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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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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Robin Mckeown

들머리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밤 하나님의 말씀 집회를 위해 다시 여러분과 함께 해서 매우 기쁩니다. 또한 어제 복음 집회에서 있은 축복을 알게 되어서 매우 기쁩니다. 제가 매우 기쁘다고 말씀 드릴 때 저는 그것과 함께 어떤 서운함에 직면해야 합니다. 오늘 밤 집회는 일본과 한국에서 행하는 저의 섬김이 막바지에 가까워지게 합니다.

저는 여러분 가운데서 매우 행복했습니다. 여러분 (자체가) 가장 좋은 환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많은 친절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한국에 있는 모임(지역 교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께 저와 저의 아내와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실 것을 요청 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다시 오늘 밤 우리는 약간의 중요한 교훈들을 받고자 합니다. 저는 성경에서 우리에게 교훈을 줄 위대한 믿음의 사람을 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밤에 하고자 하는 것은 사도 바울의 첫 번째 전도 여행에서 어떤 중요한 교훈들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13장과 14장에서 읽고자 합니다. 13장 처음 열 두 구절을 읽은 다음에 14장 마지막 두 구절을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13:1-12, 14:27-28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박수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27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

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처음으로

제가 말씀 드린 대로 이것은 바울의 세 전도 여행 중 첫 번째입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오늘 밤 그 처음으로 돌아 가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처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태초(처음)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이 이 말 곧 태초(처음)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시작됩니다. 저는 우리가 신약 교회 시대(에 있었던) 처음 전도 여행으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이보다. 먼저 행해진 전도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사마리아에 있었던 빌립이 그 경우입니다. 그러나 저는 바울의 일차 전도여행에 대해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가 약 여섯 개 주요 교훈들을 받고자 합니다. 저는 오늘 밤 여러분과 함께 논의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밤 성경에서 여러분과 논의할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 있었던 모본은 하나님의 일과 관련하여 오늘 날을 위한 모본입니다

이제 13 1안디옥 교회에로 가십시오 우리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라는 표현을 봅니다. 오늘 날 우리에게는 선지자들이 없습니다. 일찍이 완성된 정경(正經)이 주어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선지자들이 필요 없습니다.

이것이 베드로후서 2 1절에서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너희 중에서는) 거짓 선지자가 아니라 거짓 선생들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이미 이 시점에) 선지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임(지역 교회)으로 시작해서 모임(지역 교회)으로 끝나다

여기에 우리가 13장 처음에서 주목하기를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안디옥에 있는 교회 혹은 모임이라는 말을 봅니다. 전도일은 모임(지역 교회)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에 오늘 밤 첫 번째 교훈이 있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그것은 모임(지역 교회)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임(지역 교회)과 함께 끝났습니다.

이것이 14장 마지막을 읽은 이유입니다. 26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곳은 두 사도의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로 돌아 가십시오. 형제자매님들, 그들은 모임(지역 교회)과 함께 출발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모임(지역 교회)으로 돌아 왔습니다.

사실 우리가 방금 읽은 26-27절에서 우리는 전도(傳道) 보고(報告)를 봅니다. 전도 보고를 갖는 것은 선한 것입니다. 머지 않아 제가 아일랜드로 돌아가 (전도) 보고를 하도록 요청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방문이 아니라 아마 제 보고는 2년에 걸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중심 교훈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 처음으로 돌아가 보니 이 첫 전도 여행은 모임(지역 교회)에 근거를 둔 것이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섬김은 모임(지역 교회)과 관련되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 가운데 있지만 저는 아일랜드에 있는 한 모임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일랜드에 있는 모임으로 돌아 갑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과 일본 방문에 대해 그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제가 말씀 드리는 요점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영적인 힘은 하나님의 모임(지역 교회)과 관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바울이 나갈 때 바울이 나간 곳에는 모임(지역교회)들이 없었다고 말씀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100퍼센트 옳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가는 전적인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모임(지역 교회)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임(지역 교회)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바울이 다음 전도 여행으로 나아간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는 사도행전 17장에서 데살로니가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 모임(지역 교회)이 세워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편지를 둘 썼습니다. 아마 두 편지 곧 데살로니가 전후서 사이가 석 달 가량 될 것입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전서 1장에서 바울은 이미 그의 길을 갔습니다. 하지만 모임(지역 교회)은 세워졌던 것입니다. 바울은 1 8절에서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들릴 뿐 아니라라고 씁니다. 세워진 모임(지역 교회)들은 보았습니다. 지역적인 증거가 되었을 뿐 아니라 거기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외부로 퍼졌습니다.

