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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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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15. 09:36 A.J. 히긴스

베드로전서 2

A.J. 히긴스

벧전 2:1-25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6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2장에서는 이제 영적인 진보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3장에서는 우리가 믿는 자로서 순종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며 4장에서는 고난과 인내에 대해 강조합니다. 5장에서는 목자가 지역모임을 다스리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각 장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언급됩니다. 1장에서는 십자가가 믿는 자들에게 놀라운 특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2장에서는 십자가가 우리 삶에 있어서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합니다. 3장에서는 우리를 향한 새로운 목적과 목표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벧전 3:18)

4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고난과 함께 우리 삶의 징계를 말씀하십니다. 5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있는 새로운 의무, 양을 치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2장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발견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 1:23)

거듭난 자는 2 1-2절에서 자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4절에서 그는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5절에서 그는 말하기 시작합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9-11절에서 그가 걷기 시작합니다. 갓난 아기가 태어나고 자라고 움직이기 시작하고 말하고 걷는 것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2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어떤 존재인지 여러 비유로서 말해줍니다.

1-2절의 갓난아기, 5절의 산돌, 11절의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 16절에서 하나님의 종과 같이, 25절에서 양입니다.

그리고 2절은 주님에 대한 여러 그림을 말합니다. 주님은 돌로 여러번 묘사됩니다. 그분은 산돌이십니다. 그것은 거절 된 돌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요긴한 모퉁이 돌이며 보배로운 돌, 그리고 거치는 돌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향에서 돌로 묘사하는 것을 봅니다.

그는 고난 받는 자이며 또한 목자이십니다. 2장에서는 우리 주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주님을 섭취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증거하고 그리스도를 좇아갑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됩니다.

처음 세 구절은 <자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4-5절은 <세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집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우리는 9-10절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증거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말씀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11-12절은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어떠한 싸움을 하고 있는지 설명합니다.

13-20절은 여러 모양의 권위에 대해 우리가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우리가 해야 함을 말합니다.

21절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본을 좇아갈 것을 말합니다.

이 장은 의로운 삶을 우리에게 권면하며 마칩니다.

 

처음 세 구절의 <자라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알고 자라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섭취하는 것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악독과 궤휼, 외식과 시기, 비방하는 말. 여러분이 이런 악에 빠져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는데 흥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오직 말씀의 필요를 섭취해야 합니다. 갓난 아기는 본능적으로 젖을 사모합니다. 믿는 자들도 말씀에 대해 이러해야 합니다. 말씀을 순전하고 신령하다고 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을 자라게 할 것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발견합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와 그분을 맛보고 자라고자 하는 것입니다.

젊은 성도들은 많이 바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시간을 절대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시간은 찾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따로 시간을 떼어내고 말씀을 읽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인내를 가지고 그 일을 해나가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매일 같이 성경을 시간을 드려 읽어야 합니다.

이사야서는 네 장이 <종의 노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사야서 53, 이사야서 50장이 이스라엘 종의 노래입니다. 아침마다 나를 새롭게 깨닫게 하신다 라고 여호와의 종은 말합니다.

여러분도 매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매일 같이 읽는 것을 계속 하시기 바랍니다. 연속해서 읽어가시길 바랍니다. 전체를 읽고 그 메시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특별한 말씀을 통해 가르치시는 방법입니다. 계속해서 연속적으로 조심스럽게 읽으십시오

사단의 시험 앞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나님은 어떤 동사의 단수 형태, 복수형태, 능동태, 수동태도 주의깊게 살펴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을 배우는 좋은 방법은 주의깊게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 앞에서 가지는 확신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과의 교제를 즐거워하도록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 앞으로 나올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다는 확신 가운데 읽어야 합니다. 읽을 때 문맥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읽는 것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읽는 것을 계속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읽고 깊이 생각한 것을 폴더 별로 적어놓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40세가 되었을 때 적어놓은 것을 보며 놀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점점 자라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느끼는 것은 금과 같습니다. 기억에만 의존해서 읽고 놓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께서는 이 장을 통해 내가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는가 이것이 유일한 장이라면 여기서 내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2) 여기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는가?

