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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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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녹스

“그들이 명심하여"라고 바울이 디도에게 말합니다(3:1). 그리스도인 사역의 상당 부분은 바로 사람들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이 동사는 연속적인 시제 안에 있으며 디도서가 제시하는 것은 기억 속에서 진행하는 사역에 자신을 드리는 것을 암시합니다. “모든 양심적인 그리스도인 교사들은 신선함을 위해 불건전한 욕망에서 벗어나면 옛 진리를 새로운 진부한 진리로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1]

 

디도는 “모든 선한 일을 하도록 준비하게 하"도록 상기시켜야 했습니다(3:1). 2장에서처럼 바울은 디도에게 그레데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을 말할 것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행실, 3:1-2)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신학(신앙, 3:3-7)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2장의 그룹 별 가르침 대신에 여기서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국가(1절)와 사회(2절)에 관련하여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일반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국가와 관련된 세상의 그리스도인들(3:1)

종교개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독일의 농민 전쟁과 다른 봉기의 표현에 대해 개혁자들을 비난했을 때, 윌리엄 틴데일은 <기독교인의 순종>이라는 책을 쓴 것이 교훈적인 대응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통치자와 권위자"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우리는 "복종"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쓴 편지("모든 사람은 통치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13:1)나 베드로가 흩어져 있는 신자들에게 쓴 편지("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벧전 2:13-14) 등 성경의 일치된 증언입니다. 이러한 권위는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에 저항하는 것은 하나님을 저항하는 것이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롬 13:2).

 

따라서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국가의 법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법이 통과되었을 때, 성경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 참조: 4:19, 다니엘 6:10)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서구의 정부와 법원의 태도가 종교의 자유에 대해 점점 더 냉담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다수의 법률은 기독교적 신앙을 훼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신자들이 속도 제한이나 운전 중 휴대폰 사용 금지법을 준수하는 데 있어 적발될까 봐 걱정하는 것일까요? 기독교인의 신실함이 억압적인 국가에서 용기 있는 시민 불복종을 요구한다면(황제의 제단에 향 한 꼬집 던지기를 거부하는 것),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을 때 휴대폰에서 손을 떼는 것으로 만유의 참 주님께 충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선한 일을 위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2] "통치자는 선한 행위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악한 행위에 대한 공포입니다. 여러분은 권세 있는 자를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선한 일을 행하면 그의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롬 13:3).

 

사회에 관련하여 세계 그리스도인들(3:2)

디도는 또한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말다툼하는 자가 되지 말고 부드러우며 모든 사람에게 온전히 온유함을 보이게 하라"(3:2)고 상기시킵니다. 1절의 "통치자와 권위자"에서 2절의 "모든 사람"으로 발전합니다. 복종을 나타내는 것은 통치자에게만 국한됩니다. 예의를 나타내는 것은 모든 사람으로 확장됩니다. 하지만 누구에 대해 "악을 말"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물론 바울은 여전히 거짓 선생을 "비뚤어지고 죄가 있는 자"(3:11)라고 부르지만, 이는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사실이고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율법에 관한 다툼"(3:9)을 좋아하는 다투는 거짓 교사들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우리는 진리를 옹호하는 일과 부스러기를 찾는 일의 차이를 아는 평화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 용어인 "온유함"은 "법이나 관습의 모든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양보하고, 부드럽고,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관대함"을 의미합니다.[3] 세상의 관용은 사실 불관용이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진정한 관용을 보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완벽한 예의를 보여야 합니다." "예의"를 뜻하는 헬라어는 영어로 전달하기 어렵지만, "자만심에 지나치게 사로잡히지 않는 성품"으로 정의되며 "겸손, 온유함"[4]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다음 구절은 "모든 사람"이 주로 사랑하기 어려운 불신자를 포함하여 불신자를 가리킨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우리도 한때는 어리석고 불순종하며 속았고 여러 가지 정욕과 쾌락을 섬기며 악의와 시기 가운데 살고 증오하며 서로 미워하였으나"(3:3).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점점 더 적대적인 국가와 사회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악을 악으로 갚고(롬 12:17), 현물로 보답하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때 정적에게 진흙탕 싸움을 걸고,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고, 페이스북 게시물과 댓글 섹션에 악의와 증오를 퍼붓는 세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글에서 살펴보겠지만, 우리에게 친절하게 반응하기는커녕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의 자선심이 나타났고, 그분의 자비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닌 세계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 우리 나라의 법을 준수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정치인에 대해 말하는 방식에 있어서 진정한 자제력을 보여주고, 인터넷 트롤에 대한 응답을 언제 중단해야 하는지를 알고, 세상을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보는 사람들을 관용하고 양보하며, 모든 사람에게 공손하고 공손하고 겸손하고 은혜를 베푸십시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은혜를 베푸시는 동일한 하나님께서(2:11).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