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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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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신실한 헌신

-당신들의 예배장소는 어디입니까?-

 

그리스도인이 이웃을 지역교회 집회에 초청할 때, 자주 , 나는 나의 예배할 곳이 따로 있다라는 반응을 듣는다. 이 장의 목적은 참되고 성경적인 예배 장소가 어디냐? 에 대하여 성경을 통해 대답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종교적인 세계에서 소위 예배장소라는 것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것들 안에 들어갈 때마다 건물의 다양한 특징을 보게 된다. 그 때 성소(거룩한 곳)를 보기 원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제단과 그러한 장소들을 특징짓는 다른 종교적인 상징들이 놓여 있는 큰 강당으로 안내된다. 그러한 예배장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며, 그것들이 이 땅에 있는 거룩한 장소들이며,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성소라고 믿는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이 있다.

하나님은 땅 위에 성소를 가지고 계셨다. 히브리서 9 1절은 우리들에게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가졌던 성막에 대하여 말한다(2). 그 모형은 하나님께로부터 모세에게 주어졌으며(3:2-5), 그것은 참 하늘에 있는 성소의 모형이었다(9:23-24). 그것은 도덕적으로 나쁜 의미에서가 아니고 물리적인 의미에서 그저 세상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으로부터 나온 물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9:11). 또한 그것은 하나님에 의하여 택하여진 물질들이었다. 모든 못, 기둥, 널판, 다는 것, 덮는 것, 그릇과 성막에 있는 기구의 조각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아름다움의 모형이었다. 모든 봉사와 의식들 역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모형이었다. 그것은 놀라운 비유로 하늘적인 의미를 가진 세상에 있는 이야기였다. 히브리서 9 9절은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라고 말한다.

구약에는 성막보다 더 세상에서 가치가 있고 더 시선을 끄는 또 다른 땅에 속한 성소가 있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지었는데, 이 성전의 양식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셨고, 다윗이 다시 솔로몬에게 주었다. 그 안에 쓰인 금과 은은, 1984년 당시 미국 화폐로 485억 달러가 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있는 히브리 학자들의 최근 평가이다. 이 아름다운 성전은 유다가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갈 때 파괴되었다. 그 후 스룹바벨 아래에서 돌아온 잔존자들에 의해 재건되었으나, 그 이전 영광을 따른 것이 아니었다(학개 2:3). 사람들 가운데 주님이 계셨을 때, 주 예수 그리스도는 비록 그것이 헤롯에 의하여 개축되었을지라도 그 성전을 내 아버지 집이라고 부르셨다.

미래에 또한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을 것이다. 지상에서 천년 동안, 에스겔 41-44장에서 언급된 성전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 땅에 속한 다섯 번째 성소가 된다. 그러나 질문은 오늘날 우리들이 예배드릴 곳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성소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에서 발견되는 가장 위대한 진리 중의 하나는 세상에 있는 성소가 교체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9장과 10장의 진리는 세상에 속한 성소가 연계되어 있는 전체적인 체제가 폐하여졌다는 것이다. 구약은 히브리서에서 온전케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리의 대략적인 스케치로서 보여진다····(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7:19). 구약의 섭리가 신약에 비교되어, 이 서신서 안에서 종종 더 좋은, 더 큰, 더 높은 이라는 말들이 나타난다. 이것들은 비교어들이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신약의 계시를 구약에 비교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비시키고 있다. 영원한 이라는 말은 비교가 아니며, 히브리서의 중심어 중의 하나이다. 그리스도 안에 결말이 있고, 구약의 스케치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그림이 되었다.

옛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을 갖고 있었는데, 히브리서 9장에 기술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번 속죄 일에 휘장을 통과하여 지성소에 들어갔는데, 피 없이는 들어가지 않았다(9:2-8). 우리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연 더 좋은 소망이 생겼다는 것은 이미 인용된 구절(7:19)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9장이 놓여진 전체 문맥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성소로 들어가는 새로운 길이 있는데, 그것이 같은 휘장과 같은 성소일까? 그 대답은 간단히 아니다이다.

이것이 9장의 주제이다. (세상에 속한) 성소는 하나님을 섬기는 규례들을 가지고 있다. 성막과 관련된 것들은 금, , , 청색, 자색, 홍색, 가늘게 꼰 베실과 영광과 아름다운 옷들이다. 아주 귀한 보석들, 진설병, , , 금 촛대, 곱게 빻은 향, 놋과 금으로 된 제단들, 놋 대야가 있었다. 수소와 염소, 송아지와 양과 새들의 피가 있었다. 붉은 암소의 재와 은나팔과 수양의 뿔들과 소고와 제금과 수금이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장래 올 것의 그림자들이었다. 이 모든 체제들은 폐하여졌고, 현재까지의 비유였다(9:9). 그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들이지만, 나아오는 자들을 온전케 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개혁할 때까지만(10)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히브리서를 통하여 성령이 보인 핵심이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로 대체됨으로써 제하여졌다. 9 11절은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았다고 강조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세상에 있는 성소보다 더 큰 장막과 관련된다. 그리스도의 제사장으로서 봉사는 물질적인 성소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9:24)셨기 때문이다.

