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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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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들의 행함

로빈 매키온

오늘 저녁에는 믿는 자들의 행함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26

1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3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4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치도 아니하리이다

5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6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단에 두루 다니며

7 감사의 소리를 들리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이르리이다

8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

9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10 저희 손에 악특함이 있고 그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11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12 내 발이 평탄한 데 섰사오니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믿는 자들의 행함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믿는 자의 행함은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쓴 2:2 말씀에 이전에 이 세상의 풍속을 좇고 이것은 과거에 했던 행적입니다. 4:1에는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그 부르심에 합당해야 합니다. 4:17에서는 그들에게 권면하기를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고 합니다. 5:2에는 사랑가운데서 행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5:8에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15절에는 주의하여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행하는 것입니다. 구약으로 가면 창 5:22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하며 24절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 취함을 입을 때까지 하나님과 함께 동행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데려가실 때까지 하나님과 동행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시편 26편으로 돌아가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시입니다. 아마 B.C. 1,500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것은 대략적으로 그런 것입니다. 다윗의 생애 가운데 어느 시점에 썼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 시편이 중요한 것은 경건한 사람들에 대해서 모든 시대에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100%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25편과도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25:2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20절 마지막 부분에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치 말게 하소서

26:1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25편에서 다윗은 여호와를 의지했고 26편에서도 여호와를 의지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25:6에 주의 인자하심이 7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25편에서 주의 인자하심이 나옵니다. 26:3 내 앞에 주의 인자하심을 하나님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늘 주의 인자하심 안에서 행한다는 것입니다. 6절 초반에 주의 긍휼하심과 25:16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25편을 보면 다윗을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의탁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6:11 긍휼히 여기소서 이 양편 다 하나님의 긍휼에 의탁되어 있습니다. 25편 마지막에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구속하소서 이 구속은 간단히 말하면 건져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냈습니다. 26:11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구속하시고 25편에서는 이스라엘을 구속해 달라고 민족을 위해서 기도했으며, 26편에서는 나를 구속해주십시오 라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들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모든 악에서 건져주시기를 우리는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일반적으로 구할 때 또한 개인적으로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건질 때에 나를 건져 달라고도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개인도 구원해 달라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26편은 특별히 개인적입니다.

1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2절 나를 살피시고, 11절 나는 나의 완전함에, 그래서 26편은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특별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위해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위해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26편에는 열두 절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나누기가 어렵지만 그러나 나눌 수가 있습니다. 아무튼 26편을 세 부분으로 나누겠습니다. 각각 네 절로 나누겠습니다.

1~4절 여호와를 의지하고 시험 받는 것으로

5~8절 미워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아님)

9~12절 행함과 예배를 보겠습니다.

26편은 주님으로 시작하고 끝날 때도 주로 끝납니다.

그 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영어에서는 여호와가 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여호와를 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행함은 주님으로 시작하여 주님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만약 주권이 주님께로부터 우리에게 들리지 아니하면 우리는 주님과 함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25,26편의 본질적인 큰 차이점의 하나는 25:7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11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18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25편에서는 세 번이나 다윗은 자기의 죄를 고백합니다. 그러나 26편에서는 이러한 고백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26편에서는 죄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습니다. 26편은 다윗이 행함에 대해 즉 하나님과 함께 걸어감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특히 완전함에 행하는 것을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 주변에 경건치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 때문에 다윗은 연약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다윗은 보좌에 앉아서 그 사람들을 판단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다윗은 완전함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이 자신을 판단을 했기 때문에 여호와를 불러들여서 나를 판단하소서 하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26편에 나오는 걸어감(행함)에 대해서 봅시다.

1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여러분 이것이 과거시제인 것을 주목하십시오. 2절에 행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3절에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행하여는 과거시제입니다. 다윗은 과거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11절에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이것은 미래시제입니다. 지금 다윗은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그는 과거에 내가 완전함에 행하였으며, 미래에 완전하게 행하겠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진정으로 말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나는 내 마음을 변개시키지 않겠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가운데 행하셨습니까? 만약에 주님께서 오시는데 내년에 오신다고 가정을 하면 주님과 함께 계속 동행하겠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을 변개시키지 않고 계속 행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님들! 저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을 알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잘 행했습니다. 그러나 최근까지 보면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제 마음을 행함에서 변개시키고 싶지 않으며, 하나님과 함께 계속 걸어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라고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이 시편에 흥미로운 바가 있습니다.