이 전도 여행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모임(지역 교회)이 근거가 되고 모임이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동양으로 떠나 오기 전에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아주 가까이에 어떤 가게를 경영하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전도자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제가 복음관으로 출입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제가 동양으로 가면 다른 교파에 가게 되는지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아니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세계 다른 지역에 모임(지역 교회)들이 있다는 것에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저의 임무는 교파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임무는 하나님의 모임(지역 교회)들이 세워진 것을 보는 것이며 모임의 역사(役事)가 강해지는 것과 모임의 일이 계속 진행되는 것을 보는 것 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에도 갔으며 한 모임(지역 교회)이 세워진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바울은 그들에게도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2 15절에서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 며라고 그들에 게 썼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도착했을 때 모임(지역 교회)이 없었던 것을 여러분께서는 아실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했으며 죄인들이 구원받는 것을 보았으며 침례를 베풀었으며 한 모임(지역 교회)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는 옮겨갔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에 있는 그 모임(지역 교회)은 그 지역에서 모임의 증거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바쁜 사람을 쓰시다

자 계속 하십시다. 그래서 바꿔 말하면 첫째 교훈은 모임(지역 교회)과 함께 시작해서 모임(지역 교회)과 함께 마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전도의 일을 하게 하는데 누구를 쓰셨습니까? 저는 여러분께 주님께서는 바쁜 사람들을 택하셨다는 것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는데 게으른 사람들을 결코 택하시지 않을 것임을 여러분께 말씀 드립니다.

13 2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를 보십시오. 이것은 그들이 주님을 섬기고 있을 때입니다.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두 사람은 모임(지역 교회)에서 부지런하게 일하고 있었을 것이며 하나님의 모임(교회)에서 활동적이고 바빳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어쩌면 이 사람들이 남아있었어야 했으며 모임(지역 교회)에서 이들이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선한 사람들이었으며 바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모임(지역 교회)에 필요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여러분께서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게으른 사람들을 택하려 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주님께서 마태복음 4 18절에서 그 제자들을 택하셨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여러분께서는 안드레와 베드로가 부름 받는 바로 그 순간을 보실 것입니다. 그들은 바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바쁜 사람들이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세상에서도 (이 일에 관한) 아주 좋은 말이 (하나)있습니다. 만일 여러분께서 좋은 성과를 원하신다면 바쁜 남녀를 선택하십시오. 저는 저의 직장에서 아주 복잡한 상황을 다루어야 했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입양의 경우를 다루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 부부를 방문하여 이 문제를 다루는 일에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를 생각했습니다.

제 마음에 떠 오른 사람은 저의 스테프 중에 가장 바쁜 사람이었으며 전체 조직 가운데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존(john)이 매우 바쁘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 때 저는 바로 이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 일을 위한 사람이었습니다.

안디옥에 있는 모임(지역 교회)에서 하나님께서는 두 바쁜 사람, 두 선한 사람, 모임(지역 교회)에 실제 도움이 되는 두 사람을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결정하셨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다시 마태복음 4 21절에서 주님께서 더 가시다가 야고보와 요한을 보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들은 바빳습니다. 주님께서 오셨을 때조차도 그들은 활발하게 일하느라고 바빳습니다. 그들(베드로와 안드레)은 그들의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그물을 고치고(깁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일할 그들을 위해 역사(役事)하셨어야 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저는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일 가운데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것은 특별한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할 바쁜 성도들을 선택하실 것입니다. 사사기 6장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미디안 사람들과 관련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어떤 바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미디안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포도주 틀에서 밀 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양식을 마련하는데 매우 바쁘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가 그 사람이라고 결정하셨습니다. 그는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적의 일을 패배시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부르셨고 그를 보내셨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다

