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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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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제의 중심에 주 예수 그리스도

나이토오 히데오

안녕하십니까? 일본에서 문화가 가장 뒤떨어져 있는 센다이라고 하는 지역에서 온 나이토오 히데오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빌립보서를 교제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6:9-10절입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빌립보 모임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복음을 전해서 세워진 모임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바울은 아시아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한 다음에 서쪽에 지금은 터어키 지방인 에베소 지역에 복음을 전하려고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시아에서 성령이 복음을 전하지 않도록 인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방금 읽은 데서 알 수 있듯이 환상 중에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말을 통해서 성령이 마게도냐 지방으로 복음을 전하라고 인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빌립보에 복음을 전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이것을 들으면 정말로 기쁨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것이 유럽 전도에 처음이라는 말들을 합니다. 성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바울이 로마에 또는 빌립보에 복음을 전하기 전에 사람들이 가서 혹시 복음을 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가서 전했는지는 모르지만 빌립보 모임은 정확하게 성령이 인도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잘 가르침을 받은 바울과 실라와 그리고 누가까지 포함해서 전했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식으로라고 제가 말씀을 드립니다만 정말로 성경이 말하는 대로 정식으로 복음을 전해서 세워진 모임이 빌립보 모임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이것을 배경으로 해서 빌립보서로 가겠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간 것은 기원 49~50년 쯤으로 생각이 됩니다. 로마 글라우디오 때에 로마로부터 유대인을 추방한 추방령이 49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성경에 등장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에 그리고 데살로니가를 돌아서 고린도에 갔을 때 고린도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와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약 AD 49~50년쯤으로 추측이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 모임이 생긴 것은 사도행전 16장에서 조금 전 읽었습니다만 그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원래 자주 장사인 어떤 여인이 먼저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어서 빌립보 감옥에 간수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빌립보 배경을 보게 되면 빌립보 모임이 생긴지 10년쯤 되던 해에 빌립보 모임은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서 바울에게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빌립보 모임에 사정을 듣고 그 선물에 대한 감사의 예와 문제들에 대해서 듣고 인도함을 받아서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빌립보서 1:5-6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5절에 말씀은 빌립보 모임이 생기고 10년째 되는 시기이지만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6절을 보면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라고 썼습니다. 실제로 복음을 전한 사람은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인데 디모데는 1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공동 저자로 되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한 것은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이지만 6절에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라고 해서 하나님이 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 완성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라고 해서 주님이 완성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착한 일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복음을 전하지만 실제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본어 성경은 5절에 '너희가 복음에서 교제함' '동참했다'고 되어 있으며 다른 나라 성경은 '함께 노력했다'라고 번역한 성경도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직접 전하는 것도 있지만 바울을 돕는 일이 복음에서 교제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모임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집이요, 그리고 하나님의 밭이라고 말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하고자 하는 말은 바울이 일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집(건물)이면서 하나님의 밭이라고 해서 일꾼이 했다기보다 하나님이 하셨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회 즉 모임은 하나님의 것임과 동시에 하나님이 정말로 직접 일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복음 안에서 교제(동참)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장에 하나님 즉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임에서 일하신다는 것이 또 나와 있습니다. 9-11절입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9절도 중요하지만 10절을 보게 되면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라는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자 속에서 역사해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도록 역사하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11절이 되겠습니다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는 말과 '그리스도의 날'이라는 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난받을 것이 없이 순전하게라는 말씀을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순수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날까지 진실하여 거짓이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 날에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점과 흠이 없이 드러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모임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11절에 나와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의의 열매가 가득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것처럼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 온유 절제"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열매가 있기를 바래서 물론 복음을 전하는 단계에서도 교회 진리를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편지를 쓸 당시에 빌립보 모임은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주님이 직접 역사하셔서 성령의 열매가 그 동안에  맺어져 있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따라서 빌립보서 1장은 교회(모임)는 주님의 것이고 거기에는 주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바울이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12절 이후부터는 로마에 있었던 바울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죄수의 신분이었습니다. 13절에 보면 알 수 있지만 바울이 죄수가 되어서 갇혀 있다는 것을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라고 말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915절에서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이것은 바울을 구원으로 인도하셨을 때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다시 빌립보서 1장으로 돌아가서 이 시위대는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바울을 감시하는 시위대인데 네로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바울이 옥 중에 있는 사실이 네로에게도 전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죄수이지만 복음에 진보가 있다는 것을 빌립보 성도들에게 알려서 그것이 결코 슬프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1-22절을 보게 되면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21절에서는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했습니다. 4장에서 말합니다만 바울은 "어떤 경우에라도 처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생애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도되기 때문에 죽는 것 사는 것이 다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것이 바울의 삶에 중요한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을 돕기 위해서 빌립보에서 에바브로디도라는 성도가 찾아왔습니다. 에바브로디도를 보낸 다음에 다시 디모데를 빌립보에 보내고 싶다는 의사를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25-26절을 보게 되면 바울은 석방이 되어서 직접 빌립보에 가 보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석방이 되어서 빌립보에 갔을 때에 27절 말씀처럼 빌립보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을 바울이 보기를 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1장에 기록되어 있는 사항들입니다. 오늘밤 교제를 드리고 싶은 내용은 모임은 주님이 직접 일하신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임은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사고방식이 들어가면 안된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2장으로 들어가면 모임의 교제가 어떤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1-4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참된 모임의 교제는 사랑의 일치라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이것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면 안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때로 우리들 가운데는 일치가 깨어진다든지 또는 사랑이 부족한 일이 생기면 교제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임을 방문하면 그 모임에 일치가 있는지, 사랑이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가 모임에 왔을 때 모임에 일치와 사랑이 있다면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일치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3,4절에 나와 있습니다만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일본어에서는 이 다툼을 자기 중심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매들의 마음 상태는 제가 모르지만 형제들의 마음상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보면 누가 훌륭한지 누가 높은지를 제자들이 관심을 두는 것을 통해서 형제들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3절에 보면 바울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의 저의 얕은 생각입니다만 형제들의 경우를 통해서 말한다면 여러 형제들이 있습니다. 형제들은 대부분이 자기보다 나은 것을 갖고 있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참으로 복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는 만능인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형제자매들에게 각각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인정해서 나보다 낫다고 인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4절에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라고 했습니다. 일치의 조건은 형제 자매들이 존경하지 않으면 일치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돌아볼뿐더러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사람들은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고 내 의견을 이렇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때때로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가르치시지 않으셨습니다.

