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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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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5. 16:33 횃불/1999년

해산의 고통은 하나님의 음성이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3:16).

 

동서양을 막론하고 해산의 수고는 고통이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해산하다가 생명을 잃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네 어머니들도 해산하러 방에 들어가면서 신발을 다시 쳐다보고 들어갔다고 하지 않는가. ‘이 신발을 내가 다시 신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는 해산의 고통이 왜 인간에게는 주었을까?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해산의 고통을 통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번 호에는 그 부분을 생각해 보자.

 

첫째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해산의 고통이 인간에게만 있느냐는 문제다. 인간은 해산의 고통을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이라 하거니와 동물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필자는 어렸을 때 돼지를 키우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돼지의 경우는 한번 해산하면 5-20여 마리까지 새끼를 낳는다. 새끼를 낳을 때 인간과 같은 진통을 하지 않는다. 새끼를 밴 중에 입덧을 하여 먹지 않는다든지 하는 경우가 없다. 오히려 식욕이 더 왕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루에 한번씩 해산하는 밝은 어떠한가. 닭도 아무런 진통이나 해산의 수고가 없다. 물론 알의 경우는 다르다고 할지 모르나 분명한 것은 그도 해산의 과정을 다 거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달에 한번씩 해산하는 토끼는 어떠한가, 토끼는 새끼 밴 지 U일만에 새끼를 남고 3일만에 또 새끼를 배 매달 새끼를 낳는다. 그래도 입덧하여 마르거나 죽음의 위험을 경험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약간의 고통이 있을지 모르나 인간과 같은 수고와 고통은 없는 것이다. 기타 언급하지 아니한 모든 동물들도 대동소이 하다고 생각된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사람과 동물은 분명한 차이가 있음이 틀림없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 중에 인간에게만 해산의 고통을 허락하셨음이 분명한 것이다. 우리가 이 일을 통하여 크게 깨달은 바는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하며 정확하여 신뢰할만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을 크게 더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조금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진 사실을 명백히 보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대의 양심이 돌처럼 굳어버린 것이 아닌가

시편 기자는 주님의 거룩한 뜻을 좇아 만들어진 만물과, 그 만드신 법칙대로 운행되는 모든 이치를 보면서 너무 감탄하여 다음과 같이 외쳤다.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시편 89:11)

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인가. 이 글을 읽는 그대가 이 아름다운 고백을 할 수만 있다면 이는 실로 위대한 발견인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계를 창조하셨고, 지금도 말씀대로 세계가 운행되고 있다.

 

둘째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깨닫는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인가. 쉽게 생각할 때 해산의 고통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죄값을 치르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쉬우나 그런 것만이 아님을 생각해야 한다. 사단의 등장과 사단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삶이 혼미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타락한 길로 가게 됨을 하나님은 내다보시고 인간에게 사랑의 흔적을 주신 것이 분명하다. 여자에게 주어진 해산의 고통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사랑의 언어요, 표이며 증거이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현실적으로 하나님을 떠났다가도 이 고통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살기 편하고 잘 풀려 나갔으면 하나님께 부르짖지 아니했을 것이요, 또한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도 받아들이지도 아니하고 애굽에 부속된 민족으로 모든 것이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노예생활로 인한 심한 고통은 그들로 부르짖게 했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모세를 보내사 구원하게 하셔서 신정통치 국가를 이룬 것이다.

해산의 고통은 하나님을 거역한 범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여실히 보여주므로 이같은 고통이 있을 때마다 죄의 무서움과 하나님의 심판을 얼마나 두려워하여야 할 것인가를 생각나게 한다. 여자들은 해산의 고통뿐만 아니라 해산후유증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가. 소위 산후병이라 하여 온갖 고통을 평생 당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도 인간들에게 있는 큰 문제점은 죄를 두려워하지 안는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완전범죄를 꿈꾸며 사람은 속였으나 하나님은 속이지 못하여 심판 받은 경우들이 있다.

여호수아 7장에 아간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해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의 일부를 훔쳐 자기 집에 숨겨두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일을 전혀 몰랐으나 하나님은 이 일을 마음에 두셨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큰 성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축제 분위기 속에 다음 전쟁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이 다음으로 점령할 아이 성은 작은 성읍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 전쟁은 쉽게 끝날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이스라엘이 그들 앞에서 패하고 수십 명이 죽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나고 말았다. 이스라엘은 통곡하고 울었다. 그들은 자기 속에 죄가 있어 징계 받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한없이 울었다. 이때 여호와께서 숨겨진 죄를 지적하였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여호수아 7:10,11).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은 놀라고 충격을 받아 이 숨겨진 법인을 드러내기 위해 제비를 뽑았고, 결국 아간이라는 사람을 잡아 범행 일체를 자백 받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죄 값을 치르게 하였다. 그 후에야 이스라엘이 전쟁에 이기기 시작했다. 이 유명한 사건은 수 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종이 되어왔고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큰 교훈을 주고 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민감하시고 정확하시다. 그러나 인간은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여서 두려움 없이 죄를 짓지 아니한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교만하고 방자하여 제멋대로 살다가 결국 지옥에 가는 파멸보다, 고통을 겪고 고생을 하더라도 이와 같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겸비함으로 순종하여 파별을 당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또한 그 고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가를 깨달아야 한다.

해산의 고통은 불순종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는 말씀의 가르침일진데 우리는 이 사실로 인하여 감사해야 한다. 이와 같이 부드럽고 작은 심판의 결과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끝까지 거부한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심판의 지옥은 얼마나 두려운가를 생각해야 한다. 여러 번 강조한 바 있거니와 영원히 불타는 지옥은 우리의 머리로 다 생각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무서운 곳이다. 하나님은 작은 고생을 통하여 큰 불행을 막고자 하셨던 것이다. 변함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인간을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모든 일은 사람의 생각과 지능으로 다 알 수 없지만, 그러나 그 모든 일은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있는 것이다. 겸손한 자는 이 모든 말을 알아듣는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