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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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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Robin Mckeown

들머리

제가 처음 구원 받고 성경 여기 저기를 보았을 때 제가 성경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구원 받았을 때 말씀을 전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성경 어디를 읽어야 되느냐고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 분은 나는 당신이 네 복음서, 로마서, 디모데전후서 그리고 디도서를 읽을 것을 추천하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정확하게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오늘날에도 이 책들을 꽤 많이 좋아합니다. 그럼 오늘 저녁에는 디모데전서 314-16절을 간단히 읽겠습니다.

디모데전서 3: 4-16

14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오늘 밤에 저는 특히 14-15절이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 15절은 이 서신서 전체에 있는 중심 구절이라고 일컬어져 오고 있습니다. 저는 전적으로 그것에 동의합니다. 이 구절은 서신서 전체의 중심 구절입니다. 더욱이 그것은 신약성경 가운데 있는 지역 모임에 관한 가장 중요한 구절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는 이 두 구절에서 좀 자세하게 살피고자 합니다. 아시는 대로14절은 이것을1로 시작됩니다. 형제자매님들, 이것은 이 서신서에 있는 중심 표현입니다. 그것은 디모데전서에 7번 나옵니다. 그것은 대체로 서신을 강조한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그것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인데 14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에 있습니다.

1 흠정역(KJV)에는 These things write I unto thee, hoping to come unto thee shortly로 되어 있으나 한글 개역 성경에는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으로 되어 있어 이것을이 중반쯤에 나옴.

4 6절을 보십시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그 대답은 잠시 후에 주어질 것입니다.

우선 그 언급들을 보십시다. 4 6절을 다시 주목하십시오. 디모데는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쳤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깨우치되 지속적으로 깨우칠 필요가 있는 위대한 진리들이 있으며 그것은 지역 모임(교회)과 관련된 위대한 진리에 분명히 적용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4 11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를 보십시오. 여기서 여러분은 그것이 중요하게 여겨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고 쓸 때 이것들은 중요한 것들이며 지역 (모임) 증거에 필요 불가결한 것이었습니다.

4 15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를 보십시오. 이 일(these things)에 있어 흥미로운 것은 디모데가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무엇이든지 간에 디모데의 진보로 귀결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에 대한 디모데의 전심전력한 동참이 디모데의 영적인 진보로 귀착될 것입니다.

형제자매님들, 제가 오늘 밤에 여러분께 말씀 드리고자 하는 일들은 우리의 전심전력한 동참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일들에 전심전력하며 동참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합니다.

5 7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를 보십시오. 5장에서 디모데는 관계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바울이 관계들을 다루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바울은 5 7절에서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라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형제자매님들, 만일 성도들이 이것을 행하면 증거에 책망 받을 것이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문제점에 비난의 손가락질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잘못 행동할 때 그것은 거의(그들이) 승리를 얻었다 해도 좋을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만일 이것을 우리 편으로 끌어 들인다면 우리의 증거는 잘 될 것이라는 것을 디모데에게 분명히 합니다.

 

편견이 없이

5 21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를 보십시오. 형제자매님들, 이것들은 중요한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것들을 지킬 것을 명합니다. 그것은 문자적으로 이것들을 보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되는 하나님의 모임(교회)과 관련된 위대한 진리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을 대적(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구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를 보십시오. 형제자매님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일에 있어서 편견을 몹시 싫어하십니다. 로마서 2 11절에서 우리는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라고 읽습니다. 하나님에게는 편견이 없습니다.

영적인 일을 다루는 부분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장로들의 책임입니다. 우리는 이 일(영적인 일)에 편견이 없어야 합니다. 형제자매님들, 저는 모임(지역 교회)들에 있는 상황들을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위선적인 추문들이 있습니다. 상당 부분 그것이 누구인가에(따라) 좌우됩니다.

