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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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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24. 10:22 횃불/1984년

느헤미야

성벽을 중건하라!

 

우리 하나님을 경외함에 행할 것이 아니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 .”

그와 같은 경외심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할려는 마음으로 느혜미야에 나와 있는 많은 유익한 교훈들을 함께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임재 가운데 이 책을 주의깊게 공부해 간다면 주님께서는 느헤미야서를 통해 현재에 관련된 여러가지 사건들에 관해 많은 것을 교훈해 주실 것입니다.

1장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잇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는 유대의 남은 자와 예루살렘성이 훼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깊이 죄를 자복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능력으로 구속받은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파멸에 이른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 여호와께 간절히 탄원하고 있습니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11).

그는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과 크신 왕의 성의 상태를 통렬히 아파하며 여호와를 떠딘 그들의 심한 최악을 온전히 자백하고 있습니다.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레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으니 제가 감히 묻겠습니다. 우리도 그처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교회의 현 상태를 하나님께 아뢰고 깊이 자백해 본 일이 있습니까? 우리도 그처럼 주님의 피로 사신 백성들을 위해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저 논쟁만 일삼지 말고 주님 앞에 앉아 세상의 포로가 된 현재의 교회와 초대 교회를 비교해 보시기랍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성령으로 교회를 세우셨을 때 거기에는 세상과 교회를 분리하는 성별의 벽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벽은 지금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그 옛 도성에 있던 모든 집들이 견고하고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한 예루살렘을 형성하고 있었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다 함께 한 몸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 나머지는 감히 그 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 .”( 5:13). 당신은 주님 앞에 앉아 교회가 포로되었던 암흑시대를 돌이켜 보십시오.  그 때에 그 성별의 벽은 무너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임재 앞에서 느헤미야의 마음을 강하게 연단하여 장래의 사역을 준비시키신 것처럼 다른 일군들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친히 준비시키시고 특별한 사역을 위해 일으키십니다. 즉 거기에는 반드시 그와 같이 마음을 준비시키는 과정이 있어야만 합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백성과 도성을 생각하고 깊이 엎드렸던 것처럼 성도들 중에도 교회의 현 상태를 생각하고 깊이 엎드려 있는 심령들이 많이 있으며, 저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심령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히 쓰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1장에서 하나님 앞에 깊숙히 엎드림과 연단이 있은 후 2장에서는 그 결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흥왕을 위한 사랑의 거룩한 열망과 활동을 볼 수 있습니다.

2장에서 우리는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들과 그의 동료들은 앞으로 계속 느헤미야를 대적하여 성벽을 못 짓도록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그들이 어떤 자들이며 결국 누구를 대표하는 인물들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호론사람과 암몬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들로서 그 당시 이스라엘 땅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활동적이었으며 허풍을 떨었으며 자신들의 권력을 교활하게 행사하는 자들이었지만 이스라엘에 속해 있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소위 교회라 불리우는 곳에는 실제로 하나님께 대하여 전혀 외인이요 하나님의 참된 교회에 속해 있지 않으면서도 활동적이며 허풍을 떨며 권력을 교활하게 행사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갈망하는 사람들과, 성도들을 돌보는 사람들과 참된 교회와 세상을 분리하는 그 성별의 벽을 세우는 사람들의 원수요 훼방자들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 좀 더 공부를 해나가면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일곱 가지형태의 적대 행위를 발견하게 됩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2:10).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흥왕케 하려는 참된 일군들을 일으키셨을 때 많은 무리들이 심히 근심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위클리프(Wycliffe)나 허스(Huss) 또는 루터)Luther) 같은 일군들을 일으키셨을 때 그 당시 소위 성직자라는 사람들의 근심이 얼마나 컸을까요?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한 그와 같은 일곱 가지 특징들을 우리는 특별히 지난 세기 동안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든 교파주의를 떠나 하나님의 교회의 진정한 부흥을 구했던 일군들을 하나님께서 일으키셨을 때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근심거리가 되었겠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밤중에 일어났을 때 그와 함께한 사람은 몇 사람밖에 없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 속에 무엇을 보여주셨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와 함께 예루살렘성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십시오. 용정과 분문 등 모든 것이 다 무너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와 마찬 가지로 파괴된 교회의 내부와 벽들이 똑같은 상태에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손아귀에 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이 모든 것들을 이미 분명히 예언했습니다. 작금(昨今)의 기독교계의 상태가 성경에 너무나 정확히 묘사되어 있습니다(딤후 3, 벧후 2:1~9, 17~18장을 참조 하십시오).

그 당시 느헤미야가 짐승을 타고 예루살램성 주위를 돌아다녔던 것처럼(2:11~16) 당신도 기독교계를 한번 돌아다녀 보십시오. 카톨릭교나 신교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생각하실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그분의 존전에서 그 모든 정경(情景)들을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절망 가운데 그의 손을 늘어뜨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말하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의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燒火)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라고 하여 백성들을 격려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들을 도우셨으므로 그들은 대답했습니다. “일어나 건축하자.”

그러자 두번째 형태의 방해가 일어났습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첫번째 형태의 방해는 대적들의 근심이었는데 두번째의 것은 비웃음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다의 남은 백성들은 소수로서 극히 미약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거룩한 도심이 성별의 벽으로 둘러싸이는 것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 도성이 그들에게 그처럼 소중했다면 하나님의 교회의 신성한 울타리가 성도들에게 얼마나 더 소중한 것이겠습니까! 느헤미야가 그 남은 백성들을 분기시켜서 성벽을 쌓게 했던 것처럼 성령님께서도 각 처소에 있는 적은 무리를 분기시키셔서 오랫 동안 훼파되었던 그 벽을 다시 세우고 계십니다. , 그러나 얼마나 많은 현대판 산발랏들이 그것을 업신여기고 비웃 고 있는지요!

3장에서는 성벽이 지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적은 무리들이 각기 자기 위치에서 성벽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마지막 때에 일어나고 있는 상태를 잘 묘사해 주는 그림이 아닙니까? 주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하나의 그리스도의 몸 곧 하나의 하나님의 교회의 진리를 받아들인 곳마다 적은 무리들이 각기 성별의 벽을 쌓고 있으며 하늘의 건축자께서는 능란한 석공처럼 각 조각들을 잘 짜맞추고 계십니다. 그 일은 바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 남겨진 연약한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배타적이라고 불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합니다. 당신은 반드시 그 배타적인 담을 쌓아야만 합니다. 안에 있는 것을 보존하고 밖에 있는 것을 배척하지 않으려면 구태여 벽을 쌓고 문짝을 달아 빗장을 지를 필요가 있을까요? 모든 교파주의를 배척함이 없이는 한 몸의 복된 진리를 충심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나서 어떻게 이단들의 다른 신들에게 관대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 호에 계속)

 

(1984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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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