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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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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5. 16:35 횃불/1999년

바울의 첫번째 기도

(에베소서 1:15-23)

- H. A. 아이언사이드 -

에베소서에서 우리는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을 위해 드리는 두 번의 기도를 보게 됩니다. 첫 번째 기도는 바로 이 본문이며 두 번째 기도는 3장에 나타납니다.

사도가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기도하기를 마지아니하노라고 말하는 것을 주목해보십시오.

그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해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에 의해 중생하게 될 때, 그들이 새로운 성품을 가졌다는 증거 중의 하나는 그들이 하나님을 의존한다는 것과, 또 기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것은 자기자신에 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아나니아를 다소 사람 사울에게 보내실 때, 아나니아는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에게 받았나이다”( 9:13,14) 하며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가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것은 과거 하나님의 교회의 박해자의 영 속에 하나님의 진정한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확신을 가지고 사울에게로 가서 안수하며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던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신다”( 9:17)고 말했습니다. 그런 후 그는 그에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중생한 사람에게 있어서 기도는, 자연인에게 있어서 호흡과 같이 자연스런 것입니다.

사도가 그의 신뢰하는 성도들에게 어떻게 말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주 예수 안에서의 그들의 믿음과, 은혜 속에서의 성장과, 그리고 모든 성도를 향한 그들의 사랑을 듣고서 기뻐했습니다. 진정한 믿음이 있는 곳에는 특정한 집단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라는 말은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난 모든 개인들을 다 수용하는 포괄적인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성도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 나라에서 주님 앞에 있는 이들을 위해 우리가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땅에 있는 신자들은 성도라 불리며,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세 가지의 별개의 것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첫째로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장의 앞부분에서, 그가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3)라고 말한 것을 우리는 이미 살펴보았다. 영원하신 성자께서 우리의 구속을 위해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란 말은 맞습니다. 그분의 관계는 언제나 아들로서의 관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도 역시 옳은 것입니다.

이 첫 번째의 기도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두 번째 기도를 살펴보게 되면, 그것이 아버지께 드리는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그분을 모든 계획과 지혜의 근원이신 창조주(“하나님은 빛이시다”)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특별한 기도에서 사도가 하나님의 목적 혹은 계획을 다루는데 전념하고 있음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다른 부분은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인데, 그 까닭은 그것이 가족의 관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또한 사랑이십니다.

성경에서 사용된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용법들이 매우 정확했음은 주목할만한 일입니다. 사도는 기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모든 영광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 영광은 하나님의 빼어나심을 드러냅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그는 우리가 어느 날엔가 다른 방법으로 성령을 받아야만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속에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열어 보이시고 그것을 성도들에게 계시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분은 어떻게 이 일을 하셨습니까?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 속에 계시된 진리에 대한 통찰력을 주심으로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말한 것입니다. 단순한 자연인도 그 말씀은 볼 수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저자이신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그 속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냉철한 지성으로 이 책을 읽는 것과, 복되신 성령께서 심령과 마음에 진리를 열어 보이시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그것을 읽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따라서 그분은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신자로 하여금 알도록 하시는,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가슴에 사무치도록 놀라운 능력과 축복으로 강론하는 하나님의 어떤 종들에 대해 당신은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도 당신은 말할 것입니다. “이상합니다. 말씀을 읽고 또 읽어도 전과 마찬가지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성경을 읽을 때는 왜 이런 것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

때때로 진짜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진리를 우리에게 열어 보여주시기를 바라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는데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님께서 생존해 계시던 몇 년 전을 나는 기억합니다. 나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집으로 갔는데, 거기에서 북아일랜드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때 나는 복음사역을 시작한 어린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아주 나이가 많고 병약했으며, 우리가 급성결핵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남캘리포니아의 기후 조건이 그의 건강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면서 그곳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시 건강을 회복하기에는 상태가 너무 심각하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그의 원대로, 그는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올리브나무 아래 작은 텐트를 치고 거기서 지냈습니다.

나는 그를 만나러 거기에 갔습니다.

그의 창백하고 야윈 얼굴에 하늘의 평화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 내 마음이 얼마나 감동되었는지 나는 그것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이름은 안드류 프레이저(Andrew Fraser)였습니다. 그의 폐가 거의 기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는 속삭이는 것 이상으로는 거의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내게 어떻게 말했는지를 상기할 수 있습니다.

