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에디오피아 내시의 구원

나이토오 히데오

 

사도행전 8:26-29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아사야의 글을 읽더라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약 50일 후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었던 빌립에게 주의 사자가 일어나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고 명했습니다. 가사는 현재도 가사(가자)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 되어 있습니다. 이 때에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병거를 타고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환관이면서도 요즈음의 재무장관쯤의 지위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이집트에서 더 남쪽인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예배를 하러 왔으며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잘 나와 있지 않지만 에디오피아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지만 하나님을 믿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성경을 보고 압니다만 이 당시 국력이 있던 이집트와 에디오피아는 거의 대부분이 우상숭배하는 나라들입니다. 태양을 신으로 여긴다든지 각가지 동물을 신으로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애굽이나 에디오피아, 일본도 그렇습니다만 부엉이라든가 뱀 등을 신으로 섬깁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을 제외한 대부분이 그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천지를 만드시고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 에디오피아 내시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을까요? 그것을 아마 AD 30년을 전후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 에디오피아 내시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이스라엘 하나님을 믿게 된 것에는 역사적인 계기가 있습니다.

이 사건 이전 90년쯤에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서 점령을 당했습니다. 로마의 다른 이민족 침략 전략은 그 어떤 민족을 침략한 다음에 그 민족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었고 선민이라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완고하다고 할까요 다른 민족이 하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성향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정복했지만 완고한 민족이었기에 그 민족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시켰습니다. 에디오피아도 로마에 의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주 당했기 때문에 성경에 나와 있지 않지만 전체를 통해 보면 짐작이 가능해 보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주 당한 그 지역에서 회당을 짖고 매 안식일마다 율법을 낭독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대인 회당 주변의 다른 민족들은 대부분 동물이나 다른 신을 숭배하고 있었는데 이스라엘이 숭배하는 신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신이라고 믿기 때문에 대단히 놀랬을 것입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명치시대 들어가기 직전에 일본의 사무라이 무사 가운데 니이지마 죠오라는 사무라이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도꾸가와 이야스 막부는 쇄국정책을 했기 때문에 일본 내국인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 때 니이지마 죠오라는 사무라이가 외국인 선교사로부터 성경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니이지마 죠오라는 사무라이는 창세기 1 1절을 읽고 놀라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도꾸가와 이야스 막부의 금지령을 어기고 홋까이도 남쪽에 있는 하꼬닷테라는 항구에서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미국에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이 사무라이가 귀국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오토에 도오시아 대학이라는 학교가 있습니다. 그 대학은 니이지마 죠오라는 이전 사무라이 같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세운 대학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나 니이지마 죠오라는 사람이 이전에 생각했던 그 신들은 사람들이 만든 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능가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에디오피아 내시는 이 하나님에 관해 들은 내시는 자기도 믿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 내시가 여기에서 가진 믿음이 예사롭지 않은 믿음이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먼 거리인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이동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내시가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도중에 주의 사자가 빌립을 명해서 이 내시와 만나게 했습니다. 이 내시는 병거를 타고 가면서 성경을 읽고 있었는데 그 읽는 곳이 구약성경의 하나인 이사야서였습니다. 구약성경은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부터 있는 성경입니다. 당시는 인쇄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손으로 베껴 쓴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이 성경도 사본이라고 해서 베껴서 여러 권을 만들었습니다. 사본 중에 하나를 에디오피아 내시가 읽고 있었는데 그 당시 가격은 상당히 비쌌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국고를 맡은 권세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기 돈으로 성경을 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행전 30-31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이곳의 말씀이 저에게는 대단히 감동스런 말씀입니다. 병거를 타고 있는 높은 신분의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은 병거 옆을 달리도록 주의 사자의 명을 받아 달리고 있었습니다.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은 병거는 가고 있고 빌립은 달려가면서 읽는 성경을 깨닫느냐는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이 에디오피아 내시는 대단히 솔직한 사람으로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라고 대답하며 가르침을 받기를 원하니 마차에 올라타라고 했습니다. 이 내시는 하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 내시가 읽는 성경은 이사야서인데 우리가 그곳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53:1-3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읽고 있던 곳은 바로 이곳입니다. 내시는 이곳을 읽고 이사야가 하는 이 말이 자기를 가리키는지 타인을 가리키는지를 질문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약 700년 전 말씀입니다. 1절을 보게 되면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사회는 마른 땅 즉 사막 같았습니다.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았다고 예수님의 성장과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모습에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만 베들레헴에 가축이 있는 막사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데도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나사렛이라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땅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자녀로 30살까지 거기서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라고 누가 물으면 '예수 그리스도 같은 분입니다'라고 말하면 맞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우리 눈에 보이게 해 주셨습니다. 사람으로서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나셨으며 그분의 생활은 우리와 똑같은 생활을 하셨습니다.

 

이사야서 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4절을 보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30세쯤 되실 때에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것을 공적으로 선언하셨습니다. 가장 비참한 질고()를 짊어지셨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38년 동안 침상에 누워있는 사람을 걷게 했습니다. 12년동안 혈루병을 앓는 여인에게 한마디 말로 낫게 했습니다. 복음서를 보게 되면 주님은 병든 사람이나 굶주린 사람들을 예사롭지 않은 관심을 가지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둥병자에게는 내 뜻이니 깨끗하라고 명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병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생긴 결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비참한 사람들의 질고를 진심으로 동정하셨습니다.

6절에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했습니다. 5절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을 여러분들이 들은 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는 범죄자를 처형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범죄자였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처형장에 있던 한 관리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을 판 유다도 "내가 무죄한 피를 팔았다"고 했습니다. 이분에게 죄가 있다고 말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죄가 없는 이 분에게 우리의 죄를 지워서 벌하는 것입니다. 마치 변제할 수 없는 막대한 빚을 진 사람의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지금까지 일평생 살면서 거짓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죄인이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명백합니다. 죄인, 도적, 거짓말쟁이가 하나님 나라에 간다면 거기는 더 이상 하나님 나라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그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죄가 당연히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천국에 보내기 위해서 우리의 죄를 전부 이 분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주님은 옷이 벗기운채 양손과 양 발에 못이 박히고 옆구리에는 창으로 찔렸습니다. 이것은 사람들 쪽에서 볼 때 사람들이 주님을 마음대로 한 대응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에서 외치신 외침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주님을 대응하는 그 반역의 대응뿐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의 벌도 받으신 것입니다.

 

이사야서 10-11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라고 했습니다.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8:35-36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빌립은 내시의 질문을 받고 조금 전에 보았던 이사야 53장의 내용을 가지고 그 가리킴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내시는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이미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국 갈 수 있는 확신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죄인을 대신해서 예수님이 그 죄를 대속하신 것을 믿고 구원받는 것이라는 것을 복음을 듣고 알게 된 것으로 보이며 그는 즉시 믿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이 에디오피아 내시처럼 간절하게 원하십시오. 그렇게 구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201454일 강서모임)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