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빌립과 더불어

Robin Mckeown

들머리

안녕하세요(good afternoon)를 다시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밤에 전할 말씀을 아직 (완전히)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밤에는) 저는 지역 모임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특히 디모데전서 3 14-15절을 말입니다. 그것은 오늘 밤을 위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몇 가지 교훈 특히 빌립 주변에서 이루어진 교훈들을 상고하고자 합니다. 이제 우리의 말씀은 요한복음 1장에서 (가져) 오겠습니다. 우리는 40절부터 마지막 51절까지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40-51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빌립에 대하여

여러분께서 마태복음으로 돌아 가시게 되면 여러분은 빌립에 대해서 읽으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 그의 이름이 열두 제자의 명단에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빌립에 대해 (더 이상) 아무것도 우리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3장에서 우리는 열두 명의 명단에 있는 빌립에 대해 읽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우리에게 빌립에 대해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6장에서 빌립은 열두 명의 명단에서 언급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우리에게 빌립에 대해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사도행전 1장으로 가시게 되면 빌립의 이름이 열한명의 명단에 있습니다. 가롯 유다는 이미 죽었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빌립

그러나 여러분이 요한복음으로 가시면 그것은 매우 다릅니다. 요한은 우리에게 빌립에 대해 상당히 많이 말합니다. 거기에는 요한 주변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교훈 네 가지가 있습니다. 중요한 교훈 네 가지라고 언급했지만 저는 오늘 그 첫 번째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는 만남(찾음)이라는 말씀에 대한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6장에 가게 되면 거기에는 먹임(양육)에 대한 교훈이 있습니다. 받아 적으시는 분들을 위해 말씀 드리면 6 1-13절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주 예수님께서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을 먹이신 때를 기억하십니까?

주님께서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기적은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에 의해 제공됩니다. 이것은 네 저자 모두에 의해 제공된 유일한 기적입니다. 그러나 요한만이 빌립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교훈이 먹임(양육)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는 그 교훈이 열매 맺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20-23절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 온 어떤 헬라인들에 대해서 배웁니다. 그들이 빌립에게 와서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주님의 ()부분이 빌립과 안드레에게 적용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흥미롭습니다. 그들(헬라인들)이 빌립에게 다가 갔습니다. 그 다음에 빌립이 안드레에게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님께 말씀 드립니다.

저희가 방금 언급한 먹임(양육)에 대한 교훈에 흥미로운 것이 있습니다. 빌립과 안드레가 다시 언급됩니다. 주 예수님께서 12 24절에서 빌립과 안드레에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 열매 맺는 데 대한 교훈이 있습니다.

틀림없이 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을 분명히 하고 계셨습니다. 많은 열매가 십자가의 죽으심에서 나옵니다. 형제자매님들, 동일하게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열매 맺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우리는 로마서에 따라 신분적으로 죽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바울이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6:11)라고 쓰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형제님들, 우리는 참으로 우리 자신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에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고 썼습니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2 20절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2 24절에서 열매 맺는 데 대한 교훈을 봅니다.

빌립 주변에서 이루어진 마지막 교훈은 요한복음 14 1-11절에 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교훈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빌립이 주 예수님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8)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한 질문을 (요청)하셨습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참된 교훈입니다.

이리하여 1장에서는 찾음(만남)에 대한 교훈, 6장에서는 먹임(양육)에 대한 교훈, 12장에서는 열매 맺음에 대한 교훈 그리고 14장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교훈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바쁘시다

1장으로 가십시다. 저는 여러분께서 우선 53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튿날이라고 읽습니다. 잠시 요한복음 1장에 있는 에 대해 살펴보십시다. 29이튿날을 보십시오. 이것은 전날 바로 다음입니다.

이리하여 29절에서 우리는 둘째 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5또 이튿날을 보십시오. 이것은 첫째 날이 되는 이유입니다. 이제 43이튿날(the day following)로 갑시다. 이것은 넷째 날이 되는 이유입니다.

