의 이방인에게 의식과 규칙을 강요함으로써 믿음을 질식시켜 버릴 것이다. 더군다나 율법주의는 성령의 생각과는 완전히 반대된다. 갈라디아서는 이같은 잘못을 단호한 용어로 다룬다.

 

영지주의는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공격하며 골로새서가 그에 대해 답변해 준다. 영지주의는 초기교회의 가장 위험하고 미묘한 신비주의를 유대주의적 요소, 주지주의(主知主義), 의식주의 등과 결합시킨 것이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특히 치명적인 공격을 하게 된다. 물질을 악하다고 믿는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고, 그리스도가 일종의 천사같은 존재로서 신성을 훼손시키지 않고 물질로 된 몸을 입을 수 있도록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왔다고 믿는다.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 이단에 관한 진리, 그리스도인에 관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 골로새서는 그리스도를 우주의 창조자로, 보존자로, 소유주로서 절대적 신성을 가진 분이라고 위엄있게 선언함으로써 시작하고 있다.

 

유대주의는 교회의 합법성을 공격하며, 히브리서가 이에 대답한다. 최초의 그리스도인은 모두 유대인이었다. 그들에게는 유대주의가 폐기되었고, 교회는 유대주의를 단순히 확장시킨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류를 다루시는 완전히 새로운 출발임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교회는 성전과 회당의 제한된 울타리 안에서 결코 그 기능을 다할 수 없었다. 히브리서는 갈보리의 빛으로 구약을 조사해 보고 유대주의와 기독교를 타협시키려는 시도가 불가능함을 보여 준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우월함, 갈보리의 우월한 규정, 기독교의 우월한 원리들을 제시한다.

 

3개의 편지가 기독교의 기본적 가르침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진리에 대한 공격을 다룬다.

 

네번째 편지인 고린도후서는 기독교의 중요한 교사인 사도 바울에 대한 공격을 다루고 있다. 바울은 기독교의 위대한 진리들을 영구히 기록된 형태로 제시했다. 유대인이며 그리스도인인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매우 싫어했다. 그는 매우 철저하게 이방인의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미워하고 핍박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원칙에 대한 공격을 다루고 있고, 고린도후서는 바울의 인격에 대한 공격을 다룬다. 가장 자서전적 요소가 많은 이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명, 회심, 비판에 관해 말한다. 바울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변덕스러우며, 교만하며, 자랑하며, 부정직하며 심지어는 미쳤다고 공격했다. 사람에 대한 이런 공격은 그의 메시지에 대한 공격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열심히, 강력하게, 노련하게 방어한다.

이렇게 해서 이들 4개의 서신서는 진리에 대한 공격을 다루고 있고, 나머지 3개는 진리에서의 배교를 다룬다. 공격은 좋은 약품을 처방함으로써 다룰 수 있으나 배교는 큰 수술을 해야 한다.

 

배교를 다루는 3개의 서신서 중, 바울의 마지막 서신인 디모데후서는 배교의 전개 과정을 다룬다. 이 서신은 바울이 처형을 앞두고 로마에서 보낸 목회서신서이다. 이 서신의 목적은 디모데에게 그를 끌어당기는 많은 힘들에게 굴복하지 않도록 경고하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 기독교계를 덮칠 마지막 배교를 이 서신의 핵심 구절이 다루고 있다. 바울은 이 다가올 배교가 부모에 대한 불순종, 자연스런 감정의 결핍, ‘고통하는 때의 모습, 악한 사람들의 무절제한 죄악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2개의 서신인 베드로후서와 유다서는 배교의 위험을 다룬다. 이 두 서신은 이 주제를 비슷한 방식으로 다룬다. 하나님께서 배교를 미워하신다는 것을 증명하고 배교의 결과가 더러운 죄악임을 지적하고 배교로 사회 전체가 타락함을 보여주기 위해 두 서신 모두 과거 역사로 돌아간다. 하나님께서 항상 배교한 사람을 끔찍스러운 재앙으로 심판하셨음을 두 서신서가 보여 준다.

 

미래 ―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요한계시록

마지막 때의 연구라 할 수 있는 종말론은 기독교 교리의 중요한 부분이다. 신약의 3권이 종말론을 다룬다.

