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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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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2. 26. 22:12 말씀 안으로

그리스도의 속죄(3)

서신서와 계시록에서

- 필립 하딩 -

비록 속죄란 단어가 신약의 단어는 아니지만 그러나 속죄를 말할 때 우리는 갈보리에서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내포된 모든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십자가는 모든 성경에 스며 있다. 역사서는 그 필요성을 입증하며, 레위기는 그 의미를 미리 보여주며, 시편은 그 경험을 묘사하며, 선지서는 그 고난을 예고하며, 복음서는 그 성취를 묘사하며, 사도행전은 그 축복을 선포하며, 서신서는 그 교리를 설명하며, 그리고 계시록은 그 열매를 드러낸다”(윌리암 호스테).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묵상으로 나아갈 때는 그 분명한 한계를 인식하고, 우리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과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나아가야 할 갓입니다.

 

속죄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인간은 부패하고 전적으로 타락한 범죄한 존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분명히 가르쳐져 있습니다( 3:9~23, 5:12, 2:10). 로마서 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라는 말씀은, 모든 시대로부터, 그리고 인간 역사의 모든 환경과 상황으로부터 이끌어낸 모든 자료들은 결론적으로 모든 사람은 범죄하고 악한, 영원한 심판을 받아 마땅한 죄인들이었음을 입증해 주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로마서 5: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라는 말씀은, 우리의 죄인 됨만 증명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깨끗게 하고, 우리 자신을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하게 하고, 우리의 죄악된 상태를 치료하고,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고, 속죄를 행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절대적으로 무력하다는 사실 역시 충분히 입증되었음을 드러내 줍니다( 3:19,20, 2:9). 바로 이런 까닭에 그리스도의 죽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죄는 범죄한 인간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데려갔으며( 3:19), 그들을 그들의 하나님에게서 분리시켰으며( 2:I~3,13), 그들로 하나님과 마음으로 원수되게 했으며( 1:21),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 앞에 드러나게 했습니다( 2:2,16. 6:23, 2:3), 하나님의 보좌는 죄가 처리될 것(속죄가 행해질 것)을 요구했으나, 그러나 인간은 그러한 요구를 결코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누군가 다른 존재가 인간을 대신하여 그 일을 행해야만 했는데 그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이셨으며, 이에 그분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갈보리로 가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죄가 처리되고 구원이 인간에게 주어지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였습니다. 십자가는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고( 3:13)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해(벧전 3:18)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속죄는 자발적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만일 무죄한 사람이 범죄한 사람을 대신해서 고난당해야 했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극히 불공정할 것이나, 만일 그가 자발적으로 죄인의 위치에 섰다면 그것은 적법할 것이며, 어떤 면으로든 공의가 훼손되지 않을 것입니다. 빌립보서 2:6~8을 통해 볼 때,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아들이 자원하여 갈보리로 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발을 내디딘 것입니다. 그분은 의도적으로 자신을 비우고(그분의 본질적인 신성이나 영광을 포기하시지는 않았다) 인성(Manhood)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은 육체 안에 신성을 감추신 육신이 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그러므로 순종의 행위였습니다.

그 영원한 보좌의 영광을 떠나서

영광의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 오셨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 보배로운 피로

죄인의 속전을 치르셨네

로마서 5:18,19은 또한, 그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의롭게 되는 의()를 성취하신 분으로서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강조합니다. 구주께서는 의도적으로 십자가로 나아가 자신의 생명을 드리셨는데 여기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원하심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15에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도다고 우리에게 말해주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그분의 의도적인 행동의 개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자원함으로 구원 사역을 성취하기 위해 세상에 임하셨습니다. 속죄는 그러므로 자발적이었습니다.

