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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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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5. 16:34 횃불/1999년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형제들과의 교제(1)

- 이 춘 원 -

형제들과의 교제

누가 형제인가?

육신적인 의미에서 보면 한 조상,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사람은 다 형제들입니다. 넓은 뜻으로 보면 이 세상 그 어디에 살건 간에 아담의 후손이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견지에서 사해동포주의’, 곧 박애주의에 의하면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어느 혈통에 관계없이 언어와 피부색과 문화적인 배경을 떠나서 모든 이 세상 사람들은 똑같은 형제로서 사랑하는 것이 옳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영적인 의미에서 보면 그리스도의 피로써 거듭난 사람,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 주님안에 거하는 사람이 한 형제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12:50).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가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의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2:11,12).

우리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당신의 제자들을 향해 내 형제들이라 부르셨고, 사도 바울과 베드로도 자기 자식 같은 디모데와 디도를 보고 내 형제라고 호칭했습니다( 20:17, 1:22). 창조주 구속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피조물인 하잘것없는 인생들을 향해 형제라 부르시고 자녀라 인정해 주시니 너무나 황송하고 감개무량할 뿐입니다. , 주님, 감사합니다.

성경적인 가르침 안에서 볼 때,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피로써, 말씀대로 성령님으로 확실히 구원을 받은 사람을 형제라 부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는 육적인 형제가 있고 육신적인 형제도 있으며 영적 인 형제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기쁨으로 부를 수 있는 형제는 영적으로 분명히 거듭나 주님의 진리의 말씀 안에서 사는 성도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형제들이 있지만, 한 성령님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한 생명, 한 믿음,한 진리, 한 사랑, 한 소망으로 사는 성도들이 참된 형제들입니다.

 

형제들에 대한 자세

그가 분명히 거듭난 형제라면 그의 상태에 관계없이 그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의 신분이 구원받은 형제라면 그의 믿음 생활이 육신적이든 영적이든 그를 형제라 부르고 그를 선대하고 그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합당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깨달아 믿고 그 사랑 안에서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이 곧 주님의 자녀 된 증거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4,15).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요일 5:1,2).

주님의 사랑을 입고 말씀을 따라 빛 가운데 사는 선량한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합니다. 신령한 성도들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적인 형제들이나 연약한 형제들도 사랑으로 돌보아주고 긍휼을 베풉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4:32).

심지어는 원수까지 사랑하고,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그의 가축이 구덩이에 빠졌을 때 건져줍니다. 그의 집이 불타거나 그의 망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성도의 본심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아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과 할 수 있는 대로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정상입니다.

육적인 세인이나 육신적인 신자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선을 베풀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축복된 삶을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자세입니다.

원수에게 복수하지 않고, 핍박자를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심판의 손에 모든 문제를 맡기고 온유하고 겸손한 자세로 조용히 사는 것이 주님만을 신뢰하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하물며 그리스도의 한 피로 거듭난 한 형제들에게 어떠한 사랑으로 교제해야 되겠는지요? 서로 이해하고, 동정하고, 관용하고, 불쌍히 여기고, 입장을 바꿔 생각하고, 서로 짐을 지고, 낮은데 처하고, 주님이 피로 값주고 사신 형제를 위하여 내 목숨을 내어놓는 것이 마땅합니다(h 3:16).

주님께서 직접 실천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20:28, 10:11). 사도 바울이 그 희생적인 본을 보였습니다( 20:24,21:13). 사도 베드로는 거짓 없는 사랑과 긍휼을 가르쳤습니다(벧전 1:22, 3:8).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먼저 가신 선진들과 오늘의 성도들이 좀은 길에서 주님의 영광스런 복음과 거룩하신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 세상종파를 흉내내지 않고, 학문적인 신학을 숭상하지 않고, 부패하기 쉬운 물질의 유혹을 거절하고, 사람의 친분에 이끌리지, 않고 참된 진리의 사랑을 믿고 몸소 실천했습니다.

밧모 섬에서 극한 순교의 고난을 체험한 사도 요한은 주의 날에 성령의 감동으로 계시를 받고 예언의 사역을 온전히 마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주님의 희생적인 사랑에 있었습니다. 그는 확신에 넘치는 필치로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모두 거룩한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면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사랑과 겸손과 인내로써 진리를 수호하고 복음을 선포하고 주님의 교회를 보존했습니다.

주님 안에서 본질적으로 하나인 진리와 사랑을 가지고 서로 적대시 한 일이 없었습니다. 진리를 떠난 사랑이 무익한 것처럼 사랑이 없는 진리는 허무한 것임을 잘 알았습니다. 진리만이 사랑을 영원하게 하고 사랑만이 진리를 온전하게 합니다. 주님 안에서 진리와 사랑은 하나입니다.

