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노르만 크로포드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학개, 스가랴서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증거하는 때를 잘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우리의 경험들과 유사한 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 집의 왕, 스룹바벨의 인도하에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예화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지역 교회의 간증 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단순히 모이는 것을 잘 예시해 주며, 또 그것은 믿는 자의 영혼 안에서 개인적으로 일어나는 부흥의 여러가지 모습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이건, 단체적이건 간에 모든 부흥은 세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의 연약함을 깊이 깨닫고 죄를 겸손히 고백하는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며,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으뜸으로 삼는 것 다시 말해서 신약의 용어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그 이야기는 무릎을 끓고 있는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단 9장). 다니엘은 성경을 읽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가 이르렀음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죄와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거의 모든 축복들은 무릎을 꿇고 있는 남녀들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추적해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직접적인 기도의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바사(페르샤) 왕 고레스의 마음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셨고, 거의 5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바벨론을 떠나 불에 타서 검게 된 폐허의 도시로 잡동사니 돌무더기로 변해버린 성전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그 폐허의 도시가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라는 것과 불에 탄 그 성전이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殿)”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스
구약 역사의 이 특정 부분이 우리의 이목을 끄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들의 경험과 우리의 경험이 비슷한 것은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롬
최근에 어떤 주석가는 자기는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용기와 믿음은 크게 칭찬하지만 그들의 “분리주의” 때문에 그들의 봉사가 손상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 분리주의 때문에 그들은 도움을 주겠다고 제의한 것을 거절했으며,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그 땅 백성들이 서로 통혼하는 것을 금했다는 것입니다. 소위 성경을 읽는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와 같은 말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남은 자들은 비록 숫자가 적고 약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과 드라마 가운데서 하나의 주요 고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자기 아들, 곧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으로 보내려 하셨습니다(마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직후의 한 가정으로 잠깐 들러보기로 하겠습니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하여 토론하고 있는 한 가정을 마음 속에 그려보십시오. 한 아들이 묻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라고 참으로 주장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이스라엘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소수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아버지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성경이 우리 민족 전체에게 주어진 것과 이 민족 중에서 겨우 이 적은 숫자가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성경은 항상 어느 때나 동일하며 우리에게는 다른 안내서가 없단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을 위하여 간증을 유지해야 돼.”
우리 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질문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의 교회에 관한 가르침은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는 자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계 전체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상황들이 매우 다른 이 때에도 인도를 받기 위해 신약의 질서를 사용할 수 있을까요? 이것에 대한 간단한 대답은 현재의 혼란이 성경을 해석하는 열쇠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우리는 현재의 상황들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던 아들이 이렇게 질문합니다. “이곳이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신 유일한 장소라고 우리가 어떻게 주장할 수 있습니까?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은 전부 크고 강대한 나라들이며, 우리는 불에 타고 폐허가 된 성 안에 있는 소수의 남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소유한 것들은 모두 매력 없는 것들이며, 우리가 주변 나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사실 제로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매력 없고 이름 없는 조그만 장소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선택하신 장소라고 우리는 정말 믿어야 할까요?”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육이 긍지를 느낄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이 말하는바 대로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은 바로 이곳이다(신
한 아들이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으려는 이 제단과 이 전(殿)은 모든 나라들 가운데서 예배의 유일한 제단이며 전입니까? 우리는 바벨론에 있을 때 금과 은과 보석으로 만든 수 백 개의 제단들을 보았는데 그것들은 아름답고 값 비싼 것들이었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어떻게 이 평범한 놋제단이 주 하나님의 유일한 제단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우리는 바벨론의 제단들로부터 이 제단을 더 매력있게 만드는 방법에 관하여 어떤 교훈들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이란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것을 제외한 그 밖에 어떤 제단도 만들 권한이 없어요(신
이것은 우리의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단순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입니다. 매주일 첫 날에 우리는 떡과 잔이 놓여 있는 단순한 상(床) 주위에 둘러 앉아 주 예수님을 기념하고 그분의 죽으심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된 모습이라고 주장할 수 있으며, 참으로 황송하옵게도 주님 자신이 모여 있는 자기 백성들 가운데 친히 좌정하신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거기에는 육신에 속한 사람들의 눈에는 인간의 교만을 만족시킬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성경에 기록된 바이며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즐거이 순종해야 합니다(마
이 때 마침, 그 자리에 없었던 아들 하나가 들어와 흥분한 어조로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그의 말은 그 땅 사람들도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일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협력하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입니다(스
우리는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말을 많이 들어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섬기고 있는데 그들과 협력하면 어떨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 사람들은 모두 연합합시다. 사소한 차이엘랑 신경쓰지 말기로 하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연합된 모습을 보입시다.”
이와 같은 말에는 진실과 열정이 담겨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옛날의 이스라엘 지도자들처럼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며 잃어진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고 애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땅히 모든 믿는 자들에게 참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려고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98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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