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5. 3. 11. 12:20 횃불/ 2000년

인생 - 에덴에서 쫓겨나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3:24).

  범죄한 인생들을 하나님은 에덴에서 쫓아 내셨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하나님은 사랑이 없는 것 아니냐? 왜 인생들을 에덴에서 쫓아내 고생하게 하시느냐고 하였다.

언뜻 보기에 인생이 에덴에서 쫓겨난 것은 하나님이 무정한 분으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어느 때나 변함없이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인생들을 에덴에서 쫓아내심도 사랑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쫓아내신 이유는 2가지가 있다.

 

  첫째는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생할까하는 이유이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우심을 한껏 경험하며 진실로 행복한 나날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적어도 선악과 사건 이전에는 그랬다. 그 때는 하나님의 선만 알고 있었으며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오는 악의 열매를 경험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아담이 경험한 죄악의 대가는 냉혹한 것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심한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들은 나무 사이에 숨었다.

  범죄 이전에 하나님을 대하던 기쁨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무섭고 두려우며 떨림만 그들 마음속에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자신의 헛된 욕심으로 죄의 수렁에 빠진 아담의 절망감은 어떠했겠는가!

  아름다운 동산을 주셨고 맛있는 열매를 거저 주셔서 땀 흘리는 수고함이 없이 살게 하셨고 그 모든 것들의 이름을 지으며 다스리게 하셨는데 이는 실로 놀랍고도 놀라운 축복인 것이다. 아담은 한 번 실수로 이 모든 영광을 잃어버렸다. 이제 그는 그의 양심에서부터 평안을 잃었다.

  오늘날 인류의 마음에 참된 평안과 기쁨이 없는 것은 이 사건으로부터 기인한다.

  아담의 마음은 불안하였으며, 아담의 마음은 슬펐으며, 아담의 마음은 허무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나마 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므로 약간의 위로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불행이 찾아온 아담이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원히 죽지 않는다면 그것은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일이 되겠는가!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인생을 사랑하시는데 왜 생명나무를 못 따먹게 했느냐고 필자에게 항변했다.

  필자는 말하기를 만약 내가 당신을 200살까지 살게 해줄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당신이 병으로 고통을 당하며, 통증으로 인하여 출입을 못하는 상태로 200살까지 살게 해준다면 그렇게 하겠는가물으니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이해가 되는 모양이었다.

  죄 속에 갇힌, 즉 죄의 영향력 속에 들어간 인생이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고 영생한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뿐이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을 닮은 인간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독자가 지혜롭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히 따르기를 바란다.

생명나무의 길을 지킴으로 생명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못하게 하심은 하나님이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선택하신 일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근본 된 토지를 갈고 농사를 지음으로 정신적, 육체적 고생을 경험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범죄 이전에 그는 수고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었다. 그는 고뇌와 번뇌, 그리고 땀흘릴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한 아담이 땀흘려 일하며 하나님을 거역한 죄에 대하여 뼈저리게 체험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육체적 고통이 사람의 마음에 가장 깊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왜 이 일을 허락하셨는가? 아담을 비롯하여 인류 모두가 고난과 고생을 통하여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고귀하고 거룩한 뜻이 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이 고통 속에서 부르짖으며 하나님 말씀에 눈물로 회개하여 돌이킬 때 온전한 회복이 있는 것이다. 시집간 여자가 시집가서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셨던 주님께서는 그대로 방치해 두셨는가? 아니다. 그로부터 수 천년 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돌아갈 길을 예비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시고 죄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은 에덴에서 쫓겨난 인생들이 돌아올 길을 어떻게 만드셨는가?

이 일을 예수께서 직접 선언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4:6).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되어 쫓겨난 인생들의 더러운 모든 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다 씻어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다 선언하셨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0:10).

이 십자가의 길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새롭고 산 길이다.

성경은 죄인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오는 일로 비유하여 가르치고 있다( 15:11, 103:13,14).

탕자 이야기를 어느 날 강단에서 필자가 전했는데 그날 말씀을 들은 어떤 형제가 자기 체험담을 들려주었다.