 

형제의 간절한 기도

, 주님이시여! 제가 이것을 알지만 이렇게 진심으로 저의 삶 속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의 깊고 높고 넓은 사랑을 필설로서가 아니라 몸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강권해 주십시오. 진실된 사랑과 겸손한 심령으로 형제들을 대하고 세인들에게 선을 나타냄으로써 주님의 자녀 된 향기가 복음으로 전해지고, 진리에 속한 증거가 되고, 주님 앞에서 믿음의 담대함과 참된 평안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의 구속의 사역과 그 낮아지신 인격을 제가 본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그리스도인 각자의 심령이 주님의 성품을 본받게 하시고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지역의 모임들이 주님의 희생하신 사랑 가운데서 진리대로 겸손히 행하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비록 예배당에서 시끄럽고 철없이 굴지만 주님께로 나오는 모든 아이들을 기쁨으로 온 교회가 환영할 수 있도록 어린이다운 마음을 주십시오( 19:13- 15).

비록 추하고 더럽게 보이지만 구원을 받기 위하여 주님께로 나오는 모든 죄인들을 무조건 사랑으로 영접하는 그리스도인다운 형제가 될 수 있도록 교만심을 꺾어 주십시오( 9:10-13).

별로 섬기는 것이 없이 예배당에만 왔다 갔다 하는 것 같고 믿음이 연약해 보이고 육신적인 문제들이 있는 형제들이 보일지라도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목자와 같은 넓은 마음을 주십시오( 14:1,7).

율법과 종파와 지식과 민족적인 생각을 버리고, 성별과 연령과 물질과 학벌과 경험을 중시하지 않게 하시고, 인간적인 감정과 외모와 수준과 교양에 좌우되지 않게 하시고, 구원의 햇수와 은사 내지 직분 유무와 침례 여하와 성경해석상의 교리적인 차이점이 있는 경우에도 그를 거절하지 말고 그가 주님께로 얻은 새 생명과 구원의 진리를 기초로 하여 받아들여 선한 성도의 교제 안으로 인도할 수 있는 지혜와 겸손을 베풀어주십시오( 3:26,27, 2:13-22, 18:24-28, 2:1-9, 고전 3:1-7, 23:40-43).

지옥에 빠졌던 죄인이 천국으로 옮겨지던 극적인 기쁨, 곧 죄사함 받아 주님의 자녀로 태어나던 첫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게 하소서.

말로 표현키 어려운 첫사랑의 뜨거웠던 심장의 박동을 다시 되찾게 하시고 아무 것에도 구애 받지 않던 처음 믿음의 순전함을 회복케 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체험하여 주님을 제일로 사랑하고, 거듭난 형제들을 모두 관용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원수까지도 포용하는 넓은 가슴을 주시옵소서.

남방 유다와 북방 이스라엘이 비록 갈라졌으나 한 민족 한 형제 사이므로 싸우지 말라고 말씀하신 주님이시여, 이 지구촌 안에 있는 지역모임들,곧 구원받은 형제들 사이에는 근본진리가 다르지 않는 한, 비교리적인 모습으로 인하여 서로 다투거나 싫어하지 않게 하소서. 그런 것이 바로 처음 사랑과 신뢰와 존경심을 버리는 시초가 되고, 중생하지 못한 세인들이 품고 있는 악한 감정과 증오심과 적대심의 발로처럼 될까 봐 두렵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저에게 탕자의 부친이 가졌던 심정을 주시고, 구원받기를 거절하는 친척들을 멀리했던 저에게 골육의 친척 형제들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정도처럼 큰 근심으로 고통을 받은 사도 바울의 심정을 저에게 허락해 주소서.

육신적인 롯을 마다하지 않고 그에게 토지 선택권을 우선적으로 양보해주고, 그와 그의 권속들이 적에게 붙잡혀 갔을 때 친히 가서 구출해 주며, 소돔과 고모라 성이 유황불로 저주의 심판을 받을 때 그와 그의 가족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린 아브라함의 실천적인 사랑을 제가 본받도록 일깨워주소서.

온유한 겸손이 제일 오래 가는 사랑의 미덕이자 향기임을 깨닫게 하시고 인생에 있어서 모든 구원과 축복의 근원임을 알게 하소서,

아침의 아들 계명성 천사장이 하나님의 뭇별 위에 좌정하려다 음부 구덩이의 맨 밑창에 떨어지고, 사울과 웃시야 왕이 교만하게 월권을 행하고 여선지 미리암이 여자의 위치를 벗어나 불평과 비난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 문둥이가 된 것을 교훈으로 전감케 하소서.