때때로 저는 모임(지역 교회)으로부터 매우 심하게 다루어지는 어떤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어쩌면 매우 심각한 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그 일을) 성실하게(다루지) 않고 아주 가볍게 다루어집니다. 왜냐하면 마침 그가 어떤 장로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다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편견이 없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6 12절 곧 이 구절의 끝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를 보십시오). 이것들이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들은 서신서 전체 가르침에 대해 언급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서신서 매장(每章)에 대해 언급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서신서 매 문장(文章)에 대해 언급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님들, 우리와 관련되는 한에 있어서 우리들이 어떻게 모든 성경에 (대해) 우리들의 마음을 열어야 되는가라고 하는 의미(중요성)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이제 3 14절로 돌아 갑시다. 다시 그 구절 마지막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을 주목하십시오. 이것은 현재시제입니다. 이 현재시제는 1 1절에서 마지막 장 마지막 절까지 서신 전체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입니다.

여기서 여러분께서는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를 주목하실 것입니다. 디모데가 부끄러움(염치)에 있어서 둔감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디모데는 에베소에서 해야 될 어려운 일을 맡았습니다.

예를 들면 1 3절에서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전적으로 디모데를 만나기 위해 급히 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3 15절은 바울이 급히 도착하는 것이 확실치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이라고 말합니다.

형제자매님들, 그것은 오늘 날도 같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어떤 계획과 진행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처에 가서 무언가를 하는 계획을 세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보기 위해 속히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써 남겼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유익이 됩니다. 바울이 속히 도착할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해서 이 서신을 씁니다. 우리는 이 서신에서 도움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이어지는 것을 보십시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합니다). 그 의미는 누구든지 간에 어떻게 그 자신이 행하여야 알 것인가에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것이 믿는 자 전체에 적용된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믿는 자 각자에게도 적용됩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간에 어떻게 행하여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서신서안에 젊은 믿는 자와 나이 드신 믿는 분을 위한 안내가 있습니다. 이것은 믿는 자 각자의 행동과 관련됩니다. 그들이 나이가 많든 젊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에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여기 (있는) 이 말 곧 너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필수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선택적인 행동으로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필수적인 행동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르는(선택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서 선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장로의 요건

이 서신 가운데 있는 전적으로 필수적인 행하여야 한다(oughtest)라는 말에 대한 언급들을 봅시다. 3 2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를 보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의 모임(지역 교회) 안에 있는 장로들의 요건의 하나입니다.

성경 낭독 집회에서 한 형제님이 여러분은 장로들의 이 요건에 대해서 너무 많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장로의) 요건이라면 어떤 장로에게 있어서도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남부끄러운 말을 하는 주장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장로의 자격)은 필수적인 요건들입니다. 감독들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3 7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반드시.must) 얻은 자라야 할지니를 보십시오. 이 요건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한 장로로서 자격이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 (장로 예정자)가 그 지역(사회)메서 선한 증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실제로 의미합니다.

 

집사의 요건

3 8이와 같이 (반드시:must)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를 보십시오. 형제자매님들, 이것은 선택적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필수적입니다.

5 13절을 잘 보십시오.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ought) 아니할 말을 하나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 구절 마지막에 (있는 것처럼) 필수적입니다. 폄론과 수다는 다른 사람들(믿지 않는 자)이 하는 일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엄하게 금지됩니다.

 

필수적 행위

이제 3 15절로 돌아 갑시다 우리는 행위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필수적인 행위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서신 5장에서 매우 흥미롭게도 늙은이, 젊은이, 늙은 여자 그리고 젊은 여자에 대해서 듣습니다. 우리는 과부에 대해서도 듣습니다. 6장에서 우리는 피고용자에 대해 권면하는 것을 듣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행위의 모든 종류입니다.

형제자매님들, 모든 참 하나 하나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참의 각각이 (어떤) 관계들과 관련된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5 1절에서 바울이 반드시 ()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관계들 가운데 있는 행위들의 모든 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행위가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 한 이유는 하나님의 증거가 하나의 충실한 이행(실행)이기 때문입니다.

그 구절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로 돌아갑시다. 이 서신에서 하나님이 222 언급되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경건은 93 언급됩니다. 이것 곧 경건 9번은 매우 중요합니다. 신약 전체 (서신)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경건이라는 말) 모두는 (디모데전서를 제외하면) 정확히 64 언급됩니다.

2 한글 개역 성경에는 23번 나옴

3 한글 개역 성경에는 8번 나옴.

4 한글 개역 성경에는 7번 나옴.