구약의 여러 상징들은 그리스도를 계시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3) 성령께서 내게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젊은 성도님들은 미래에 대해 많이 기도하실 것입니다. 직장에 대해, 결혼 상대에 대해 기도하실 것입니다. 이 장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답변하시는지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4) 이 장에서 배운 것을 내 삶에서 어떻게 행할 것인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① 하나님에 대해 ② 그리스도에 대해 ③ 성령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④ 이 장을 통해 내게 가르치신 것을 살아내시길 바랍니다. 이 네 가지 방법으로 말씀을 읽고 섭취할 때 우리 자신은 자라게 됩니다.

말씀 집회에 참석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말씀을 섭취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해야 합니다. 아침마다 내 귀를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신다고 종이 이사야서에 기록하였습니다. 2장의 처음 구절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그의 초점을 산돌로 옮깁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말합니다. 사람에겐 거절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만들고자 한 것에 이 돌은 적합하지 않았고 그분을 거절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완전히 다른 의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었습니다. 부활에 대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사람들의 평가를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그분을 요긴한 모퉁이 돌로 두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보배로운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산돌같이 그분께 나아와 신령한 집으로 세워집니다. 신령한 집은 모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포함되며 그리스도의 몸을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전을 세 가지 다른 것으로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에서는 <우리 몸은 성령님의 거룩한 전>, 거룩한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장소인 것입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5장에서는 지역모임을 성전이라 합니다. 이 하나님의 성전이 어찌 우상과 함께 하리요. 에베소서 2장에서는 교회를 성령님의 거하시는 하나님의 처소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함은 이 성전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고 성령님이 거하시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룩한 제사장을 이룹니다. 우리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름받았으며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서신서를 보내고 있는 유대인들은 당시 유대인의 특권을 잃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론의 한 가문은 제사장 가문으로 선택 됩니다. 적은 사람만 제사장이 되고 제한 된 날에 제사 드릴 수 있었습니다. 오직 제한 된 날에 거룩한 지성소 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이 모든 것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구원 받은 모든 자들은 신령한 제사를 드릴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예배의 특권을 잠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러 나올 때 어떤 제한이 있습니까? 우리는 매일같이 이와 같은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삶을 살다가 주일에 모여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 드리는 특권은 은혜의 시대에 모든 구원받은 자들의 동일한 특권입니다.

자매님들도 이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자매님들은 잠잠하게 예배 드립니다. 형제들은 소리내어 경배 드립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예배를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모든 것을 예배를 중심으로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3장은 예배에 대해 가르칩니다.

(13:15-16)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히브리서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희생 제사가 더 이상 드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

그것을 찬미의 제사라고 부릅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2장은 신령한 제사를 말합니다. 제사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희생이 필요함을 말합니다.

우리의 시간을 희생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희생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의 예배는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신령한 제사입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드려야 하는 제사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그분의 아들에 대해 새로운 사실이 없습니다. 그 아들에 대해서는 영원토록 항상 하나님께서 새롭게 기뻐하시는 주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에 대해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해 기쁘다면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기뻐하고 계십니다.

다른 사람이 여러분의 자녀에 대해 좋게 말할 때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을 때 더욱 그 가운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 대해 가지고 계신 기쁨과 생각들을 우리에게 나눠주시길 원하십니다.

9-10절에서는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한때 유대인 믿는 자들은 택하신 족속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 나라를 삼으신 나라의 일원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구약 성경의 특권을 믿는 자들에게 적용해 말씀하십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 그들이 잃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믿는 자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목적 가운데 있는 자들이라고 이 말씀은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같은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세상 가운데 선전하는 역할을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의 후반부에서는 어떻게 이 아름다운 덕을 실제적으로 적용할지 가르칩니다. 그들은 순종하는 사람들이었고 고난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로 그들은 또한 부르심을 받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하나님을 증거하는 분이셨습니다. 이제 노예도 하나님의 덕을 선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덕을 선전하기 위해 높은 신분은 필요 없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이 일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덕을 선전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여러분의 직장에서도 이 덕을 선전할 수 있습니다. 이 후반부에서는 우리의 각 삶의 여러 곳에서 여러 형태로 하나님의 덕을 선전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벧전 2:11)

11절에서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하며 독자들을 <나그네와 행인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나그네는 권리가 없으며 행인은 거주지가 없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성격을 보여줍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은 나그네와 행인들로 들어갑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쟁이 기다립니다.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전쟁을 11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전쟁을 <육체의 정욕>과 집중하여 말합니다.

