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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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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편으로 건너가자

Robin Mckeown

들머리

안녕하세요(한국어로). 아주 잘 했죠?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오후에 상고할 것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우리가 광풍(폭풍우)을 통과하는 믿는 자를 상고하기 원합니다. 성경에서 여러분이 보증 받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믿는 자는 광풍을 통과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구원 받았을 때 죄 용서의 기쁨으로 매우 행복했습니다. 앞에 놓여 있을 날들과 해들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미래에) 그들은 시련을 통과할 것입니다.

시련은 여러 다른 모양으로 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족의 시련을 당할 수 있습니다. 젊은 믿는 자들도 가족 관계에서 시련을 당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일랜드에 있는 약간 젊은 여자분들을 압니다. 그들은 가족 관계에 있어서 시련을 통과하였습니다. 매우 존경할만한 젊은 분들이 낙심하여 눈물을 흘립니다.

때때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족 가운데서 시련을 통과해야 합니다. 때때로 시련은 여러분의 건강 가운데서 나타납니다. 형제자매님들, 모임(지역 교회) 안에 시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광풍을 통과하는 것을 알아 보고자 합니다. 말씀은 짧습니다. 마가복음 4 35절에서 마지막까지 입니다.

 

마가복음 4: 35-41

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갈릴리 바다

마태, 마가 그리고 누가 모두가 이 일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 복음서 기록에서 모으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우 중요한 교훈들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기적을 모을 수 있는 한 모아서 살펴 보면 마태복음 13장의 저녁 때에 위치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천국의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는 저녁 이었습니다.

세 복음서 저자 모두는 이 기적을 가다라 사람을 고치는 기적 앞에 놓았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자그마한 내륙 호수였습니다. 한 쪽 끝에서 다른 쪽까지는 아마 11킬로미터 남짓이었습니다. 이 호수는 산으로 둘러 쌓였습니다. 이 산들에는 가파른 계곡들이 있었습니다. 이 바다 자체는 해발 200미터 정도로 받아 들여집니다.

이 광풍은 엄청난 폭풍우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매우 혹독했음에 틀림없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우리는 매우 혹독한 광풍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제자들에게는 친숙했습니다. 그들은 종종 갈릴리 바다 가운데서 배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지역이 친숙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광풍은 때때로 친숙한 환경 가운데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이 호수 가에서 양육되었습니다. 제자들 중 얼마는 이 호수에 있는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광풍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광풍은 특히 지독한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물 때에

본문을 봅시다. 35절에서 그날 저물 때에라고 말합니다. 그날 늦을 무렵이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그날 저물 때였습니다. 은혜의 날 저물 때입니다. 우리는 거의 교회시대 마지막 날 끝에 있습니다. 우리는 정확하게 바로 마지막 날에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저물 때입니다. 늦은 때인데 시대의 바로 마지막 저물 때입니다.

광풍, 시련 그리고 어려움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때때로 인생의 황혼 녘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나이 드신 믿는 분들에 대해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인생의 황혼 녘에 그들은 광풍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건강상 시련이 정말로 있습니다. 한 때 그들은 건강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지금 그들은 약해졌습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 다른 능력을 잃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그들은 눈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며 청력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찌면 심장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며 뇌졸중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광풍이 그 인생에 닥칩니다. 어쩌면 과부 상태가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종종 과부 상태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결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외로움과 상실에 대한 큰 느낌이 결혼한지 50년 이상 부부에게 어쩌면 갑자기 그 남편이 돌아가시므로 닥칠지도 모릅니다. 그 과부는 불의의 일격으로 남겨지고 일련의 환경에 적응되는 것입니다. 그녀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녀는 앞에 놓인 인생을 결코 알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이 광풍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다시 35절을 보십시오.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독려하셨습니다. 그것은 긴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짧은 여행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여러분이 구원 받았을 때 여러분은 어떤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저편으로 가는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하늘 바닷가 저편으로 가는 중에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여행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말씀 드리기를 원합니다. 정말로 믿는 모든 자들에 대해 말해 본다면 여러분이 구원 받은 때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 오래 전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아무리 잘 생각해 보아도) 매우 짧습니다. 하늘 본향으로 가는 우리의 짧은 여행은 얼마나 더 짧은지요

