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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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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14. 17:29 A.J. 히긴스

베드로전서 1

A.J. 히긴스

벧전 1:1-25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베드로서 전체 개요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서신서를 기록한 저자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이 서신서의 저자입니다. 그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권위를 생각합니다. 이 서신서를 보게 될 때 베드로의 개인적인 삶을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베드로가 주님과 세 번에 걸친 그만의 특별한 경험을 아실 것입니다. 한 번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부르시고 야이로의 딸을 다시 살려내십니다. 또 그들을 겟세마네 동산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그들을 변화산에 데리고 가십니다. 이 세 번에 걸쳐 <생명> <고난> <영광>이 이 서신서에 나타납니다.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고"

그리고 고난과 영광을 거듭 언급합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에 걸쳐 "내 양을 치고 내 양을 먹이라" 격려하셨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 약속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실수에서 돌이킨 후에 형제들을 굳게 하라" 하셨습니다.

이제 돌이킨 후에 베드로는 베드로서에서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을 먹이고 양들을 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서신서를 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보겠습니다. 독자들의 환경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흩어진 나그네"라 불립니다. 우리는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나그네 독자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주님과 어떤 관계인지 보게 됩니다. 그들은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불립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의 책임을 베드로는 말합니다. 고난받고 있는 그들은 흩어진 자들이며 나그네입니다. 그리고 양들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서의 독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서신서 전체를 볼 때 <은혜>라는 단어가 열 번에 걸쳐 사용 된 것을 보게 됩니다. 5장에 그것이 나옵니다. 바벨론이라는 단어는 오직 한 번 기록 됩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벧전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이 하나님에 대한 이름은 유일하게 여기서 기록됩니다. 이 서신서는 은혜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열 번에 걸쳐 고난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 고난을 받는 자들에게 베드로는 서신서를 씁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신다고 베드로는 서신서를 통해 격려합니다. 그들을 위해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먼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위치>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님께서 받으신 <고난의 본>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 놓인 <위대한 전망>에 대해 말합니다. 그들의 놀라운 신분은 <구원>입니다. 그들의 본은 <위대하신 구원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 앞에 놓인 위대한 전망은 <위대한 영광>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다른 말씀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난은 욥기를 통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수기에 대해 몇 가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광야를 통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2장에서 나옵니다. <나그네> <외인들>. 민수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나그네 된 삶을 기록한 책입니다. 또한 다니엘서와도 연결 됩니다. 4장에서 불시험을 받은 세 사람이 나옵니다. 젊은 히브리 사람들은 불시험을 받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은 <울부짖는 사자>에 대해 말합니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벧전 4:3)

3절에서 음란, 정욕, 술취함, 방탕, 연락, 우상숭배가 나옵니다. 바벨론 왕의 연회도 이와같이 방탕했습니다. 다니엘의 이름은 "나의 하나님이 심판하신다"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에서 하나님이 심판자라고 말합니다. 다니엘서와 많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에서 그는 "바벨론에서 쓰고 있다" 말합니다.

우리는 2장에서 "사욕을 좇지 말라"는 말씀을 봅니다. 이것은 다니엘이 보여줬던 본입니다. 이 서신서의 전개는 여러 방식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각 장에서 중요한 부분을 말씀 드리고 나눠보겠습니다.

 

1장은 <우리가 소유한 구원>을 말합니다. 2장은 <영적인 진보>에 대해 말합니다. 이 놀라운 구원을 소유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영적인 진보를 원하십니다. 3장에서는 <복종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우선순위>를 다룹니다. 4장은 <고난과 인내>를 더욱 특별히 말합니다. 5장은 <우리의 섬김과 행함>에 대해 말합니다. 이 서신서의 배경으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을 볼 수 있습니다. 1-2장의 전반부가 그렇습니다. 어린 양으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사람들에 대해 말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의 허리를 동일 필요성을 듣습니다. 2장 초반부는 우리의 영적인 식량에 대해 말합니다. 그들은 택하심을 받았고 기업을 향해 가며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 갑니다. 이 모든 것들이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2장 후반부부터 4장까지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들은 나그네요 행인이었으며 전투가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 항상 언약궤가 앞서서 나아갔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고난을 받아 앞서 가셨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4장 후반부부터 5장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준비를 말합니다.