형제자매님들, 여기에 교훈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여기서 배우기 바랍니다. 매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위해 바쁘셨습니다. 우리는 둘째 날, 셋째 날 그리고 넷째 날에 대해 읽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날이면 날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해 바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 바쁘도록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저는 자기들의 자녀를 기르는 어머니들을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자녀들을 하나님을 위해 기를 큰 영예를 가지 셨습니다.

세상을 위해 자녀들을 기르는 것은 우리들이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그들을 기르기를 바라며 그들이 어릴(젊을)때 구원 받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매일 하나님을 위해 살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 어제 그리고 내일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았어야 했고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5 16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만 우리는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라고 읽습니다.

스코틀랜드에 여러 해 전에 머리 맥쉐인이라는 그리스도인이 있었는데 복음 전파에 대단했습니다. 저는 그에 관한 책 한 두 권을 읽었습니다. 그는 일기를 자세히 적었습니다. 저는 그의 일기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 일기에) 그가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일기에서 한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한 날의 끝에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할 것이 없어도 이 24시간은 주님을 위해 깨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한 날의 마지막까지도 하나님을 위해 있기를 애썼습니다. 저도 그와 같았으면 합니다.

 

빌립을 만나

43절로 가십시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라고 말합니다), 형제자매님들, 저는 여러분께서 어떤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매우 강한 표현입니다. 그것은 문자적으로 갈릴리로 가시기로 마음을 가지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님께서 갈릴리로 떠나셨을 때 큰 목적을 가지고 가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빌립 족으로 향하셨고 빌립을 만나(발견하)1 때를 주목하십시오. 제가 여러분께 말씀 드리고 있는 것은 주님께서 빌립을 발견하기(만나기) 위해 갈릴리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목적 없이 여행하지 않으셨습니다.

1 한글 개역 성경에는 빌립을 만나로 되어 있으나 흠정역(KJV(에는 findeth Philip(빌립을 발견하여)로 되어 있음.

주님께서 하늘에서 세상()으로 여행하셨을 때 큰 목적에 어울렸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오신 그 목적입니다. 주님께서 갈릴리로 가신 이 날 목적을 가지시고 가셨습니다. 주님은 빌립을 찾기(발견하기) 위해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제가 잠시 말씀 드려서 (만남에 대해) 떠오르게 해드렸으면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성경이 만남(찾음)에 대해 많이 말하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사실 이 (요한)복음은 만남(찾음)으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장에서 어느 정도 그것을 보고자 합니다.

(요한복음)은 만남(찾음)으로 끝납니다. 요한복음 216절에서 여러분께서는 그 밤에 (고기를) 잡으려고 애쓴 제자들이 있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6절에서 주 예수님은 그물을 매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고기를) 잡지 못한 이유를 아실 것입니다. 밤새도록 그들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주님 없이 (고기 잡으러) 나갔습니다. 여러분은 그 시간대에는 거의 언제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는 것은 참으로 불가능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그들은 그 시간대에 갈리리 (바다)에 고기가 가득하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졌을 때 그 그물은 고기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고기를) 만난(찾은)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여러분은 그 잃은 양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목자는 잃은 양을 찾아 나셨습니다. 마침내 그 양을 만났(찾았)습니다. 그 양을 찾았을 때 그는 어깨에 메고 기뻐하였습니다.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라고 했습니다).

어느 여자가 은전(드라크마) 하나를 잃었습니다. 그녀는 찾을 때까지 부지런히 찾았습니다. (찾은 후에) 그녀는 이웃에게 가서 그녀와 함께 즐기자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잃었던 은전을 만났(찾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탕자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아버지는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찾았)노라(15:24)라고 말합니다. 찾음(만남)은 성경의 큰 주제입니다. 잠언8 17절에서 성경은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잠언 8 35절은 대저 나를 얻는(찾는) 자는 생명을 얻고(찾고)라고 말합니다.

형제자매님들, 우리가 그리스도를 얻을(발견할) 때 우리는 생명을 얻습(발견합)니다. 저는 한 벗(친구)을 얻었(만났)는데 오, 그러한 벗(친구)을 얻었(만났)습니다. 그 분은 제가 그 분을 알기 전에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분께서 저를 사랑의 줄로 이끄시고 그 줄로 그 분께 저를 묶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움직이시다

43절로 돌아 가십시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라고 말합니다) 제가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이것은 빌립을 만나기(찾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주님은 우연히 빌립을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때때로 여러분은 어떤 도시에 가서 쇼핑을 하고 나서 귀가해서 식구들에게 오늘 결코 만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나는 아무개 형제님을 우연히 만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이것과는 얼마나 다릅니까?