그래서 이 서신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며 경건에 대한 것입니다. 경건(godliness)은 하나님 같음(godliness)입니다. 왜 이 서신에서 하나님과 경건이 그렇게 필수적입니까? 왜냐하면 그것(서신)이 하나님의 집으로 가득 차있으며 그 하나님의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의 집5이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합시다(그리스(헬라)어 성경에는) 정관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의 그 집(the house of God) 정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실제로 하나님의 집(house of God)입니다. 그래서 실제적인 특성이 보입니다.

행위에 대해 강조가 놓이는 이유에 주의하십시오. 모임(지역 교회)에 있어야 되는 특징적인 행동이 있습니다.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에서 우리가 집이라는 말을 8번 읽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미 이 장(3) 3번의 언급이 있습니다.

5 흠정역(KJV)에는 the house of God으로 되어 있으나 그리스(헬라)어 성경에는 house of God으로 정관사가 없음.

여전히 감독 혹은 장로에 대해 말하는 3 4자기 집을 잘 다스려를 보십시오. 자기 집이라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모임(지역 교회) (장로) 자기 집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집은 자기 집입니다. 그러나 모임(지역 교회)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모든 모임(지역 교회) 교제는 모임(지역 교회)이 하나님께 속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3 5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를 보십시오. 형제자매님들, 이것은 매우 주목할 만 합니다. 장로들의 집과 하나님의 집 사이에 가까운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3 12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를 보십시오. 주님께서 목회 서신에서 그 집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장로들의 집과 집사들의 집에 대한 특성 중에 하나는 경건한 질서(순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도 질서(순종)가 있어야 합니다.

 

야곱이 기둥을 세우다

저는 잠시 돌아 보기를 원합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여기서 어떤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 작은 부분 3 15-16절에서 우리는 집에 대한 언급을 보며 기둥에 대한 언급을 봅니다. 매우 흥미롭게도 우리가 첫 언급의 원칙에 따르면 창세기 28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 대한 첫 언급을 봅니다.

창세기 28 16절에서 야곱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28 17절에서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이라고 말하며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라고 말한 것을 주목하십시오.

28 18절에서 우리는 그가 돌로 기둥을 세운 것을 읽습니다. 그리고 2 19절은 그곳 이름을 (하나님의 집을 의미하는) 벧엘이라 하였더라(라고 말합니다). 그는 오르락 내리락 하는 천사들을 보았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쓸 때 창세기 28장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장로의 집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곳은 장로가 사는 데입니다. 거기에 그는 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집사의 집에 이르게 되면 거기는 집사가 거하는 데입니다. (이제)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집에 이르게 되면 거기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데입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전

특히 그것은 고린도전서 3 16-17절에서 명백하게 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실례(實例)는 비유 표현에서 성전으로 보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고린도전서 3 16-17 두 절에서 하나님이 5번 언급된 것을 주목하셨습니까? 거기에 하나님의 집으로서 지역 모임(교회)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입니다. 이것에 대해 제가 약간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입니다. 저는 다른 아무데도 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모임 교제 가운데 있는 믿는 자들로 이루어진 한 모임(지역 교회)에 대한 의미입니다. 교파 출입에 대해서 저는 성경에서 어떠한 근거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집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집의 특징1 - 질서

저는 여러분께서 모든 집에서 특징지어져야 되는 세 가지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는 질서정연함입니다. 다시 장로의 집을 보십시다. 3 4-5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 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를 보십시오. 형제자매님들 장로의 집이 질서정연해야 한다면 하나님의 집은 얼마나 더 질서정연해야 되겠습니까?

3 12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를 보십시오. 여기에 또 다른 집이 있습니다. 이것은 집사의 집입니다. 이 구절에서 집사의 집에 있는 경건한 질서정연함을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얼마나 더 질서정연해야 되겠습니까?

고린도에 있는 모임(지역 교회)으로 가십시다. 거기는 경건한 질서정연함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주의 만찬에서 질서가 방해를 받았습니다. 그들 가운데 분열이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술 취함이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분파 그룹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 22절에서 그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했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느냐고 말했습니다. 거기에 질서정연함이 부족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집을 업신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 14장에 이르게 되면 거기는 은사 실행에 무질서가 있었음을 봅니다. 사실 이 구절 40절은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 대로 하라(라고 말합니다).