1절에서 행함으로 시작합니다. 11절에서는 행함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4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이것은 과거 시제임을 주목하십시오. 다윗은 과거의 어떤 무리를 떠올렸습니다.

5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이것은 미래 시제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과거나 현재나 어떤 무리와 함께 마음을 바꾸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매우 깊은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행함과 여러분이 접촉하는 무리와는 깊은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하는 것과 앉는 것과도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12내 발이 평탄한 데 섰사오니 여기는 서 있습니다.

행하고(걸어가고), 앉고, 서 있습니다. 이것은 다음의 위치와 관계가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시편 1:1절에 이어지는 위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그래서 26편은 시 1:1에 이어지는 위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다윗은 경건치 않은 자들을 심판하는데 지쳤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판단하는데 의로우신 주님을 불러들여 판단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나를 소송하는 사람들이 있다 할지라도 나를 판단하소서 하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완전함에 행하였기 때문에 나를 판단해 주십시오 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다른 말로 하면 아주 완전하게 행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완전함이 없다는 것을 말하며 죄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시편에 있는 다윗과 그 외 악한 자들을 대비를 한번 시켜 보십시오. 다윗에게는 완전함이라는 말이 나와 있는데 이 말은 일부러 쓰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특히 이 말씀은 레위기에 있는 말씀과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레위기에서 제물을 가져오는 사람이 흠이 없는 제물을 가져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바로 그 완전함이라는 말이 흠이 없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자신은 흠이 없는 가운데 행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만약 장로들의 자질을 생각하게 될 때에 책망할 것이 없으며 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이것은 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집어내서 흠을 찾아낼 수 없다는 말이지 죄가 완전히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다윗은 완전함에 행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책임이고 다윗의 의무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완전함에 행하는 이유였습니다. 놀랄 것은 여러분이 완전함에 행해도 타락할 수 있습니다. 1절에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요동치 아니하겠나이다. 내가 완전함에 행했기 때문에 나는 전혀 실족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완전함에 행했기 때문에 여호와를 완전하게 의지했습니다 이런 말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다윗의 책임 다윗의 임무는 완전함에 행하는 것입니다. 완전함에 행하는 사람을 다른 말로 하면 그 사람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119:117나를 완전하게 붙드소서 그러면 내가 안전하리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종교개혁가 죤 캘빈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26:1을 번역할 때 흥미롭게 번역했습니다. 내가 주의 완전함에 행했기 때문에 그러므로 요동치 아니한다고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안전 그물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완전함에 행한다는 의미는 여호와를 의지하기 위해서 행해야 할 책임이고 의무입니다.

요동치 아니하고 12절에 내 발이 평탄한 데 섰사오니 다윗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울은 고전 15:58에서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라고 썼습니다. 다윗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2절에 여기서 변하지 않는 세 가지 용어가 있습니다. 살피고, 시험하고, 단련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시편은 대단히 개인적입니다.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여기서 다윗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상호 교환할 수 있는 어휘들이면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살피시고는 단련과 관련이 됩니다. 이것들은 쇠()를 다룰 때 사용하는 용어들입니다. 만약에 금을 제련한다고 하면 불은 금속에 있는 찌꺼기를 판단하고 제거할 것입니다. 다윗은 바로 그것과 관련시켜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살펴서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시험하사 이것은 창 22:1과 연관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사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을 살피는 말입니다. 너의 아들 곧 독자를 데리고 산에 간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험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주 깊은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윗 속에 있던 깊은 것들이 다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부분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행함은 바깥쪽으로 드러나는 것이며 행하는 것을 누구나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면입니다. 내 뜻과 내 마음 내 뜻은 아마 생각일 것입니다. 내 마음은 애정이나 감정일 것입니다. 그의 생각과 마음에 품은 애정을, 우리의 행함은 우리의 생각과 애정에 의해서 지배당하게 되어 잇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행함을 결정하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이 있는 그곳에 우리의 행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3절은 논리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이 구절에도 세가지 요소가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처음에 주의 인자하심이 있고 마지막에 주의 진리가 있으며 이 한가운데 다윗의 걸어감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샌드위치와 같습니다. 행함이 한가운데 끼어 있습니다. 이 두가지 요소가 이 사람의 행함을 지배한다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이것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 그의 초점이었습니다. 우리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된다면,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보게 된다면, 독생자께서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것을 생각한다면, 그 분의 광대함을 생각한다면, 다윗은 주의 사랑 즉 인자하심이 내 앞에 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여러분은 사랑과 진리를 결코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 구절에서 이 두 가지는 놀랍게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주의 진리가 그 한가운데 다윗의 행함 즉 걸어감이 있습니다. 인자라고 하는 것은? 다윗의 행함의 동기가 주의 인자하심이었습니다. 주의 진리는 다윗의 걸음을 인도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진리는 아무 관계가 없다. 사랑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고전 13:5절을 보면 사랑은 진리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사랑과 진리는 분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연결되어 서로 상호작용을 합니다.