또한 베드로서는 사도바울이 에베소서를 기록한 것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우선 차이점은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로 사도바울은 성도들을 하늘로 인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두 사람이 예로 보여지는 게 흥미롭습니다. 두 명의 인도자가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모세가 그들을 애굽으로 인도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멜기세덱과 아론이라는 두 제사장이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두 왕이 또 있습니다. 승리의 왕인 다윗과 영광의 왕인 솔로몬이 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라는 선지자도 우리 주님을 상징적으로 예표합니다. 이 서신서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나와 광야로 들어가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믿는 자로서 애굽과 광야와 가나안에 동시에 있습니다. 우리는 애굽이 상징하는 세상과 경험이 상징하는 광야와 영적인 축복으로 가나안 땅에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이 서신서의 중요 단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은혜가 열 번, 고난이 일곱 번, 고난과 영광이 열번에 걸쳐 연결되어 사용됩니다. 다섯 번에 걸쳐 하늘나라가 다른 표현으로 제시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려 어두운데서 불려졌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벧전 2:11)

 

그리스도를 닮도록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3:9)

복을 유업으로, 영광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너희를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베드로서는 네 가지로 말합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질문과 관련하여 <교회> <십자가> <주님의 다시오심>, <장래에 있을 놀라운 보상>이 나옵니다. 16장에 네 가지 위대한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 거기에 교회가 세워지고 주님이 지시는 십자가가 있고 주님께서 쓰실 왕관이 있고 이것에 대한 주님의 격려가 있습니다. 네 가지 것이 베드로전서를 주제로 말해줍니다.

마태복음 16장은 베드로전서의 배경입니다. 마태복음 17장은 베드로후서의 배경이 됩니다.

 

이제 이것들을 배경으로 베드로전서를 다루겠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은 <우리가 소유한 구원>을 말합니다. 우리가 소유한 일곱 가지 새로운 것을 말합니다.

첫 번째로 <새로운 근거>, 두 번째 <새로운 가족>, 세 번째로 <새로운 미래> <우리 삶의 새로운 사실> <우리 삶의 새로운 목적> <우리가 즐기는 새로운 자유> <우리가 누리는 새로운 음식> <우리가 행하는 새로운 믿음>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 삶의 새로운 근거>

1-10절에 구원이 세 번에 걸쳐 언급됩니다.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약속 된 과거의 구원입니다. 9절에 <영원의 구원>은 우리가 소유한 구원, 5절의 말세의 구원은 미래에 나타낼 구원입니다. 과거의 구원은 성령님과 연결 됩니다. 성령님께서 사람들을 통해 장래 올 구원에 대해 과거 예언하셨습니다. 6-9절의 현재 소유한 구원은 아들로 말미암아 얻은 것입니다. 5절의 미래의 구원은 하나님과 연결 됩니다. 사도베드로는 이와 같은 놀라운 구원을 통해 고난받는 신자들을 격려합니다. 삼위의 모든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시고 일하고 계십니다.

1-2절에서는 <창세 전에 미리 아신바 된 자들>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분임을 압니다. 창세기 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전에는 시간이 없는 영원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관계없이 영원히 계신 분입니다. 영원한 하나님께서 이것을 미리 아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전지하신 분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 새로운 사실은 없습니다. 처음 든 생각도 없으십니다. 이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바 된 자들입니다. 구원받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너희를 절대 잊지 않는다"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는가" 고난을 통과하는 자들은 이러한 생각을 합니다. 베드로는 이들에게 놀라운 위로를 줍니다. 하나님께는 절대로 우리를 잊은 순간이 없습니다. 우리에 대해 잠시 생각을 안하는 순간이 없습니다.

네 번에 걸쳐 시편은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이 시간이 시작되기 전부터 시간이 끝난 후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에 있습니다. 그런 모든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 믿는 자들은 안전한 가운데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순종하면 땅에 속한 복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신약의 2장에서 그들은 땅의 축복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태를 보며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땅에 속한 자에게는 땅의 복을 하늘에 속한 자들에게는 하늘의 복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굳게 서는 견고한 기반이 됩니다.

히브리서에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고난을 당하고 빼앗긴 자들이 나옵니다. 그들처럼 가정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베드로는 새로운 가정이 있음을 말합니다. 전에는 가지지 못한 새로운 생명을 소유했다고 말합니다. 3장 마지막 부분에서 거듭났다고, 23절에서도 거듭났음을 말합니다. 그들은 새로운 생명을 소유한 것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연결 고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신분이 되었습니다.