우리는 육체적인 정욕을 자극하는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물건을 팔기 위한 광고에서도 이를 자극합니다. 우리는 이와 관련한 수많은 전쟁에 직면합니다. 이 전쟁은 인터넷으로 더욱 어려움을 겪습니다.

여러분께 분명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넷에서는 너무나 많은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아주 많은 악이 인터넷에 있는 것입니다. 포르노 영상은 굉장히 많은 수익을 올리는 사업입니다. 그것은 많을 뿐만 아니라 접근하기 쉽게 되었습니다. 더블클릭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악한 세상이 여러분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값싸게 접근할 수 있으며 여러분을 유혹하여 중독되게 만듭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이용할 때 아무도 그것을 모르는 익명성을 제공하며 그것은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습니다.

가능한한 빨리 덮고 나오며 빠져있다면 가능한한 빨리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저희가 싸우는 육체의 정욕 중 하나입니다.

이 물질주의 중 하나는 <물질주의>입니다. 우리의 소유는 우리를 집착하게 만듭니다. 이 시대는 소비하게 만듭니다. 물질을 위해 많은 것을 투자하는 시대입니다. 물질을 위해 더 높은 지위에 오르길 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복음과 일치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악한 일이 아닌 선한 행실이 우리 삶의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2)

 

<권고하시는 날>

구약과 신약의 <권고>의 차이는 이와 같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방문하실 때 심판을 위해 오십니다. 하지만 신약은 다릅니다. 누가복음은 노래로 시작합니다. 어떻게 주의 백성을 권고하셨는지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께서 권고하시기 위해 오신 것을 찬양합니다.

신약에서는 은혜를 위해 찾아오십니다하나님의 마음을 여시고 권고하실 때에 그분의 은혜에 대해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위해 믿는 자들의 선한 행실이 사용됩니다.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에게 거룩한 삶이 얼마나 필요한지 말해줍니다.

우리의 안에는 육체의 정욕이 남아있고 우리는 전쟁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육체를 자극합니다. 전쟁은 실질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초신자들에게 나쁜 소식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나이들수록 더 나빠질 것이며 이 전쟁은 멈추지 않습니다. 이 전쟁은 계속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아말렉과 계속되는 전쟁 속에 있습니다.

젊은 분들이 나이들수록 그런 것이 없어진다 묻지만 나이가 들수록 계속 됩니다.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벧전 2:13)

베드로는 이제 정부의 권세에 대해 말합니다. 사람의 권위과 주님의 권위가 상반되면 우리는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어떤 법은 우리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법이 하나님의 말씀과 상반될 때에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정부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상기 받습니다.

신약은 네 군대에서 정부에 대한 책임을 가르칩니다. 로마서 13장에서는 "위의 권세에 복종하라" 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에서는 "위에 있는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말씀하십니다.

디도서 3장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정부를 위해 선한 일을 예비하라 합니다.

베드로전서 2:1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정부의 권위를 순종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대한 최상의 본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세상의 왕 빌라도 앞에 서셨습니다. "내가 너를 죽일 권세가 있다" 빌라도가 말합니다.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 앞에서 그가 한 말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빌라도의 권세를 인정하셨습니다.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벧전2:15)

선행이 잠잠케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의로운 삶이 이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의 본은 그들의 입을 막습니다.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벧전 2:17)

각 사람이 가진 권위와 자격을 인정해줄 것을 말합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왕에게는 공경하지만 하나님은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 이 왕은 당시 황제인 네로일 것입니다. 악한 왕이었습니다. 사도 바우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이며 믿는 자들을 핍박한 왕입니다. 믿는 자를 고문하고 화형했습니다. 그 왕을 공경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경할 자를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말씀을 한 후에 사환들에 대해 말합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벧전 2:18)

부유한 집의 노예로 일한 사람들입니다. 주인들은 그들을 때리고 어렵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덕은 그 가운데서 어떻게 놀랍게 반응하는지 말합니다. 여기서 가르치는 원리는 한 가정의 노예로 합당한 수준을 넘어섭니다.

