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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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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교회에 보낸 편지

 

오늘은 사데교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은 계시록 3:1-6 말씀입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우리는 전에 사랑이 없는 교회인 에베소 교회와 고난 가운데 충성했던 서마나 교회와 악을 욥납했던 버가모 교회, 그리고 악의 누룩이 퍼져있던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사데 교회는 생명이 없는 교회로서 우리가 처음 살펴보았던 에베소 교회의 모습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두번째 교회인 서머나 교회의 모습은 다음에 살펴볼 빌라델비아 교회와 유사하고, 버가모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하심을 의지해야 한다는 측면과 표면적인 모습을 중시하는 것의 위험성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본문을 다섯가지 주제에 따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이 교회의 상태를 기록하신 분의 모습, 다음으로는 사데 교회의 평판, 셋째로 사데 교회의 진짜 모습의 기록, 넷째로 주님의 책망, 마지막으로 남은 자의 책임과 상급의 주제로 살펴보겠습니다.

 

1. 사데 교회의 상태를 기록하신 주님의 모습 (Recorder of their condition)

사데라는 도시는 높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어서 난공불락의 도성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이 도시는 적에 의해 세번 함락된 적이 있습니다. 이 도성의 사람들은 난공불락의 도시라는 자만심이 있었고, 물질적인 부요를 가지고 있었으며 상업이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이 곳에 자리잡고 있던 사데 교회도 겉으로 볼 때는 모든 것이 잘되어 가는듯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평가는 그들의 생각과 너무도 달랐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상태를 낱낱이 기록하고 계십니다.

2절 말씀에 보면 주님께서는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임의 상태가 중요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임이 하나님 앞에서 기쁨을 얻는 모임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1절에는 주님의 권위가 나타나 있는데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이"라고 주님을 묘사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임이 1장에 나타나 있는데,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대로 일곱 영은 하나님의 성령의 충분하신 사역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1절의 모습에서 우리는 여기서 일곱 교회의 필요를 채우시기에 충분하신 성령님의 사역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2. 사데 교회에 대한 평판 (Reputation which characterized them)

주님은 사데교회를 향하여 그들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여겼지만 주님은 그들이 죽어 있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외적으로 훌륭해 보이지만 모임 안에 생명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외면을 보고 우리를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내면을 보십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평가와 주님의 평가가 다른 것을 여러 차레 보아왔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겉으로는 궁핍했지만 주님의 평가는 그들이 부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데 교회에 대한 주님의 평가는 그들이 살았다 하는 이름만 가졌을 뿐 실상은 죽은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모임 안에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실은 생명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믿는다는 고백은 있지만 그리스도가 없을 수 있습니다. 신앙의 이름은 가졌지만 생명이 없을 수 있습니다. 많은 활동과 조직이 있지만 생명이 없을 수 있습니다. 사데 교회의 상태가 바로 이러했던 것입니다.

 

3. 사데 교회의 진짜 모습의 기록 (Record of their real condition)

