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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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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1. 11:34 횃불/ 2000년

아내의 아름다운 단장

- 월리암 맥도날드 -

 

모든 아내들은 자기 남편이 신자이든지 불신자이든지 상관없이 남편에게 순복해야 합니다(벧전 3:1). 하나님께서는 남자에게 머리로서의 역할을 부여하셨으며, 여자들이 그러한 남자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여자들은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복해야 하는 것처럼 자기 남편에게 순복해야 합니다( 5:23,24).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한물 간 시대의 유물 정도로 간주합니다. 여자들은 남자들을 좌지우지하는 권위의 자리로 진출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는 점차적으로 여가장적(女家長的)으로 변모해가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 안에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활동적이고 재능을 갖춘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견고히 서 있습니다. 남자의 머리됨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입니다. 아무리 합당한 이유를 내세운다 할지라도 가정에서 여자들이 남자들의 권위를 탈취할 때 야기되는 문제는 결과적으로 혼란과 무질서뿐입니다.

남편이 불신자라 할지라도 그녀는 여전히 그 남편을 머리로서 존중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녀의 남편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선한 간증이 될 것입니다. 순종적이고 사랑스러우며 헌신적인 아내로서의 아름다운 행동은 남편을 구주께 인도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아내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남편의 영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내가 그녀의 남편에게 항상 말로써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내가 남편으로 하여금 복음에 대해 수긍하게 하려고 억지로 강요하는 행동은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강조점은 남편 앞에서 매일매일 그리스도로 인하여 살아가는 아내의 삶이 남편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믿음의 삶을 방해하는 경우를 가정해 봅시다. 이럴 때에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일 남편이 아내에게 성경의 명백한 명령을 불순종하도록 요구한다면, 그녀는 남편의 말을 들어서는 안되며 주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남편의 요구가 분명한 의무사항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내가 누리는 어떤 특권에 관련된 것이라면, 그녀는 남편에게 순복하여 자기의 특권을 포기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 아내가 이교도인 남편을 맞이하는 것에 관해 말할 때, 그는 신자로서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는 여기서 결혼을 한 후에 아내가 먼저 구원을 받은 경우를 우선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녀의 의무는, 믿지 않는 남편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순복하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보고 구원받지 않은 남편은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벧전 3:2). 하나님의 성령님께서는 이것을 사용하셔서 그녀의 남편으로 하여금 자기 죄를 깨닫게 하시며, 그리스도를 믿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죠지 뮬러(George Muller)는 경건한 신자인 아내를 둔 부유한 독일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술을 무척 즐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온밤을 술집에서 보내는 적이 많았습니다. 그의 아내는 하인들을 잠자리에 들게 한 다음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다가 그를 친절히 맞이하며 한 마디의 잔소리나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만취해서 돌아올 때마다 그녀는 정신없는 남편의 옷을 벗겨주고 침대에 뉘어주었습니다.

어느 날 밤 선술집에서 그녀의 남편은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내 장담하건대 이 늦은 시간에도 집에 가면 내 아내는 자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걸세. 아마 그 사람은 문 앞까지 나와서 우리를 왕 같이 맞이해 줄거야.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우리를 위해서 저녁상도 차려줄 걸세.”그들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한번 가서 확인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과연 친구의 말대로 그녀는 문 앞에 나와서 정중하게 그들을 집안으로 영접해 들인 다음 한 점 분노의 빛도 없이 그들을 위해 기꺼이 저녁상까지 차려주었습니다. 남편과 그의 친구들을 잘 접대한 후에 그녀는 조용히 자기 방으로 물러갔습니다. 그녀가 방에서 나가자마자 남편의 친구 중의 한 명이 그녀의 남편을 나무라기 시작했습니다. “저런 착한 아내에게 그렇게 못되게 굴다니, 자네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 친구는 내뱉듯이 이런 말을 남기고는 식사도 마치지 않고 일어나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친구도 일어섰고 급기야는 한 사람도 식사를 하지 않은 채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반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남편은 자기의 악함, 특히 아내에게 몹시 잘못한 것에 대해 깊이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내의 방으로 건너가서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고 죄를 회개하며 그리스도께 굴복했습니다. 그 이후에 그는 아주 헌신적인 주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말로하지 아니하고도 영혼을 구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죠지 뮬러는 다음과 같은 권면을 주었습니다.

당신이 구원받지 않은 친척들로부터 고난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곧 당신에게 마음의 소원을 불러일으키시며 그들을 위한 당신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 동안에 당신에 대한 그들의 행동을 책망하지 말고 주 예수님의 온유와 친절, 그리고 자비로움을 들에게 나타냄으로써 진리를 선전하십시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3:3에서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아내들이 자기남편을 섬기고 기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에 관해 우선적으로 다룹니다. 아내의 치장하는 외모보다 그녀의 거룩하고 순종하는 내적인 삶이 남편에게 깊은 영향을 줍니다.

아내들이 피해야 할 다양한 형태의 외모를 단장하는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머리를 꾸미고’-어떤 사람들은 이 표현이 단정하게 머리를 땋는 것까지도 금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여인들이 머리를 땋아서 계단처럼 여러 겹으로 쌓아올린 스타일이 유행했었는데 베드로는 이처럼 지나치게 머리를 호화롭게 꾸미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 ‘금을 차고’-어떤 사람들은 이 표현을 금으로 된 장식품은 무엇이든지 절대 금하는 명령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표현을 화려하고 지나친 치장을 금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3) ‘아름다운 옷’-이 표현이 어떤 특정한 옷을 입지 말라는 명령은 아닐지라도 화려하고 값비싼 옷을 입지 말라는 권면이라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이사야 3:16-25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든 형태의 지나친 치장을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를 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의 복장과 장식품들의 문제에 있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 즉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지침이 있습니다.