10장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았던 휘장을 기술함으로써 이 대주제를 나타낸다. 그것은 제한하는 휘장이었으며, 지금 열려 있는 길과 대비되어 나타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10:19-22). 이로써 제한적인 휘장은 없어졌으며, 그 길은 놀라운 우리 주님의 죽음으로 지금 열려있다. 우리는 도구로써 저의 육체라는 말을 이해해야 하는데, 휘장이 그의 육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육체 가운데서 참으신 고난을 통하여 우리들이 하늘에 있는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우리들이 들어가는 지성소는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속죄일에 들어가는 장소와 같은 장소일까? 분명히 아니며, 그것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영적인 성소이며, 거기서 우리들의 영적인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보좌 바로 앞에서 온전하게 섬기신다.

우리들의 예배장소가 어디냐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무엇인가?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일년에 한번이 아니라 늘 우리들을 환영하는 가운데, 확신을 가지고 참 성소에 들어간다. 육체 가운데서 그리스도는 하늘들을 지나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셨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영적인 하늘에 있는 성소에 들어갈 권리가 있으며, 땅에 있는 성소가 폐하여진 이상(9:14) 그 곳이 영적인 예배의 유일한 장소이다. 914절에서 섬기게라는 말은 예배를 말한다.

이 모든 가르침은 우리들에게 매우 실제적인 가르침이다. 기독교계 안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는, 제단, 촛불, 아름다운 휘장, 종교적인 복장을 한 제사장, 감동을 주는 음악과 의식과 땅에 있는 성소와 관련된 형식을 가진 세상에 있는 성소라고 말하는 장소가 많이 있으나, 그것들은 단지 그림자이다. 이방세계(2:12)와 결혼한 슬픈 시대에서 온 기독교계는 그림자로 돌아갔다. 우리들이 땅에 있는 성소의 사상에서 회복하기 위한 시도를 어느 정도 하고 있으나, 우리들은 유대주의의 그림자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것은 이방세계 종교와 유대교를 혼합한 경우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율법의 모든 그림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디서 예배를 드리는가? 집단적인 의미에서의 영적인 예배는 하나님께 매우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 우리들의 예배장소는 이 땅에 없다 우리들은, 이것이 우리들의 예배장소이다라고 말할 세상에 있는 성전, 성막, 감실, 성소, 교회, 예배당, , 오두막을 가질 수 없다. 건물이라 부르는 것은 어느 것이나 예배의 성소로 만들 수 없다. 이전에 땅에서 우리들이 성소라고 할 것 같은 어떤 이름도 건물에 붙이지 않으려고 매우 주의하게 한 것이 이 위대한 진리에 대한 확신이었다. 많은 선의의 믿는 자들에 의하여 사용된 예배당(chapel)은 세상에 있는 성소를 의미한다. 영국에서 보통 가톨릭이 그들의 종교적인 활동을 하기 위하여 모이는 건물에 주어진 이름이다. 거기에는 제단들, 제사장, 조각 상들과 촛대들이 있다. 당신은 단지 기교적인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역교회가 모이는 장소와 관련되는 모든 것은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우리들의 증거이며,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우리들의 증거를 이룸에 있어 아무리 주의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어쨌든 우리들이 그림자로 되돌아가는 것은 위대한 실체와 실체이신 주님 자신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이다. 그림자로 돌아가지 말자. 현대 예배에서 그렇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음악봉사 역시 그 그림자들 중의 하나이다.

이것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주님의 것 안에서 주 예수의 실제적인 임재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이 책의 4장을 다시 읽을 것을 제안한다. 주님 자신이 주님 자신의 것 가운데서 자신의 위치를 취하셨는데, 우리들이 예배에서 주님의 임 재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들은 휘장 안에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에서 저자는 이 진리들을 질서정연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 점에서(10), 저자는 세상에 있는 성소는 폐하여졌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영적인 성소에 들어가는 것을 보였다. 이 모든 것들은 지역교회와 관련된다. 주님은 믿는 자들을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10:23-25)라고 권면하신다.

히브리서 10 25절에는 네 가지의 분명한 진리들이 있다. 먼저, 그것은 지역교회에 대한 서술이다. 모이기라는 정확한 표현도 여기와 데살로니가후서 2 1절에서만 발견된다. 이 나중 구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은 공중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위에 복된 미래의 모임을 약속한다. 오늘 그 앞에 모이는 것인가? 그렇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구절은 현재 그 앞에 모이는 것을 기술한다. 당신은 그 앞에라는 말씀이 히브리서 10 25절에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아직 그의 주제를 끝내지 않았다.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13:13)라는 말로 끝맺는다. 영어에서 이 표현에 다가가는 가장 가까운 생각은 진앙지라는 말 속에 있다. 그것은 보통 지진에서 땅의 갈라짐을 느낀 힘의 바로 그 중심으로서 땅 표면에 있는 점에 대하여 사용된다. 그러나 그것은 글자 그대로 초점 혹은 중심점을 의미한다. 주 예수님은 지역교회 모임의 초점과 중심점이다. 그것은 실로 모임의 중심으로서 그 앞에 함께 모이는 것이다.