젊은이여, 그대는 그리스도를 전하려 하고 있군요. 그렇지요?” “, 그렇습니다.”

그는 속삭였습니다.

, 잠깐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 함께 얘기를 나눠 봅시다.”

그는 자신의 닳아진 성경을 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운이 다할 때까지 그는 한 장, 한 장을 넘겨가며, 지금까지 내 영혼이 경험해 보지 못한 방식으로 단순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진리들을 열어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을 깨닫기도 전에 내 방에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나는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이런 진리들을 배웠습니까? 그런 진리들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책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당신은 어떤 신학교나 혹은 대학에서 그것들을 배웠습니까?”

나는 그의 대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젊은이여, 나는 그 진리들을 북아일랜드의 어느 작은 집 흙마루에서 무릎으로 배웠습니다. 내 앞에 있는 이 성경을 가지고 나는 때로는 및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서, 내 영혼에 그리스도를 계시해 주시기를, 그리고 내 심령에 말씀을 열어 보여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세상에 있는 모든 신학교와 대학에서 지금까지 내가 배울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흙마루에서 무릎으로 내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

그 후 몇 주간이 지나지 않아 그의 영혼은 육체를 떠나 주님과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의 기억은 항상 네 마음에 남아 있으며, 또한 그것은 내게 가장 귀한 추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충분할 만큼 긴 시간을 보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요?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만한, 그리고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계시하실 만한 충분한 시간을 드리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명상은, 우리 시대에서는 상실되어 버린 예술이다. “

명상을 한다는 것은 되새김질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축들이 먹이를 대강대강 먹고서는 그것을 되새김질하여 달콤하게 만들 듯이, 신자는 말씀을 읽고서 그것이 진정으로 자기의 마음에 소중한 것이 될 때까지 생각하고 또 깊이 생각하고 되새김질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되새김질하지 않거나 굽이 갈라지지 않은 동물들의 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갈라진 굽은 이 세상의 불결함을 넘어서는 발입니다. 입과 발이 조화를 이룰 때. 그리고 우리가 말씀을 섭취하고 또 그 진리의 능력으로 행하게 될 때, 그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하나님에 관한 일들을 조명해 주시고 그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을 때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오신 한 가지 이유입니다.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에 판한 지식을 어느 정도는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의 말씀은 그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참으로 초월적인 지식 완전한 지식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아마도 당신은 그분을 당신의 구세주로, 영원한 멸망에서 당신을 구속하신 분으로, 교회의 영광스런 머리로, 성령에 의해 당신과 연결되어 있는 분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분을 더욱 잘 알도록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는 당신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풍성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가르침에 보다 많은 시간을 바침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축복을 다른 것들이 차지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 당신의 보좌 앞에서 보내는

한 시간의 순결한 기쁨이여,

무릎 꿇고 기도하며, 나의 주님 당신을

친구로 사귀는 사귐이여.”

 

때때로 우리는 이런 말로 유창하게 노래합니다. 그러나 이전에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귀한 사실들을 하나님의 영이 보여 주실 때 그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면서,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의 존전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냅니까?

우리는 이 기도 속에 세 가기 별개의 간구가 있음을 이미 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1)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2)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3)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라는 구절을 주목해 보십시오. 이것은 단순히 지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마음으로 이해합니다. 성경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10:10)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는 것은 마음으로입니다. 사람은 지적으로 매우 명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로 하여금 영적인 것들을 이해하도록 해줄 것이라고는 한 순간도 보증해 주지 못합니다. 영적인 것을 식별하는 일은 마음 눈이 열려 그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훈련될 때뿐입니다. 사람들이 중생해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그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하나님에 관한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예를 한 가지 들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뛰어난 음악적 감각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고, 어떤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음악적인 자질이 없는 사람에게, 사람들이 아무리 가르쳐 준다고 해도 그가 음악가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음악을 듣게 된다 하더라도 그가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무의미한 것일 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을 올바로 이해하게 되려면 사실상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면에 있어서도 사람들이 그것을 바로 이해하려면 새로운 성품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만약 마음 눈이 열린다면, “그의 부르심의 소망에 대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이해하십니까? 그것은 이미 우리가 이 장의 앞부분에서 우리의 관심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하여금 그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는”(1:3,4)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입니다. 어느 날엔가 우리는 얼굴을 보듯이 그분을 보며 또 그분과 같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셨으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형상을 이루기까지 그분은 결코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두 번째 간구로서, “성도 안에서 그분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우리로 알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이 장의앞부분에서 우리는 그분의 은혜의 풍성함에 대해 살펴보았고, 이제 여기서는 그분의 영광의 풍성함에 대해 살펴보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그분의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고 있으며, 장차 그분의 영광의 풍성함에 들어가서 마침내 그것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도 안에서 그의 기업의 풍성이라는 표현을 주목해 보십시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어떤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성도들이 그분의 기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분이 그분의 기업을 취하실 때 성도들을 통하여 그것을 소유하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 안에 있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그분의 것임을 주목하십시오. 옛날 가나안 땅은 그분의 것이었지만 그분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통하여 그것을 취하셨습니다. 마침내 그분은 그분의 성도들을 통하여 구속받은 세계를 얻게 되실 것이며 우리는 그분과 더불어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누가 그 영광의 한 부분이나마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이 세상을 다스리러 다시 오실 때, 우리는 그분과 함께 있게 되며 그분과 같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보좌에서 그분과 함께 앉게 될 것이고 하나님은 그의 성도들을 통하여 그 기업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

