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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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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1. 11:37 횃불/ 2000년

모임의 진리(6)

놀만 크로포드 지음 / 김 우 락 옮김

성도의 특권과 책임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며 간증을 유지하는 것을 우리에게 맡겼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그분의 증거가 계속될 것을 약속받았습니다( 28:20). 하나님은 이 세상에 그분의 증거를 항상 드러내셨으며, 그것은 아담 때부터 현재까지 늘 증명되어 왔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매우 연약하고 적은 무리를 통해서 증거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속에 있느니라”( 17:27)라고 말씀하셨고, 그분을 중심으로 모인 갈릴리의 몇몇의 어부들에게 그분은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 모두가 증인이 되고 주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임의 간증과 관련해서 모임의 책임들을 점검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교회로서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시겠습니까?

 

모임의 책임사항-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한 간증의 집합체

우리는 집단적인 간증의 중요성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유일하신(탁월하신) 이름으로 공동 간증을 위해 모임의 중요한 진리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 중에서도 주 예수님의 구원과 보존의 능력으로 좋은 개인적 간증을 나타내는 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모임은 하나님의 교회라 불립니다(고전 1:2).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세상을 향해 그분의 간증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하고 작은 간증으로 인해 실망스러울지 모르나 하나님은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하시며”(고전 1:27)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여러 세대를 통해서 세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간증의 원칙입니다. 인간의 작고 연약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자기 만족을 주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겸손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3:15에는 모임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교회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 따로 모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임은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속으로 이끌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목회서신서는 모임은 신성한 질서와 규율을 가진 하나님의 집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집은 아름답게 가꿉니다.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주님 자신(16)이 그 가운데 계십니다. 다윗의 말과 같이 우리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27:4).

이렇게 그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집을 단장하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이에 합당한 행동도 필요합니다(딤전 3:15). 잘못된 행동을 막기 위한 부정적인 면보다는 바울은 거룩한 손을 들고 간구하는 제사장들의 기도와, 예배, 축복에 관한 바른 행위를 말하고 있습니다(딤전 2:8). 집은 역시 그 집을 돌볼 형제들도 없어야 하며 또 그 집의 특성을 나타내는 믿음도 있어야 합니다(딤전 3:1-13,16).

같은 문맥에서 모임은 진리의 기둥과 터”(15)라고 합니다. 진리의 터는 모든 맹공격하는 사탄이나 사람들에 대항하여 용기 있는 믿음의 방패로 설 수 있는 방파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둥은 4가지 간증원칙을 제시합니다.

(1) 모임은 어두운 세상에 빛의 증거를 높이 드는 기둥입니다

(2) 기둥이 건물을 받드는 것처럼 모임은 하나님의 진리를 받듭니다.

(3)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고자 사용하는 기둥들도 있습니다. 모임은 주 예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합니다.

(4) 기둥은 어떤 위대한 사람들의 승리를 기념하는데 사용합니다. 모임은 갈보리에서 죽으신 위대한 주님을 기념하며 주님이 오실 때까지 그분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입니다(고전 11:27).

디모데에게 보낸 바울의 첫 번째 편지인 디모데전서(목회서신)의 중요한 주제의 하나는 복음의 청지기입니다(딤전 1:11-17). 모임은 복음을 전하는데 항상 충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사도 바울은 모임에서 너는 말씀을 전하라”(딤후 4:2)라고 엄숙한 책임을 주었습니다. 이것들이 모임의 책임들입니다

 

모임 안에서의 책임들

어떤 질서를 위하여 모임에서 책임이 주어지는지, 다음의 9가지 주제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일치(단합)의 유지

모임에 관한 독특한 서신인 고린도전서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일체성(단합)입니다. 이것은 모일 때에 그리스도의 주님 되심을 강조합니다. “같은 주라는 표현에 주목하십시오(고전 1:2, 12:5). “주 안에서라는 말이 10번이나 사용되었으며, 특별히 이 서신서에는 함께 모일 때에 그리스도의 주님 되심을 인정하는 문맥으로 쓰여졌습니다.

 

(a) 주의 이름과 주님에 대한 우리의 감사(1:1,2, 5:4).

(b) 주님의 다시 오심과 우리의 소망(1:7, 51-58).

(c) 주의 상과 그 상으로의 우리의 분리(10:16-21)

(d) 주님의 만찬과 우리의 기념(11:20-27).

(e) 주님의 죽으심과 우리의 선포(11:27).

(f) 주님의 명령과 우리의 순종(14:37).

(g) 주의 일과 주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의 임무(15:58).

 

모임의 하나됨은 신분적인 진리입니다. 하나됨의 기본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우신 피로 산 바 된 모임입니다(10:16). 그러나 우리는 실제적인 행위로 하나됨을 유지해야 하는 중대한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잘못이나 악을 타협하는 것은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3)는 말씀에 위배됩니다. 우리가 모일 때 그리스도의 주님 되심을 인정하고 주님의 명령을 순종함으로써(고전 14:37) 진리의 하나됨이 가능한 것입니다. 형제 사랑이라는 빌라델비아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됨을 볼 수 있었으며, 우리의 하나됨도 서로 사랑을 드러내며 기도로 서로 돌보고 친절한 행동을 통하여 비로소 나타납니다. 고린도 교회의 분쟁은 시기심 때문에 나타났던 것입니다(고전 3:4-8).