히브리서 10 25절에서 가르치는 두 번째 사실은 모임의 중심으로부터 떠나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저자가 배교에 대하여 직접 말하고 있는 것으로 곧 이어진다. 26절은 이것을 매우 분명히 한다. 참된 믿는 자는 배교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모임의 중심에서 이탈하는 것은 배교 행위를 본받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가르치는 셋째와 넷째 사실은, 믿는 자들은 교제와 도움과 상호 격려에서 서로 간에 의존되어 있으며, 그것은 주님께서 오시는 날이라는 관점에 모두 들어 있다.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이 진리들은 특히 공격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너무 귀하며, 우리들이 그것을 유지하려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히브리서의 장들의 마감에서 이 가르침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의 일반적인 가르침을 지나쳐 나갔는가?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하려고 할 때, 균형잡힌 언급의 원칙을 강하게 믿는다. 이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신약성경 전체를 통하여 가르치지 않았는가? 이에 간단한 대답은, 이것은 신약성경의 완전히 새로운 것이며, 이것들은 그 페이지들을 통하여 강조된 바로 그것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이 여기서 가르친 것은 주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4장에서 그 여인에게 가르치셨다. 우리들은 기쁨으로 충성되고 참된 증거가 죄인인 한 여인이 자신을 보고 그리고 나서 차츰차츰 주님 자신과의 관계로 인도하는 것을 본다. 구도하는 죄인은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주님 자신의 지식으로 인도 받았고, 우리는 그녀가 머뭇거리며,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이 시점에서 은혜로우신 주님은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라고 하셨다.

주 예수께서 모든 성경에서 발견되는 영적인 예배에 관한 가장 높은 진리 중 얼마를 나타내신 것이 이 구원 받은 영혼에게 하신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조상들이 예배한 곳으로 그리심산에 대하여 언급했다. 주 예수님은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4:21)라고 하셨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서 있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첫 지역교회는 예루살렘에서 모였을 것이며, 처음 떼는 떡도 거기서 떼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예배드릴 곳은 예루살렘이 아니었다. 그럼 어디서? 영적인 성소에서.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4:23-24). 진리는 매우 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 구원 받은 영혼의 사로잡힘 안에 있다.

세상에 있는 이스라엘의 성소는 그리스도의 그림자였다. 그것은 불완전했으며, 장차 올 위대한 실체에 대한 그림자에 불과했다. 그것과 관련된 모든 것은 땅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땅에 있는 재료였다. 그것은 땅과 관련된 아름다움과 영광이었다. 또한 그것은 눈, , 냄새 맡는 것과 만지는 것에 흥미를 끄는 것이었으나, 그리스도가 오셨으므로 그 모든 것은 폐하여졌다. 우리들은 지금 확신을 가지고, 세상에 있는 것들이 참된 것에 대하여 말한 참된 영적인 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들은, 일시적인 도움 또는 형식을 떠나서, 신령과 진정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예배한다. 신약의 제사장으로서 우리들은 휘장 안으로 들어가며, 하나님께 영적인 예배를 드릴 참된 영적인 성소에 들어간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13:15).

신약성경 제사장의 영적인 예배에 관하여 우리들이 쓴 모든 것에서, 우리들은 땅에서 나온 것은 아무것도 영적인 예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강조했으나, 적어도 지역교회의 실행에 있어서 그 성질상 물리적인 다섯 가지 요소들이 있다. 처음 두 가지는 머리되심과 관련이 있다. 분명히 긴 머리와 자매들의 머리에 있는 너울은 물리적인 요소들이다(고전 11:1-16). 세 번째는 침례와 관련된다. 물이 물리적인 요소라는 것은 분명하다. 나머지 두 가지는 떡 뗌과 관련된다. 왜냐하면 떡과 잔 또한 물리적인 것이다. 머리(카락), 너울, , 떡 그리고 포도주가 영적인 예배에 보조자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이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물리적인 것들에 대한 중요한 점은 주님 자신에 의하여 택하여진 것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계획이며, 교회들의 주님으로서 분명하게 그분 자신의 주권을 행사할 권리를 가지신다. 주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권위가 없는 것들을 사람들이 소개할 때 그것은 얼마나 다른가! 주님으로부터 택하여진 이 물리적인 요소들 안에서 조차도, 우리들은 유대주의의 형식 및 의식과 큰 대조를 가지고 있다. 긴 머리, 너울, , 떡과 포도주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일반적인 요소들이며, 주님께서 그것들을 정하셨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주님의 규례들이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