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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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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 29. 20:59 요한계시록의 일곱교회

요한계시록 1

 

서울의 혼잡한 교통상황에도 불구하고 여기 와 주신 한국의 성도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요한계시록 1장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저희가 요한계시록을 통해 살펴보고자 하는 일곱교회에 관한 말씀의 서론이 되는 말씀입니다. 19절에 보면 주님은 요한에게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네 본 것”은 1장의 내용이고, “이제 있는 일”은 2장과 3장의 내용이고, “장차 될 일”은 4장 이후로 22장까지의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아래의 내용을 살펴보면 형제님께서 영어 알파벳 R로 시작하는 소제목들로 전체의 교제를 구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 옮긴이주).

 

1. 진리의 계시자 (Revealer of the teaching)

이제 1장의 말씀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절 말씀에 보면 진리를 계시하시는 분이 나타납니다. 이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 아드님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진리의 계시자이십니다. 또한 1절에는 이 계시를 받는 사람의 유형이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종”으로 묘사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계시를 주신 이유 또한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반드시 속히 될 일”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계시록의 말씀은 반드시 속히 될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이 책이 끝나기 전에 보좌에 앉아 온 우주 위에 높이 계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2장과 3장에서 우리 주님이 교회들 가운데 계시는 것을 살펴볼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을 온 우주에서 보좌에 앉도록 하셔서 영화롭게 하시듯이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도 영화롭게 하고 계십니다.

 

2. 계시의 신뢰성 (Reliability of this Word)

2절에서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신뢰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계시록을 대할 때 장차 되어질 일에 대한 계시라고 생각하지만 또한 이것은 우리 주님에 대한 계시이기도 합니다. 1장과 3장에서 우리는 교회를 판단하시는 분으로 나타나 있고, 5장에는 사자와 어린양으로 나타나며, 11장에서는 온 우주를 주관하시는 분으로 묘사되고, 14장에서는 수확하시는 분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19장에서는 신부의 신랑, 전쟁을 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나타나시는 용사, 왕의 왕, 주의 주로 나타나십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에 대한 계시라고 이해될 수 있습니다. 1장에서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자신을 요한에게 계시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은 우리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의 모습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주님과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우리 주님의 위대함에 대해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번 집회를 통해 우리 주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1장에 나타난 내용들을 통해 우리는 그 이후의 말씀들의 방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증거의 자원 (Resources of the testimony)

다음으로 4절부터 6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의 자원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손에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의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증거를 드러내는 데 있어 우리에게는 자원이 필요합니다. 먼저 그 자원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4절에서 아버지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충만함을 묘사한 말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하셔서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증거에 늘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이야말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우리의 삶의 첫번째 자원입니다.

또한 두번째로 우리는 성령에 대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4절에서 우리는 “보좌 앞에 일곱 영”이라는 이상한 표현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께서 한 분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일곱 영”이라는 것은 한 분 성령의 완전함과 충분함을 나타냅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증거의 삶을 도와 주시기에 충분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 주님도 자원이 되십니다. 5절에서 우리 주님은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주님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 우리 주님은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우리가 어떠한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가를 몸소 드러내신 분이십니다. 자매님들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어떠한 희생을 감당해야 하는지, 형제님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양들을 돌보기 위해 어떠한 희생을 치루어야 하는지 주님은 잘 알고 계십니다. 이러한 주님이 우리의 증거에 자원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는 주권자로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도우시는 충분하신 성령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겪는 고난을 체휼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에 자원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날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에 있어 자원이 됩니다. 이러한 것을 바로 알 때 우리는 실패하지 않고 간증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4. 증거의 규율 (Regulation of the testimony)

다음으로 7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증거의 자원을 살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7절에서 무엇이 우리의 증거를 규율하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7절의 말씀은 주님께서 공중에 오실 때의 휴거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나중에 지상에 오실 때의 판단에 대한 말씀으로 여겨집니다. 이 때는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게 되는 때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하늘로부터 오게 되는 때입니다. 우리가 하늘로 가게 되는 것은 우리 주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어떻게 이 땅에서 다스리느냐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주님을 증거하는 삶에 충성해오고 있다면 그 때도 우리는 충성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사실이 오늘날 우리가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규율하게 되는 것입니다(주님의 재림의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지금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게 한다는 의미임-옮긴이주).

12절에서 20절까지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가운데” 계신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일곱 금촛대 가운데 계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 주님께서 그저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살펴보시는 정도로 계시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가운데서 으뜸이 되십니다. 주님은 으뜸이 되실 뿐만 아니라 또한 인성을 지니셔서 “인자 같은 이”가 되십니다. 주님께서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신 것은 왕되심을 나타내며, 가슴에 금띠는 주님의 주권을,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은 것은 주님의 성숙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발이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과 같다는 것은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냅니다. 성경에서 놋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주석과 같은 발을 가지고 일곱 교회 사이로 다니시는 것은 주님께서 철저하게 살펴보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주님의 눈이 불꽃같다는 것은 주님의 정결함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권위는 주님의 목소리가 많은 물소리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그 오른 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주님의 사역을 나타냅니다. 주님의 얼굴이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다는 것은 주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주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북미든 남미든 유럽이든 아시아든, 여전히 지금도 주님은 어느 곳이든지 교회들 사이를 불꽃 같은 눈으로 다니시고 계십니다. 어떤 것도 주님의 눈에서 벗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것도 주님의 정결함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은 여전히 동일하십니다.

