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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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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 31. 13:14 요한계시록의 일곱교회

서머나교회에 보낸 편지

 

1. 전체 개관

오늘은 요한계시록 2 8-11절 말씀을 통해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이 편지는 저희가 살펴보고 있는 일곱개의 편지 가운데 가장 짧은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크게 네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번째는 주님의 높으심, 두번째는 성도들의 고난, 세번째는 사단의 반대, 마지막은 영적인 부유함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성도들을 연단하시는 제련자(refiner)의 모습으로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제 본문에서 우리 주님이 위대한 의사로서 교회를 진단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성도들을 환난 가운데서 정금으로 연단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는 성도들이 겪는 고난에 대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요새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받으면 만사가 다 잘 풀리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흐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행복해지고, 건강해지고 사업도 잘 되고 고난도 없고 어려움도 없다는 생각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반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여러가지 시련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벧전1:6). 그러므로 시련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아래 글의 제목들에서 보듯이 오늘 교제 또한 첫번째처럼 히긴즈 형제님께서 영어 알파벳 S로 전체구조를 형성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옮긴이주).

 

2. 제련자이신 주님의 위대하심(Supremecy of the Refiner)

우리는 먼저 세 가지 측면에서 제련자이신 주님의 위대하심에 대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8절에서 주님의 으뜸되심(supremecy)을 볼 수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많은 핍박을 받았던 교회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정부로부터 고난을 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정부는 왔다가 사라지는 법입니다. 그에 반해 주님은 8절에서 처음이요 나중되신 분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은 최고의 으뜸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께서는 한 국가를 세우셨다가 폐하실 수 있는 분이신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주님의 체휼하심(sympathy)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고난받는 성도들을 향해 나는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향한 충성된 삶의 댓가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 경건하지 않은 세상에서 경건하게 살기 위해 성도가 치루어야 하는 값을 이해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 자신이 가족들로부터 오해를 받으셨고 사람들로부터 수치와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침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으로 맞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겪는 조롱과 멸시의 고통과 아픔을 체휼하시는 분이십니다.

세번째로는 주님의 주권(sovereignty)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10절에서 성도들이 겪는 시련의 기간을 정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그들이 겪는 환난의 의미도 알고 계십니다. 여기서 주님의 주권이라 할 때 그것은 주님께서 악을 유발시키는 분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이 저지른 악까지도 당신의 목적을 위해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3. 그리스도인이 겪는 고난(Suffering of the saints)

우리가 두번째 큰 제목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고난에 관한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시련이 우리의 믿음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질문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사랑이신가, 하나님은 진정 통치자이신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나를 진정 돌보시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시련을 어떻게 통과하느냐 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게 됩니다.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투옥당하고 순교당하기까지의 핍박을 겪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왜 신자가 고난을 겪는가 하는 질문을 해 보게 됩니다. 저는 네 가지 중요한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번째는 신자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기 위해서 고난을 주시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야곱의 생애를 볼 때 그가 겪는 대부분의 고난을 그의 잘못된 모습을 바로잡기 위해 주신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번째는 신자의 성장을 위해 주시는 경우입니다. 우리가 겪는 많은 고난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요셉이 겪은 고난은 그가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연단을 통해 그를 훈련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세번째로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심이라는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윗은 그의 생애동안 겪은 수많은 고난을 통해 고난 가운데 위로하시고 힘이 되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에 대해 잘 알게 되고 이러한 하나님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네번째의 이유는 신자가 범죄하거나 실패하지 않도록 고난을 주시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바울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바울은 말하기를 자신에게 주신 은사로 말미암아 자신이 교만하지 않도록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난에 대해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왜 성도들 사이에 동일한 고난이 주어지지 않느냐 하는 점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교회들은 서로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유독 서머나 교회만이 큰 핍박을 당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같은 고난을 겪은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니엘과 세 친구의 경우도 그들 모두 우상숭배를 거부하며 믿음을 지켰지만 불꽃에 던져질 때는 세 친구만 던져졌고, 사자굴에는 다니엘만 던져졌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 그 필요에 따라 각각 다른 고난을 주시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4. 사단의 대적(Satanic opposition)

서머나는 로마의 황제를 숭배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닌 우상숭배가 성행하던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곳에 위치하고 있던 서머나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이 로마인들의 손을 빌어 서머나 교회를 핍박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의 배후에는 무서운 세력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사단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진짜 원수를 보게 됩니다.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모든 일에 우리를 대적하는 존재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가운데 네 개의 교회에 사단의 활동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살펴보는 서머나 교회에서 사단이 역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고, 버가모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들과 친구가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며, 두아디라 교회에서는 거짓된 선지자의 모습으로, 빌라델비아 교회에서는 이 교회를 전적으로 대적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머지 에베소 교회는 그 차가움으로, 사데 교회는 생명없음으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 미지근함으로 인해 사단의 활동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사단에 대한 칭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것을 대적하는 존재로서의 '사단(satan)', 참소하고 시험하는 자로서의 '마귀(devil)'로 나타납니다. 서머나 교회에 보내신 편지에서는 이 사단의 역사로 말미암은 핍박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그들이 행한 일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핍박이 너무도 강렬해서 그들이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행할 겨를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그들은 물질적으로 궁핍했는데 그것은 당시 우상숭배를 행하던 상업적인 조합에 그들이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5. 영적인 부유함(Spiritual wealth)

또한 우리는 이러한 시련과 고난 가운데서 이들을 연단하여 가시는 제련자 되시는 우리 주님으로 인해 그들이 어떠한 결과를 얻게 되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욥의 고백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인간의 최악의 경우에도 당신을 위한 최선을 산출해 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시련을 통과할 때 어째해야 할 지 모른 채로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주님은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우리를 연단하시 정금같이 나오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하여 서머나 교회는 물질적으로는 궁핍했지만 주님께서는 너희가 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의 생각과 주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에베소 교회의 경우에도 그들은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에 대한 주님의 판단은 그들이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서머나 교회를 평가하실 때는 그들의 물질적 가난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부유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시련을 당할수록 그 산물은 더욱 아름다와졌던 것입니다. 욥의 시련은 그를 하나님 앞에 정금같이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겼는 시련이 불로 연단한 정금보다 귀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10절 말씀에서 주님께서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그들이 주님을 섬기기 위해 핍박 가운데서 목숨을 지불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볼 수도 있고, 또한 그들이 고난을 받을 때 생명의 의미를 온전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당하는 최악의 경우는 육체의 목숨을 빼앗기는 것이겠지만 이 경우에도 우리가 얻은 영생은 하나님의 손 안에서 안전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손 안에서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위의 말씀에서 우리가 겪는 고난 가운데서 우리를 정금처럼 연단해 가시는 제련자 되시는 주님의 모습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주님은 으뜸이시며, 우리의 고통을 체휼하시며, 주권을 가지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영적인 유익을 위해 주어지는 고난 가운데서 믿음을 지켜나갈 때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A. J. 히긴즈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