시 시편에 흥미로운 것은 4,5절에서 우리는 분리를 보는데 어디 어디에서 분리를 봅니다. 6~8에서는 분리를 보는데 어디 어디로 분리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이 시편에서 무언가를 배웁니다. 구별된 행함을 하려고 한다면 구별된 예배가 필요한데 이것을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죄악으로부터 분리가 먼저 필요합니다. 선으로부터의 분리 이전에 악으로부터의 분리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5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여기는 어떤 자들로부터의 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4절에서 경건치 않은 자를 어떻게 언급하는 가를 보십시오. 허망한 사람과 간사한 자로 말하고 있습니다. 5절의 언어는 아주 강력하게 행악자, 악한 자라고 말하며 다윗은 그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8절에 여호와여 내가 사랑하오니 놀랍지 않습니까? 8절에 여호와여 내가 사랑하오니 라고 말하기 전에 다윗은 5절에 미워한다고 말을 해야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미워함이 없이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그리스도와 닮았다고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예를 들면 시 45:7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으로 왕에게 부어 왕의 동류보다 승하게 하셨나이다 이것은 메시아적인 시입니다. 이것은 히 1:9에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인용된 시편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이라는 말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들은 미워해야 하고 어떤 일들은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여기서 부정의지라는 것에 주의하기 바랍니다. 이것은 앞으로 두 긍정이 뒤따르게 되는 두 부정인 것입니다. 긍정적인 것을 위해서 부정적인 것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나는 앉지 아니하리이다 한 쪽은 긍정으로 나는 합니다.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긍정이고 주의 단에 두루 다니며 여기도 긍정입니다. 다윗은 깨끗한 손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손을 씻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레위인들은 거룩한 곳에 들어갈 때 물두멍에서 손을 씻었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먹기 전에 손을 씻었고 기도하기 전에도 손을 씻었습니다.