이것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기 오늘 아직도 구원 받지 않으신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늘 본향 가는 길에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지옥 가는 법은 길에 있습니다. 부디 이것을 생각하시고 오늘 구원 받으십시오. 저는 하늘 가는 길에 있는 믿는 자들에 대해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약 11킬로미터라고 말씀 드린 호수에 있는 이 여행은 짧은 여행입니다. 이 여행은 그다지 오래 끌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자매님들, 이것은 긴 여행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광풍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이제 우리는 매우 흥미로운 부분으로 갑니다. 36절로 가십시오. 36절에서 우리는 저희가‥‥예수를‥‥모시고라고 읽습니다. 바꿔 말하면 제자들은 이 여행에서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님들, 주님을 모시지 않고 나가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주님과 함께 하지 않고는 어디에도 여행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와 함께 하시는 주님과 함께 하지 않는 다면 일본과 한국에 오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제자들이 그들과 함께하신 주님을 모셨다고 인정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경험할 수 없는 곳에는 어디든지 가서는 안됩니다.

이제 마태가 말하는 것을 살펴 봅시다. 마태는 주님의 제자들이 주님을 따랐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것은 좋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따랐습니다. 마가는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을 그들이 모셨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좋습니다. 모든 것이 좋습니다. 제자들은 그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을 모셨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좇았습니다.

누가는 우리에게 그의 복음서에서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셨다고 말합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취합시다. 누가복음에서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제자들은 그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을 모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제자들은 주님을 좇았습니다. 잘 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제자들은 주 예수님의 임재를 소유했습니다. 여기에 요점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신다면 거기에는 광풍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들이 주님을 좇았으니 분명히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며 제자들은 그들과 함께하시는 주님을 모셨으니 분명히 거기에 광풍이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거기에 광풍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이제 여기에 요점이 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는 거기에 광풍이 없을 것이라는 보증이 아닙니다. 사실 성경은 저에게 거기에 광풍들이 있을 것이라고 보증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요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광풍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것이 모두를 변하게 했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께 속해 있는 데도 인생의 광풍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좇고 있는 중에 인생의 폭풍을 직면할 수 있습니다. 멀찍이 주님을 좇은 베드로처럼 되지 마십시오. 베드로가 광풍 가운데 있을 때에 그리스도와 거리가 좁혀졌습니다.

 

광풍이 일어나며

저는 여러분께서 37큰 광풍이 일어나며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형제자매님들, 거기에 큰 광풍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평범한 폭풍우가 아닙니다. 이 것은 큰 광풍이었습니다. 사실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동시에 다른 단어를 사용합니다. 마태(8:23)는 큰 놀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tempest)이라는 말은 실제로 지진에 대한 말이기도 합니다. 갈릴리 바다에 대해 사용되는 놀이라는 말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저는 지금 놀이라는 말을 택한 그리스(헬라)어에 대해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이 말 이면에 있는 의미는 거기에 큰 흔들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님들, 때때로 여러분이 광풍을 통과하고 있을 때 큰 흔들림을 당합니다. 여러분의 바로 그 믿음이 흔들림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마태는 그것은 큰 흔들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가는 그것이 큰 광풍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여러분께 큰 광풍을 통과한 분에 대해서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의 이름은 에이 엔 그로우브스였습니다. 그는 바그다드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그가 어떤 일을 일기에 쓴 것을 아십니까? 나는 지난 주에 나의 아내를 묻었고 이번 주에는 나의 딸을 묻었다라고 썼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바그다드에 있는 모든 이가 나에게는 낯설다라고 썼습니다. 얼마나 큰 광풍입니까? '나는 지난 주에 나의 아내를 묻었고 이번 주에는 나의 딸을 묻었다라는 것은 에이 엔 그로브스에게 심한 광풍이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백성은 큰 광풍을 통과하기 위하여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북부에 어떤 그리스도인 가족 곧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어부였습니다. 세 장성한 아들들이 그 아버지와 함께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어선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들은 북쪽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거기에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매우 혹독했습니다. 다음 날 두 경찰관이 그 부인의 집에 왔습니다. 여기에 그들이 가져온 소식이 있습니다. 거기에 큰 광풍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남편과 세 아들들은 익사했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세 아들을 잃었습니다.

큰 광풍이 그녀에게 닥쳐 왔습니다. 그녀가 한 것을 여러분께서는 아십니까?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주님은 남아계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1 11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입니다. 그녀의 남편과 세 아들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남아 계십니다. 그녀는 광풍을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그 광풍 속에서 그녀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알았습니다.