진리의 성령님으로 지금도 역사하시는 주님이시여, 주님의 만찬상 앞에 불신자들이 나와서 예배드릴 수 없사오나 실수로 인하여 저들이 참여했을 때 이론적인 사람들이 쫓아내지 못하게 하시고 도리어 주의 죽으심의 고난과 그 구속의 능력의 피가 저들을 삼켜 주님의 거룩하신 영광과 감화된 위엄 앞에서 참된 회개와 영원한 구원의 은사를 옷입게 하소서. 인간의 생각과 기독교의교리를 초월하시는 주님의 초자연적인 성령님의 인도하시는 역사로써 예배시에 구도자가 구원을 받고, 미침례자가 낙원에 들어가고, 너울을 안 쓴 자매가 경건하고, 전심사역자가 아닌 형제가 더 영광스런 면류관을 받고, 봉사하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 성도가 더 믿음이 깊고, 많이 전도하고 우렁찬 멧세지를 쉴새 없이 외친 설교자가 도리어 그 나라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고, 인간이 만들어낸 신학과 철학과 모든 학문 위에서 신앙의 누각을 쌓던 똑똑한 지식인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진리의 성령님의 가르치심이 없이 사람이 만들어낸 이론적인 신학이 사라지게 하시고 주님의 겸손이 없이 앞장서는 행위주의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추방되게 하소서.

진리가 교만하지 않도록 겸손한 사랑의 영을 불어넣어 주시고, 사랑이 부패하지 않도록 진리의 영으로 채워주소서. 처음으로 주님을 알고 믿었을 때의 첫사랑으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시고, 처음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갓난아이처럼 기쁨으로 순종했던 순전한 젖(진리)만을 사모하게 하소서.

거룩한 진리에서 벗어난 형제들을 그 거짓 지식에서 이끌어내어 구원케 하시고, 성령님으로 기도하지 않고 허공에다 자기 아는 지식을 나열하는 형제들을 불쌍히 여겨 바로 잡아주는 권면의 능을 주소서.

감사의 생활이 없이 세상 부귀를 위하여 정신 없이 바쁜 형제를 말씀으로 나무라게 하시고, 성경을 잘 보지 않고 세상 책만을 열심히 읽는 형제를 진리로써 책망케 하시며, 사람이 창안해 낸 종파 조직과 신학과 모든 방법들을 동원하여 주님을 섬기려는 형제를 그 마력의 본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는 능을 주소서.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고 모든 일에 사람의 생각대로만 움직이는 육신적인 형제들과 그런 교회들을 비참한 우상 숭배의 제단에서 끌어내어 회개시켜 구원하는 영적인 전투력을 주소서.

세상 지식과 세상 물질과 세상 방법으로 오염된 형제들을 불쌍히 여기되 그들의 걸치고 있는(자랑하고 있는) 검은 까운을 증오하는 담대한 분별 의식을 주소서.

율법과 종파 아래로 돌아간 이들을 긍휼히 여기고 정욕과 타락으로 출교된 이들을 건지며 조직과 형식을 내세우는 이들을 바로잡되 그들의 생명을 건져주고 그들의 더러운 옷은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하나님의 교회의 문이 닫히고, 성벽이 허물어지고, 잡초가 무성하고, 여우가 들락거릴 때 말씀의 총을 들고 일어나 저격 사살할 수 있는 용맹을 주소서. 포도원을 헐고, 우리의 량을 잡아가고, 병들어 죽게 하는 늑대를 용납하지 않는 거룩한 사랑을 실행할 수 있는 패기를 주소서.

사람은 사랑하되 그 속의 사단을 대적하는 행동하는 믿음을 주소서.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되 그 형제의 잘못을 묵인함으로써 죄를 남고 공중의 새들이 날아가도 집안에 우환이 들끓게 만드는 나약하고 미련한 형제가 되지 않도록 힘을 주소서.

육신적인 롯을 위하여 기도한 아브라함처럼 되게 하소서. 믿음의 순결을 지킨 다니엘처럼 되게 하소서. 위기 때에 행동으로 나타난 모르드개와 에스더처럼 되게 하소서. 외식하는 베드로를 책망한 사도 바울처럼 되게 하소서.

다윗을 책망한 나단 선지자가 일어나게 하소서. 훼파되고 소화된 성전을 보고 눈물로 통곡한 느헤미야 선지를 보내주소서.

나무 강단에 서서 율법 책을 읽고 강론한 학사 에스라의 역사로 이스라엘자손들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죄를 자복”( 9:1,2)한 것처럼···· 제가, 제가 먼저 자복하게 하소서. 그리고 지역, 지역 모임들이 자복하게 하소서. 그 때 이방 여인들을 버렸듯이, 종파적인 음녀들의 거짓된 외식과 신학적인 교만한 지식을 통회하게 하소서.

먼저 우리 사역자들이 주님 앞에서 모임 앞에서 회개하게 하소서.

모든 책임이 일꾼들에게 있음을 절감하오니 제가 먼저 참회하게 하시고 또 모든 종들이 진심으로 두 손을 들고 통회하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엎드려 간구하며 그 악한 행실들을 버리고 진심으로 주님의 얼굴을 구하면 주님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온 교회의 죄를 사하시고 온 땅을 회복시켜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주님의 존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다음 호에 계속>

 

(1999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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