하나라는 단어는 고린도후서 6:14-1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제는 특권과 책임을 함께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함께 함은 하나됨을 기뻐하는 것이며, “일치는 함께 외치는 것이며 그 반대는 불일치입니다. “동의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나로 순종하며 한 마음과 한 생각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2) 순수성의 유지

고린도 교회에 주어진 두 번째로 중요한 진리는 도덕적인 의와 순수함입니다(고전 3:16-17, 5:1-13). 모임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곳이며 그분의 임재로 인하여 그 곳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인 것입니다. 그곳은 도덕적인 불결이나 거짓 가르침에 의해서 손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성전을 손상시킬 경우에는 그 사람은 하나님이 멸하시리라고 엄중한 말씀을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서 말하는 범죄한 사람은 그의 죄로 모임에 손상을 입혔습니다. 그는 악한 자로 모임에서 쫓겨났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모임은 더럽힘에서 깨끗하여졌습니다. 그 사람이 쫓겨난 것은 음행이나 죄의 행위 때문입니다(5:2,3). 모임은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임에 대한 그 사람의 태도가 잘못되었을 때 그 더럽힘으로부터 깨끗하게 하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이것은 범죄한 자를 처벌하는 것이지만 그 처벌은 거룩과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 고린도전서 5장의 범죄한 사람은 나중에 회복되었습니다(고후 2:6-11).

 

(3) 단순함의 유지

단순함과 영적인 성실함은 놀라운 예방책입니다(고전 3:18-23, 고후 1:12). 하나님의 교회는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집(모임)에 들어올 때 그분은 질투의 하나님(고후 11:2)이심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분열된 마음이나, 동기가 불성실한 마음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판단되어져야 합니다(고후 10:22).

육신의 나타남은 모임 내에서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모임을 망치는 길은 우리의 육신의 행위로 충분합니다. 육신과 육신적인 행위는 정죄되어져야 하며, 밝혀져야 하며, 거부되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또한 인간의 재능을 나타내는 단순한 어떤 것도 잘못된 것임을 말합니다.

모임에는 여흥(오락)을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모임의 매력은 육신적인 것이 아니라 주님의 아름다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행위에도 죄, 즉 자백하고 판단을 받아야 할 성물에 대한 죄건이 있음을 자백합니다( 28:38).

 

(4) 동등한 책임

말씀에는 특권을 누리는 것과 책임을 맡는 일에 잘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교제하며····전혀 힘쓰니라”( 2:42)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은 모임에서 모든 믿는 자들이 동등하게 책임을 지는 일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로마서 12:6-11의 가르침은 모든 믿는 자들이 봉사할 수 있습니다. 어떤 봉사가 주어졌든지 우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7). 발과 손, , 귀들이 봉사에 필요하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은 우리의 몸과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라(1)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우리의 책임을, 서로에 대하여(4), 모임에 대하여(6-11), 또 세상에 대하여(14-21), 권세에 대하여(13:1-7), 그리고 이웃에게 대하여(13:8-21) 점진적으로 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모임에서의 책임은 우리가 하는 외적인 봉사 이상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상태에 있어서 모임에 보탬이 될 수도 있고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1:1에서는 예배드리는 자들의 무게를 달고 치수를 재는 하나님의 측량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이나 삶을 살피지 않는다면 모임의 예배와 능력을 감소시킬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징계를 가져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성도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줄 것입니다(고전 11:27-32). 옳은 영적 상태는 주님께 예배드릴 때 더 많은 향기를 드립니다.

나는 어떤 성도들이 그는 모임에 단지 참석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이것은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작은 일로 들리지만 그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모든 믿는 자의 온 마음이 일치되어야만 교제가 되듯이 모임의 모든 집회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가피한 사정을 제외하고는 집회에 꼭 참석해야 합니다( 10:25). “모이기를 힘쓰는데대한 진리는 그냥 집회에 참석하는 것보다도 더 깊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중심으로 하여 모이고, 주님이 그 중심인 것을 아는 것은 가능한 한 모임의 모든 집회에 참석할 때만이 순종할 수 있습니다.

 

(5) 주권을 나타내심

모임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처소입니다(고전 3:16). 그분은 모임을 주권적으로 관리하십니다. 인간의 조직은 가끔 성령님의 역사를 막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지 않을 때 그분의 역사를 소멸할 수도 있습니다. 그분의 인도는 몽롱한 감정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단순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18성령의 충만은 골로새서 3:16에서 우리 안에 풍성하게 거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감으로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말합니다. 우리는 모임 안에서 통치하시는 성령님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모임에서 장로들을 세우시며, 그들을 통해 모임을 목회하고 양육하고 인도하십니다. 모임의 관리에서 성령님의 역사를 인정하는 것은 성령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복음을 전하는데 권능을 부여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마음들을 준비시키십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죄를 뉘우치게 하고 깨닫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태초에 성령님에 의해서 하신 것과 같이 어두운 곳에서 빛이 비추라고 명령하시고 계심이 분명합니다(고후 4:6)

제사장들의 역할을 조정하는 것도 모임 내에서 성령님이 하시는 독특한 역사입니다. 성령님은 왕 같은 거룩한 제사장인 성도들의 기도와 예배를 인도하시고 주관하시고 조정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하심이며, 하나님께서 조정하시는 집회의 질서는 주 예수님께 능력과 존귀와 영광을 드립니다(벧전 2:5-11, 16:14).