 

물결이 (배에) 부딪혀

이제 여러분께서 29절로 다시 가시기 바랍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혀라고 말합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성경이 말하는 바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물결() (배에) 부딪혀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물결이 하나가 아닙니다. 이것은 물결들입니다. 종종 광풍에서 여러분은 한 물결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광풍에서 물결은 보통 잇따르고 잇따르는 것입니다.

물결이 (배에) 부딪혀라고 말하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저는 이 제자들이 물을 퍼내려고 했는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배가 물로 가득하게 된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실 누가는 제자들이 위험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광풍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실제로 위험 가운데 있었습니다. 물결이 (배에) 부딪혔습니다.

여러분은 이 제자들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배 안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다른 물결이 배에 부딪혔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인생에서 매우 종종 복수의 물결들이 있습니다. 한 물결이다음 물결에 잇따라 일어납니다. 물결이 배에 부딪히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저는 때때로 제자들의 발이 파도에 넘어뜨려지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 물결이 배에 부딪혔습니다.

마태복음으로 가면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배가 물결에 덮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큰 광풍이었습니다. 배가 물결에 잠기게 된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은 거의 물 아래 있는 것 같은 것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오늘 날 어떤 분들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그 광풍에 여러분이 휩쓸렸다고 느끼셨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그 광풍에 여러분이 가라앉고 있다고 느끼셨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여러분이 위기 가운데 있다고 느끼셨을 것입니다. 물결들이 배에 부딪혔습니다. 여러분 머리 위로 물결이 넘었다고 느끼셨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그 장()으로 돌아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께서 저와 함께 이사야 43장에 있는 한 구절로 돌아 가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저와 함께 이 구절을 읽기 원합니다. 이사야 43 2절에서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가운데 있는 이중 약속을 주목하십시오. 첫째 약속은 주님의 임재의 약속입니다. 둘째 약속은 그 물이 침몰치 못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여러분께서는 마가복음 4장으로 돌아가 물결이 (배에) 부딪히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그 물결들이 배를 덮었습니다. 제자들은 물결에 휩쓸렸다고 느꼈습니다.

 

주무시더니

이제 저는 여러분께서 매우 이상하게 보이는 것에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38절에서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이것이 이상스럽습니까?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 물결들은 배에 부딪힙니다. 그 물결들이 그 배를 덮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무십니다.

형제자매님들, 광풍은 주님에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광풍 가운데 있는 배에서 자고 있던 제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광풍 가운데서는 잘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그 광풍 가운데서는 잘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배 고물에서 주무시는 분께서는 그 바다를 만드신 분이 십니다.

성경은 바다가 주님의 것이며 주님께서 그것을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바다는 주님께 속했으며 주님께서 그것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광풍 가운데서 주무실 수가 있으십니다. 문제들이 주님의 통제 밖에 있지 않습니다.