첫 번째 원칙은 비용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돈을 의복에 소비하고 있습니까? 그것들은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입니까? 의복에 소비한 돈을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까?

디모데전서 2을은 “...값진 옷으로 하지 말라고 말함으로써 값비싼 옷을 입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 옷을 살 수 있는 여유가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값비싼 옷들을 구입하는데 재물을 소비하는 것은 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동정심 역시 그것을 금합니다.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이웃들의 절망적인 어려움, 영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에 있어서의 그들의 엄청난 필요들이 긴요하지 않은 값비싼 옷들을 사는데 재물을 소비하는 우리의 무관심을 지적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입하는 의복의 질과 양 모두에 적용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옷장은 마치 작은 옷가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휴가 여행을 떠날 때마다 승용차의 뒷좌석에 걸어놓은 옷걸이에, 견본품의 옷을 가지고 차를 타고 다니며 판매하는 세일즈 맨과 경쟁이라도 하듯 양복이며 셔츠며 여러가지 옷들을 죽 걸어놓고 다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고상한 기호와 훌륭한 외양이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을 즐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두 번째 원칙은 검소함입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적당함”(propriety)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 중의 하나는 알맞은”(decent)입니다. 의복이 지니고 있는 기능 중의 한 가지는 사람의 벌거벗은 몸을 가리는 것입니다. 적어도 처음에는 거기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의복은 인체의 많은 부분을 더 많이 노출하는 방향으로 고안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자기의 수치를 오히려 영화롭게 꾸미려 합니다. 경건치 않은 사람들이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을 모방하는 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검소함이 아름다움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깔끔하게 단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추하고 단정치 못한 것이 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Oswald Chambers)단정치 못한 것은 성령님께 대한 모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신자들의 복장은 깨끗하고 단정해야 하며, 검소하면서도 잘 어울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에게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옷차림은 피해야 합니다. 옷차림으로써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장식품으로서가 아니라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의 가지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모을 수 있습니다. 유행에서 벗어나는 옷차림이라 할지라도 단정하고 깨끗하게 입고 다니는 것도 그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상식에서 벗어날 정도의 괴상한 옷차림이나 누추한 옷차림은 피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들은(이것은 특히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옷차림은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점점 노출지향적인 추세로 나아가고 있는 의복문화에 대해 이미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설사 신체를 많이 드러내지 않는 옷을 입는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경건치 못한 욕심을 불러일으키도록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유행하는 옷들은 영적인 면을 장려하기 위해 고안된 옷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우리 시대의 성적인 강박관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건전치 못한 욕심을 품게 하거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방해가 되는 옷들을 입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조류를 거슬러 올라갈 때 엄청난 사회적인 압박이 성도들에게 가해지는 것이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은 어느 시대, 어느 성도들에게도 있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극단적인 유행을 따르지 아니하고, 세상적인 견해의 조류에 역행하며, 복음에 합당한 옷차림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면 모든 영역에 있어서 아름다운 덕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신자를 진실로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옷은 속 사람의 아름다움입니다. 베드로전서 3:4에서는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권면했습니다. 세련되게 매만진 머 리, 값진 진주, 그리고 값비싼 옷들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아름다움과 일시적인 아름다움의 생생한 대조를 통하여 베드로는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격려합니다.

F B. 마이어는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외모를 아름답게 장식하면서도 속사람은 누더기를 걸친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면에 겉으로는 비록 가난하게 보일지라도 내면적으로는 영광으로 빛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화를 값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의 썩지 않을 것으로 자신을 단장하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값진 보화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어떻게 단장했습니까? 구약성경의 경건한 여자들은 내면생활의 도덕적이고 영적인 아름다움을 배양함으로써 자신들을 단장했습니다(벧전 3:5). 이러한 아름다움의 일면은 남편에 대한 순복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했으며, 하나님을 중심에 모신 삶을 살았습니다.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기에 그들은 가정에서 그분이 세우신 질서를 인정했으며, 자기 남편들에게 순복했습니다. 걸치레의 꾸밈이 아닌 마음에 숨은 사람(속사람)을 단장했습니다.

사라는 이러한 면에 있어서 모범이 되는 여인이었습니다(벧전 3:6). 그녀는 자기 남편을 주라고 부르면서 아브라함에게 순종했습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창세기 18:12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말씀 속에서 우리는 사라가 마음속으로아브라함을 주라고 칭한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녀는 돌아다니면서 공해적으로 아브라함을 주라고 부르면서 자기가 남편에게 복종한다는 사실을 선전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면적인 삶 가운데 그를 자기의 머리로 인정했으며, 이러한 인식은 그녀의 행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났습니다.

사라의 본을 따르는 여인들은 그녀의 자녀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여인들은 자연적인 출생에 의한 사라의 후손들입니다. 하지만 가장 올바른 의미에서 그녀의 딸이 되기 위해서는 그녀의 개인적인 인격을 본받아야 합니다. 자녀들은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서로 닮은 점을 가지고 있게 마련입니다

그들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아내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대로 순종하고, 돕는 배필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며, 불신 남편의 합당치 못한 행동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더라도 그것이 생명의 위협이나 폭력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00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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