 

(6) 자유함이 주어짐

성령님은 복음전도자와 목회자들과 교사 등의 은사를 사용하시며 그들의 활동을 조절하십니다( 4:8-13, 고전 12:4-11, 14:26-36). 또 성령님은 그분의 조정 아래서 덕을 세우도록 권면하며 성도들을 위로하시고 동시에 은사들을 북돋아 주십니다. 모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범위 내에서 은사의 자유로운 활용을 허락합니다. 그 모든 은사들은 목회자와 교사와 복음 전도자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적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2:8-10은 은사들을 주면서 다른 이에게라고 표현된 것이 7번이나 사용되어졌습니다. 은사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며 공적인 지위 때문에 나타나는 역할이 아닙니다. 우리는 경건과 은혜와 은사는 인정하지만 그것은 직위가 아닙니다. 공적인 직책은 모임의 질서의 일부분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모임에서 은사들의 부족으로 성도들에게 별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너희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전 12:31)는 권면의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임 내에 은사들을 일으켜 세우실 것을 더욱 사모해야 합니다. 이것은 내 개인을 위한 은사의 사모함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은사를 주셨다면 네 속에 있는 은사를조심 없이 말며”(딤전 4:14)라는 말씀을 확실히 하십시오. 부지런하고 경건한 은사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딤후 1:6) 근면함은 은사의 사용에 있어 중요한 부분입니다.

은사의 사용에 자유함이 있다면 양떼들은 양육되어질 것입니다.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는 때에 따라 옳은 음식을 나누어줄 것입니다( 12:42). 하나님의 백성이 양육을 받지 못할 때 그것은 비극입니다( 20:28).

 

(7) 권위를 나타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하여 하늘에 있는 정사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리는 것( 3:10-11)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모임을 통해, 하나님은 그분의 아드님을 만물 위에 세우셔서 영원토록 우주의 머리되게 하셨음을 사람들과 천사들에게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고전 11:2-16). 자매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며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은 모든 천체만상에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모든 것들의 머리”( 1:22)로 세우셨습니다. 모임은 주님을 거절한 이 세상에서 그분을 높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만물 위에 절대적인 머리가 되심을 고백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자매들의 긴 머리는 주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순종의 표시입니다. 그들은 또한 머리에 너울을 쓰므로 머리되신 주님의 중요한 진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2-16 사이에 두 가지 쓰는 것너희들이 함께 모일 때”(16,18,20,33) 행하여지는 것입니다. 너울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열쇠는 3절에 있으며 너울을 쓰는 영적인 의미는4-16절 사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6절에서는 두 가지 쓰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너울을 머리 위에 쓰는 것(6)이며 긴 머리는 머리를 두루 가리우는 것입니다(15).

많은 사람들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14:34에서와는 달리 고린도전서 11장에서는 예언이나 기도를 자매들에게는 금하지 않고 있다고 질문을 합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4장에서는 모임에서 자매들이 말하는 것을 분명히 금했습니다. 이 문제의 가장 좋은 설명은 질서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의 주제는 머리되심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의 주제는 덕을 세우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자매가 고린도 교회에서 공적으로 이야기했습니까?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모임 내에서 무질서한 행동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11:20-22). 한 형제가 공적으로 말할 때 그는 모임을 대표하여 제사장직을 수행하는 것이며 모임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매들은 너울을 쓰는 것이 합당합니다.

(8) 영적인 것을 드림

목회서신인 디모데전서의 주제는 개인의 성결입니다. 모임은 다만 성결과 영적인 것으로 형성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37에서 영적인 상태에 관한 진정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라고 말했습니다. 이 목회서신서의 모든 가르침은 주의 명령이라는 한 단어로 쓸 수 있겠습니다. 영적 상태는 말씀에 순종하는 정도에 의해서 측정이 됩니다. 참된 영적인 성장과, 그의 믿는 동료와 주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요일 5:2)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으로서 증명이 됩니다.

 

(9) 자원 봉사

주님께 하는 우리의 봉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성도들을 섬기는 봉사의 교제는 마케도니아 성도들이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 8:4-5)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봉사에 대한 가장 위대한 모형은 우리 주 예수님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고후 8:9).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 우리의 찬양, 물질, 그리고 우리의 봉사는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12:1).

나는 헌금에 대하여 모임에서 구걸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매 주일 첫날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고전 16:2). <다음 호에 계속>

 

2000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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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