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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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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3. 21:32 횃불/1999년

노아-그의 생애와 그 시대 (17)

사무엘 W. 제밍스

 17장 욥기에 있는 한 대목

욥기의 한 재미있는 대목, 이를테면 욥기 21 7-18절은 홍수 이전 세대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욥기는 매우 이른 시대의 책으로서 그것은 노아 당대의 설교에 관해 그리고 주의 백성들에게 무관심한 것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임박한 진노에 처한 당시 사람들이 주의 얼굴로부터 완전히 돌이킨 그 세대에 관한 놀라운 보고서임이 입증된다. 그리고 또한 홍수 이전에 관해 정확히 기술했다. 비록 그것이 직접적인 언급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상황에 아주 적합한 그림이며, 그것은 분명히 크게 유익하게 적용될 수 있다.

다음에 그 대목이 있다.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씨가 그들의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그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그 수소는 영락없이 새끼를 배게 하고 그 암소는 새끼를 낳고 낙태하지 않는구나. 그들은 아이들을 내어 보냄이 양떼 같고 그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그들이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 그 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가느니라. 그러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주의 도리 알기를 즐겨 하지 아니하나이다. 전능자가 누구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이익을 얻으랴 하는구나. 그들의 복록이 그들의 손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라. 악인의 계획은 나와 판이하니라. 악인의 등불이 꺼짐이나 재앙이 그들에게 임함이나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케 하심이나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같이, 폭풍에 불려 가는 겨같이 되는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느냐.”

 

위의 구절은 5중적인 측면에서 당시 사람들의 독립성과 무관심한 상태를 나타내 준다.

그들은 상당히 오래 살았는데(7), 이는 창세기 5장이 보여주듯이 분명히 홍수 이전을 나타낸다.

그들은 강한 힘을 가졌다고 했는데, 이는 아마도 창세기 6장의 거인들을 의미할 것이다.

그들의 집은 하나님의 막대기나 징계의 두려움으로부터 안전했었는데, 이는 노아의 날에 하나님이 실로 오래 참으셨음을 나타낸다.

8-11절에 가족의 삶이 나타나는데, 가족들이 번창하고 풍성하며 그들의 후손은 그들 보기에 아주 견실했다. 가문의 유산이 아들과 손자에게 계속 이어졌다. 그들은 가축을 잘 돌보았으며, 어린 자녀들도 기쁨으로 양떼를 돌보는 법을 배웠다. 그 모든 것은 매우 행복하게 보였지만 그들은 하나님 없이 살았다.

그 자녀들은 부모들을 기쁘게 하며 춤추며 뛰놀았다. 다른 이들은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며 반주하였다. 이 모든 것은 두발가인이 발명한 것이었다(4).

그들의 수소와 암송아지는 영락없이 새끼를 낳았고, 모두가 완벽한 건강가운데 번창하였다. 13절에 보면, 그들은 그들의 날을 아주 부유하게 지냈는데, 이는 그들의 부와 그 누림이 굉장했음을 나타낸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 4장의 경우인데, 그 소유물로 유명해진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영원하지 않은 일시적인 것(고후 4:18)에 사로잡혔다.

종종 그같이 부유한 사람들은 그들의 사치한 삶으로 인한 양심의 가책을 무마시키기 위해 약간의 종교를 양념으로 곁들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같은 종교적인 삶에 다소 존중을 표한다. 그러나 여기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우리를 떠나소서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더러운 귀신에 들린 사람이 주님께 부르짖은 말이다. 그들은 주님을 떠나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해주시기를 주께 간구했다( 5). 그들은 각각 자기 길로 향하는 방황하는 양같지만 주께로 가는 길에 대한 지식을 원치 않았다.

그들의 오만은 다음과 같은 진술에 나타나 있다.

전능자가 무엇이길래 우리가 그를 섬기리요?”

그들은 그분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단지 어떤 영향력에 불과한 그가 무엇이길래라고 말한다. 그들은 심지어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않았다. 분명히 그들에게는 잊혀진 존재요 창조자에 대한 끔찍한 독립성이 그 당시의 모습이었다. 이것은 주의 오래 참으심과 노아의 신실한 전파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당시는 베드로 사도가 베드로전서 3장에서 알려준 바와 같이 성령님의 역사와 은혜가 주어졌다. 성령님의 감동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창조시로부터 세상은 그대로 계속된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죄악된 길들을 사랑하였다. 그들의 이같은 무관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갑작스런 홍수로 그들 모두를 쓸어 버리는 것이었다.

다음 구절이 이것을 묘사해 준다. 하나님은 그분의 진노 가운데 슬픔을 나타내었다. 그들은 바람 앞에 검불같이 폭풍에 불려가는 겨같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당시에 일어난 일에 대한 적합한 표현이다.

이러한 경우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 예레미야 시대에 한 예가 있다. 에스겔 또한 당시에 임박한 예루살렘 성의멸망에 대해 선포하였다. 성령이 거기에 계셨지만 그 반응은 부정적인 것이었다. 대적이 성문에 밀어닥쳤고, 죄는 급증했다. 그 때 갑자기 멸망이 임했고, 하나님의 진노가 떨어졌다. 이것은 또한 주의 재림 직전에 재현될 것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멸망이 홀연히 그들에게 임할 것이다(살전 5:3).

욥기의 이 대목은 홍수가 임하여 그들을 다 취하기까지의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논평해 준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와 목적은 방주를 통해 여덟 명을 구원한 데서 보여진다.

그 다음에 상고할 것은 노아 자신이 나타낸 성품과 행동일 것이다. 이것은 홍수 심판 아래에 처한 당시 세대의 성격을 살펴보는 독자들에게 한층 더 향기로운 주제가 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1999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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