일들이 통제할 수 없이 나쁘게 되어 간다고 제자들이 생각한 것을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마침내 그 물결들이 그 배에 부딪히고 있었습니다. 그 배는 그 물결로 덮였습니다. 제자들은 휩쓸렸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 그 동안 내내 거기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여러분이 휩쓸렸다고 느끼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물결들이 일어나고 있다고만 느끼실 것입니다. 그 물결이 머리 위로 지나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배 안에서 주무시고 계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제자들이 난파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께서 어떤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광풍이 있었으며 주님께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 있었던 주님의 광풍을 기억하십니까? 여러분께서는 (주님의)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았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광풍에서 제자들은 졸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가셔서 겟세마네에서 세 번째 기도를 마치시고 오셔서 제자들이 자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제는 자고 쉬라( 26:45)고 말씀 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왜 그러셨습니까? 제자들은 주님의 광풍에서 주님을 도울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갈보리 광풍()으로 홀로 가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자들의 광풍에서는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저에게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광풍에 대한 질문이어야 할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는 곧 바로 행동하지 않으셨을까요? 왜 주님은 물결이 배에 부딪힐 때까지 기다리셨습니까? 왜 주님께서는 배가 물결에 덮일 때까지 기다리셨을까요? 왜 주님께서는 누가에 의하면 제자들이 위태할 때까지 기다리셨습니까? 저는 이것이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형제자매님들, 때때로 여러분이 광풍을 통과하고 있을 때 여러분이 이것을 인정하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여러분이 그 광풍을 통과하고 있을 때 여러분의 마음으로 놀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주님께서는 행동하지 않으실까요? 어떤 것을 여러분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11 6절로 돌아가십시오, 우리는 병들었던 나사로를 압니다. 6절에서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라고 말합니다. 이틀을 왜 유하셨습니까? 주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즉시 가지 않으셨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왜 주님께서 곧 바로 행동하시지 않으시는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7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를 보십시오. 그 때에 나사로가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왜 주님께서 이틀을 기다리셨는지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생각한 것이 궁금합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베다니에 있는 가정 곧 주 예수님의 매우 존귀한 친구들인 두 사랑하는 자매들, 그리고 사랑하는 오라버니에 대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그 가정에서 환대 받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종종 베다니 그 가정에 계셨습니다. 형제자매님들, 거기에 여전히 큰 광풍이 있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가라고 의아하게 여긴다고 생각하십니까? 때때로 그 광풍에서 마귀는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께서 정말로 너희를 사랑하는가라는 의심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제가 일부러 읽지 않은 5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을 보십시오, 지체(遲滯)하심은 주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지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형제자매님들, 여러분이 광풍 가운데 있고 주님께서 곧 바로 행동하셔야 한다고 여러분이 생각할 때 그것은 주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깨우며

요한복음 11장에 여러분의 손가락을 넣은 채로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잠시 후에 돌아 오겠습니다. 이제 마가복음 4장으로 돌아 갑시다. 38절 후반에서 마가는 우리에게 제자들이 깨우며라고 말합니다. 복음서 저자 셋 모두 우리에게 그들이 주 예수님을 깨웠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제가 여러분께서 주목하시기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마태는 제자들이 주님께 나아왔다고 말합니다. 누가는 그의 복음에서 그들이 주님께 나아왔다고 말합니다. 마가는 그것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태와 누가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주님께 나아 왔습니다. 형제자매님들, 광풍에서 주님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그 분이십니다.

여기에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조금 전에 왜 주님께서 곧 바로 행동하지 않으시는가라고 질문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질문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왜 제자들은 곧 바로 주님께 나아오지 않았습니까? 여러분께서는 주님께서 (규정된) 시간 외에 계셨다고 생각하실 것 입니다.

어쩌면 주님께서 그들을 시험하고 계시기 때문에 베개를 베고 주무셨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제자들이 한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께서는 그들이 (곧 바로) 주님을 깨우지 않았다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그들이 (곧 바로) 주님을 깨우지 않았습니까? 요점은 이것입니다. 그들은 물결이 배에 부딪힐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배가 물에 덮일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누가에 따르면 그들은 위태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왜 그들은 곧 바로 주님께 나아가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 이유를 여러분께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같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 광풍을 우리 스스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했어야 할 첫 번째 일은 주님께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종종 형제자매님들, 그 광풍에서 우리가 하는 마지막 일이 주님께 가는 일이 됩니다. 바꿔 말하면 그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주님께 왔습니다. 저는 때때로 제가 그와 같다고 느낍니다. 저는 제가 교육 받은 그 방식을 생각합니다

저는 열심히 일하도록 교육 받았습니다. 저는 매우 부지런해야 된다고 교육 받았습니다. 저는 자급자족 해야 된다는 아버지의 철학으로 교육 받았습니다. 제자들은 그 광풍을 그들 스스로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할 수 없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우리는 그 광풍에서 주님이 필요합니다.

여러분께서는 복음서에서 세례 요한이 목 베임 받은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큰 광풍이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그들이 한 일을 아십니까? 그들이 그 시신을 가져다가 장례를 치르고 예수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여러분께서 그 광풍에 들어 가실 때 즉각 주님께 말씀 드리십시오. 바로 그 시초에 주님을 모시고 가십시오.

 

우리의 죽게 것을

저는 여러분께서 또 다른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38절 끝 부분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를 다시 보십시오) 바꿔 말하면 그들은 주님의 돌보심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들이 주님께 (곧 바로)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말합니다).

마태는 우리에게 그들의 외침이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으로 돌아 가십시다. 요한복음 11 21절입니다. 우리는 지금 두 자매 마르다와 마리아를 보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11 21절에서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께서는 마르다가 우리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거의 말하고 있는 것으로 느낄 수 있으실 것입니다.