 

그러면 세 번째 간구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알다시피, 그리스도인은 힘을 저장하는 밧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 하나님, 보다 많은 능력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까!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그 속에 밧데리를 넣어 단추만 누르면 불이 켜지는 전등과 같은 존재로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속에 밧데리를 만들어 놓으시고 버튼을 누르면 우리가 주님을 위해 빛을 발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능력의 근원이신 그분과 더불어 교제를 나누며 살아갈 때에야 비로소 능력을 가질 수 있고, 또한 우리가 그분과의 교제 속에서 행할 때에만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그분의 동일한 능력이 우리 속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역사하게 됩니다. 그것은 세상이 지금까지 보아온 것 가운데 가장 충만한 신적 능력의 나타남입니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천지를 만드신 능력이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홍해를 가르시며 승리가운데서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능력이나, 혹은 주님이나 사도들을 통해 나타난 굉장한 기적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크게 나타난 사건,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부활입니다. 그것은 그분과의 교제를 나누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동일한 능력입니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사고.”

정사”, “권세”, “능력”, “주관하는 자등의 표현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복되신 주님을 섬기는 수 없이 많은 천사들, 무죄하고 거룩한 영들, 또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대적한 수많은 악한천사들이 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깊은 곳으로, 무덤으로 내려 가셨으며 또 이 땅에서는 낮은 자리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사탄과 그의 무리는 사망의 권세 아래 계시는 주님을 보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그분의 오른 편에 앉히셨습니다. 여기서 사도가 강조하는 놀라운 사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역사한 능력은, 만약 신자의 천박함이나 속됨에 의해 방해를 받지 않는다면 신자들 속에서도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시험을 대적할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든지, 죄악 된 습관을 극복할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다시는 불평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당신이 그런 상태에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십시오. 그 교제를 방해해 온 죄를 밝혀내십시오. 우리가 전원을 연결하게 되면 전선을 통해 흐르는 전력이 기계를 작동하게 되듯이, 당신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살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이 당신으로 하여금 죄를 정복하고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시다는 것을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분이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신다는 것을 읽게 됩니다. 만물이 그분에게 복종하는 것을 우리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만물이 마침내 그분의 능력의 통치를 인정한다는 증거로서 하늘에서 그분이 만물 위에 앉으신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구약시대에는 전혀 계시되지 않았지만 이 은혜 시대에 알려진 말씀이 덧붙여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몸이 없는 머리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완성이라는 점입니다. 이 모든 세대가 진행되는 동안 그분은 교회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이 세상에 드러내십니다.

어느 날 몸의 모든 지체들이 영광 중에서 머리와 결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한 사람이 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없다면 우리의 복되신 주님은 불완전하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버려져 있던 불쌍한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며, 그분의 몸의 지체일 뿐 아니라,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완성입니다. 그분의 은혜, 그분의 거룩하심, 그분의 사랑, 그분의 죄를 미워하심, 그분의 잃어버린 자를 불쌍히 여기심, 그분의 그들을 찾으시는 한없는 열심 등을 나타내고, 그분의 은혜의 풍성함을 소개함으로써 그분을 이세상에 올바로 전할 신성한 책임이 우리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의 사역을 계속 수행하기 위해 우리는 여기에 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성한 책임감을 주시며 또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증거하도록 만드시기를 법니다.

 

(1999 11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