계속 나아 갑시다. 여러분께서는 그것()이 모임(지역 교회)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모임(지역 교회)과 함께 마치는 것을 주목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선택된 두 사람을 봅니다. 그들은 이미 바빳으며 적극적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이 전도 여행초기와 바로 지금 교회 시대 마지막에서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13 12절에서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라고 말합니다. 이 전도 여행 바로 처음(시초)에 성령이 관련되었습니다. 성령은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 나가려고 발을 들여 놓기 전에 관련되었습니다.

이제 4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를 보십시오, 다시 우리는 성령의 개입과 관여를 봅니다. 9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를 보십시오. 처음(초기)에 성령이 개입되었을 뿐 아니라 일단 여행이 시작되어 9절에 이르러 전도자 중 한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사울)는 방언으로 말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말이 난 김에 잠시 방언의 은사에 대해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여러분께서는 하나의 서신(書信)에만 방언 말함이 있는 것을 아십니까? 그것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서신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그 서신에서 방언이 제기되는 이유를 아실 것입니다

방언 말함의 남용을 바로잡기 위해 그 서신(고린도전서)에서 방언이 제기되었습니다. 사도행전 끝에서는 여러분은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더욱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 이방인들을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아셨습니까? 여러분께서는 사도행전 2장에 있는 요엘서 인용을 보실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고전 14:21)1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방언의 은사가 사용되는 것을 보시면 거기는 언제나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다시 예언적인 인용을 기억하십시오.

1 이사야 28 11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에서 인용한 것인데 그 대상이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백성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28:11)라고 말합니다. 더욱이 오늘 날 은사라 불리는 이것에 대한 많은 남용이 있습니다. 늘 무시되는 기본적인 성경 원칙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28) 앉아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오늘 날 소위 방언의 은사 실행이라는 것에 여러분은 결코 통역자에 대해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 자체가 그 은사(방언)를 배제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이것은 약간 본론을 벗어납니다.

지금 우리는 성령의 역사(役事)를 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352절을 보십시오. 이 일차 전도 여행에는 성령에 대한 네 번의 언급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이 13장에서 발견됩니다. 52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를 보십시오. 이것은 매우 흥미롭지 않습니까?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첫 번째 것(기쁨)은 두번째 것(성령)에 의존됩니다.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라고 썼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 되는 개인은 기쁨으로 충만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갈라디아서 5 22절에 있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곧 사랑과 희락(기쁨)과 화평 등등을 기억하실 것인데 기쁨(희락)이 성령의 열매의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일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 되어있다면 여러분은 기쁨으로 충만 될 것입니다.

 

따로 세우라

이제 성령의 중요성을 주목하십시오. 베드로도 이것을 믿었습니다. 베드로전서 1 12절에서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성령의 역사(役事)에 가까이 있었던 바울에게로 돌아 갑시다. 사도행전 13 2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성령에 대해 어떤 것을 배워야 할 뿐 아니라 두 전도자들에 대해서도 어떤 것을 배워야 합니다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이미 그들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실제적으로 분리했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성령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해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이미 실제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따로 분리 된 두 사람을 따로 세우십니다.

로마서 1 1절에서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말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 15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해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는 성령에 이 두 사람이 속해 있습니다.

시편 4 3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경건한 사람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따로 세우시고 그들을 이 일을 위하여 택하셨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우리 모두는 짐을 지며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조건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다

그래서 그들(바나바와 사울)은 세움을 입었습니다. 사도행전 장2절에 다시 여러분께서 주목하시기를 제가 원하는 또 다른 것이 있습니다. 구절(句節) 초반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분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름 받았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이것은 매우 엄숙한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 혹은 남편과 아내는 전도자로 나갑니다만 하나님께서 결코 그들을 부르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때때로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람들의 어떤 특징들을 살펴 보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분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름 받았습니다. 다시 갈라디아서 1 15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라는 말씀이 갑자기 마음에 떠오릅니다. 주님께서 갈릴리 해변을 따라 거니셨을 때 안드레와 베드로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야고보와 요한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오늘 밤 여기 계신 구원 받은 모든 분들은 복음으로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어제 복음 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본 그 복음은 주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보는 것은 종들의 부르심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분리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성령에 의해 부름 받았습니다.