주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떠나시기 전에 빌립을 만나라고 되어있음을 우리는 읽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빌립을 만나러(찾으러)가셨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님들, 빌립은 영원히 결코 이 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빌립은 주님께서 자기를 만난(찾은) 날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저를 만난(찾은) 날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주님께서 저를 만난(찾은) ()을 아십니까? 주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저를 찾으(만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찾고 계셨습니다. 먼저 움직인 것이 빌립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을 주목하십시오. 그것(먼저 움직인 것)은 빌립을 찾으러 (만나러) 나가신 주님 이 셨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먼저 움직이신 것은 하나님이셨던 것을 주목하셨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찾아 가지 않았던 것이 에덴에서 (있었던) 매우 슬픈 일이었음을 아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찾아 나서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말씀으로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찾고 계셨습니다.

 

나를 좇으라

43절을 다시 보십시오.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하셨습니다). 빌립을 만나(찾으)신 전체적인 목적은 빌립이 그리스도를 좇도록(따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좇도록(따르도록) 하려고 여러분을 구원 하셨습니다.

만남(찾음)은 언제나 좇음(따름)으로 귀결됩니다. (요한) 복음은 좇음(따름)으로 시작됩니다. 예를 들면 37절은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38절을 보십시오. 그것은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로 시작되는 아름다운 말씀이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좇고 있다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좇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바짝 좇음이 주님의 마음에 큰 기쁨을 가져 다 드립니다.

베드로에 대한 슬픈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그 비통()이 멀찍이 좇는 것이었음을 여러분께서는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먼 거리에서 좇는(따르는) 것은 위험합니다. 베드로는 멀찍이 따랐으며 베드로는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여러분은 이 (요한)복음이 좇음으로 시작되어 좇음으로 끝나는 것을 아셨습니까? 여러분께서는 21 20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좇는) 것을 보니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요한은 주님을 좇고(따르고) 있었습니다. 21 2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좇으라) (하셨습니다)

형제자매님들, 거기에 좇음(따름)에 대한 큰 교훈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그리스도를 좇음(따름)은 매우 인격적이며 개인적입니다. 요한복음 마지막 부분에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따르라(좇으라)(21:22)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시작 부분에서 주님께서 빌립에게 나를 좇으라(따르라) (1:43)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들, 저는 여러분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좇을(따를)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좇을(따를) 수 없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좇고(따르고) 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45절로 가십시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준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빌립을 만나(찾으)셨습니다. 저도 빌립이 한 것처럼 했으면 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찾아야 합니다.

형제자매님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저를 찾으심을 생각할 때 저는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야 하는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로마서 1 14절에서 내가 빚진 자라라고 말하는 바입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빌립을 만나()자 마자 나다나엘을 찾는(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남녀를 찾는(만나는) 일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45절에서 여러분께서 주목하시기를 원하는 다음 일은 이것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만났(찾았)을 때 빌립은 나다나엘을 위한 말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님들, 우리는 사람들을 위한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빌립이 나다나엘을 만났는데 그에게 할 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말한 첫 번째 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라고 말합니다) 빌립이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라고 말하는 것에 주의하십시오, 여기에 여러분을 위한 질문이 있습니다. 빌립은 우리가 그이를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43절은 주님께서 빌립을 만나셨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것은 모순입니다. 43절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들어가시기 전에 빌립을 만나셨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빌립을 만나셨습니다. 그러나 45절에서 빌립은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난해할 것입니다. 어느 것이 옳습니까? , 형제자매님들, 둘 다 옳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저를 만났을 때 제가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저는 한 벗(친구)를 만났(찾았)습니다.