이 모임은 그들의 자만으로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이 서신의 글의 그들 사이에 읽혀졌을 때 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아마도 그들에게는 엄청난 각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집착할 때는 큰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들은 앞에서 살펴본대로 살았다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모임 안에 분명히 타협이 있었던 것입니다. ,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모임에 영접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믿는다는 고백만 있지 실상은 생명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아마도 대단하게 보이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모임이 이들을 분별해내지 않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타협이 있게 될 때 많은 활동과 조직에도 불구하고 그들 안에는 생명이 없이 죽은 자처럼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주님은 그들이 깨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로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잠들어 있을 수 있고 그렇다보면 생명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3절 상반절 말씀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라는 말씀을 통해 볼 때 무엇인가 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죽은 것으로 판단받은 모임이었고, 숨이 끊어져가는 상태에 있었기에 마지막 순간에 응급조치처럼 주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듣고 받은 바를 기억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놀라운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받은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2절 하반절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모임 안에 무엇인가 들어와 성장이 중단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물질주의, 세상적인 야망, 육신적인 모습 등이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삼손은 하나님 앞에서 놀라운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지고 계셨던 계획을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를 시작했다고는 기록되어 있지만 완수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데마도 사도 바울과 함께 동역하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세상으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골로새서 4장에서 사도 바울은 아킵보에게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4:17)고 말했습니다. 2절 하반절에서 보여지는 사데 교회에 대한 주님의 평가는 그들이 주님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임에 맡겨주신 위대한 사명은 모임의 나이든 성도들뿐만 아니라 젊은 성도들도 함께 책임지고 나아가야 할 부분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들이 성령의 충분하신 사역을 제한하고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이 충분히 공급되어 모임의 필요가 채워지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은사의 공급자(supplier)가 되십니다. 지역교회에 필요한 은사를 절대적으로 충분히 세우시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임 안에 여러 필요한 은사들 - 복음을 선명히 전파하고 성도들을 방문하고 돌보는 형제님들, 다른 성도들을 도울 수 있는 경건한 자매님들이 세워지는 일에 있어 성령의 충분하신 사역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역교회는 이러한 은사들이 잘 개발되도록 은사를 사모하고 격려하며 은사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의 예배가 받아들여지는 영역(sphere)이 되십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그리고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은 열매의 공급자(supplier of the fruits)가 되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있는 것과 같은 성령의 열매로 말미암아 모임 안에서 서로 세울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의 봉사를 강화시켜주는 분(strengthener of the service)이십니다. 사도행전에 여러번 등장하는 단어인 '성령충만'은 항상 봉사와 연관되어 쓰이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 성령충만은 은사주의자들이 말하는 그러한 것이 아니고 구원받을 때 이미 받은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 성령의 통제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질 때 우리의 봉사가 하나님 앞에서 힘있게 드려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모임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충분한 사역을 경험하지 못할 때 다른 것들을 도입하여 공백을 채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디모데후서 2장 말씀에서 볼 때 지역교회는 남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받는 곳으로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충성된 사람들에게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수 있으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지역교회 안에 역사하여 필요한 말씀을 충분히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께서 모임 안에 충분한 말씀이 가르쳐지도록 하시는 일에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다른 것을 도입하려 들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음악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음악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사용되어야 하는 도구인데도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용도로 교회 안에서 음악이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권면했습니다. 모임 안에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들이 섞여 있게 될 때 믿지 않는 자들을 즙겁게 해주어야 할 필요가 생기고 거기에 정치 이야기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즐겁게 해주는 음악들이 도입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서로 세우고 서로 격려하며 서로 권면해야 할 것입니다.

 

4. 사데 교회에 대한 주님의 책망 (Rebuke which challenged them)

이러한 사데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은 첫째 깨어라, 둘째 돌아보라, 셋째 굳게 잡으라, 넷째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죽게 된 사데 교회를 향하여 위기를 깨닫고 깨어날 것을 말씀하셨고, 주님으로부터 받고 들은 바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이 영적인 진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영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모임을 재난 가운데로 이끌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지신 한 가지 기준은 인도자든 아니든, 형제든 자매든 영적인 것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은 또한 굳게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사데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사단에 관한 언급이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세벨에 대한 언급도 없고,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에 대한 언급도 없습니다. 이 사데 교회에는 외적인 공격자도, 내부의 적도 없었습니다. 잘못된 교리가 문제되지도 않았고 진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 진리를 굳게 붙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진리를 굳게 붙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데 교회를 향하여 우리 주님은 회개하라고 명하십니다. 진리를 굳게 붙들어야 할 책임에 있어 그들은 마음을 돌이키고 태도의 변화를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5. 이기는 자들의 책임과 상급 (Responsibility of the remnant and the Reward to the overcomer)

4절 말씀에 보면 이 사데교회에는 죽은 것과 같은 교회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소수의 사람들로서 하나님은 이 소수의 남은 자들에 대하여 그들을 영예롭게 할 것을 약속하십니다. 주님은 이기는 자들을 향하여 흰 옷을 입혀주시고,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할 것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흰 옷을 입게 되는 것은 장차 오는 날 주님으로부터 공적인 인정을 받을 것을 말씀하시는 것으로서 이들이 비록 소수일지라도 그 날에는 위대한 용사와 같이 드러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또한 그들은 그 이름이 흐려지지 않고 시인될 것인데 우리는 이러한 예를 보아스의 예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룻기에 나오는 한 친척은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남편과 아들들을 다 잃고 홀로 되었을 때 그녀에게서 그 기업을 물려주어야 할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잃게 될까봐 그 책임을 이행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자신의 이름이 잃은 바 된다 해도 그 책임을 다하려 했고, 그 결과 오히려 우리는 성경에서 그 한 친척의 이름이 아니라 보아스의 이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일을 이루겠다고 한 보아스는 그 이름이 흐려지지 않고 기억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희생해야할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책임을 수행하는 자들의 이름을 결코 흐리지 않고 시인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바로 이러한 약속이 있습니다.

A. J. 히긴즈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