저는 실제로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고 말씀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께서 보신 것은 주님께서 계신 데서 그대로 머무신 이틀 동안 (베다니에) 계시지 않으신 사실에 대해 그녀 자신이 가진 생각입니다. 그것은 마르다의 생각이었습니다. 만일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이제 32절 곧 32절 마지막을 보십시오. 그것은 마르다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리아입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주님께서 돌보셨습니까? 다은 구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의‥‥우는 것을 보시고(33)를 보십시오. 형제자매님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광풍에 가운데 있는 여러분의 눈물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병에 담으신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56:8). 주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이 그 광풍에서 흘린 모든 눈물에 대해 아십니다. 요한복음 11 35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를 보십시오. 이것은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부드러운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결국 정말로 돌보십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마가복음 4 40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여러분께서는 아실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돌보심을 의심했습니다.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주님의 돌보심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때때로 문제가 우리의 믿음인데 우리는 그것이 주님의 돌보심의 부족이라고 생각하니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 광풍 가운데 있을 때 때때로 우리는 그것을 잘 분석하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잘 분석하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계신 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돌보지 않으십니까? 주님께서 사랑하지 않으십니까? 이 모든 생각들은 우리의 믿음 혹은 믿음의 결여와 관련됩니다.

 

예수께서 깨어

39예수께서 깨어로 돌아 가십시오. 37큰 광풍이 일어나며를 보십시오. 그리고 다음에 39절에 예수께서 깨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요점이 있습니다. 그 광풍이 일어나자 주님께서도 일어나셨습니다. 일어나는 그 광풍이 아무리 큰 문제일지라도 주님께서 일어나시면 주님께서는 그 광풍을 다루시는 능력 그 이상이십니다.

이렇게 여러분께 설명 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에서 큰 놀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마태는 또한 우리에게 그 때 주님께서 일어나셨다고 말합니다. 마태는 큰 놀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마태는 아주 ()1잔잔함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바꿔 말하면 그 광풍()에 필적하는 것 그 이상이었습니다.

1 흠정역(KJV)에는 there was a great calm(큰 잔잔함이 있었다)(8:26)으로 되어 있음.

마가복음에는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아주() 잔잔함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그것이 다릅니다. 누가는 (great)이라는 형용사를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누가는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것은 같은 광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형용사 (great)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라고 말합니다. 누가는 잔잔함을 말할 때 관련 없는 형용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에 그쳐 잔잔하여 지더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요점이 있습니다. 만일 광풍이 크면 그 잔잔(고요)함도 클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형제자매님들, 여러분께서는 지진에 대해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리히터 지진계에 대해 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 지진계는 지진이 지진계 눈금에서 어떤지를 말합니다. 만일 여러분께서 광풍을 이 지진계로 측정하기를 원하신다면 저는 말씀 드립니다. 만일 그 광풍이 크다면 그 고요(잔잔)함도 클 것입니다. 요점은 그 광풍의 정도가 어떠하든지 주님께서는 그것을 능히 다룰 수가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이제 저는 제자들의 믿음의 주요 관심사로 가고자 합니다. 마가복음에서 우리는 이미 4 40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를 보았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복음서들 간에 불일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 복음서는 다른 복음서를 보완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주님께서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8:26)라고 물으십니다. 적은 믿음을 주목하십시오. 마가복음은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4:40)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에서 그 질문은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8:25)입니다.