질서와 관련하여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다시 문제는 (지역) 교회 안에서 잠잠함과 관련된 여자들의 역할입니다. 형제자매님들, 한 모임(지역 교회)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질서 있는 모양으로 기능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집의 특징2 - 깨끗함(거룩)

그리고 하나님의 집에 있어야 되는 두 번째 요건입니다. 이 집은 매우 독특한 하나님의 집입니다. 거기는 깨끗함(거룩)이 있어야 합니다. 이 집은 깨끗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결(순수)을 요구하십니다. 사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딤전 5:22)라고 씁니다.

우리가 고린도 모임(지역 교회)에 이르게 되면 깨끗함과 정결함의 결함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서 보면 모임(교회) 안에 큰 불결함이 있었습니다. 모임(교회) 안에 있는 어떤 사람이 난잡한 가운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집을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자에 대해 대답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매우 엄숙합니다. 하나님의 집을 더럽히고 있는 그 사람은 그 모임(지역 교회)에서 쫓겨나야 합니다.

 

집의 특징3 - 사랑

집에는 (어느 집이든) 또 다른 큰 특징이 있습니다. 저는 한 집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집 배후에 가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집에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작은 가족을 보는 것이 아름답기 도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자녀들이 사랑 가운데서 자라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모든 집은 사랑으로 특징지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도 사랑으로 특징지어져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요한1 4 8절은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요한1 4 19절은 우리가 (그를)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라고 말합니다. 모든 모임(지역 교회)은 사랑으로 인한 표시가 있어야 합니다.

형제자매님들, 고린도전서로 돌아 갑시다. 거기에 그 (성도들의)관계에 있어서 부주의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분열에 속해 있었습니다. 1장에서 분파적인 분열, 11장에서 사회적인 분열 그리고 분파적인 그룹들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사랑의 결핍 가운데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썼습니다. 바울은 사랑에 대한 온(전체) ()을 썼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고린도전서 13장은 모두 사랑으로 되어 있습니다.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를 생각하십시오,

만일 여러분께서 사도 요한이 요한1서와 요한2서에서 서로라는 용어 7번 언급한 것을 아신다면 그 첫 번째 언급은 요한1 1 7절입니다. 나머지 서로에 대한 언급 6번은 모두 사랑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요한1서에는 장()이 다섯 개 있습니다. 요한은 사랑 47번 언급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락방에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13: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몸된 교회와 지역 교회

형제자매님들, 하나님의 집에 있는 그 사랑에 대한 매우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 대한 책임에 대해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바로 말씀 드려야 할 것은 이것이 그의 몸인(몸된)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그의 몸인(몸된) 교회를 아셨습니까? 그것(몸된 교회)은 결코 하나님의 집으로 불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것이 결코 하나님의 교회로 불리지 않았다는 것을 주목하실 것입니다.

그것(몸된 교회) (지역 교회와 완전히) 별개이며 전적으로 유일무이한 몸으로 오순절부터 휴거된 교회까지 모든 믿는 자를 포함합니다. 믿는 자는 아무도 그리스도의 몸에서 쫓겨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죄를 범하여 지역 교회에서 쫓겨날 수 있습니다.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이제 다시 하나님의 집이 무엇인지 보십시다. 그 구절은 여러분께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라고 말합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라는 용어에 대해 생각합시다.

3 5절 끝에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라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영어 번역에서 교회라는 말은 그리스(헬라)어에서 영어로 교회가 아니고 모임이라는 말이 더 잘 번역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그 말이 그리스(헬라)에클레시아(ekklesia) 인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것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ok라는 작은 말입니다. 이것은 부터(out of)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klesia라는 말은 함께 모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한 모임(an assembly)입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부름 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함께 모인 모임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부름 받아 나와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우리는 세상에서 부름 받아 나와 있습니다. 부름 받아 나온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인 것입니다.