데살로니가전서는 기본적으로 교회의 휴거를 다룬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두번째 오심이 각 장()마다 나와 있으나 중심 주제는 공중에서 주()를 만나러 교회를 불러내는 것이다. 이 사건은 진노의 날이 오기 전에 일어날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주님의 돌아오심을 다룬다. 네 개의 환상이 주요 내용이다: 하나님의 환상, 은혜, 통치, 영광.  이 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다양한 순서에 따라 행동이 취해진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세상은 사람에 의해 멸망당하고 사탄에 의해 통치되고, 하나님에 의해 구해진다. 이 책의 나머지 대부분은 이 순서를 따라 나타나는 행위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스도인 형제들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는 교회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5권이 이 주제를 다루고 있음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한 권은 교회의 기원, 두 권은 교회의 기능, 두 권은 그 담당자를 다룬다.

 

교회의 기원 ― 사도행전

이 책의 내용은 대체로 역사적이며 일시적이고, 복음서와 서신서를 잇는 다리이다. 서신서의 많은 부분이 이 책이 없으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교리라기 보다는 역사이므로, 교리보다는 정보를 구해야 한다. 교리는 서신서에서 찾아야 한다. 사도행전은 3명을 중심으로 한다. (1) 베드로, (2) 스데반, (3) 바울. 교회의 토대는 베드로와 관련되어 있고, 교회의 발전은 스데반, 교회의 이방전도는 바울과 관련되어 있다. 이 책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로마로 끝나며, 유대인으로 시작하여 이방인으로 끝나며, 좁은 다락방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에 이르는 것으로 끝난다. 이 책은 바울의 3번의 전도여행을 기록하고 있고, 시간적으로는 약 30, 즉 한 세대에 해당되며, 그 기간 동안 수 만명이 회심한다. 물론 이 책이 진정 강조하는 것은 성령님이다. 성령님은 28장에서 58번이나 언급되고 있다.

 

교회의 기능 ― 고린도전서, 에베소서

고린도전서는 지역적 관점에서, 에베소서는 우주적 관점에서 교회를 다룬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어떤 특정 사회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교회, 즉 교회 공동체가 나온다. 고린도에 있는 지역교회는 은사가 있는 믿는 자들의 모임(Assembly)이었다. 그러나 매우 세상적이었고 바울과 관계된 교회 중 가장 육신적이었다. 교회 안에 분열이 있었으며, 도덕과 관련된, 그리고 돈과 관련된 심각한 무질서가 있었다. 또 어려움도 있었다. 즉 믿는 자의 개인적인 행위와 관련된 문제 ― 특히 결혼, 우상의 제물 ― 가 있었고 또한 예배와 관련된 문제 ― 주의 만찬상에서 은혜를 남용하고, 방언의 은사를 잘못 사용하는 것 ― 도 있었다. 또한 불신도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에 대한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했다. 이 모든 잘못된 것을 다룬 후에 바울은 지역교회 내에서 어떻게 올바르게 행할 것인가를 이 서신의 나머지 부분에서 가르쳤다.

고린도전서와는 대조적으로 에베소서는 우주적 관점에서 교회를 다룬다. 지역 교회는 우주적 교회의 축소판이어야 한다. 아무도 우주적 교회를 본 사람이 없으며, 휴거시 교회 전부가 들려 올리울 때까지 아무도 우주적 교회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 서신서에 언급된 우주적 은사 ―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자, 교사 ― 는 전체로서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어졌다. 구체적으로 든 예화도 역시 우주적이다. 건물, , 신부.

 

교회의 직분 ― 디모데전서, 디도서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는 지역 교회에서의 인도에 관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두 종류의 인도자가 묘사되고 그들의 자격은 매우 높게 설정되어 있다. 그 자격은 영적인 자격이다. 장로는 지역 교회의 영적인 문제를 책임지고 집사는 세속적인 문제에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

 

우리가 신약에서 배울 수 있는 것 한가지는 기독교는 실제적이라는 점이다. ‘행동이 있는 믿음이 아니라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다. 신약의 남은 7개의 서신은 이 진리를 다룬다. 모든 서신서가 여기에 대한 실제적인 교훈을 다루지만, 특히 다음의 서신서들은 행함을 강조하고 있다.

 

상황을 다룸 ― 빌립보서

이 서신에는 4개의 기본적 상황이 나온다. 고난, 희생, 봉사, . 네 개의 예가 주어져 있다. 바울, 그리스도, 디모데, 에바브로디도.