 

보냄을 받다

이제 사도행전 13 3-4절을 보십시오 형제님들, 여러분께서는 전도 여행 바로 초기에 많은 강조점을 두는 것을 주목하실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그 이유를 아십니까? 왜냐하면 처음은 언제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3절에서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한 모임(지역 교회)입니다.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 라라고 말합니다.

때때로 감정적인 격변을 불러 일으키는 전도자들에 대한 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전도자의 일을) 피하기도 합니다. 저는 벨파스트 닥슨에 있었던 매우 젊은 믿는 자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마 거기에 믿는 자들이 200명 가량 모였을 것입니다.

한 젊은 부부가 남미로 가서 주님을 섬기기 위해 배로 떠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온통 울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믿는 자들도 울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내시기 때문에 그들이 가는 것을 보는 것은 기쁨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집회에는 슬픔이 있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하나님이 아닌) 그들이 두 사람을 보내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전도자들은 자원하여 가려고 해야 합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사자가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에게 가라라고 말했습니다. 때때로 전도자들은 가정과 가족을 떠나가야 합니다. 저는 아일랜드에서 나간 몇몇 전도자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초기에 전도하는 나라에서 큰 외로움을 경험합니다. 그들은 그곳 사람들을 모릅니다. 그들은 그곳 언어를 모릅니다. 그들은 그곳 문화를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에 있는 저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저에게 잘 해주셨습니다. 저는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에게로 왔습니다. 전도자들은 종종 그리스도인들이 없는 곳으로 갑니다. 그러면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지금 사도행전 13 3절에서 두 사람은 보냄을 받았습니다. 4절에서 두 사람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다시 그들이 내려갔(떠났)음을 주목하십시오. 이제 저는 3절과 4절 사이 연결을 여러분께서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연결입니다. 3절에서 두 사람은 모임(지역 교회)으로부터 보냄을 받았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어떤 형제 또는 어떤 자매라도 모임(지역 교회) 후원 없이 전도자로 나아 가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모임(지역 모임)의 천거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모임(지역 교회)으로부터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4절이 말하는 바가 아닙니다. 두 사람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본 것인데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이 모임(지역 교회)은 전적으로 성령과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 두 사람을 보내고 계신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지 않는 사람을 전도자로 보낸다면 그 모임(지역 교회)은 매우 어리석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요한복음 1 6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 하기 위해 왔을 때 이스라엘자손 혹은 백성에 가야 했던 모세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라고 말하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전도자에게 어려운 날들이 있을 것에 주의하십시오. 반대와 어려운 시기(時期)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 때인 것을 주의하십시오. 두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모임(지역 교회)로부터 보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보내심을 받으신 것을 아십니까? 주님께서는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6 38-39절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요한복음 6, 7 그리고 8장을 아십니까?

여러분께서는 주 예수님이 보냄을 받으셨다고 16회 말씀하신 것을 아십니까? 주님께서는 주님을 보내신 아버지를 아셨습니다. 저는 앞에서 여러분께 기드온을 언급했습니다.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신 것을 아셨습니까?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를 주목하십시오.

이 사람들은 보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로마서 10 14-15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것들은 신약 교회 시대와 관련해서 중요한 원칙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의 경영(실행)에 있어서 형제자매님들, 전체지역에 대한 중앙 감독 같은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어떤 모임(지역 교회)으로부터도 중앙 감독에 의해 인정된 사람이라는 입장에서 전도자로 나갈 수 없습니다. 그것(중심)은 성령의 교제 가운데 있는 안디옥 모임(지역 교회)이었습니다.