 

돌봄

우리는 3 5절을 언급합니다. 이 구절 마지막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를 다시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께서 이 구절에서 어떤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돌봄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의 또 다른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그 집에서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사랑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3 5절에 있는 그 교회는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장로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5 16절로 돌아가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로 짐지지 말게 하라 이는 참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니라 그들(과부들)에게 사회적 도움의 필요를 아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부양수단을 가지지 못한 과부들 곧 나이든 과부들이 있었습니다.

5 16절에서 그 모임(지역 교회)이 과부들을 돌아보아야 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래서 5 16절에서 우리는 돌보는 일을 하는 모임(지역 교회)을 봅니다. 그리고 3 5절에서 우리는 돌봄을 받는 모임(지역 교회)을 봅니다.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 모임(지역 교회)이 돌봄을 받고 있습니다. 장로들의 돌봄을 경험하는 그 모임(지역 교회)은 그들(구성원들) 가운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분 것을 기억하십시오.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20 28절에서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to feed the church of God. which he hath purchased with his own blood)라고 말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이제 저는 우리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왜 여러분께 소개되겠습니까? 우리는 디모데가 살고 있는 곳을 기억합니다. 이 때에 디모데는 큰 도시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모임(지역 교회)이 있었습니다. 에베소 도시의 특징적인 표시 중 하나는 온통 우상숭배를 하는 에베소 사람들의 아데미 이교 신전이었습니다. 그 여신은 살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 이교우상은 생명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지역 모임(교회)의 구성요소입니다. (그 하나님은) 특성에서 비교되며 (살아 계셔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보십시다

여러분께서는 이 서신(딤전)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36 보실 것입니다. 이것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가 그 첫번째 언급입니다. 형제자매님들, 우리는 하나님의 장소를 생각나게 하고자 합니다.

5 흠정역(KJV)에는 3:15, 4:10, 6:17 3living God으로 되어 있으나 한글 개역 성경에는 6:17하나님으로 되어 있어 2번 나옴.

하나님의 장소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려고 택하신 곳입니다. 형제자매님들, 신약 교회 시대에는 어떤 다른 장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곳은 지역 교회 곧 지역 모임입니다. 4 10절로 가십시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형제자매님들, 하나님의 보호 하심과 관련해서 그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람들은 비난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이 문맥에서 그 구주이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누립니다.

6 17절을 보십시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패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두며(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구절 후반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누릴 것들을 후히 그들에게 주십니다. 이 구절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준비(예비)와 관련됩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빌립보서 4 19절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4:l9), 형제자매님들, 우리는 하나님의 모임(지역 교회)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준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장소에 속할 수 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저는 여기서 옮기고자 합니다. 옮기기 전에 한 가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두 용어 하나님의 집 그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이 두 사이에 있는 구별되는 특징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매우 단순하게 제시 받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우리가 데리고 들어 옴을 당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우리가 부름을 받아 나와 있으며 (세상에서) 분리와 (하나님께로) 분리를 포함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데살로니가전서 1 9절입니다.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라고 말합니다).

 

진리의 기둥과

계속 진행하십시다. 우리는 이제 건축 용어에서 온 두 표현을 봅니다. (그것은)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기둥이라는 의미에서 그들은 그 기초를 보았습니다. 그 말은 진리라는 말에 대해 곧 바로 말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중 표현 기둥과 터에 대해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창세기 28장에서 그 기둥이 세워진 것을 이미 드러낸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기둥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광야에 있던 성막에는 69개 기둥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솔로몬 성전에는 2개 기둥이 있었는데 하나의 이름은 저가 세우리라라는 의미인 야긴이었고 다른 하나의 이름은 그에게 능력이 있다는 의미인 보아스였습니다. (왕상 7:21-22)

지역 모임(교회)이 기둥으로 드러납니다. 형제자매님들, 지역 모임(교회)에 관해서 (말하자면) 하나님이 그것을 세웠습니다. 야긴저가 세우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솔로몬 성전에 있는 또 다른 하나의 기둥 이름은 그에게 능력이 있다 (의미인) 보아스입니다.

형제자매님들, 모든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 안에서 발견됩니다. 빌립보서 4 13절에서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에게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둥의 의미는 또 다른 의미에서 매우 중요했습니다. 큰 도시 에베소에 있는 아데미 신전에는 127개 기둥이 있었습니다. 각각은 그 기부자들이 있었으며 두드러지게 각 기둥은 그 이름을 영예롭게 하였습니다.