 

  돼지를 팔아서 소를 사기 위해 장롱에 감추어둔 돈 얼마를 훔쳐 가지고 서울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단다. 팔짝 팔짝 뛰면서 노발대발하실 아버지를 생각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낙심에 빠져 상심하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죄송한 마음으로 먼 시간을 달려 서울역에 도착했다. 기대에 부푼 서울의 첫 인상은 여지없이 구겨지고 말았다. 몇 발자국 나가지 못하여 불량배들에게 돈을 다 털리고 말았던 것이다. 파출소에서 집에 돌아갈 표를 구해주었으나 기차를 타고 내려오다가 수원에서 내려 다시 올라가기를 몇 차례 거듭하여 겨우 서울 시내로 나올 수 있었다.

  일주일 동안 돌아다니면서 굶기도 하고 먹기도 하며 지내는데 기막힐 고생을 다하였다. 허름한 창고에서 자기도 하고 담벽 밑에서 자기도 하였다. 직장을 알아보려 하니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 얼굴 그리면서 울기도 하고, 부모 사랑이 무엇인가도 생각하여 보았다. 확실히 같이 살 때는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도 못해 보았다. 며칠을 굶다시피 하여 거지행세를 하는데 때때로 사람의 동정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힘은 점점 떨어지고 몸은 야위어 가고 있었다. 불량배들에게 두들겨 맞기도 여러 차례 하였다. 일주일을 견디고 어느 길을 가다가 거울을 보게 되었다. 자신의 얼굴을 보는 순간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었다. 결론은 계속 이대로 지내면 굶어죽고 집에 가면 아버지에게 맞아죽는구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 생각하니 굶어 죽는 것보다 집에 가서 맞아 죽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고 판단이 되었다.

  파출소에 가서 표 한 장을 얻어 고향을 향했다. 마을 어귀 산마루에서 동네를 바라보니 도저히 더 이상 발이 떨어지지 않아 하루종일 쳐다만 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왕래를 바라보면서 삼촌이며 당숙이며 조카들이 왔다갔다하는 것이 보이고 심지어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니, 아버지나 눈앞에 보이는 데도 마을로 내려가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배는 고프고 정신은 혼미해져 갔다. 밤이 깊어 가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용기를 내어 마을 길을 거쳐 사립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는데 어떻게 아셨는지 어머니가 뛰어나오시며 “00하고 이름을 부르시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필시 밤새도록 주무시지도 못하고 기다리셨음에 틀림없었다.

  어느새 뜨거운 국에 밥상이 차려져 나왔다. 마루에 걸터앉아 밥상을 받았다. 실로 얼마만에 받아본 사람 대접인가. 막 수저를 들려는데 밤이 늦도록 놀다 들어오시는지 아버지께서 대문을 들어서셨다.

  죽을 각오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분위기가 조용하였다. 이상하였다. 아버지는 울고 계신 것 같았다.  한참만에 들린 아버지의 한마디는 이 탕자의 마음을 산산이 부숴 놓고 말았다.

어디서 밥이나 먹고 다녔느냐?”

그 염려 섞인 말씀 한 마디 남기고 밖으로 나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는 진정 아버지가 누구인가, 부모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났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자신도 부족한 죄인인 인간도 자기 아들을 아꼈지 아니한가. 돈 훔쳐 도망친 죄는 다 용서하고 잊어버리고, “어디서 밥이나 먹고 다녔는가에 관심이 있었지 아니한가. 하물며 인간의 창조자이시며 인간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기다리고 계시겠는가. 인간이 자기 속으로 난 자식을 그렇게 아끼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파멸의 길을 향하여 가고 있음에랴. 영원한 멸망의 지옥으로 가고 있는 인생들을 하나님이 어찌 아끼지 아니하시랴.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에서 쫓겨난 인생에게 임한 불행은 결코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나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인간의 돌아올 길을 예비하시고 돌아오기를 날마다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이사야 L:2).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시편 103:13).

 

2000 4월호

 

'횃불 > 2000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룻기를 통해 배우는 교훈  (0) 2015.03.11
비밀의 계시  (0) 2015.03.11
천사들(Angels)(1)  (0) 2015.03.11
모임의 진리(7)  (0) 2015.03.11
여호수아 강해(2)  (0) 2015.03.11
자세히 묻고 살펴보아서  (0) 2015.03.11
모임의 진리(6)  (0) 2015.03.11
영원한 구원(15)  (0) 2015.03.11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