 

으뜸인 하나님의 말씀

계속 나아 갑시다. 저는 여러분께서 우리가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것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이 두 사람이 안디옥을 떠나서 전도자의 일을 함에 실제로 무엇이 수반되었습니까? 그들의 섬김의 도구는 무엇이었습니까? 저는 이미 성령을 언급하였습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저를 따라 성경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의 으뜸됨 곧 그 중요성을 보고자 합니다

사도행전 13 5절에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라고 말합니다. 7절 끝 부분에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라고 말합니다. 44절에서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라고 말하며, 46절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라고 말합니다.

48절에서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라고 말하며, 49절에서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으뜸됨 곧 그 중요성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49절에 있는 이 요점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는 것입니다. 전도의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과 관련되어야 하며 그 이 외에는 없습니다.

 

구약성경을 인용하다

33절에서 이 전도자들은 구약성경을 인용합니다. 우리는 시편 2편의 인용을 봅니다. 34절에서 우리는 이사야 55 3절의 인용을 봅니다. 35절에서 우리는 시편 16 10절의 인용을 봅니다. 41절에서 우리는 하바국 1 5절의 인용을 봅니다. 47절에서 우리는 이사야 49 6절의 인용을 봅니다

형제자매님들, 여기서 생각이 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시편과 예언서에서 성경을 인용하려고 노력 하였습니다.

젊은 믿는 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잠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원칙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지만 말입니다. 젊은 믿는 자 되시는 여러분은 지금 성경 공부하는데 여러분 자신을 드리십시오. 여러분이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으로써 성경을 읽으십시오. 성경을 천천히 그리고 깊이 생각하며 읽으십시오, 성경을 암기하십시오.

성경을 적으시고 성경을 외우십시오. 성경을 여러분의 기억 속에 담아 두십시오. 만일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여러분 자신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한국에서 혹은 먼 나라에서 강력하게 쓰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지금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으뜸됨을 보는 것 입니다.

 

사용된 방법

이제 그와 관련해서 저는 우리가 그 방법에 대해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그 방법이 큰 쟁점인 것을 주의하십시오. 전도의 일에서 우리는 무슨 방법을 사용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주제에서 떠나기 전에 아마 확실한 언급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주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8 11절 씨 뿌리는 비유에서 말씀하신 것 곧 주님의 말씀의 교훈을 기억하십니까? 주님께서는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디모데후서 4 2절에서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라고 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베드로전서 1 23절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인 것입니다.

저는 그 방법으로 옮겨 가고자 합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 방법의 본질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성경에서 뽑아 내겠습니다. 전도의 일에 있어서 주 방법은 전()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께서는 여러분 스스로 관점을 따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3 5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를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38절 후반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를 보십시오. 바울이 그들에게 죄 사함을 말할 때조차 하나님의 말씀에서 죄 사함을 전하는 것이라는 그 방법이 사용되었습니다.

13 42절 후반부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전하라) 하더라를 보십시오. 이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구주를 전하는 전도자들을 기대했습니다. 14 7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를 보십시오. 그들은 죄 사함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전()했습니다

14 21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복음 그리고 죄 사함을 주목하십시오. 그들은 이 모두를 전()했습니다. 25(말씀)를 버가에서 전하고를 보십시오. 1536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로 가십시오. 이것은 일차 전도 여행 중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울에게 전도했던 지역을 돌아 보아야겠다는 부담이 주어졌을 때입니다.