이제 지역 모임(교회)에 대한 이 표현을 보십시다.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라고 말합니다. 형제자매님들, 한 기둥은 네 가지 목적 중 하나를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받치다

한국에 있는 큰 어떤 도시에서 우리는 건물에 있는 기둥들을 봅니다. 보통 기둥들은 어떤 건물을 떠 받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모임(지역 교회)진리의 기둥과 터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형제자매님들, 지역 모임(교회)은 그 자리에서 진리를 떠 받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역 모임(교회)을 둘러싸고 있는 데에서는 진리가 부인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진리의 어떤 부분을 그만둘지도 모르며 그 다음에 (이어서) 진리의 다른 부분을 부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역 모임(교회)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진리를 떠 받치는 것입니다.

 

빛을 나타내다

기둥이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목적은 빛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요한계시록 1-3장에 계신 주님을 기억하십니까? 주님께서는 일곱 금 촛대 혹은 등대 사이를 다니십니다.

저는 여러분이 살고 있는 큰 도시에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큰 건물에 있는 큰 등대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등대들은 빛을 나타냅니다. 지역 모임(교회)은 그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일곱 금 촛대는 빛을 발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2 15절을 기억하십니까? 바울은 그 모임(교회)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라고 썼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빌립보에 있는 그 모임(지역 교회)이 어두운 세상을 향한 큰 빛이었음을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기둥은 빛을 발하는데 사용되곤 하였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영국의 섬들을 아실 것입니다. 영국은 참으로 섬나라입니다. 모든 해변 주위에 등대들이 있습니다. 거기서 등대들이 빛을 발하여 길을 보이며 위험을 경고합니다. 지역 모임(교회)도 그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이름을 드러내다

그러나 종종 기둥의 일차적인 목적은 어떤 이름을 드러내며 어떤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아데미 신전에 있는 127개 기둥들은 어떤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솔로몬 성전에 있는 두 기둥은 어떤 이름을 드러냈으며 어떤 이름에 대해 각각 (무언가를) 나타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지역 모임(교회)은 그 자리에서 어떤 이름에 영광을 돌리며 어떤 분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께서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가시면 광장 한 가운데서 한 기둥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그 기둥은 그 자리에서 한 사람 곧 넬슨 경()에게 영예를 돌립니다. 그의 이름이 그 기둥에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께서 워싱턴 D.C.에 가시면 워싱톤 기념관으로 알려진 것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리에서 한 사람에게 영예를 돌립니다. 형제자매님들, (지역) 모임(교회)은 그 자리에서 한 분에게 영광을 돌리며 한 이름에 영광을 돌립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18:20)라는 말씀을 생각하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여기 상무에 있는 지역 모임(교회)은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여기서 그 분(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유쾌하게 보라 이 사람이로다( 19:5)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13 38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라고 전파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지역) 교회는 하나님의 집인데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 그 자리에서 그 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어떤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 분(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어떤 (다른) 이름이 아니라 그 이름(주님)에 영광을 돌립니다. 저는 여러분께 고린도전서 초반에 주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빈번한 사용을 말씀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표현 곧 토대 혹은 기초 혹은 버팀 막대(지주)로 가십시다. 우리는 기둥이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저는 적지 않게 문헌에서 건축학에 대해 읽곤 합니다. 각 기둥은 세 부분이 있습니다. 주 기둥이 있고 그리고 기둥 꼭대기는 정상 기둥머리라 불립니다.

기둥 바닥은 토대(주춧돌)(the base)로 불립니다. 이것이 여기서 보이는 말입니다. 토대 곧 진리의 터(the base)입니다. 그래서 이 두 부분 곧 기둥과 터를 취하는 것입니다. 둘 다 진리와 관련되었습니다. 그리고 둘 다 지역 모임(교회)과 연관되었습니다.

주 기둥인 기둥은 누구나 아주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둥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은 진리를 퍼뜨리는(전파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형제자매님들, 여러분께서는 이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경건치 않은 자들은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그러나 경건치 않은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진리를 읽을 수 있습니다. 경건치 않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읽습니다. 지역 모임(교회)은 그 기둥으로서 그 자리에서 온 거리에 진리를 전파하는(퍼뜨리는) 것입니다.