 

<너희가 아버지라고 부른즉>

그들은 새로운 가문에 속해 새로운 형제를 가졌습니다. 그와 같은 형제들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 능력은 아버지와 교제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모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성품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아들과 함께하는 교제"를 요한 서신서는 말합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영생은 곧 아버지와 그 보내신 아들을 아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교제에 대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개발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친구들과 어떻게 교제합니까? 그 친구와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합니다. 그 친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모두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될 때 필요한 것들입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분에게 말씀 드리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와같은 새로운 교제가 믿는 자에게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열매>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우리 삶 가운데서 맺어야 합니다. 그분의 이름을 증거하는 향기를 드러내는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소유한 구원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가져가셨습니다. 죄를 가져가셨습니다. 죄의 종 된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많은 것을 가져가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거듭남>이라고 이를 말합니다. 거듭남, 새 생명. 이와 같은 것을 통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새로운 연결이 됩니다. 새로운 삶과 새로운 관계가 됩니다.

그리고 다른 믿는 자들과 관계를 가집니다. <순종하는 자식>이라는 관계를 가지고 성령의 거룩함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가정의 특징은 그 자식들이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통해서 우리는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다"에 이릅니다.

죄의 본질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아담이 범죄했을 때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존재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존재로 타락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물었을 때 아담은 하와에게 죄를 돌렸습니다. 아내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만을 사랑하며 아내에게 죄를 전가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존재로 태어납니다. 새로운 생명은 다른 사람을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성품을 가지게 합니다.

우리는 안전을 견고하게 하는 기반과 우리가 들어갈 새로운 가정에 대해 보았습니다. 이것들은 새로운 미래와 연결 됩니다.

 

(벧전 1:3-4)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았지만 산 소망과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산소망은 세 가지입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입니다. 죽음이 없고 흠이 없으며 시간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기업의 이익을 말합니다. 기업을 받는 자들이 누군지 설명합니다. 이 땅에 속한 땅을 상속받지 못했지만 믿는 각 사람은 여기서 말하는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받을 상금과 기업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모든 믿는 자는 똑같은 기업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비에 근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급은 우리 삶에서의 섬김과 관련 됩니다. 모든 믿는 자가 같은 상급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업에 대해 우리 모두가 기뻐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그 근거로 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확실한 근거입니다

이 서신서에서는 "죽음으로도 이끌 수 있는 고난"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하지만 죽음마저도 이 기업을 훼손할 수 없음을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이 기업이 하나님에 의해서 간직된 것임을 봅니다. 이 기업은 우리를 위해 예비 된 것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그 기업을 위해 보호되는 것을 5절은 말합니다. 이 기업 자체가 하늘에 간직되어 있으며 (4) 우리가 그 기업을 위해 보호를 받습니다(5).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기업을 얻는 것을 방해할 그 무엇도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기업을 고대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7절에서 말합니다.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주님을 말합니다(8).

베드로는 사도바울과 달리 이 땅에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 나타나심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휴거에 포함되지 않고 죽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께서 휴거가 아닌 이 땅 가운데 영광으로 오실 주님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지상재림을 말합니다. 베드로 자신은 휴거에대해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 그가 죽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주님을 부인한 실수를 만회한 기회가 있다면 그는 그것을 위해 주님을 위해 담대히 죽기를 각오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주님께서는 그 기회가 올 것을 말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실패에도 두 번째 기회를 주시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제 새로운 생명의 새로운 요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6절에서 여러 가지 시험의 때를 이야기합니다. <잠깐>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통과하는 모든 시험이 단순히 일시적임을 말합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7)

우리의 고난은 경한 것이며 잠시 받는 것입니다.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과 대조됩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에서는 시험에 대해 반드시 있는 거라고 언급합니다. 고난과 시험은 우리 믿는 자들의 삶에 반드시 있게 됩니다. 여기에 여러 가지 시험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있는 시험은 각각 다릅니다. 우리는 각자의 시험을 통과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필요한 시험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이러한 시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들 모두는 함께 이 시험을 통과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됩니다. 다니엘서 3장에서 느부갓네살은 우상을 만들고 절하게 합니다. 세 친구는 그것을 거절합니다. 여기에 다니엘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그 시험을 겪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6장에서 왕은 왕 외의 다른 사람에게 기도하지 말 것을 언급합니다. 다니엘은 그대로 기도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다니엘의 세 친구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혼자 시험을 통과합니다. 1장에서는 모두가 함께 통과했지만 3장에서는 다니엘의 세 친구만 통과합니다. 6장에서는 다니엘만 통과합니다. 사람들은 각각의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성도들의 필요에 따라 시험을 통과합니다.

그리고 이 시험에 대해 <믿음의 시련>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주로 믿는지 테스트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모든 시험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시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우리를 돌보시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알고 계신가"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일들을 일어나게 하셨는가" 이러한 시험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

 

미국에는 혼자 살고 있는 자매님들이 있습니다. 불행히도 이 자매님들이 결혼할 만한 똑같은 수의 형제님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매님들은 분명히 결정해야 합니다. 그들은 쉽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며 불신자와 결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평생 독신으로 살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질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결심을 하기에 가치가 있는 분인가, 내가 결혼을 못하고 가정을 얻지 못할지라도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인가.

