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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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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23. 13:21 횃불/1984년

신약의 비밀스런 교훈들

T. 어네스트 윌슨

믿음의 비밀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딤전 3:9)

바울은 그의 목회 서신서에서 자기가 떠난 후에 증거의 횃불을 높이 치켜들 젊은 동역자들에게 마지막 가르침들을 주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의 중심 낱말은 하나님의 집이며, 디모데후서에서는 하나님의 사람”, 디도서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세 권의 서신서 모두에서 우리는 그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교훈들에 관해 대단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는 이것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디모데후서 1 14절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 자신에 의해 그에게 맡겨진 신뢰(trust)였으며, 이제 그는 믿음 안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그것을 넘겨주고 있는 것입니다.

 

장로나 집사나 또는 하나님의 일꾼들을 세움에 있어서 그는 그 자격과 의무를 각각 규정하면서 집사는 반드시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마지막 서신에 나오는 그 믿음이란 낱말은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일 때 가졌던 확신과 구주 안에서의 우리의 신뢰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 메시지 자체에 대한 동의어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믿음의 행위가 아니라 믿어진 교훈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6 7절에서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그 믿음에 순종했던 것을 볼 수 있으며, 사도행전 16 5절에서는 교회가 그 믿음 안에서 세워져 갔던 것을 보게 됩니다. 또 유다서 1 3절에서 우리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그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우라는 권면을 받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 믿음은 물론 진리와 교훈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목회 서신서에서 12번씩이나 진리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붙드는 것이나 지키는 것에 대해 주로 말을 하지만 또한 진리를 아는 것에 관해서도 말을 합니다. 복음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진리는 마음에 의해 깨닫는 것입니다. 진리에 관해 언급한 목회 서신서의 11구절 중에서 5구절이 진리를 아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 각각의 구절에 사용된 낱말은 에피그노시스(epignosis=thorough knowledge, 철저한 지식, 철저한 앎)라는 강한 의미를 지닌 낱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믿어지는 것이며 교훈은 가르쳐지는 것이며, 진리는 스스로 진리이며 하나님과 관계된 것입니다.

 

바울의 나중 서신서, 특히 목회 서신서에 보면 어떤 특정한 가르침들이 도처에 없는 성도들의 일반적인 신앙이 된 것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을 디도서 1 4절에서는 같은 믿음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정의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서의 4 4~6절에서 7가지의 하나됨(unity)을 말했는데 그 중의 하나는 하나의 믿음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현대의 초교파주의자들은 어떤 곤란한 요소를 끌어들이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일을 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정의되지 않은 믿음은 평안과 평화의 낙원을 흔들거리는 약한 것으로 만들며, 이단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절대 평화주의(a peace at any price)를 만들어냅니다.

성령의 하나됨은 믿음의 하나됨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의 조직을 만들려는 현대의 모든 노력들은 타협 및 믿음의 정의에다 물을 타 묽게 만든 것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조직적인 한결같음(organized uniformity)유기적인 하나됨(organic unity)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는 사람이 만든 것이고 후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누가는 믿음을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those things which are most surely believed among us-우리 중에 확실히 믿어진 사실에 대하여)라고 정의합니다( 1:1). 사도행전 2 42절에서 그것은 사도의 가르침이라 불리우고 있습니다.

요한은 그것을 그리스도의 교훈이라 부르고 있습니다(요이 9). 그리스도의 교훈에는 주님의 직접적인 가르침뿐만 아니라 그분 자신과 그분의 사역에 대한 가르침도 포함됩니다. 이것들에는 또한 다음과 같은 진리들이 포함됩니다.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인성(人性), 아들 신분의 영원성, 동정녀 탄생, 흠없으심, 대속적인 죽음, 육신의 부활 승천 대제사장 되심, 재림.

 

사도들의 가르침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됩니다.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은 동격이며 똑같이 영원하심, 성서원본의 완전 영감성, 거룩하신 하나님과 성령의 역사, 잃어진 자들의 영원한 형벌, 구속받은 성도들의 영원한 복락.