 

수호(守護)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 토대 혹은 기초 혹은 버팀 막대인 터에 이르게 되면 거기서 우리는 진리의 방어(수호)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 기둥은 그 위치 그리고 그 토대 그리고 터를 나타내야 하며 (또한) 방어 (수호)해야 합니다.

먼저 제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빌립보서 1 17절에 있습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변명(방어)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라고 말했습니다. 지역 모임(교회)은 그 자리에서 진리를 방어 (수호)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후서에서 이 진리라는 말이 11번 나오는 것을 아셨습니까? 기둥의 토대 혹은 기초()에 대해 여러분께 말씀 드리겠습니다. 동방 혹은 중동 지역에서는 그 기둥 토대()에 기탁물 금고가 있었던 것은 매우 일반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상자 같은 것으로 기둥 바닥 족으로 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안전 자물쇠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탁물 상자에는 그것에 어울리는 권위가 부여되었습니다. 그것에는 중요한 기록 문서 가 들어 있었습니다.

어찌면 법률 기록 문서, 행정 기록 문서, 역사 기록 문서가 들어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기둥 토대()에 있는 그 안전 상자에 그것들이 안치됩니다. 그리고 그 기록들은 다가오는 세대인 후대를 위해 거기에 보관됩니다.

거기에는 다가오는 세대들을 위해 지켜야 되는 중요한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모임(지역 교회)을 생각하건대 우리는 진리를 나타내고 방어할 뿐 아니라 진리를 다음 세대에 넘겨줄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가졌는데 전해 받았습니다.

제가 의미하는 바를 성경에서 실례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디모데후서 2 2절에서 바울은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라고 디모데에게 씁니다.

거기서 그들이 진리를 넘겨주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여러분께서는 이 구절 안에서 네 세대가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 진리가 바울에서 디모데에게 넘겨졌으며 그리고 디모데가 충성된 사람들에게 맡겼습니다. 그 충성된 자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넘겨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터입니다. 형제자매님들, 우리는 모임(지역 교회)에 속해 있다는 큰 영예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 짐을 지고 계신 것을 압니다.

모임(지역 교회)이 모임(지역 교회) 진리만 방어(수호)하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방어(수호)하는 모임(지역 교회) 진리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진리를 방어(수호)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위대한 진리에 대해 생각하십시오.

저는 어떤 복음 단체를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주 예수님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옳습니다. , 그러나 그는 주님께서 죄를 범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심각한 오류입니다.

주 예수님이 죄를 범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역 모임(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위대한 진리를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주님의 신성, 주님의 인성 그리고 신성과 인성이 함께 함 말입니다. 이 구절들(딤전 3:15-l6)은 이것을 다룹니다. 곧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셨습니다. 이것들이 성경 진리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성경을 제시하겠습니다. 저는 그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저는 오늘 밤 여러분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범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주님께서 죄를 범할 수 없었다는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마태복음 7 18절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거기서 여러분께서는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읽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서 여러분은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읽는 것입니다. 물론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좋은 나무는 나뿐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주 예수님이 죄를 범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형제자매님들, 우리는 위대한 구주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가장 요긴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다. 헨리 몬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히브리서에 관한 한 책을 썼습니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있어서 매우 강력합니다. 그러나 헨리 몬이 그 책 서문에서 말하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구주는 완전한 하나님이 아니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만일 건너편 끝에 (닿도록)해야 할 다리가 파손되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을 다른 건너편까지 건너게 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구주는 하나님이 아니며 멀리 건너편 끝까지 (닿도록) 길을 낸 다리와 같은데 그 다리가 당신을 (건너편으로) 건너게 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아니시면 우리를 하늘 본향으로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마무리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형제자매님들, 주님은 우리를 안전하게 건너편(하늘 본향)으로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 본향을 생각할 때 찬송을 부르지 않습니까? 각 절 끝에 있는 (가사) 말인 할렐루야! 참으로 놀라운 구주(救主)시로다!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심령에 축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매우 잘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제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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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