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지극히 가까이 계시는 주님

나이토오 히데오

 

덕세움의 말씀을 드리기 전에 함께 만찬에 참여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저는 감사합니다라는 말밖에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흐름은 제가 센다이에서 하는 것과 완전히 똑 같았습니다. 성령이 인도하시기 때문에 같은 성령이시기 때문에 감사나 찬송이든지 같다고 제가 생각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쁘시게 감사와 찬송을 받으셨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출애굽기 3: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이 말씀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때 모세는 이집트를 도망 나와서 40년이 되는 때였습니다. 미디안 제사장의 딸 십보라를 아내로 맞아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하나님과 전혀 관계가 없는 생활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모세가 이집트를 도망쳐 나온 이유는 자기 동족을 구하고자 애굽 사람을 죽인 것이 그 계기였습니다. 하나님이 7절에서 말씀하신 "그 우고를 알고"라고 하는 이 내용을 모세는 전혀 몰랐다고 생각합니다. 애굽에 체류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곱과 그 일가가 내려가서 이 시점에서 400년 가량 지난 때였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바로가 일어난 것을 말하고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63:9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 사랑과 그 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이사야가 이 말씀을 기록할 때는 약 BC 700년 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 시대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던 그러한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사야가 이 말씀을 예언할 때는 북방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앗수르)로 말미암아 멸망 당한 시기였습니다. 남 유다도 성읍들이 앗시리아 왕에게 거의 점령을 당하고 예루살렘 정도만 남아있을 시기였습니다. 이사야 34장을 보면 그 당시 앗시리아 왕은 북 이스라엘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남 유다의 성읍을 거의 점령하고 예루살렘도 포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앗시리아 왕의 장군이었던 세나게렙이 성 안에 걸어 다니는 유다사람들을 보고 성 밖에서 조롱하고 있었던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식량이 부족해서 멸망을 당할 즈음에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서 하루 밤에 18 5천의 군사를 전멸시키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당시는 예루살렘만 남아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이 나와서 이사야가 이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즉 주님께서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앗시리아 군대로부터 포위된 예루살렘 사람들은 '주님이 정말로 우리의 환난에 동참하시는가' 하고 생각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이 말씀대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 사랑과 그 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라고 기록했습니다.

 

마태복음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말씀에 있는 그대로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임 중심에 주님의 임재를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라고 기록되어 있지 출중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나 출중한 인물의 이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절 후반 끝에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며 마태복음은 마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이 때는 세례요한이 목베임을 당한 이후에 주님께서는 홀로 산으로 기도하러 가시고 제자들을 먼저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게 하신 다음에 풍랑이 일어서 제자들이 곤란을 당할 즈음에 주님께서 물 위로 걸어서 접근해 오시는 장면입니다. 제자들은 물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하면서 놀랬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언제나 솔선해서 행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주시면 나를 물 위로 걸어오게 하소서'라고 주님께 요청을 했습니다. 그 때 주님이 하신 말씀은 "오라"라고 말씀하시며 베드로의 정면에 서서 오라고 하심임을 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향한 시선을 돌려 바람을 보았을 때 물에 그만 빠졌습니다. 여기서 기억할 것은 주님께서 시몬 베드로의 정면에 서서 "오라"고 하신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20: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 줄 알지 못하더라"

막달라 마리아는 향유를 주님 몸에 붓기 위해서 무덤으로 갔습니다. 이 때 주님은 막달아 마리아의 뒤에 서 계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하고 무덤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몬 베드로에게는 주님이 베드로의 정면에 서셔서 오라고 말씀하셨지만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뒤에 서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을 보게 되면 부활하신 주님과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곁에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서로 이야기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주님께서 그 두 사람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부활했다는 들은 이야기를 화제로 삼아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숙소에 가서 떡을 떼는 주님을 보고 그들은 주님이신 줄 알았습니다. 따라서 이 세 개를 종합해 보면 시몬 베드로에게는 주님이 정면에 서셨고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뒤에 서셨고 엠마오라 가는 두 제자에게는 곁에 서셨습니다. 이 세 사람들 즉 베드로는 정면에 서신 주님을 올바르게 몰랐고, 막달라 마리아는 뒤에 서신 주님을 몰랐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곁에 서신 주님을 몰랐습니다. 이 셋을 보면 주님은 앞이든 뒤든 옆이든 분명하게 제자들 가까이에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그 날 도마에게 주님이 말씀하실 때에도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복된 말씀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사람들이 상대해 주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시신이 없는 것을 보고 슬퍼하고 있을 때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가 주님의 못 자국과 창 자국에 손을 대고 만져보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에 대한 태도나 말씀은 정말로 진실하십니다. 따라서 마태복음 18:20절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도 진실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8:20절에서는  주님이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에서도 출애굽기 3장에서 보는 것처럼 약 400년 동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 시점, 그리고 이사야 시대는 약 700년 동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가 하는 그 시점에 이스라엘의 우고, 즉 고통을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서에서는 그들의 환난에 동참하사 즉 "그들의 고통을 함께 당하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천지를 만드신 그분께서 이스라엘의 환난, 그 고난에 동정을 하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 그 독생자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그 독생자의 목숨을 통해서 우리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버릴 정도로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에 동참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은혜에 동참했습니다. 주님의 이 사랑은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때때로 하나님을 잊었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때때로 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 말씀을 잘 기억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실되다는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지극히 가까운데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복되다고 생각합니다.

 

(2014 5 4일 강서모임)

 

posted by 징검 다리