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08. 12. 19. 19:29 교회진리/예배

만찬예배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교제와 덕 세우기를 위하여 갖는 모임의 집회들은 모두 중요합니다. 그 중 하나로 가장 중요하게 나타나지는 집회가 잇는데 그것은 바로 떡과 잔을 나누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으신 주 예수님을 기억하는 만찬예배인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 사람이 저에게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한 달에 한번 또는 6개월에 한번씩도 주님을 기억할 수 있을텐데 왜 매주마다 해야 하느냐고.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기에 매주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매주마다 주님을 기억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까지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로 나는 여러 번 이 대화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주 예수님께 귀한 향유를 부었던 것을 보고 가롯유다는 이를 가리켜 낭비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주 예수님에 기름을 부었던 마리아의 헌신에서 유다는 아무런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주님께 의한 귀한 헌신과 감사를 그분에게 드리는 것을 귀하게 보십니다.

매주일마다 주님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는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슬픔과 기쁨이 뒤엉킨 마음으로 사랑의 주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되심 그리고 부활하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사복음서에서 우리는 주의 만찬에 대한 제정을 읽을 수 있으며 사도행전에 와서는 매주일마다 제자들에 의하여 행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고 그리고 서신서에 와서는 그 중요성과 깊은 의미를 설명해 주고 잇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배반당하시던 날 밤 그 생각을 하면 얼마나 애처로운지요! 다락방에서 제자들을 모으시고 그들에게 자신이 떠난 후에 어떻게 자기를 기념하기 원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무서운 밤에 주님은 자신을 생각지 않으시고 자기의 사람들만을 생각하셨습니다.

만찬예배를 드릴 때에는 형제들이 공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만일 한 두명만 참여하게 될 때에는 의아하게 생각해야만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찬미의 제사를 드릴 수 없다면 반드시 우리는 자신에게 그 이유를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어쩌면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생활가운데 감추어진 죄로 인하여서 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운데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주님께 합당치 아니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남자들은 해마다 세번씩 주님 앞에 나아갔는데 그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16:16) 이스라엘도 공수로 아니하고 찬미의 제사를 드렸거늘 하물며 우리는 주님께 더욱 가까이 있는 자로서 더욱 더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 예배시간에는 이 경우에 합당한 찬송가를 선택해야 함으로 찬송가 선택에 있어서도 조심성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집회가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에서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감사의 제목이 되심을 더욱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함께 모여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많은 축복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장사되심과 영광스러운 부활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성도들이 주의 만찬에 고전 11:28에 따라서 참예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참예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말씀은 분명히 참예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시고 참예하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참예하기 전에 마음을 각자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죄가 있으면 떡과 잔에 참예하기 전에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을 때, 우리는 죄를 숨기는 것이 됩니다.

주님을 기억한 후에는 우리가 물질적인 것으로 주님께 드리기에 매우 합당한 시간이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다시 한번 갈보리 십자가로 눈을 돌려 바라본 후에 진정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 주님께 드릴 수 없다면 언제 그분께 드리게 될 수 있을까요? 어떤 모임에서는 이 시간에 이것에 대해 축복의 기도를 하거나 주님께 무엇을 드리는지 언급하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그러한 기도가 신약성경에서 주의 만찬과 관련되어 있는 곳은 한군데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희생을 기억하기 위하여 모인 집회에서 우리의 드린 것을 논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다른 한 주 동안을 갈보리에서 얻어진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야 하며 또한 주님의 심정으로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어진 일을 소개할 수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교회진리 > 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디에서 예배 드리는가?  (0) 2010.02.10
떡 뗌을 위한 실제 교훈  (0) 2009.11.04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0) 2009.02.12
예배(禮拜)란?  (0) 2009.02.06
예배는 생활이다  (0) 2008.09.16
주의 만찬(성만찬)  (0) 2008.04.15
예배에 대한 그릇된 평가  (0) 2008.03.29
성경에 나타난 예배들  (0) 2008.03.27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