 

이 중요한 진리들은 토대와 같이 기본적인 것들이며, 사도 바울이 말하는 믿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그가 아들 디모데에게 부탁했던 아름다운 것입니다.

 

믿음에서 벗어남

목회 서선서에서 믿음이라고 언급된 곳은 11구절이 있으며 그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절-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디모데전서 3 9-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디모데전서 4 1-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배교하여).

디모데전서 4 5-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디모데전서 5 8 -믿음을 배반한 자요

디모데전서 5 10-믿음에서 떠나

디모데전서 6 12-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디모데전서 6 21-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디모데후서 4 7-믿음을 지켰으니.

디도서 1 13 -믿음을 온전케(건전케)하고

디모데후서 38-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

 

이 구절들 중 절반 이상이 믿음에서 떠나는 것에 대해 엄숙히 경고하고 있음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그 각 구절에서 이 떠남에 관해 사용된 낱말은 각각 다릅니다. 그것들은 곧 파선하였느니라, 떠나(depart from, apostatize 배교하여), 버리운, 떠나(led astray), 벗어났느니라(missed the mark).

이들 중 몇개, 특히 처음 것과 나중 것은 그림을 보는 듯한 낱말입니다. 처음 것은 암초에 부딪혀 파선한 배를 묘사하고 있고, 나중 것은 과녁을 못 맞춘 궁술가(弓術家)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궁술가에 대한 개념은 세번 사용되었습니다(딤전 1:6,6:21, 딤후 2:18).

디모데전서 1 5절에서 바울은 경계의 목적이 청결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밀음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참된 푯대요 목표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푯대를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목표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율법의 선생이 되려 했거나 자기들의 과학 또는 지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강한 영향을 줄려고 했습니다(6). 그러자 많은 사람들의 청결한 양심이 그들에게 찔림으로써 마치 항해사가 나침반과 항해도를 배 밖으로 던져버리는 것처럼 그들의 믿음이 파선을 당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4 1절에서 후일에 있을 상판을 묘사하면서 배교(apostasy)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배교하여, apostatize) 미혹케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배교는 돌아오지 않는 지점(the Point of no return, 나이아가라 폭포 위를 흐르는 강의 어느 지점으로서 누구든지 이 지점을 통과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결국 나이아가라 폭포 밑으로 떨어져버린다고 함)”으로 다가가는 것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행위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것처럼 일시적으로 잘못을 범한 사람은 회복될 수가 있으나 배교에 대해서는 오직 심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베드로는 일시적으로 잘못한 사람이었지만 가룟 유다는 배교자였습니다. 배교자란 비록 비췸을 받은 적이 없었을지라도 결코 중생하지는 못한 자이며 따라서 그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배교란 가르침과 도덕면에 있어서 잘못된 마귀적인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크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가까워질수록 사단의 활동이 점점 증대될 것임을 우리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는 일

바울은 우리가 진리를 알고 교훈을 가르쳐야 할 뿐만 아니라 믿음을 지키고 수호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유다는 그의 서신서의 3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바울은 일꾼으로서의 생애 동안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힘써 싸워야만 했는데 갈라디아에서는 율법주의에 대해, 고린도에서는 도덕률 폐기주의에 대해, 골로새에서는 노스틱 학파 이단의 가르침(Gnosticism, 靈知主義)에 대해 싸워야 했습니다. 이 옛 이단들이 오늘날에 와서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활했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은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율법의 행위에 의한 구원을 주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정반대를 주장하는데 즉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면 그 후의 행실은 아무래도 좋다는 따위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영화로우신 주님 자신을 공격합니다

성도들의 자원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들에 대한 청결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입니다. 그 다음에 선한 양심을 잘 지켜야 하며, 그 다음에는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1:11) 로이스, 유니게, 바울, 디모데처럼 거짓과 위선이 없는 깨끗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건전한 믿음을 지키고, 청결한 양심으로 그것을 붙들며, 그것을 위해 선한 싸움을 싸워 마지막에 가서는 내가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말했던 바울처럼 우리도 말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1984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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