빌립은 결코 이 날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빌립이 나다나엘을 만난 때에 대해 말하는 그 날입니다. 그것은 같은 날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빌립이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 빌립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빌립을 만난 때인43 (시간 대)에 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주님께서 여러분을 만났(찾았)을 때 여러분은 주님을 만났(찾았)습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45절에 있는 어떤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빌립은 찾고 있던 분을 알고 있습니다. 빌립은 올바른 분을 만났(찾았)습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라고 말합니다).

빌립은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를 만났(찾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찾아 내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저는 구원 받았습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만났(찾았)습니다. 저는 제가 올바른 분을 만났(찾았)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그리스도를) 찾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찾았기 때문에 말입니다). 저는 구원 받은 해가 복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여전히 복된 것임을 말씀 드리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여전히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무언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빌립은 성경에서 예언된 분이 그가 만난(찾은) 분인 것을 알았습니다. 빌립은 내가 곧 길이요라고 말한 분을 만났(찾았)습니다. 빌립은 네게로 오라 하신 분을 만났(찾았)습니다. 빌립은 하나님과 사람을 중보 하시는 분을 만났(찾았)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잘못된 자를 의지합니다. 이슬람교도들은 예언자 마호메트를 의뢰합니다. 동방에서는 부처가 매우 중요합니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교황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빌립은 그이를 우리 가 만났으니라고 말했습니다.

 

보라

저는 여러분께서 46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한 나다나엘의 믿음이 어떠한지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빌립은 그에게 와 보라라고 말했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저는 우리가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을(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나다나엘을 구원 할 수 없었습니다. 나다나엘은 자기자신을 위해서 그리스도께로 와야 했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라고 말한 것에 전적으로 확신했습니다.

이것은 우물가의 여인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와 보라(4:29)라고 말한 요한복음 4장을 우리들로 하여금 생각나게 합니다. 그녀는 올바른 분을 만났(찾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 47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를 주목하십시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들에게 훌륭한(아름다운) 교훈인 것을 깨닫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께 오는 그 순간 구원 받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몇 해 전에 제가 복음을 전하고 있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복음을 전하고 있었을 () 때에는 그들이 구원 받은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나중에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주님께로 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스도께로 다가 오는 모든 영혼들이 있는데 주님께서는 그들이 오는 것을 보십니다.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48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를 다시 보십시오. 이 동사 알다(to know)는 요한복음에 있는 중심어입니다. 여러분께서는 2장 마지막 부분 (예수님께서)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8장에서는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18:1)‥‥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18:4)(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조차도 아셨는데 요한은 19 28절에서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나다나엘은 주 예수님께서 자기를 아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아심) 4장에서 우물가 여인(과 관련하여서도) 언급되었습니다. 29절은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다나엘에 대해 모두 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물가여인에 대해 모두 아셨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주님께서는 전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다시 보십시오. 주 예수님께서는 48절에서 나다나엘에게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놀랍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다나엘이 주님께로 오는 것을 보셨을 뿐만 아니라 그가 오기 전에도 그를 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에 대해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이제 저는 여러분께서 여러분을 격려하는 어떤 것을 보시기 원합니다. 48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를 다시 보십시오), 이 말씀에서 주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나다나엘을 부른 것을 인정하셨습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라는 말씀을 듣고 나다나엘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빌립의 사역(使役)을 인정하셨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행한 것에 대해 그 진가를 인정하셨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행한 것 모두에 대해 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빌립이 너를 불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여러분이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로 나간다면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말해야 하며 그들을 그리스도 그 자신께로 가도록 초청해야 하며 구주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 것을 상고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복음을 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내일 (전할) 복음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내일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해 말할 것입니다. 그들은 구주에 대해 말했으며 (그래서) 사람들이 주님을 만났(찾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빌립이 행한 것을 인정하셨습니다. 형제자매님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주님은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 행한 모든 것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주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과 그녀를 비판한 사람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저는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좋아합니다.