15 35절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라고 말합니다. 여러분께서 주목하시기를 원하는 것은 전도자로 나가 있지 않을 때도 그들은 말씀을 전파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안디옥에 돌아왔을 때도 그들은 말씀을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형제님들, 여기에 여러분께서 주목하시기를 원하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이들이 전도지(傳道地)에 있을 때나 본국에 있을 때나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도지(傳道地)에 있을 때와 본국에 있을 때가 다르다면 그것은 큰 문제일 수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15 26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를 보십시오. 형제자매님들, 그들이 어느 성에 있든지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요점은 약간 주제를 벗어난다고 하겠습니다만 그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15 26절 끝 부분 형제들이 어떠한가를 보십시오. 저는 가능하면 제가 전도한 사람들과 접촉을 유지하고자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전도한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바울은 각 성으로 다시 가서 그들이 어떠한가 보고 싶어했습니다. 사람들이 구원 받으면 우리는 그들이 어떠한지 어떻게 자라는지 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당신은 왜 그렇게 많이 전하는 방법에 강조점을 두느냐고 물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한국은 모르겠습니다만 영국과 세계 어떤 지역에서는 전()한다는 방식은 옛날 풍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21세기에는 전()한다는 방식은 이제 더 이상 타당치 않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드라마를 통해 전해야 하며 음악을 통해 전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저는 무언극(無言劇)을 통해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사람들조차 알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갑시다. 그 방식은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경건치 않은 세상은 전하는 것(전도)은 미련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을 고백한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전하는 것(전도)은 미련한 것이니 우리는 다른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말합니다.

 

구주 예수를 전하다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주목하시기 원하는 또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성경 모두에서 가장 위대한 복음의 말씀이 사도행전 13장에 있다고 간주되는 것을 아십니까? 저는 여러분께서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에 대해 13 23하나님이 약속 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를 보십시오. 그래서 이 전도자는 구주에 대해 전()했습니다.

13 26절 후반부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을 보십시오. 형제자매님들, 저는 이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내기 위해 전도자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전도자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보낸 구원을 백성들에게 말하라고 보내셨습니다.

28-30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달라 하였으니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를 보십시오. 그래서 두 사람은 구주에 대해 전()했으며 그들은 구원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나무 위에서 죽으심과 장사 지법과 부활을 전()했습니다. 38-39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 것 이 라를 보십시오.

모든 신실한 전도자들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구주와 구원을 말할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나무 위에서 죽으심과 장사 지법 그리고 부활에 대해 백성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복음의 요점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제자매님들, 저는 전심으로 이 복음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이것은 일차 전도 여행에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했는가 하는 것과 관련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옮기려고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일로 가고자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고 그것이 어떻게 끝나는 지를 보십시오.

사도행전 13 2절 중반에서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한가한 소풍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4절 후반부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를 보십시오. 형제자매님들, 저는 이 구브로 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셋째 딸이 이 구브로 섬에 가서 교사로서 6년간 가르쳤습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께서 바울과 바나바에 대해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5절에서 그들은 분명하게 살라미에 도착했습니다. 그 다음에 6절에서 그들은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렀습니다. 형제자매님들, 그들은 그 섬 동쪽 해안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섬 남서쪽 해안으로 갔습니다. 저는 바보 항구에 서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바보는 매우 오래된 항구입니다. 저는 서서 바보 항구를 보았습니다. 거기에 관광객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이 구브로를 떠날 때 바보에서 출항한 것이 놀랍다고 생각하게 됩니까? 바울은 바보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요점이 있습니다. 살라미에서 바보까지 거리는 200마일(320) 정도 될 것입니다.

형제자매님들, 그들은 살라미에서 바보까지 가는데 사륜구동 현대자동차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같은 편안한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어려웠습니다. 저도 오래 동안 어려운 여행 중에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한 여행이었습니다. 아마 걷거나 노새를 이용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일을 위해 부름 받았는데 이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전도 여행 마지막 부분인 14 26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곳은 두 사도의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를 보십시오, 형제자매님들, 이것은 일이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것이 매우 힘든 일이었음을 아십니까? 여러분께서는 바울이 빌립보서 2 30절에서 빌립보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을 때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라 불리는 사람에 대해 쓰는 것을 아십니까? 바울은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라고 말합니다. 말씀 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일은 게으른 사람들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주 예수님은 별도로 하고 사도 바울이 한 일 보다. 더 어려운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일을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14 26절로부터 이룬 일을 주목하시기 원합니다. 성경은 두 사도의 이룬 그 일이라고 말합니다. 바꿔 말하면 형제자매님들,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도록 부르셨고 그들이 하도록 보내신 것을 그들은 했습니다.