비록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지만, 이 서신서는 기쁨으로 넘치고 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 심하게 매를 맞았지만 그와 동역자 실라는 감옥에서 찬송을 불렀다. 그리고 바울이 갇힌 것을 말하면서 그 대목에서 기쁨을 말할 때 빌립보 모임에서 최소한 한 명은 큰 소리로 아멘했을 것이다. 그는 빌립보 감옥의 구원받은 간수일 것이다.

희생의 본으로 바울이 제시하는 분은 주 예수님이다. 성경의 어디서나 찾아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후의 영광에 관한 가장 위대한 선언인 갈보리로 바울은 우리를 데려간다.

디모데는 바울의 가장 충성스러운 조력자였다. 에바브로디도는 모든 병이 치유되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치유가 이 시대에 보상의 필수적인 부분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바울이 그에 관해,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도움이 되기를 열망했다고 말할 때, 그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노예 제도를 다룸 ― 빌레몬서

바울 시대에 가장 커다란 사회 문제는 노예제도였다. 빌레몬은 노예를 소유했고 그의 노예였던 오네시모가 도망가 로마에서 바울을 만났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다시 빌레몬에게 되돌려 보내져 자기가 한 행동의 결과를 감당해야 했다. 여기에서 노예 문제에 대한 바울의 대응은 사회적이 아니라 영적이다. 그는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그리스도인의 형제로 생각하고 그를 바울 자신처럼 대접해 달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이같은 태도가 사회적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성실성을 다룸 ― 야고보서

모든 서선서 중 야고보서가 산상수훈을 가장 많이 닮았다. 야고보는 주님의 동생이었고 후에 구원받았다. 그는 엄격하고 거의 바리새적인 견해를 가진 금욕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서신이 아마도 신약서의 맨 앞에 있었던 것 같고, 그의 청중은 주로 유대인이었다. 그는 모든 신앙고백이 명백한 실천으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그렇다고 야고보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만, 행함으로 사람 앞에서 의롭게 된다는 점을 야고보는 지적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믿는 자에게 회심의 증거를 요구한 것이다.

 

고난을 다룸 ― 베드로전서

주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셨다. 성경은 믿는 자에게 고난을 면제시켜주지 않는다. 오히려 경건하게 사는 사람은 고난을 예상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죄나 어리석은 행동으로 고난을 자초해서는 안된다. 이 점이 베드로가 다룬 주제였다. 이 서신은 아마도 네로 황제의 핍박 시기에 쓰였을 것이다.

 

아들됨을 다룸 ― 요한일서

요한의 모든 서신들은 그리스도인의 제 1세기가 다 된 시점에서 기록되었다. 서신을 쓸 당시 늙은 노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보냈던 그 놀라운 시기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났던 모든 사건의 의미를 요한은 곰곰이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그가 살던 당시에 이미 이단들이 깊숙이 침투해 들어왔다. 즉 영지주의가 무시해 버릴 수 없는 문제거리였다. 요한일서의 주요 핵심은 거듭남과 그리스도인의 교제이다. 바울이 특징적으로 사용한 단어가 믿음, 소망, 사랑이라면 요한은 빛, 사랑, 생명을 특징적으로 썼다. 요한이 보기에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단지 신학적 입장이 아니라 진지한 문제였다. 즉 그리스도냐 적그리스도냐, 구원이냐 저주냐 하는 문제였다.

 

분리를 다룸 ― 요한이서

요한이서는 이름이 나오지 않은 어떤 그리스도인 자매(어떤 사람은 교회라고 생각한다)에게 그녀의 아이들이 모범적인 행동을 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보내졌다. 요한은 이 훌륭한 자매에게, 불화를 일으키고 악한 교리를 가진 사람을 집에 영접하지 말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자선이 이단까지 돕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분쟁을 다룸 ― 요한삼서

요한삼서에는 3명이 나온다. 가이오의 번성, 데메드리오의 칭찬, 디오드레베의 교만이 나와있다. 디오드레베는 자신의 지역모임에서 중요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여 사랑받은 사도 요한에 대해서도 악한 말을 했다. 사도 요한은 다음에 만나면 그를 다룰 것을 약속한다. 이 서신은 분쟁과 거기에서 자라나오는 교만한 마음을 경고하기 위해 쓰였다. <다음 호에 계속>

 

(1999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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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