24:3,4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이미 다윗은 여호와를 초청해서 자기 마음을 살펴달라고 했습니다. 26:6에서 다윗은 자기의 손을 다루고 있습니다. 손을 언급하기 전에 마음을 언급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손은 외면이고 마음은 내면 인 것입니다. 우리는 외면이 드러나기 전에 내면이 먼저 정리되어야 합니다. 주의 단에 두루 다니며 이것은 예배입니다. 주의할 것은 예배가 오기 전에 먼저 걸어감(행함)이 왔습니다. 만약 우리의 행함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어떻게 우리의 예배가 올바르겠습니까? 여러분은 예배가 행함보다 먼저 와야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시편의 순서들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만약 행함이 올바르지 않으면 어떻게 예배가 올바르겠습니까? 7감사의 소리를 들리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이르리이다 이것은 증거입니다. 다윗은 할 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시편의 순서를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행함이 있고, 예배가 있고, 증거가 있는 순서입니다. 만약에 예배에 관한 것이 없으면 증거에 관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8여호와여 . 사랑하오니 이것은 미워한 다음에 나왔다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주의 계신 집을 사랑하오니 이 때는 솔로몬의 성전이 아직 지어지지 않았을 때입니다. 또한 광야의 성막도 없을 때였습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운반한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해와서 작은 막을 지었습니다. 다윗이 말하는 바는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약궤 덮개 위에 두 천사가 있는 것을 알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시은좌 사이에서 백성과 만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다윗이 말하기를 내가 주의 계신 집을 사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이러한 예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여기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주의하기 바랍니다. 바울은 고전 3:16,17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라고 말했습니다. 고린도 지역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거했습니다. 이것을 신약성경에 연결시키자면 지역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내가 하나님의 집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아시는대로 저는 모임의 배경에서 성장하지 않고 교파적인 배경에서 자랐으며 교회 가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저는 성경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저는 종교인이 되는 것보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긍휼을 베푸사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제가 구원받고 3개월째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한 밤에 여러 형제들이 침례를 받았습니다. 두 달 후에 61세 된 저의 아버지도 침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전부 다 하나님의 지역모임의 교제에 참예했습니다. 저는 거기에 계속 거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모임에 있는 것이 저의 영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모임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중심 구절이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거기는 어디입니까? 주님의 영광 영예가 있는 곳입니다.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집인데 내가 주의 계신 집을 사랑하오니라고 다윗은 말했습니다. 122:1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그곳을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9죄인과 함께 거두지 마소서 라는 표현을 보십시오. 이것은 분명히 죽은 이후의 시체를 거두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거두어지는 것을 여러분은 성경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거두지 마소서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여기에 다윗의 마음 속에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이 주변에 있는 죄인들과는 구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의 생애가 끝나게 되면 다윗의 영혼을 주변에 있는 죄인들과 함께 다루지 말라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살아 있을 때에도 죄인들과 분리되기를 원했고 죽어서도 죄인들과 분리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성도들 가운데서 죽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가 살아 있을 때도 경건하지 않은 자들과 구분되었었고 죽어서도 계속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구분되어 있기를 원했습니다.

10저희 손에 악특함이 있고 그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이미 6절에서 다윗의 손이 어떠한가를 보았습니다. 다윗의 손은 깨끗했습니다. 경건치 않은 자의 손은 깨끗치 않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악특함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의 오른손에는 뇌물이 가득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다윗은 분리되기를 원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의 행함을 다루는데 이미 손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이 손으로 걸어 다닙니까? 그러나 영적인 걸어 다님, 우리 인생의 전체를 걸어감을 생각할 때, 다윗의 마음, 눈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7절에는 입도 말하고 있습니다. 9절에는 그의 영혼도 말하고 있습니다. 10절에서는 죄인들의 무엇과 다윗의 무엇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10절과 11절을 대비시켜 보면 저희 손에 악특함이 있고 그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그러나 그는 달랐습니다.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그는 그의 완전함에 행하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손에는 악이 없습니다. 그의 오른손에는 뇌물이 가득하지 않습니다. 그의 손은 깨끗합니다. 나는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똑같이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이 근본입니까? 이것은 다윗의 책임과 의무였습니다. 이것은 늘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11나를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이 완전하게 행하려고 하신다면 여러분에 대한 하나님의 지속적인 건짐이 필요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지속적으로 필요합니다.

12절에는 발이 나옵니다. 그가 넘어졌습니까? 그는 완전함에 행했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다윗의 발은 평탄한데 섰습니다. 어떻게 끝나는가 보십시오.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대조가 있습니다. 5절에서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그 집회 속에는 다윗이 들어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있는 이 회중은 다윗이 함께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무엇이 다릅니까? 악한자의 회중에서는 여호와를 송축하지 않습니다. 악한자의 회중에서는 여호와를 모독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의 회중을 택했습니다. 거기에서 여호와를 송축하겠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 송축하는 이런 무리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형제님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의 행함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다윗은 어떤 무리를 선택했습니까? 또한 어떤 무리는 제외시켰습니다.

이 구체적인 시편의 내용이 놀랍지 않습니까? 내가 하나님과 가까이 하오니 라는 찬송가가 있는데 여러분의 찬송가에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찬송가는 아름다운 찬송가입니다. 하나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서 걸어간다는 찬송가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몇 년 동안 동행했습니까? 주님께서 그를 데리고 가실 때까지였습니다. 제가 바라건대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고 가실 때까지 주님과 동행하기를 제가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9 2 5() 여수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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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