지상(地上)에서 공적인 섬김 막바지에 계셨던 주 예수님을 잘 보십시오. 주님의 섬김도 전도의 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17:4)었다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주님께 하실 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성령께서는 이 전도자들(바울과 바나바)에게 할 일을 주셨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도 이 일을 다 이루었습니다. 바울은 (후일에) 로마에 있는 감옥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부음이 될 준비가 되었으며 떠날 기약(期約)이 가까왔다(딤후 4:6)고 말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길을 마쳤다(딤후 4:7)고 말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우리가 이 땅에서 여행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다. 이루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만일 우리에게 참의 마지막에 조용히 생각하며 뒤돌아 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가 허송한 세월을 생각해야 하며 우리가 했어야 할 일과 하지 않았던 일을 생각하겠습니까? 이 사람들은 하라고 보냄 받은 그 일을 이루었습니다.

 

저희를 대적하다

이제 저는 매우 급히 서두르겠습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이 일에 반대가 있었음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에 바로 시작부터 반대가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사도행전 13 8이 박수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를 보십시다. 여러분께서는 이 구절에서 엘루마가 일꾼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는 것을 주목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그 일꾼들에 대적 했습니다

10절 후반부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를 보십시오. 10절 후반에는 그 일에 대적했습니다. 8절에는 그 일꾼들에 대적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 일꾼이 반대를 받았으며 그 일이 반대를 받았습니다

잠시 동안 이 반대에 대해 알아 봅시다. 45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을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께서 반대 주장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50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를 보십시오.

형제님들, 이 반대가 일꾼들을 그만두게 했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세속적인 말을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면 그들은 타월을 던지고 집으로 갔습니까? 그러지 않았습니다. 형제님들, 여러분은 반대에 직면해도 그만두지 않는 것입니다. 51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을 보십시오. 바꿔 말하면 그들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14 2그러나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을 보십시오. 형제자매님들, 그 일꾼과 그 일에 대한 반대는 늘 있습니다. 14 5-6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를 보십시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그 일을 그만두지 않았으며 그들은 그 일을 계속 하였습니다. 19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를 보십시오. 20절 후반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를 보십시오. 바꿔 말하면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해 기억할 필요가 있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13 10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를 보십시오. 진정한 전도자는 모든 반대(대적) 이면에 마귀(사단)가 있음을 인정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그 사단을 보실 것입니다. 우리가 13장에서 언급된 성령을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동안에 한편에서는 사단이 뒤따라 올 것입니다. 성령은 전도자들을 통하여 역사(役事)하십니다. 이 구절에서 사단은 박수 엘루마를 통해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반대에 대해 참된 격려를 드리기 바랍니다. 우선 13 8절에 있는 총독에 대해 반대의 목적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를 보십시오. 여러분께서는 복음의 목적이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복음의 목적은 어두움에서 빛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8절 끝에서 사단의 목적은 믿음으로부터 이 사람(총독)을 돌아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남녀를 믿음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믿음으로부터 돌아서기를 바랍니다. 누가 이 싸움에서 이겼습니까? 13 12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를 보십시오. 다른 말로 하면 사단이 믿음으로부터 돌아서게 하려고 했던 이 사람이 구원 받았습니다. 그리고 형제자매님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제 딱 2분만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일에 있는 어떤 낙담에 대해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께서 원하시면 실망이라 불러도 좋습니다. 13 13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를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반대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 반대는 외부로부터 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내부로부터 오는 실망을 봅니다. 일꾼 중에 한 사람이 그 일을 떠나 집으로 갔습니다. 형제자매님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하여 나가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은 외부로부터 오는 반대에 직면할 뿐 아니라 여러분은 내부로부터 오는 실망을 볼 것임을 주의하십시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이기는 편에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분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더 크십니다.

 

마무리

지난 밤 보다 좀 더 일찍 마치겠습니다. 오늘 저녁뿐만 아니라 이전 집회에서도 진지하게 잘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여러분께 정직하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제 마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여러분이 보여주신 관심에 대해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여러분 모두를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모든 친절에 대해 감사 드립니다. 저의 세 형제님들 ○형제님, ○형제님 그리고 ○형제님의 도움과 통역에 대해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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