 

5. 증거의 성격의 실현 (Realisation of the nature of the testimony)

1) 지역교회의 독립성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러한 증거가 어떻게 현실에 실현되어야 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구약의 성막 안의 등대를 생각해보면 그 등대는 일곱개의 가지가 있는 한 등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의 등대는 일곱개의 가지가 있는 한 등대가 아니라 서로 분리되어 있는 각각의 일곱개의 등대입니다. 그리고 개개 모임은 교회들 사이에 계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일곱 교회에 보내지는 편지는 각각의 교회의 문제를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대단히 중요한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지역교회의 자치성입니다. 개개의 모임은 독립되어 있고 주님께만 책임을 집니다. 주님안에서 교제를 나눈다는 사실이 각각의 모임이 서로 교제를 갖게 하는 근거가 됩니다. 모임들끼리의 연합체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 지역교회를 통제하는 중앙모임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형제들이 모여 여러 모임들의 문제를 논의할 수는 있지만 한 모임이 다른 모임을 통제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교훈에 담긴 지혜를 살펴본다면 만일 중앙에서 여러 모임을 통제한다면 잘못이 다른 모임에 쉽게 강제된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2) 말씀에 나타난대로 운영되는 지역교회

또한 여기에 나타난 등대는 금등대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지역교회의 간증을 고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구약의 성막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정확한 치수를 지정하셨습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등대는 그 크기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무게를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크기가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성공의 잣대는 크기에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인간의 생각을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들도 세상의 개념과 원리를 모임에 도입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임의 가치는 크기가 아니라 그 무게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내 모임의 무게는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40장에서 회막이 완성될 때 일곱번 이상에 걸쳐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었더라”는 말씀을 접하게 됩니다. 레위기 8장과 9장에서도 열번씩이나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레위기 10장 말씀은 아론의 두 아들이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으신 다른 불”로 드렸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임에서도 그 원리가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어떤 것도 더해지거나 빠지거나 바뀌어서도 안됩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에 분명하다면 우리의 모임이 세상의 시각으로는 크기가 작고 하찮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실 때는 금과도 같이 고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3) 교회에 관한 두가지 개념

교회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두가지 다른 개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와 지역교회로서의 교회가 있습니다. 오순절이후 재림때까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지역에서 모이는 그리스도인들의 무리에 영접된 사람들만 지역교회라 불리게 됩니다. 이 두 가지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아직까지 한번도 그 교회에 속한 모든 지체가 동시에 한 자리에 모인 적이 없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 1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함께 나타날 것을 말씀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지역교회는 지금도 함께 모두다 동시에 모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모든 교회가 다 모일 때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교회는 육적인 사람, 어린아이, 영적인 사람등 성장의 차이가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에서는 다 동일하게 여겨집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내가 기초를 닦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향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염두에 두시면서 내가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지역교회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역교회를 손상시키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손상시킬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말할 때 사도바울은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역교회의 간증은 손상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은 손상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에서는 남녀의 차이가 없지만 지역교회에서는 형제와 자매의 역할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지역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의 축소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적용되는 진리가 언제나 지역교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북미의 교회”라는 개념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일랜드의 교회”도 없습니다. 어떤 지역의 복수의 교회를 말하며 “아시아의 교회들”이라는 표현을 보게 될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는 교회의 연합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4) 교제란 무엇인가

우리가 또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교제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먼저 무엇이 교제가 아닌가 하는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교제는 그저 친교가 아닙니다. 교제는 서로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가 믿는 바를 타협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교제는 편의를 위해 갖는 것이 아닙니다. 교제는 그저 우리가 편하게 앉아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교제는 우리가 이미 동의하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 42절에 보면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에 함께 동의했기 때문에 비로소 교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바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교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역교회로의 영접이나 지역교회들 사이의 교제를 말할 때 그것은 모두 진리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5) 등대의 목적

이제 우리는 등대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역교회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내가 어떻게 하면 만족할 수 있느냐 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등대는 이렇게 자기중심적인 세상에 빛을 나타내는 존재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는 목적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역교회를 향하여 진리의 기둥와 터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지역교회가 모일 때 성도들의 필요를 채워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더욱 드러낼수록 성도들의 필요가 채워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이 있다면 우리가 이렇게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려면 우리가 기본적인 교리를 붙들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적인 교리를 실행하는 일을 멈춘다면 그리스도의 영광은 가리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자매님들이 머리를 가리우는 것이나 형제들의 은사발휘, 복수장로,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이라는 사실들입니다.

 

6)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의 태도

사도 요한은 주님의 모습을 보았을 때 땅에 엎드려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볼 때 죽은 자처럼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특히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형제님들은 언제나 주님 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 같이 되어야 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요한계시록 1장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일곱교회에 주신 말씀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우리가 일곱교회에 주신 편지들을 살펴볼 때 몇가지 공통점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그 편지들이 어떤 지역에 모인 교회에 보내졌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어떠함을 나타낸다는 점, 그 교회의 잘한 점과 문제들을 지적하시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말씀하신다는 점, 그들이 처해 있는 위험과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들을 말씀하고 있다는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일곱교회에 보내진 편지를 바라보는 관점을 생각해 보면 세대적인 관점에서 일곱교회를 바라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일곱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듯이 오늘날까지 존재하고 있는 모든 시대의 교회를 전부다 파노라마처럼 말씀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교회가 실제로 존재한 교회이며 서로 근접해 있었다는 사실에서 이 편지 안에 담긴 내용에서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일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를 살펴보게 될 텐데 미리 읽어보시고 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A.J. 히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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