주님께서는 가만 두어라‥‥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녀)가 힘을 다하여 ‥‥준비하였느니라 (14: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자매님들, 만일 우리가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한다면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을 힘을 다해 준비한 것처럼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문제는 때때로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이(무엇 인지) 모릅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없는 큰 일들 사이와 우리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작은 일들 사이 놓여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위험은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녀(14:6-8)는 할 수 있었던 것을 했습니다. 빌립도 할 수 있었던 것을 했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으러 나갔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그리스도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리고 빌립은 (나다나엘이)오도록 초청했습니다. 빌립은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

다시 1장으로 돌아 가십시오. 저는 여러분께서 4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절에 찾는 일 (먼저) 채워야 하는 것이 있음을 여러분께서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빌립은 먼저 그의 형제 시몬을 찾았습니다. 우리에게 한 중요한 교훈이 발견됩니다. 안드레에 있어서 찾음은 집에서 행해집니다. 형제자매님들, 저는 한 젊은이를 기억합니다. 그는 모임에 있는 장로들에게 가서 수천 마일 떨어진 나라에 가서 주님을 섬기겠다고 말했습니다. 형제님들은 깜짝 놀라며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야외 복음 집회에 그 젊은이는 결코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역) 모임이 복음 전도지를 뿌리러 나갈 때 그 젊은이는 결코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집회에 잘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님들은 그에게 정직하게 우리는 이해가 안 갑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어떻게) 부르셨는지 말입니다. 당신이 본국에서 복음 (전도)를 결코 돕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이 구절(41)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라고 말합니다. 여러분께서는 귀신 들렸던 거라사인에 있던 사람을 기억하십니까? 여러분께서는 쇠사슬로도 그를 맬 수 없게 되었음을 아실 것입니다. 그는 무덤 사이에 거했습니다.

그가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왔습니다(5:6) (마침내) 그는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아 있었습니다(5:15). 주 예수님께서 갈릴리 건너편으로 가시려고 배로 가셨습니다. 그 사람이 일행과 함께하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위해 많은 것을 행하셨습니다. 그는 곧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정확히 그 사람은 행했습니다. 그는 그 소식을 온 데가볼리에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라고 말합니다. 그는 집과 친구들에게로 갔습니다. 그는 그의 형제를 먼저 찾았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제가 구원 받았을 때를 저는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저를 찾으셨고 제가 그리스도를 찾은 것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저의 침실 2층으로 올라 갔습니다. 저는 저의 침대 옆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저를 구원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가족들이 (저에게) 일어난 일을 알기 전에 저는 저의 형제들과 아버지와 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형제자매님들, 우리는 집(가정)에서 시작해야 하며 이웃으로 더불어 시작해야 하며 친구들로 더불어 시작해야 합니다. 요한은 주님에 대해 언급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41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를 다시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안드레는 자기가 올바른 분을 만난(찾은) 것을 알았음을 다시 주목하십시오. 그는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그리스도를 만났(찾았)습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께서 이 구절에 있는 주 예수님에 대한 중요한 세 명칭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 요한복음 1장에 주 예수님에 대한 명칭이 16 (가량) 있다고 알려진 것을 말씀 드려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 이스라엘의 임금

41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라고 말합니다). 49절을 보십시오.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 다.

두 가지 명칭 하나님의 아들이스라엘의 임금()을 보십시오. 나다나엘이 올바른 분을 만났(찾았)음을 알았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빌립은 자기가 올바른 분을 만났(찾았)음을 알았습니다. 안드레는 자기가 올바른 분을 만났(찾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분들은 올바른 분을 만난(찾은)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이 세 명칭들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그리스도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만일 네가 그리스도라면 그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만일 네가 이스라엘의 왕(임금)이라면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마무리

형제자매님들, 주님은 그 십자가에서 내려 오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십자가로부터(내려온 것이 아니라) 내려졌습니다. 이방인들의 손이 주님을 잡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장사 지냈습니다. 저는 오늘 오후에 여러분께 한가지 (깊은) 인상을 남기고자 하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는 올바른 분을 만났(찾았)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구주를 만났(찾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좇아(따라)야 하며 다른 사람들을 찾아(발견해)야 합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주옥같은 말씀들 > 로빈 매키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씀이 육신이 되어  (0) 2008.04.06
지혜의 일곱 기둥  (0) 2008.04.05
너희가 거듭난 것이  (0) 2008.04.04
하나님의 집  (0) 2008.04.03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0) 2008.04.0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0) 2008.03.31
주의 말씀의 영향  (0) 2008.03.29
주의 만찬  (0) 2008.03.28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