 

속죄는 가치가 있었다

그리스도의 사역의 가치는 하나님께서 만족하셨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속죄의 우선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성품을 보존하는 것이다”(윌리암 호스테). 우리는 하나님의 의의 요구를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공의는 무한한 희생에 의해서만 만족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무한하신 사랑으로 인해 그러한 희생을 예비하셨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그러나 구주의 희생은 우리의 죄를 위한 화목제일뿐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화목제이기도 했습니다(요일 2:2). 하나님은 이제 그리스도 예수를 화목제(시은좌)로 제시하시면서 그분의 의로움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분 자신도 의롭고 예수를 믿는 자들도 역시 의롭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3:25,26).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의가 만족되었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사역의 무한한 가치로 인해 다시는 속죄가 반복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충만히 드러내 줍니다. 속죄의 가치를 인간 편에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용서를 위한 의로운 기초를 제공하며( 1:7, 1:14), 죄를 깨끗게 하며(요일 1:7), 화목을 가져다 주며(고후 5:19), 의가 되게 하며(고후 5:21), 그리고 아버지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해 줍니다( 2:13).

속죄의 가치는 그것을 성취하신 그분의 무한한 가치에 비추어 봄으로써 비로소 측량될 수 있으며, 우리는 우리의 유한한 마음으로는 그리스도의 무한한 가치를 측량할 수 없으므로 속죄의 가치 또한 측량할 수 없습니다.

 

속죄는 대리적이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그리스도의 갈보리 사역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이 디모데전서 2:4~6에 분명히 진술되어있습니다(벧후 3:9).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대신하여”, 딤전 2:6) 죽으심으로써 사람들이 하나님께 인도되고 의롭게 될 수 있게 하기 위한 우주적인 예비책을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벧전 3:18, 고후 5:21). 물론 그러한 예비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께 인도되거나 의롭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속죄의 대리적인 성격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마련된 우주적인 예비책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죽음의 대리적인 성격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리적”(Vacarious)이란 말은 ····대신에 라는 뜻이며 따라서 대속의 개념을 드러내 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사람들을 위한 대속물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고후 15:3)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는(벧전 2:24) 것은 하나님의 자녀를 위한 진리이지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진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온 세상을 위한 화목제이신 그리스도(요일 2:2)와 그분의 백성을 위한 대속물이신 그리스도를 구별해야만 합니다. 화목제로서 그분은 자신의 속죄의 죽음을 통해서 자비와 용서가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질 수 있는 의로운 기초인데 반해, 대속물로서 그분은 자신을 구주로 영접하는 모든 이들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갈보리 사역은 모든 구속받은 자들을 위해, 성격상대리 적이었습니다.

 

속죄는 승리적이었다

갈보리는 비극이었을까요, 아니면 승리였을까요? 분명 그것은 승리였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하나님께서 영원히 영광을 얻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위가 세워졌고 사단이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갈보리에서 우리의 아담 안의 위치(옛 사람)가 처리되었고( 6:6) 의문에 쓴 증서가 도말되었고( 2:14) 어두움의 권세가 폐해졌습니다( 2:15). 갈보리에서 사단에 대한 하나님의, 악에 대한 선의, 그리고 모든 대적에 대한 그리스도의 영원한 승리를 위한 기초가 놓여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승리자로 다스리실 것이며, 사단과 그와 관계된 모든자들(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을 포함해서)은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승리적이었다는 것은 그분이 만물 위에 좌정해 계시고( 1:20~23) 만물이 그분께 굴복할 것이라는( 2:9~11) 사실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속죄는 만물을 화목케 하는 기초이며( 1:20) 하나님께서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허락하실 기초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게도 속죄는 승리적이었으며 그 결과는 영원합니다. 우리는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어린 양을 큰 소리로 높이는데 참여함이 실로 마땅합니다( 5:12).

결론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 게 실제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해방되었다는 것과, 죄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바 된 자들이므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우리의 지체를 하나님을 위한 의의 도구로 드림으로써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의 마음에 새롭게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6:6~23. 고전 6:19,20).

그리스도의 사역은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내시기 위함이었을 뿐 아니라 우리를 죄와 자기 중심의 삶에서 건져내시기 위함이었으며, 우리를 하늘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하게 하기 위함이었을 뿐 아니라 우리를 의로움과 거룩함의 삶을 살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벧전 1:14~20, 2:24). 주 예수님께서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서 자신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마땅히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1:4, 12:2-흠정역에는 이 세상으로 되어있음). 그분께서 우리로 모든 불법에서 구속을 얻게 하시기 위해 자신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마땅히 순종으로 특징지워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십자가가 현재우리의 삶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요? 우리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라고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는지요?( 6:14)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