6절부터 11절까지는 유명합니다만 그 중에 특히 6-8절까지는 주 예수님의 모본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것을 아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도 아신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웃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습니다. 그리고 수건으로 발을 닦으셨습니다. 수건으로 닦았다는 것은 그냥 씻은 채로 두었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발을 씻고 물을 안 닦고 두면 그 사람이 미끄러져서 넘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수건으로 닦았다는 것은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종 즉 노예의 일이었습니다. 6-8절까지는 그러한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본을 보였노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신앙생활 가운데 형제자매들의 발을 씻은 적이 있습니다. 바울은 주 예수님의 모본을 가지고 자기 자신과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들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7-18절에서 바울은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라고 말했습니다. 관제라는 것은 바울에게 있어서 피를 흘리는 것까지 포함될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19절부터는 디모데에 관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2절에서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문화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역사가 깊다고 제가 들었습니다. 디모데의 복음활동은 자식이 아비에게 함과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에서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서 성장했습니다. 바울은 2차전도 여행에서 디모데의 성장을 보고 바울과 함께 동행할 것을 권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전 생애를 바친 사람이었습니다.

20절에서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라고 말했습니다. 디모데는 젊었습니다만 빌립보가 최초의 전도지였습니다. 디모데가 본 것은 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는 것을 보았는데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모습이었습니다. 빌립보 전도에서 얻은 결과 중에 하나는 바울과 실라가 잡혀서 손과 발에 족쇄가 채워져서 감옥에 있는데 그 몸을 씻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그 처참한 모습을 보고 전도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몸으로 직접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탄생한 형제자매들이 빌립보 모임을 이룬 것입니다. 따라서 디모데는 매우 걱정을 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정말로 구원을 기뻐해서 순전한 믿음을 이어갈지 어떨지를 디모데는 걱정을 했습니다.

