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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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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3. 21:35 횃불/1999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창세기 3:9).

 

이 말씀은 범죄한 아담 부부가 에덴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있을 때에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하신 말씀이다.

인류 역사상 하나님께서 몇 번 인간과 만나주셨는데 하나님은 그 때마다 산으로 오셨다. 이번 호에는 이 일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대해 알아보기를 원한다.

 

첫번째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만나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보시며 즐거워하셨고, 인간도 하나님 앞에서 즐겁고 기쁜 삶을 살았다. 그들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운 줄 몰랐다는 말씀에서 보듯이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었다.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도 문제가 없었고 그들 부부 사이에도 문제가 없었고 부부와 주변 환경이나 동물들 사이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모든 것이 창조의 원리대로 운행되고 있었으며 창조의 목적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시간이 사단의 개입으로 깨어지고 말았다.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사단이 끼어들어가 인류의 비극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그 사건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문제를 가져왔으며 후에 인간과 동물, 인간의 환경에까지도 수많은 문제를 가져오고 말았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던 산으로서 인류에게는 기쁨과 슬픔의 산이었다.

 

두번째로 하나님과 인간이 만난 산은 시내산이다.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이 죄악의 역사를 이루어 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인류 구원의 계획을 착착 진행해 가고 계셨다.

오늘날도, 이 글을 읽는 그대가 하나님을 모르거나 무관심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대를 위한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사랑으로 기다리심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시내산의 주님은 무엇을 위하여 오셨는가.

인간에게 율법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 시내산에 오신 주님은 인류에게 율법을 지키겠느냐 물어보셨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로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19:5).

이에 대해 이스라엘의 대답은 어떠하였던가.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회보하매”( 19:8).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고 율법을 다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이스라엘은 종 되었던 애굽에서 능력으로 건짐받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건너고 능력으로 주신 물과 만나를 먹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조금 전에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데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로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다.

율법은 왜 주셨는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3:20).

시내산의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시다. 법을 어기면 재판이 있음같이 인간이 율법에 따라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다.

이 율법을 주심은 인간이 법에 의할 것 같으면 죄인의 이름을 떨쳐버릴 수 없는 불쌍한 모습임을 깨달아 인간으로 하여금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는 것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다.

시내산 아래 인간들은 어떠하였는가. 그들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 산을 내려오기도 전에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놓고 우상숭배를 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아니하였는가.

인간은 계명을 다 지킬 수 없는 불쌍하고 허약한 죄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이 시내산에서 율법만 주시고 성막을 주시지 아니하셨다면 그들은 거기서 다 망하였을 것이요 오늘날 세계 각처에 퍼져 있는 유대인들은 그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었으리라.

하나님은 십계명과 함께 성막을 주셨는데 성막은 하나님께 죄용서함을 받는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장소로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형이요 십자가 속죄의 그림자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인류의 심판을 선언하셨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를 거절한 인생들 앞에 무서운 심판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 심판의 결과는 영원한 불못인 지옥임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세번째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산은 갈보리산이다.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산으로 올라가시사 십자가의 수고와 고난을 다 참으시고 다 이루었다는 한 마디를 끝으로 죽음을 경험하셨다.

이 산, 갈보리는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가 선포된 산이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법대로 심판받고 죽어야 할 인생들을 위하여 다 이루었다는 선언은 빚지고 형무소에 갇혀있는 죄수에게 그 죄값을 다 갚았다고 하는 선언이다. 그의 빚이 다 청산되었으므로 이제 더 이상 형무소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가 다 청산되었다고 선언되므로 인간이 더 이상 지옥 형벌을 받아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이 십자가의 사실을 깨달으므로 구원받는 것이다.

시내산은 아주 험준한 악산이어서 올라가려면은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아니라 고생을 많이 하여야 하나 이 갈보리산은 산이랄 것도 없을 정도로 작은 언덕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율법이나 종교적 노력으로 천국에 가려면 고생과 고난을 크게 겪고도 불가능한 것이다.

종교는 인생을 고생시키고 절제와 철저한 자기 희생을 요구하나 구원받을 수 없지만 갈보리산의 예수는 단순하게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갈보리산에 나아가지 못하고 시내산의 계명 아래서 고생하고 있다.

그들은 율법 아래 있기 때문에 날마다 자신의 모습을 율법에 비춰 봄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잘 깨닫고 있다. 그 양심은 죄의 고통에 시달리며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지만 죄로부터는 해방받지 못한 슬픈 기독교인들이다.

그들은 입으로는 십자가를 믿으나 행위로는 부정하니 실제로는 십자가의 속죄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날마다 외치고 있지마는 그 자신마저도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 15:14)는 말씀이 응한 것 아니겠는가.

예수께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까지 다 지고 죽으셨거늘 어찌하여 자신을 죄인이라고 스스로 정죄하며 죄 용서함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가. 그러나 찬송가의 의미도 모른채 죄에서 자유를 얻게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통일찬송 202)이라는 찬송은 힘차게 부르고 있지 아니한가. 죄에서 자유를 얻었는데 어찌하여 죄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며 스스로를 죄인으로 정죄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가. 천국에 갈 자신도 갖지 못한채….

이것이야말로 이율배반이요 엉터리 신앙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것이다. 깨닫고자 하는 것도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소경 아닌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딤전 1:7).

, 독자여. 오르기 쉬운 갈보리산은 은혜의 선물로 주신 구원의 산이니 속히 이 산에 올라 그대의 모든 죄가 다 사라진 십자가를 바라보고 구원받으시라.

 

이제 네번째로, 감람산에 관해서 이야기 해보자.

시내산이 과거의 산이라면 갈보리산은 현재의 산이요 감람산은 미래의 산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시내산에서 지옥 갈 죄인임을 깨닫고 갈보리산에서 죄용서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소망의 산인 감람산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감람산에 지상재림하사 천년 동안 세상을 다스리실 것이요, 그 후에는 영원한 세계가 진행될 것이다.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14:4).

예수님의 지상재림을 예언한 말씀이다.

이제 갈보리산의 속죄 경험으로 인하여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는 감람산의 소망이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친히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국시대에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도 함께 왕노릇하게 되리라. 이후에 영생의 세계에서 영광스러운 축복 가운데 거하는 날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람산 너머로 보이는 그대들의 미래가 성경에 분명히 있지 아니한가.

그 영광스러운 놀라운 시간에 구원받지 못한 죄인은 영원한 지옥의 형벌 가운데 거하여 슬픈 고통 중에 자신을 원망하고 사단을 원망하면서 탄식과 통곡 가운데 거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여, 에덴동산에서 우리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과 결별된 후 이제 산에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라.

시내산에서 주님은 그대가 죄인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또 죄인의 결국은 심판으로 끝나 죄값을 치룬다고 하셨다. 이제 갈보리산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은 그대의 모든 죄가 다 용서되었다고 선언하셨다. 그대가 이 놀라운 사실을 믿었다면 이제 그대의 눈은 소망의 산 감람산에 가 있을 것이다.

십자가에서 비참한 모습과 초라한 모습으로 죽으신 예수님은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 자신이셨다. 이제 그 영광의 실체를 분명하게 드러내시어 모든 믿는 자들을 위로하시는 날이 기다리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이 영광에 동참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살후 1:10).

 

(1999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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