이러한 젊은 자매님들의 믿음의 시련은 많은 기도가 됩니다. 이 시련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타내보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순종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신가 질문하게 합니다. 내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으로 드리는 것에 가치 있는 일인가.

그리고 사업을 하는 형제님들께도 시험이 옵니다. 연봉이 크게 뛸 수 있는 시험에 직면합니다. 사업에 나가기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약간 부정직하게 한다면 얻을 수 있습니다. 약간만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원리에 대해 떠난다면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희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의 순종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분인가.

시험이라는 것은 내가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증명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기독교라는 것은 단 하나의 놀라운 희생으로 시작 된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우리의 희생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희생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삶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께 기대하시는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6절에서 이 시험이 필요한 이유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벧전 1:6)

어떤 시험들은 죄에 대한 징계로 옵니다. 야곱이 거둔 것은 그가 행한 일들의 대가입니다. 그는 자신의 팔에 가죽을 덧대어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는 거짓말을 통해서 장자권을 가로챕니다. 그런데 야곱의 자식들은 나중에 요셉의 옷을 가지고 아버지를 속입니다. 야곱이 행한 일들이 나중에 대가를 치루게 합니다. 이와 같은 징계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치룹니다. 이 징계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적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시련들은 우리를 준비케 하는 시험입니다. 요셉은 어디서 나라의 둘째 자리에서 통치할 경험을 얻습니까? 처음엔 아버지의 양무리에서, 그 다음엔 보디발의 집의 총무로, 그 후에는 감옥 일을 돌보는 자로 고난과 시험을 견딥니다. 이 모든 시험을 통해 요셉을 총리로서 준비시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험의 손길을 우리를 장래 사용하시기 위해 준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징계는 우리를 깨끗케합니다. 욥은 고난받았습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금이 연단받는 것처럼 연단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시험하심으로 더욱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듭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은 우리를 나쁜 일로부터 막습니다.

"내게 주신 계시가 너무나 커서 하나님이 내게 가시를 주셨다" 사도바울은 말했습니다. 사도바울 자신도 교만하게 되는 위험성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징계의 손길을 하나님께 두며 자고하지 않도록 보호하십니다.

이 징계는 깨끗케 하고 우리를 준비시키며 우리를 더욱 순수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를 보호합니다. 그리고 징계의 손길을 통해 하나님 자신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시험을 통과한 세 친구를 보며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험을 통과하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함을 증거하십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무거운 시험은 가장 훌륭한 신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사랑하는 독자를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드리라는 시험은 롯이 아닌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경험은 욥의 친구가 아닌 욥에게 주어집니다. 그들은 큰 시험을 주님께서 맡길 만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시험을 통해 이상해 보이는 다루심을 보게 됩니다.

이 시험은 최소한 세 가지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첫 번째로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양심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두 번째로 현재에 얼마나 합당하게 섬기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이스라엘에 가뭄이 들었을 때 아비멜렉은 떠났지만 보아스는 남아 있었습니다. 이 시험은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를 점검하게 합니다.

세 번째로 미래에 있는 일에 대해 우리를 교훈합니다.

이런 시험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도록 그 사랑을 발전시키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자유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구속받은 자들입니다. 은이나 금처럼 썩어질 것으로 구속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망령 된 허망한 행실에서 구속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갈라디아서 3장에서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 받았음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에서 어둠의 권세, 죄의 종됨에서 구속 받았습니다.

그리고 디도서에서 모든 불법에서 구속 받았음을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에서는 우리의 허망한 행실에서 구원받았음을 말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허망하고 무의미했습니다. 우리 인생에 참 된 동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거룩한 삶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13-18절은 <거룩한 삶에 대한 동기>를 제시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말해줍니다.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이 가정의 아버지이신 아버지의 거룩함을 닮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치루신 대가를 말합니다.

거룩함이란 것은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이 계속해서 인터넷만 한다면 거룩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해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아버지께 속해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곳인 하늘나라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리고 보배로운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얻은 자들입니다.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 양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거룩하게 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거룩을 생각할 때 <하지 말라>는 것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룩은 악한 것이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거룩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모든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읽고 그분을 섭취할 때 그분을 닮아갑니다.

 

2018. 03. 07

 

(작은 딸이 정리해서 보내 준 것입니다 - 이어지는 히긴스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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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