또한 에바브로디도의 모본을 말하면서 자기를 돌보지 않고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모임에서 물질을 가지고 감옥에 있는 바울을 방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27절에서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라고 말했습니다. 빌립보에서 로마로 여행 중에 병이 들었는지 로마에 도착해서 병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죽음을 예감할 정도의 병이었습니다. 그 소문이 빌립보까지 전해졌던 것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병이 나았기 때문에 빌립보 성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서라는 편지를 지참하고 빌립보에 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25절에서 에바브로디도를 말할 때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군사 된 자요를 일본어 성경에는 전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군사로 기록된 사람은 성경전체에서 두 사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군사 된 자는 사선(死線)을 함께 넘는 자라는 의미가 들어 있을 것입니다.

조금 전에 식사를 하면서 한국 사람들의 병역 의무에 대해서 남자들은 만 20세가 되면 군대에 가야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이 있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함께 군사 된 자(전우)의 영적인 의미는 이 세상 군대에서 말하는 전우보다 더 어렵고 더 상황이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반대편 대적의 머리되는 존재는 공중 권세 잡은 사단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 시대는 순교자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러나 빌립보서가 쓰여진 이 당시를 포함해서 그 이후에 세대는 바울도 베드로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했습니다. 제가 구원받은 지 얼마 안되던 즈음에 2차 대전 중이었는데 일본에서 감옥에 들어가 있던 형제님들 중에 3명이 출소해서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 영국에서 전도하러 오셨던 형제님은 감옥에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제가 구원받을 그 즈음에 남미에서 다섯 명의 성도들이 순교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 중에 두 사람은 제가 교제하고 있던 마카리스타라고 하는 형제님의 친구였습니다. 우리는 현재 순교하는 시대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의 영적인 싸움의 대상인 사단은 자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손을 놓고 있으면 사단도 손을 놓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열심을 내면 사단도 반드시 열심을 낼 것입니다. 어떤 때는 여기에 있는 기록처럼 믿는 자들의 생명을 노릴지도 모릅니다. 이 사람들은 믿음의 모본이었으며 29절에서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모본이 되는 사람들을 들어서 참된 교제라고 하는 것은 이런 사람들과 같은 교제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 주 에수님이 모본이셨습니다.

 

빌립보서 2:12-16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12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본을 언급한 다음에 "그러므로"라고 하였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서 그 다음에 13절을 보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교제 가운데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형제 자매들을 섬긴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 소원을 말합니다. 그러한 것들을 주님께서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모본과 주님을 말씀을 따른다는 소원 즉 마음의 의지를 말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14절에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했습니다. 말씀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순전하게 전쟁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사단은 하나님이 정말로 그리스도냐고 사람의 마음 속에 의문을 품게 합니다. 욥기를 보게 되면 사단은 욥이 이유없이 하나님 당신을 존경하겠습니까?라며 이유를 죽~ 말한 다음에 하나님이 욥을 시험하도록 사단이 유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렵게도 사단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해서도 40주야를 금식한 다음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그렇다면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며 유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늘 그렇게 유혹하는데 우리는 주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대응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의심하지 않고 전진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즉 말씀에 관한 의심을 품지 않고 전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5절에서는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1장에서도 순전하게 말씀을 받는다는 말씀이 나왔습니다만 순전함을 가지고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빛들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16절에서 "생명의 말씀을 밝혀(붙들어-난하주) 달음질을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2장에서 말하는 교제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사랑이 복음 안에 있고 이 사랑의 일치를 유지시키고 이것이 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바울은 예를 들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2장에서 한 마디로 말한다면 우리의 교제의 중심에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 있다는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해서 말할 수 있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453일 강서모임)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