이 원리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하는 것을 제어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대항하고 싶은 마음은 우리 자신이 통제할 수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하고 의지하는지를 나타냅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벧전 2:19)

여러분의 행실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세번째로 말합니다.

어떤 이는 구원 받고 어떤 이는 입을 다뭅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그렇지 않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행실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잠잠히 참는 것을 기뻐하시나요? 그것은 그분의 아들의 받으신 고난을 우리가 다시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우리는 주님의 삶을 똑같이 반복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방향을 따라갈 뿐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가신 발자취를 그대로 좇아갈 수는 없지만 주님의 본을 좇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눈이 쌓이면 아버지와 아들의 보폭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보폭을 아들이 다 따라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아버지를 따라갈 수는 있습니다. 그 아버지가 밟은 발자국 자체를 밟을 수 없지만 그 길을 따라갈 수는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은 근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고난에 대하여 다시 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고난에 대한 분노도 없었습니다. 고난을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고난 받을 때 따라야 하는 본입니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벧전 2:22)

여기서는 주님께서 그런 고난을 받을 이유가 없었음을 강조합니다.

주님은 범죄하실 수 없는 성품입니다. "그는 죄를 범치 아니하셨다", 고린도후서 5장에서 "그는 죄를 알지도 아니하시다" 라고 말합니다. 사도요한은 그의 서신서 요한일서 3:5절에서 "그의 안에는 죄가 없다" 합니다.

그는 죄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범할 수 없었습니다. "거룩한 자가 네게 나신다" 주님께서 나실 때 천사가 가르쳐주었습니다. 주님께서 죄를 짓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셨습니다. 그분이 이 땅에서 죄를 범할 수 있었다면 동일하게 하늘나라에서도 죄를 범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모든 구원의 근거는 사라지고 우리 모두는 지옥에 가게 됩니다.

주님이 죄를 범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주님의 인성을 잘못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의 대적들이 그분을 철저히 조사했습니다. 아무런 죄도 어떠한 흠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대적마저 죄없음을 인정했습니다. 사단은 그것을 찾고자 노력했으나 찾을 수 없었고 주님의 육신의 형제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형제들이 두 권의 신약을 썼습니다. 야고보와 유다는 주님의 육신의 형제였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어떻게 묘사했습니까?

야고보는 외모로 부자를 차별하는 것을 경고합니다. "영광의 주를 믿는 믿음을 받았으니" 그 부분에서 말합니다. 유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그분을 부릅니다. 함께 자란 형제들도 가장 높은 표현을 사용하여 그분을 불렀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목자와 감독>이라고 부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4)

이 서신의 독자들은 주인으로부터 많은 채찍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님이 당하신 채찍을 상기시킵니다. 주님도 사람이 내리는 채찍을 많이 받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케 하는 채찍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채찍입니다. 주님의 받으신 채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습니다.

목자로서 주님은 우리를 돌보십니다. 감독자로서 깊은 관심을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아주 어려운 시간을 견디는 그들에게 하늘에서 그들에게 완전히 공감하시고 격려하시는 목자가 있는 것입니다.

노예로서 사는 자들의 모든 필요를 목자로서 채우고 계신 것입니다.

초반부에서 주님을 맛보고 섭취하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산돌로서 그들에게 제시됩니다. 주님께 나아오고 신령한 제사를 드릴 것을 듣게 됩니다.

주님은 그들이 받는 모든 고난의 본이 되십니다. 주님은 그들의 목자와 감독으로 모든 위로와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1장에서 우리는 큰 구원을 강조해서 보았습니다.

2장은 우리의 위대하신 구세주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2018. 03.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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