형제자매님들, 여러분께서는 그 광풍에서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어찌면 여러분께서는 그 광풍에서 나의 믿음이 매우 적다라고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주님이 여러분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대부분 들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께서는 그 광풍에서 여러분이 믿음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라고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어피면 여러분께서는 그 광풍에서 누가의 기록처럼 (그 광풍이) 크다고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는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께서는 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시몬아, 시몬아 내가 너를 위하여‥‥기도하였노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리고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22:31-32)라고 말씀 하신 것을 말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전서 1 7절에서 베드로가 믿는 자들에게 너희 믿음의 시련이라고 쓰는 이유입니다. 형제자매님들, 그 광풍에서 시험받는 것은 여러분 (자체)가 아닙니다. 그 광풍에서 시험을 받아 온 것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그 광풍에서 주님을 믿을(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저는 여러분께서 마가와 누가가 하지 않은 것을 마태가 한 어떤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마태의 기록에서 주 예수님께서는 그 광풍을 다스리기 전에 제자들의 믿음에 도전을 주셨습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주님께서 그 광풍을 다스리신 후에 제자들의 믿음에 도전을 주셨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이것이 (우리가) 성경을 매우 주의 깊게 그리고 매우 사려 깊게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말씀 하신 다음에 주님께서 일어나신 것을 아십니까?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의 믿음에 도전을 주셨을 때 그 광풍이 여전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명백하게 주님은 제자들의 믿음에 두 번 도전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광풍이 진행되는 동안에 도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광풍 이후에 (또한) 도전을 주셨습니다. 그 광풍 한가운데서 여러분은 어떻게 지냈습니까? 저의 믿음이 어디에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 다시 그 광풍이 지나고 여러분이 되돌아 볼 때 곰곰이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선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여러분 스스로에게 나는 그 광풍 가운데서 어떻게 행했었던가 하고 되돌아 보며 질문해 보실 것입니다. 어쩌면 그 광풍이 지나간 다음에 여러분께서는 나는 정말로 아무 믿음도 가지지 않았었다라고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그 광풍 후에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라는 누가의 도전을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 3절에서 여러분께서는 너희의 믿음이라는 표현을 다섯 번 읽으실 것입니다. 이 짧은 장()에서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의 믿음에 대해서 다섯 번 씁니다. 왜 씁니까? 왜냐하면 그들이 핍박의 사나운 광풍을 통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 바울은 그들의 믿음에 대해 이 짧은 장에서 썼습니다.

 

저가 뉘기에

이제 저는 여러분께서 제 마음에 소중하게 여겨지는 어떤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 광풍 막바지에 큰 고요가 찾아 왔을 때인 마가복음 4 41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를 여러분께서 보시기를 저는 바랍니다

여기에 교훈이 있습니다. 여기에 그 광풍이 필요한 증거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 광풍이 없었더라면 결코 가지지 못했을 그리스도에 대한 진가를 알았습니다. 만일 그들에게 광풍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이 진가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형제님들, 모든 광풍은 그리스도의 진가를 여러분에게 증대시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그 광풍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그 광풍을 잠잠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저는 시편 89 9절에서 부분적으로만 인용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일부러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께 그 (전후) 전체 구절을 제시해 드리겠습니다.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한 자 누구리이까( 89:8)(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주님에 대한 깊은 인식입니다. 그 다음에 주께서 바다의 흉용함을 다스리시며라고 말합니다. 앞 부분에서 우리는 주님에 대한 진가를 소유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바다의 흉용함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 물결이 일어날 때 주님께서 그 물결을 잔잔케 하십니다. 그 큰 능력 때문에 그들은 누가 주님과 같은고라고 묻습니다. 이것은 마가복음 4 41절에서 제자들이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라고 말한 것과 닮았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이것은 거짓말인 진화론을 폐기시킵니다. 주님께서는 그 바다를 만드셨을 뿐 아니라 그 바다를 다스리십니다. 물결이 일어날 때 주님께서는 그 물결을 잔잔케 하십니다. 그 때 제자들은 그 놀라우신 분으로 충만 됩니다. 왜냐하면 바람과 바다도 주님을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창조자이실 뿐 아니라 다스리는 분이 십니다.

저는 몇 년 전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제가 광풍을 잔잔케 하는 주제에 대한 말씀을 전한지 약 육 개월 지난 (어느) 집회 후 어떤 사랑하는 자매님이 저에게 다가 왔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광풍을 잠잠케 하는 그 말씀을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일 주일 후에 나는 엄청난 광풍에 들어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나는 그 때 광풍을 잔잔케 하는 말씀을 계속하여 되새겼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마무리

저는 이 말씀이 여러분을 격려하며 강하게 할 것을 바라며 기도드립니다. 여러분께서는 이미 어떤 광풍을 통과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광풍이 바로 그 모퉁이 주변에 있을 수 있습니다. 부디 광풍을 잠잠케 함에 대해 생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의 마음에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매우 잘 경청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여러분께서는 피곤하셨음에 틀림이 없겠습니다. 특히 저는 아침 다섯 시까지 앉아 있었으며 잠자리에 들지 않았습니다.

어째든 대단히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감사합니다. 저는 저의 모든 통역자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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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