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과 힘(능력)의 근원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연약함이 있을 때에는 그 원인을 살펴보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연약성을 의식하고 그것에 관하여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할지를 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연약함에 관하여 몇 가지 원인들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 연약한 지도자(삼하 3:39 )
다윗 왕의 역사 가운데는 다음과 같이 슬픈 고백을 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날 약하여서····” 그 이류는 아브넬이 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연약한 지도자였다고 결론을 내려서는 안됩니다. 사실 그는 여러 면으로 뛰어난 사람이었으며 성경은 그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행
□ 연약한 일군들(느 4:10 )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하고 있었으며 외부의 대적과 내부의 연약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느
□ 연약한 자녀들(갈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모든 일군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성장해 가는 것을 참으로 보기 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슬프게도 항상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 연약한 지역교회(계 3:17 )
라오디게아 교회는 실제로는 불쌍한 처지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안녕에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조언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 힘(능력)의 근윈
바울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 대한 근원이 영광 중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K. S. 우에스트 씨는 빌립보서
히브리서 11장의 경건한 남녀들은 히브리서
엘리바스는 욥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욥
다니엘
느헤미야 8장에는 성경 낭독에 관하여 두드러진 기록이 나옵니다. 에스라가 말씀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자 그것이 백성들의 마음에 닿아 슬픔을 자아냈습니다. 이것을 본 느헤미야는 그 날이 여호와의 성일이라고 말하고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했습니다.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10절).
우리가 여호와(주님)를 기뻐하는 삶을 살고 있을 때 우리의 영혼 속에는 영적인 힘이 있게 됩니다. 주님을 찬양하는 백성은 발전할 것이며 이것은 구약과 신약에서 동시에 찾아볼 수 있는 명백한 원칙입니다.
마지막으로 힘의 근원에 관하여 한가지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강건해지려면 끊임없는 기도 생활이 지극히 중요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사 40:31). 여호와(주님)를 앙망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 상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주님의 백성들이 우리가 사는 시대의 쉬임없는 분망에 휘말려 있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은 단순히 인내와 열망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소망의 특징이 되는 신뢰와 확신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체험하게 될 때 그분의 능력의 근원들로부터 끊임없이 힘을 얻으며 나아갈 수 없습니다. 날개치며 올라가는 것은 곧 어려움들 위로 올라가는 것, 이 땅의 안개와 어두움 위로 날아올라 하나님의 임재는 밝은 햇빛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기쁜 체험 속으로 더욱 빨리 들어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사실적 존재라면 우리는 그렇게 하게 될 것입니다”(W. E. 바인).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결국에 가서 축복과 영원한 유익을 갖다 주게 되도록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모든 일들을 완전히 지배하고 계신다는 것을 앎으로 생의 어려운 경험을 겪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큰 격려를 받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자기 주위의 둘러싸고 있는 무수한 죄악들로 짓눌려 있을 때 조차 이 와 같은 확신을 표현했습니다(시 40:12,17). 여호와께서 자기를 생각하고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었겠습니까! 사별(死別)의 슬픔과 그 이후의 외로움을 견뎌야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비록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잊어버릴지라도 주님만은 그 일을 잊지 않고 생각하고 계시다는 사실로부터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시편 40:17에 나오는 “생각하시오니”(think upon)라는 단어는 그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실제로 시행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병든 몸으로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들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사실, 우리를 위해 그것을 계획하신 분도 역시 그분이십니다.
요셉은 여러 해 전에 자기 형제들이 저질렀던 악행 너머로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5,8).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환경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시간이 오래 경과한 후에야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사건들을 계획하실 뿐만 아니라 그분이 계획하신 것을 완전케 하시리라는 것을 기억하면 더욱 격려를 받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지라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시 138:8). 이 확신의 표현은 다윗이 기도 응답을 해주시고 자기 영혼을 강하게 해주신 여호와께 찬양을 드리는 시편의 끝에 나와 있습니다. 그는 어려움 가운데 행할 때조차 소생시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편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과 지혜 가운데 뜻하시고 계획하신 모든 것을 그분의 능력으로 이루시리라는 것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 완전케 하는 과정은 우리의 모든 삶 가운데서 각각 달리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욥바의 베드로는 자기를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 성소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행
이것은 장래에 관한 전망이긴 하지만 만약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우리가 지금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늘 의식하며 살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분이 우리 안에서 또한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들을 이해하기 시작하게 될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이유들까지도 이해하기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198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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